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셧다운’과 샘플링의 역사성 

편곡이나 편곡에서 출발한 작곡의 경우 원곡과 새로운 곡에 관한 정보 모두를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독일 화가·조각가· 판화가 쿠르트 슈비테스(1887~1948)의 콜라주 작품 [Das Undbild,1919]
‘Shut Down(셧다운)’은 K-Pop 그룹 블랙핑크가 작년 가을에 발매한 새 앨범 속 주제곡이다. ‘Shut Down’에 대한 호평이 지속되고 있다. 많은 기사가 이 곡의 기본 개념인 샘플링을 거론한다. 샘플링이라는 개념에는 역사가 있다.

‘Shut Down’ 공식 뮤직비디오의 조회수는 무려 4억5000만 건이다. 200만 개가 넘는 댓글에는 온갖 언어가 다 보인다. 공식 뮤직비디오가 아닌 다른 영상들도 수 백만에 이르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발매 당시에는 미국 등을 포함해 세계 5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몇 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엄청난 성공이었다. 많은 사람이 ‘Shut Down’에서 클래식과 힙합의 창조적 만남과 절묘한 조화를 지적한다. 19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니콜로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라는 클래식곡과 블랙핑크의 랩 혹은 힙합이 창조적으로 만났고 서로 잘 조화되었다는 이야기다.

이탈리아어로 ‘작은 종’을 뜻하는 ‘라 캄파넬라’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중 3악장을 간편히 부르는 명칭이다. 1826년 작곡된 바이올린곡 ‘라 캄파넬라’는 1832년, 프란츠 리스트에 의해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되었다. 리스트는 1838년과 1851년에도 ‘라 캄파넬라’를 편곡하고는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다. 1851년의 곡에는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6개의 대연습곡 중 3번 G Sharp 단조, S.141, ‘라 캄파넬라’]라는 긴 제목이 붙었다.

클래식 작곡가들은 이렇게 타인의 곡을 편곡해왔다. 다양한 방식의 편곡이 있는데, 모든 편곡에는 타인의 알려진 곡을 사용하면서 원곡을 수정하고 그로부터 멀어져가는 본질적 특징이 있다. 원곡의 수정 정도가 낮고, 원곡의 특징들이 많이 유지된다면 편곡이고 수정 정도가 높고 (비록 원곡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원곡과 엄연히 다른 세계가 만들어졌다면 작곡일 수 있다. 상기한 리스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은 곡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단순 편곡이 아니다. 이 곡은 엄연한 리스트의 작품이다. 출발점은 파가니니의 곡이었겠지만.

편곡이나 편곡으로부터 출발한 작곡의 경우에 원곡과 새로운 곡에 관한 정보 모두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직관적으로, 상식적으로 보아도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자기 작품에서조차 리스트는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이라면서 파가니니를 언급했다. 단순 편곡을 가리키면서 원곡 작곡가를 거론하지 않는다면 문제일 것이다. 원곡 작곡가를 거론하지 않으면서 편곡자가 편곡을 자기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일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양식이 있는 연주가는 이런 편곡을 연주할 때 원곡 작곡가와 원곡 제목을 팸플릿에 적고, 여기에 덧붙여 편곡자의 정보도 기재할 것이다. 편곡자의 노력도 알려져야 하기에, 누군가에 의해 편곡된 모든 곡의 연주에서 편곡자의 이름도 기재되어야 한다.

‘…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같은 제목은 양식 있는 클래식 작곡가들에게 편곡이자 작곡을 허락하는 너무나 익숙한 방식이었고, 원곡자를 존중하면서 자신의 권리도 당당히 주장하는 한 방식이 되었다. 베토벤 같은 이는 영국 국가를 가지고도 변주곡을 만들었다. [영국 국가에 의한 7개의 변주곡]을 가지고 베토벤을 단순 편곡자라고 깎아내리지도 않으며, 그를 영국 국가를 도용한 표절 작곡가라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이런 변주곡들이 샘플링의 뿌리일 수는 없지만 배경일 수는 있다. 변주곡이라는 장르는 어떤 곡의 요소 100%가 그 곡의 작곡자에게서만 비롯된 게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변주곡과 다른 방식들로도 타인의 음악적 요소들을 쓸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용(citation)이다. 세상 모든 글에는 작가가 인용한 타인의 글들이 있을 수 있다. 학자들이 쓴 논문이나 책의 끝자락에 보면 인용 정보만 체계적으로 정리한 ‘참고문헌’ 부분이 있다. 양식 있는 학자들은 참고문헌을 기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쓴 글 본문의 어느 부분이 타인이 쓴 어떤 논문의 몇 쪽을 인용했는지 소상히 밝힌다. 이런 인용 정보를 체계적으로 기재하는 방법은 무척 까다롭지만, 학자를 지망하는 이라면 그것에 대해 꼼꼼히 공부해야 한다. 인용 정보가 허술한 논문에 문제가 있다고 판정하는 것이 권위 있는 학계의 관습이다.

인용 정보를 기재하지 않고 타인의 문장을 인용하면 표절이다. 이것은 음악에서도 같다. 다만 악보의 끝자락에는 그런 인용 정보만 따로 기재하는 ‘참고 악보’와 같은 부분은 없다. 사실, 광범위한 인용을 통해 자신의 책이나 논문을 완성하는 학자들과 달리, 광범위한 인용을 통한 작곡은 무척 드물다.

18~19세기 음악사를 돌이키면, 인용을 포함하는 작품의 사례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었다. 예를 들어, 리하르트 바그너는 오페라 [파르지팔]의 전주곡에서 18세기 작곡가 요한 고틀리프 나우만의 ‘드레스덴 아멘’을 사용했다. 이 찬송가는 바그너의 선배였던 멘델스존의 [종교개혁 교향곡] 4악장에서도 사용되었다. 바그너와 멘델스존은 이처럼 타인의 선율을 사용했는데, 그 사실을 어디에도 기재하지 않았다. 이들의 작품에서 ‘드레스덴 아멘’은 편곡된 것도 아니었고, 단순 사용된 것이었는데도, 이 작곡가들은 표절 시비를 겪지 않았다. ‘드레스덴 아멘’이 독일인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선율이었기 때문이다. 바그너와 멘델스존의 어렵고 예술적인 작품들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매주 교회에서 부르는 친숙한 ‘드레스덴 아멘’을 들었고, 그 사실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표절 시비를 겪지 않기 위한 첫 번째 팁을 알 수 있다. 사용 혹은 인용되는 선율이나 문구가 사람들에게 유명하면 된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를 어떤 수필에서 쓴 수필가는 소크라테스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거론하면 문제가 된다. 이 유명한 문구는 정작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블랙핑크-‘셧다운’ MV(공식 동영상)
이렇게, 타인의 곡조를 인용 혹은 사용하는 클래식 작품들이 좀 있는데, 20세기에 오면 이런 사용/인용은 좀 더 많아지고, 사용/인용의 방식도 달라진다. 타인의 곡을 사용/인용하는 걸 특히 쉽게 해준 것은 음향들을 녹음하게 하고 서로 다른 음향들을 연결하게 해주는 녹음/믹싱 기술이었다. 간혹 대중음악에서 악기나 사람의 노래가 아닌 일상적 소음이 들리는 경우가 있고, 이런 경우를 클래식에는 없고 대중음악에만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인식은 틀렸다. 19세기 클래식에서도 대포와 같은, 악기가 아닌 도구가 무대 위에 오른 사례들이 있었고, 20세기에 오면 상술한 녹음/믹싱 기술을 이용해 일상적 소리가 음악의 영역에서 많이 들려진다.

녹음/믹싱 기술 덕분에 자신이 어떤 음향을 스스로 일일이 만들지 않고, 이미 저기 어딘가에 존재하는 음향을 자기 작품에 가지고 올 수 있게 되었다. 파도 소리와 산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를 싫어하는 이는 없다. 그런 좋은 소리를 자신의 녹음기로 스스로 녹음한 후 자기 작품에 쓰면 표절 시비도 없으며 저작권상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동해에서 듣는 파도 소리는 어떤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과 사회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녹음한 후, 믹서를 통해 믹싱한 것을 음악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1940년대 후반의 프랑스에 등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새로운 음악을 ‘구체음악’이라고 불렀다. 자동차 클랙슨 소리나 파도 소리, 기차 소리는 도, 레, 미와 같이 추상적인 소리가 아니라 현실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소리이고, 그런 구체적 소리로 음악을 만들면 ‘구체음악’이 된다.

구체음악의 이 아이디어는 클래식의 적자(嫡子)일 수 있는 20세기 현대음악의 매우 혁신적 발상이 되어, 많은 실험적 구체음악이 1950년대 이후에 만들어졌다. 대중음악에서도 이 생각이 받아들여졌다. 1970년대에 활동한 일부 혁신적 대중음악가들이 같은 아이디어를 받아들였고, 자신의 음반에서 그 아이디어를 실현했다.

자연적/사회적 음향은 선율, 화음, 반주 등이 있는 어떤 곡에서 음향적 효과로 쓰일 수 있다. 이런 효과음향을 샘플이라고 부를 수 있고, 이런 샘플의 사용을 샘플링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슈가가 2020년에 발표했던 솔로곡 ‘대취타(大吹打)’를 생각해보자. 슈가는 태평소, 나각, 징 등 전통악기 소리로 연주되는 조선시대 행진곡 ‘대취타’를 자신의 힙합에 사용했다. 슈가의 놀라운 곡에는 힙합의 요소는 많고, 행진곡 ‘대취타’ 속 요소는 그리 많지 않다. ‘Shut down’에서 블랙핑크는 타인의 곡인 ‘라 캄파넬라’를 많이 사용했다. ‘Shut down’의 처음부터 끝까지 ‘라 캄파넬라’는 멈추지 않는다. ‘라 캄파넬라’는 매우 유명하니, 표절 시비는 없다.

1991년 신승훈은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노래의 도입부에서 베토벤의 가곡 ‘그대를 사랑해(Ich liebe dich)’의 앞부분을 사용했다. 이것도 샘플링이다. 신승훈의 곡에서 베토벤의 요소는 곡의 초반에만 나온다. 베토벤의 곡이 신승훈의 노래에 반주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슈가의 곡에서도 ‘대취타’의 요소가 반주 역할까지 하지 않는다. 블랙핑크의 곡에서는 ‘라 캄파넬라’가 반주 혹은 협주의 역할을 한다. 뭐라고 이름을 붙이든, ‘라 캄파넬라’는 ‘Shut down’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Shut down’의 새로운 점은 이전의 수식적이며 소극적이었던 샘플링을 음악의 구조적 근간으로 당당히 사용했다는 점이다.

샘플링은 새 소리, 파도 소리, ‘라 캄파넬라’처럼 저기 어딘가에 있는, ‘ready-made’의 음악적/음향적 소재의 전체 혹은 요소를 취한 후 어쿠스틱한 방식이나 디지털기기를 통해 가공/처리하여 자신의 곡에 사용하는 기법 혹은 관련된 생각이다. 그 사용 방식도 여러 가지다. 이 생각은 대중음악의 고유한 것이 아니다. 클래식에서도 선례들이 있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파우스트』의 일부분을 위해 중세의 마녀사냥을 다룬 책인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의 내용을-조금 수정하여-사용했다. 미술에서는 콜라주나 파운드아트(found art) 같은 장르에서 그 발상을 찾을 수 있다. 미술 혹은 시각예술의 콜라주와 파운드아트 개념은 과거의 음악에 이미 수용되어 성과를 보였다. 지금도 실험적인 현대음악가들은 매우 창의적인 샘플링의 요소와 방식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 ‘Shut down’은 훌륭한 곡이고 매력적인 예술작품이지만, 일부 기사에서 평가하듯이 대세를 이끄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건 아니다. ‘Shut down’의 창조성은 설명할 수 있고, 그 설명은 역사에 관한 지식을 통한다.

※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307호 (20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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