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40) 

충동 | 감정과 행동의 조절 

39세에 짧은 생을 마감한 카라바조(Caravaggio)는 이탈리아의 바로크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는 15번이나 수사기록에 오르고 7번 투옥될 만큼 충동적이었다. 참수형을 피하고자 도주하던 가운데서도 그는 수많은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카라바조 [병든 바쿠스] 1593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인간은 하루에 1000번이 넘는 충동을 경험한다. 핸드폰을 던지고 싶은 충동,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 서류를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 등 수없이 스쳐지나가는 충동들이 유발되었다가 사그라드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충동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이성적으로 그 충동을 조절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고, 그러지 않기 위해 반사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 때 사람들은 핸드폰을 손에 더 꼭 쥐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행동을 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이나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임을 충분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행동을 유발하는 충동에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 자해하고 싶은 충동, 화를 내고 싶은 충동,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하고 싶은 충동 등이 조절되지 않고, 이 충동을 행동화하기 전까지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리고 일단 충동을 행동으로 옳기고 나면 쾌감, 만족감, 안도감까지 경험하기에 충동행동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강화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증상을 겪을 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약물 처방이나 심리치료 등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의학과 심리학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충동조절장애로 인해 타인뿐 아니라 자신까지 파괴하는 것을 그대로 겪으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광기를 숭배한 추종자들


▎카라바조 [라자로의 부활] 1609
39년간 살면서 수사기록에 15번이나 이름을 올리고, 7번 투옥되었던 작가가 있다. 이탈리아의 바로크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이다.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이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고향의 이름인 카라바조로 바꾸어 사용했다.

카라바조는 다양한 신화와 종교 속 인물을 그렸는데, 특히 디오니소스를 여러 차례 그림에 등장시켰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테베의 공주 테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이다. 제우스의 아이 중 유일하게 인간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남편의 외도를 질투한 헤라는 테멜레를 찾아가 제우스가 황금갑옷을 입은 모습을 본 적 있냐고 물었고, 만약 보지 못했다면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왔다. 이 이야기를 들은 테멜레는 제우스에게 황금갑옷을 보여달라고 애원했고, 제우스는 어쩔 수 없이 그녀 앞에서 황금갑옷을 입었다. 하지만 인간이었던 테멜레는 갑옷에서 뿜어나오는 빛을 견디지 못하고 타 죽고 말았다. 제우스는 이때 그녀의 배 속에 잉태되어 있던 디오니소스를 꺼내어 자신의 허벅지에 넣고 꿰맸다.

술의 신이라 불리는 디오니소스는 포도 생산법과 포도주 제조법을 사람들에게 전수하며 도취와 광기의 축제를 벌였다. 술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며, 고통과 번민에서 잠시 해방될 수 있게 해준다. 디오니소스의 광기에 도취된 광신도들이 늘 그를 뒤따랐다. 카라바조는 그런 디오니소스를 [병든 바쿠스]라는 제목으로 그려 화단에 발표했다. 가난에 시달리던 그는 빈민구제소에서 치료를 받고 나왔던 자신의 모습을 신의 모습에 빗대 표현한다. 신이지만 손톱에는 때가 끼고, 시든 화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병 때문에 창백한 모습이다.

카라바조는 당시의 전통적인 회화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갔다. 충동적인 그의 성격은 매력적인 예술가로 보이게 했고 실력이 뛰어났기에 성격적 결함은 하나의 특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보수적인 미술계에서는 스케치가 없는 계획되지 않는 작품 제작 방식, 지나치게 강렬하고 연극적인 연출 방식 등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지만, 젊은 작가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네덜란드 화가이자 비평가인 카렐 판 만더는 [화가의 삶]에서 “우리의 젊은 화가들은 곧 카라바조의 양식을 따르게 될 것”이라는 강렬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디오니소스의 뒤를 따랐던 광신도처럼, 젊은 작가들은 카라바조를 숭배했고, 그의 화풍을 흠모했으며, 자신의 그림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원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기에


▎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1610
카라바조는 리얼리티에 심취한 화가였다. 여전히 신화와 종교적 그림을 그렸기에 사실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보이는 것을 묘사하는 데 광적으로 집착하며 그림을 그렸다. 카라바조는 당시 1000스쿠디(이탈리아 화폐단위·scudi)라는 고가에 [성모자와 세례자 요한]을 그리기로 계약했는데, 주문자 라자리가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자 그 자리에서 칼로 자신의 그림을 찢어버리고 훨씬 아름다운 작품을 들고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그린 그림이 [라자로의 부활]이다.

[라자로의 부활]은 죽은 지 사흘이 지나 시체 냄새가 나고 있던 라자로에게 예수님이 손을 뻗어 구원의 빛을 보내고 있고, 이미 썩기 시작한 라자로의 시신 위로 그 빛이 뻗어나가고 있는 장면이다. 카라바조는 이 장면을 그리기 위해 인부 두 명을 고용하여 무덤을 파서 시체를 꺼냈고, 인부들은 시체가 썩어가는 냄새를 맡으면서 그림 속 장면처럼 시체를 들고 있었다. 지독한 냄새와 무게 때문에 인부가 시체를 떨어뜨리자 카라바조는 칼로 위협하며 인부에게 끝까지 들고 있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카라바조가 원하는 것은 끝까지 했다는 또 다른 기록도 있다. 카라바조는 로마 화가 지오반니 발리오네와 그림 주문을 두고 경쟁을 벌였는데, 마지막 순간에 발리오레가 선택되자 화가 난 카라바조는 그에 관한 험담과 비난을 퍼뜨리고 다녔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도 비방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빌리오네는 더는 참지 못하고 명예훼손으로 카라바조를 고소했고, 1603년 재판이 진행되었다. 자신이 경쟁에서 실패한데 앙심을 품은 카라바조는 명예훼손 혐의를 부정하면서 재판에서도 그의 그림 실력을 최악이라고 폄하했다.

멈추지 못했던 파괴성

카라바조의 충동은 조절되지 못했고 더욱 파괴적으로 나타났다. 주택침입죄로 체포되기도 했고, 공증인 파스콸로네를 폭행해 체포되기도 했으며, 임대료를 6개월이나 납부하지 않았고, 하숙집 주인이 사는 방의 창문에 돌을 던진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사건은 1605년, 교황 즉위 1년 축하식에서 일어났다. 캄포 마르치오에서 네 사람씩 편을 이뤄 싸움을 했는데, 이 싸움으로 인해 한쪽 리더였던 라누초 다 테르니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상대편 리더였던 카라바조는 살인죄를 저지른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자신의 참수형 선고를 예상이라도 한 듯, 그의 그림에는 참수에 관한 그림이 많이 등장한다. 남아 있는 카라바조의 작품 중 참수화가 12점이나 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다. 메두사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마녀로, 로르고네스 세 자매 중 한 명이다. 메두사와 눈이 마주치는 사람은 모두 돌로 변해버렸는데,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거울처럼 잘 닦인 방패를 이용해 방패에 비친 모습을 보며 메두사의 머리를 잘랐다.

카라바조는 메두사의 이야기에서 다른 요소는 제외하고 잘린 메두사 머리만 그렸다. 원형 캔버스에 그려진 메두사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차 있다. 목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와 그녀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림 속 메두사의 얼굴을 보면 여성의 모습이라고 추측하기는 어렵다. 메두사의 모습은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자신의 충동 때문에 겪는 고통과, 이 충동을 누군가가 멈추어주기를 바라는 카라바조의 마음이 투사된 그의 자화상으로 추측된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카라바조 [메두사] 1598
카라바조는 참수형을 선고받고도 계속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주문받았고, 명작도 탄생시켰다. 참수형을 피하기 위해 나폴리로 도주하고, 그림 실력으로 몰타 기사단의 인정을 받아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작위를 받은 후 6개월 후 기사단원과 싸워 중상을 입히고 또다시 도주자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몰타 기사단의 습격을 받아 얼굴이 크게 다치는 중상을 입었다.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은 그가 죽기 전 그린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다윗은 이스라엘에 살았던 소년이다. 필리스타인의 투사 골리앗은 괴물처럼 큰 덩치에 청동투구와 비늘갑옷으로 무장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군에게 1:1로 싸워 지면 상대의 종이 되자는 제안을 했다. 이때 소년 다윗이 갑옷과 투구를 모두 거절한 채 맨몸으로 막대기와 돌멩이를 손에 들고 나가 골리앗의 이마에 돌을 던졌다.

카라바조는 이 작품 속 다윗을 과거 소년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골리앗의 얼굴에는 습격을 받아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도달해 더는 도망갈 곳이 없는 지금의 자신을 과거의 자신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삶이 끝나가고 있음을 깨달은 카라바조의 얼굴은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조절되지 못했던 충동의 죄값을 치르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39세 나이로 쓸쓸하게 사망했다.

자신이 선택한 행동화

수많은 충동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갈 때, 행동화되는 것들은 그 충동에 자신이 믿음을 실어준 경우이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온갖 생각이 떠오르지만 폭식하는 것에 믿음을 실어줄 경우, 그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음식을 찾을 것이다. 누군가는 폭력을, 누군가는 술을, 누군가는 잠을 찾을 수도 있다. 병리적인 충동조절장애라면 의학적·상담적 도움을 받아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일상에서 결국 1000가지 충동 중 자신이 힘을 실어준 충동들만 행동화된다.

반복적으로 원치 않는 행동이 튀어나와 자신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면, 자신이 생각과 감정, 행동의 주체자라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결국 선택했고, 그 반응도 스스로 유도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동안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충동을 행동화하도록 내버려둔 것은 결국 자신이었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다시 비슷한 상황을 만날 때 떠올릴 수 있다면 충동적 감정을 분출한 과거의 결과를 반복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 김소울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이다.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306호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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