필자가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몸담았던 회사는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이었다. 구성원은 내 또래인 20대가 대부분이라 사내에서도 형 동생 하며 친하게 지냈다. 자연스레 일이 끝난 이후에도 함께 게임을 하거나 술을 먹으러 가는 등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러다 보니 출신 지역, 학교, 술버릇 등 사적인 부분도 속속들이 아는 친밀한 관계가 됐다.그런데 회사에서는 토론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는데, 종종 형이라서 말을 못 하거나 동생이라서 발언권이 없는 등 불합리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후 자연스럽게 회사 동료와 어떤 관계로 지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어느 날, 여러 회사가 합동으로 수행하는 모 은행의 대형 IT 사업에 참여하게 됐는데, 거기서 필자보다 10살 정도 많은 컨설턴트 A를 만났다.A는 업무 능력이 무척 뛰어나서 배울 점이 많았다. 운 좋게도 A와 대화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고, 어느 날 A가 저녁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A와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에, A에게 편하게 반말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A는 이렇게 답했다.“지금 내가 말을 놓고 형 행세를 해버리면, 언젠가 진혁씨가 나의 상사 위치가 되었을 때 함께하지 못할 거 같아요. 난 진혁씨와 오랫동안 함께 일하고 싶어요. 그래서 나는 계속 존댓말을 하려고 합니다.”이날 들은 A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남았다. 그리고 회사 동료와 어떤 사이로 지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지금도 나는 A가 결혼을 했는지, 고향이 어디인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존댓말을 쓴다. 친한 사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신뢰하는 사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누군가가 “A가 이렇게 결정했다”고 말해도 ‘뭔가 합당한 이유가 있었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나중에라도 A를 만나면 결정의 이유에 대해서 어려움 없이 토론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대다수 조직이 함께 술을 마시고, 서로의 사생활을 공개하고, 반말을 하면 팀워크가 좋아져서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