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의 사내벤처로 시작한 아비커스는 선박의 자율운항에서 중요한 인지·탐지·제어 기능을 모두 갖춘 레벨 2 솔루션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제 막 출발선에 선 경쟁사들과 달리 그룹 내 뛰어난 건조기술과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 삼아 넓은 보폭으로 앞서가고 있다.
▎아비커스는 지금까지 자율운항 솔루션 레벨1을 300척이 넘는 선박에 수주했고 레벨2 또한 23척에 탑재하기로 했다. 사진은 임도형 아비커스 대표. / 사진:아비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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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으로 난도가 매우 높은 영역입니다. 수시로 달라지는 해상 환경을 인지하고 판단해 제어하는 건 난제에 가까워요. 육상에서는 간단한 주차도 파도가 요동치는 바다에선 무척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럼에도 자율운항은 필수불가결합니다. 연비를 줄이고 인재사고를 예방하며 인력난을 해결해줄 테니까요.”지난 5월 16일 서울 역삼동 아비커스 본사에서 만난 임도형 아비커스 대표는 선박의 자율운항이 어렵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수출입 물량에서 해상운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99%에 이르는 반면 선원 수는 5년 안에 20%가량 줄어들 것이란 통계가 있다”며 “해운업계는 선박의 자율운항이 해결책이 돼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국제해사기구(IMO)에서는 2028년 발효를 목표로 강제적인 자율운항선박 관련 규정 개발에 나섰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선박 자율운항 산업은 이제 막 필요성을 절감하고 출발선에 선 듯한 분위기다. 반면 아비커스는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시장에 뛰어들어 이미 유의미한 성과를 올리며 산업을 리드하고 있다.아비커스는 2018년 HD현대(구 현대중공업그룹) 내 자율운항 연구실로 출발했다. 조선업이라는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디지털 분야를 접목해 미래 해양산업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HD현대가 그린 큰 그림의 시작이었다. 연구실은 그룹에서 10여 년간 충돌회피 시스템 등 자율운항 관련 기술, 친환경 관련 기술 등을 연구하던 임도형 대표가 실장을 맡아 이끌었고, 2020년 4월 대형 상선에 탑재하는 항해 보조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등 눈부신 성과를 올렸다. 그러다 2020년 정기선 HD현대 사장의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으로 전환점을 맞았다. 이듬해인 2021년 1월 임 대표는 연구실 직원 7명과 함께 아비커스라는 이름으로 독립했고, 자율운항 솔루션 전문 기업으로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그룹의 기대와 지지를 기반으로 시작한 만큼 아비커스는 여러 분야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승승장구 중이다. 독립 이후 딥러닝 기술을 토대로 자동 항로 계획, 운항 선박 위치 추정 기능을 추가 개발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사람의 제어 없이 선박 내부 시스템만으로 운항하는 ‘완전자율운항’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 6월에는 대형선박(300m LNG 운반선)이 자율운항만으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하며 큰 화제를 낳았다.아비커스는 창업 후 2년간 R&D에 전념했다. 그결과 레벨 2에 이르는 자율운항 솔루션 ‘하이나스(HiNAS) 2.0’을 개발했다. 인공지능으로 인지, 판단, 제어가 가능하다. 최근엔 하이나스 2.0의 상용화에 성공하며 본격적으로 판로 확장에 나서고 있다. 임 대표는 “지난해 8월 장금상선, SK해운 등 국내 선사 2곳으로부터 대형선박의 자율운항 솔루션을 수주하며 세계 최초로 2단계 자율운항 솔루션을 상용화했다”고 자랑했다. 이로서 아비커스는 오는 8월부터 컨테이너선,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 등 23척에 시스템을 탑재하게 된다. 하이나스 1.0(레벨 1)은 300척 넘게 수주한 바 있다.“아비커스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비옥한 토양에서 시작한 덕분입니다. HD현대가 50년 넘게 쌓아온 세계적인 수준의 건조기술, 참고할 수 있는 자동차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 데이터들이 자율운항 기술을 빠르고 수준 높게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시장을 선점한 만큼 앞으로는 그 격차를 더 크게 벌려갈 계획입니다.”
임도형 대표는 2000년 현대중공업(현 HD현대) 공채로 입사해 동역학연구실, 제어시스템연구실 부서장을 거친 공학박사다. 그룹에서 20여 년간 국내 조선업의 흥망성쇠를 함께 겪으며 얻은 인사이트와 기술 경험으로 아비커스의 새 시대를 열고 있는 주역으로 통한다. 자율운항 솔루션 시장에서 단기간 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낸 그에게 기술적 난제, 제도적인 어려움, 미래전망 등을 자세히 들어봤다.
▎보트에 탑재된 사용자 디스플레이. / 사진:아비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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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의 자율운항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고 했는데.IMO에서 자율운항의 자율화 레벨을 정의하고 있는 단계고, 아직 보험이나 규제 같은 바운더리도 마련되지 않았다. 우리는 우선 자동차 자율주행 분류기준을 참고해 솔루션 단계를 나누고 있다. 인지·판단을 하는 솔루션을 레벨 1, 인지·판단·제어까지 하는 솔루션을 레벨 2라고 정의한다. 여기에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까지 제공하면 레벨 3, 가끔 사람이 관여하면 될 정도로 기술이 고도화된 솔루션을 레벨 4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완전 무인으로 운항하는 솔루션이 완성 단계인 레벨 5다. 아비커스는 레벨 2 상용화까지 마친 상태고 레벨 3와 레벨 4를 준비하고 있다. 레벨 2를 상용화한 곳은 전 세계에서 아비커스가 유일하다.
자동차에 비해 늦은 이유가 뭔가.자율운항 기술에서 중요한 기능 세 가지는 인지·판단·제어 능력이다. 육상에서의 자율운행과 동일한 기술을 사용하지만 기술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더 많다. 이를테면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수십~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주변 환경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또 좌초를 피하기 위해 물속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차선이 없기 때문에 밀집된 곳에서 충돌회피 경로를 세팅해야 한다. 한마디로 강건한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이처럼 기술적인 난도가 높지만 시장 규모는 작은 편이어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육상에서 자율주행 차량의 유용성이 검증되고 있는 만큼 해상에서도 빠른 속도로 도입될 것으로 본다. 현재 유럽과 일본의 항해 기자재 업체 3~4곳과 미국, 이스라엘, 핀란드의 스타트업, 한국과 중국의 조선소 정도가 패권을 다투는 중인데, 우리를 제외하고는 아직 레벨 1 정도의 기술수준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유일하게 레벨2 상용화를 이뤄낸 비결은.레벨 1과 레벨 2의 차이점은 제어 기능의 여부다. 선박은 바람, 파도 등 외부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몸집이 상당히 커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거나 제동을 하기 어렵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지와 판단을 기반으로 천천히 세밀하게 제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기존 장비들과의 인터페이스가 중요하다. 우리는 HD현대라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HD현대와 끈끈한 관계인 기자재 업체들과 협력이 잘돼서 이미 인터페이스를 다 열어둔 상태다. 또 그룹에서 50년 넘게 다양한 선종을 건조하며 얻은 기술력과 데이터도 우리에게 큰 자산이다. 선박은 선종이나 선형에 따라 움직임, 속도 등 운동 특성이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빙산을 피하려면 언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선종마다 세팅 값이 다 달라야 하는 것이다. HD현대에서는 이미 선종마다 실선, 모형선, 시뮬레이션 등으로 운동 특성을 테스트하고 파악해서 축적한 데이터가 무수히 많다.
사람의 눈 역할을 하는 센서는 어떤 걸 사용하나.레이다, 라이다, 카메라를 모두 사용해서 자동차처럼 서라운드 뷰를 제공한다. 대형 선박은 길이가 300~400m나 되기 때문에 카메라만 10개 정도를 설치해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받고 있다. 상선용 서라운드 뷰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을 상용화한 것도 우리가 유일하다. 또 선박의 특성상 사각지대가 많기 때문에 최대한 구석구석 볼 수 있도록 3D 영상 솔루션도 제공하고 있다.
AI기술 기반 솔루션에서 핵심은 데이터다. 아비커스는 데이터를 잘 활용하고 있나.정확한 인지를 위해 레이다, 컴퓨터 비전 등을 사용하는 데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딥러닝 기술을 사용한다. 이를 위해선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솔루션 300개 정도를 수주했고 30척을 인도했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딥러닝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해가고 있다. 운항 경로 계획이나 충돌회피 전략을 위해서도 날씨 관련 데이터나 숙련된 선원의 행동 패턴 데이터, 규제 데이터 등이 필요한데 그룹사와 협력하며 확보하고 있다.
솔루션은 대부분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비커스도 클라우드를 적극 활용하나.
▎레저 보트에 탑재된 대형상선용 레벨 2 자율운항 솔루션. / 사진:아비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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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는 자율운항 솔루션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기술이다. 우리가 구상하는 레벨 3에는 ‘서비스’가 추가된다. 서비스란 앱에서 ‘고등어 낚시 포인트로 이동하기’, ‘선셋 관람하러 가기’ 등을 선택하면 배가 가장 적절한 장소에 최적의 루트로 이동해주는 기능을 말한다. 당연히 수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고등어가 잘 잡히고, 일몰이 잘 보이는 곳을 찾아 안전하고 빠르게 이동해야 하니 말이다. 클라우드를 활용해 SNS에서 연동하려는 계획이다. 현재는 AWS IoT 기반 서비스를 활용한 선박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레벨 2에 이어 레벨 3, 레벨 4까지 개발되면 선박에서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계속 업데이트하고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때 자율운항 선박에 설치된 AWS IoT Greengrass가 정보를 수집하여 파이프라인을 통해 AWS Cloud로 연결하면, 클라우드에서 선박의 관리 및 OTA(Over The Air, 소프트웨어를 무선으로 업데이트하는 기술)를 진행할 수 있다.
IMO가 자율운항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의 자율운항 선박이 국제표준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IMO에서는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율운항선박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자율운항선박을 도입하는 데 필요 또는 방해가 되는 기존 규정들을 식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현재는 강제적인 자율운항선박 관련 규정을 개발하고 있으며, 그 전에 임시적인 방안으로 비강제 MASS Code 개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중요한 건 우리나라의 기술과 선박이 국제표준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국제표준에 맞지 않으면 지금까지 개발한 솔루션을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하거나 아예 못 쓰게 될 수 있다. 하지만 기술 표준은 국가와 정부가 주도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해양수산부와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으며 세계기자재협회 참여, 선급·기국과 협력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비커스도 조선소 및 자율운항솔루션 업체의 입장에서 관련 데이터나 테스트 베드, 의견을 활발하게 제공하고 있다. 이달 말에 개최되는 런던 IMO 총회에도 직접 참석할 예정이다. 현재 일본이 강력하게 이 작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은 조선업 자체는 무너진 지 오래지만 기자재에서 만큼은 세계 1등이다. 자율운항선박은 결국 기자재 싸움이어서 유리한 측면이 많아 보인다. 유럽 몇몇 국가도 강력한 대항마로 꼽힌다. 국제표준이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독소 조항이라도 막을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상용화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자율운항선박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나.완벽한 무인 상태인 레벨 5보다는 사람이 가끔 관여하면 되는 레벨 4 정도로 상용화하지 않을까. 우린 5년 안에 레벨 4까지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솔직히 그 시기를 확정하긴 힘들다. 자동차처럼 다양한 문제가 생겨 늦춰질 수도 있지만 꼭 가야 할 길이고 전망이 밝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고령화나 기피현상 등으로 인한 선원 수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전체 해양사고의 80%에 이르는 인재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친환경에도 기여한다. 최근 자율운항으로 태평양을 횡단했는데 이때 동일한 속도를 유지하도록 세팅해 운항했더니 그렇지 않을 때보다 연비를 7~10%가량 아낄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IMO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총배출량 2008년 대비 50% 감축’ 등 강력한 환경 규제를 제시한 바 있다. 이 목표를 맞추기 위해 차세대 연료 추진선 등을 개발해야 하는데, 자율운항선박도 연료를 아끼고 오염물질을 감축한다는 점에서 미래 해양산업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아비커스의 다음 스텝은.자율운항 솔루션을 레저용 보트시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인의 80%는 레저용 보트를 소유하길 원하지만 이중 70%가 운전이 미숙하다는 이유로 포기한다고 한다. 여러 박람회에서 자율운항 레저보트를 선보였더니 반응이 뜨거웠다.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레저 보트 시장에서 자율운항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게 목표다.-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