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법률시장 게임 체인저 생성형 AI와 리걸테크] 글로벌 리걸테크 동향 

생성형 AI 만나 비약적 성장 

이진원 기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법률 서비스 ‘리걸테크’가 국내에서는 아직 성장이 더딘 반면, 해외에서는 미래 성장성이 큰 산업 영역으로 평가되며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Tracxn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세계 리걸테크 기업은 7000여 개, 투자 규모는 113억 달러(15조원)에 달한다. 이 중 48억 달러가 최근 2년간 투자됐다. Tracxn은 세계적으로 높은 기업가치로 평가된 리걸테크 기업을 총 25개 꼽았다. 북미 20개, 유럽 3개, 아시아 2개였고 국내 기업은 없었다.

생성형 AI(인공지능) 등장을 가장 빠르게 흡수하는 분야가 바로 리걸테크다. 2023년 6월 로이터통신으로 알려진 톰슨로이터가 법무 AI스타트업 케이스텍스트(Casetext)를 인수한 소식은 이런 트렌드의 일단을 잘 보여준다. 인수액은 6억5000만 달러(7353억원)로 규제 당국의 승인과 클로징 조건을 충족하면 2023년 하반기에 인수가 성사된다.

2013년에 설립된 케이스텍스트는 법률 관련 정보를 전달하고 법률 전문가들의 지식 공유 커뮤니티를 운영하던 스타트업이었다. 판례, 법률자료 분석, 주석 공유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법조계의 위키피디아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케이스텍스트는 사업 전략을 전환해 기업 법무팀과 로펌을 대상으로 워크플로를 자동화하는 AI 툴을 개발하고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오픈AI의 주력 대규모 언어 모델인 GPT4에 조기 엑세스가 허가된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였다.

케이스텍스트의 주력 제품은 코카운슬(CoCounsel)이다. AI를 활용해 문서 검토, 법률 연구 메모 작성, 증언 준비, 계약 분석 등을 자동화하는 도구다. 케이스텍스트는 1만 개 넘는 로펌과 기업 법무팀에 이 도구를 서비스하고 있다.

미래성장동력으로의 리걸테크

그렇다면 미디어 사업자로 널리 알려진 톰슨로이터가 왜 법무 AI스타트업들을 인수하는 걸까. 톰슨로이터의 현재 사업 및 수익 구조를 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톰슨로이터는 크게 ▷리걸 프로페셔널 ▷기업 ▷세무·회계 ▷로이터통신 ▷글로벌 출판 등 5개 사업 분야가 있다. 톰슨로이터의 『팩트북』에 따르면 2020년 수익은 60억 달러, 이 중 로이터통신의 사업 수익은 6억 달러로 11%를 차지한다. 5개 사업 중 4번째 규모다. 톰슨로이터의 최대 사업은 리걸 프로페셔널이다. 수익은 25억 달러로 42%를 차지한다.

사업 성장률을 보면 로이터통신과 글로벌 출판이 둔화·마이너스 성장하는 가운데, 리걸 프로페셔널과 기업 부문은 4~5%씩 성장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법률 서비스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톰슨로이터가 제공하는 주력 법률 서비스는 법원의 의견, 법률, 규제, 법률 전문가를 위한 뉴스, 법률 문헌, 법률 해석 등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리서치 서비스 ‘WestLaw’, 구체적 업무 가이드, 체크리스트, 템플릿, 표준 문서 등 실무 정보를 제공하는 ‘Practical Law’, 회계, 재무관리, 고객관계관리, 리스크관리 등 법률사무소 운영에 필요한 기능을 일원화한 ‘Elite’ 등이 있다.

톰슨로이터는 지난 20여 년간 국내 법률 정보 서비스인 로앤비를 비롯해 글로벌 단위 IT기업과 법률서비스 기업을 200개 이상 인수해왔다. 최근 진행한 케이스텍스트 인수도 이러한 장기 전략의 일환이며 톰슨로이터는 앞으로 법무 분야를 중심으로 생성형 AI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톰슨로이터 보고서에 따르면 법무 분야에서 생성형 AI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톰슨로이터가 리걸테크에 투자를 확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톰슨로이터 연구소(Thomson Reuters Institute)가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 법무 부서와 로펌 모두 생성형 AI에 법조계 미래가 있다고 보았다. 두 그룹의 80% 이상이 생성형 AI를 법률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고 응답했으며, 두 그룹의 절반 이상(기업 응답자 54%, 로펌 응답자 51%)이 기술을 법률 업무에 적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법률 분야에서 AI 활용의 범위로는 지식 관리, 백오피스 기능, 요약서와 메모 작성 등이 모색된다. 로펌이 관심 있는 AI 사용 사례에 대한 조사를 보면, 계약서 작성 및 검토(76%), 합법성 연구(69%), 질문·응답 서비스(67%), 요약 또는 메모 작성 및 검토(64%), 지식관리(62%), 백오피스 기능(59%) 순으로 나타났다.

한편 AI 활용이 본격화할 시기에 대한 질문에는 향후 6개월 이내란 답변이 61%로 가장 많았고, 6~12개월 후 24%,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 중 19%, 1~3년 후 14%, 확실하지 않음 12% 순이었다.

기업 법무에서의 생성형 AI 이니셔티브

기업 법무팀에서 생성형 AI의 활용 가능성이나 리스크를 찾아내기 위해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하거나, 어드바이저리를 실시하는 등의 움직임이 늘고 있다.

일례로 미국 온라인 딜리버리 기업 인스타카트(Instacart)는 법무 부서를 중심으로 IT, 영업, 프라이버시 팀원을 포함한 AI 드라이브팀을 설립해, 특히 생성형 AI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사내 이용 정책을 정비하고 있다.

또 영국 다국적은행 스탠다드차타드는 AI 이용에 초점을 맞춘 독자적인 평의회를 설립해 법무 부문을 중심으로 ‘책임 있는 AI 이용’을 실행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책임 있는 AI 이용 원칙에 대한 논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규제 당국도 대응하고 있다. 지난 8월 1일 일본 법무성은 ‘리걸테크 활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최근 AI기술을 활용해 계약서 작성, 문제점 검토, 심사 보조 등을 서비스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변호사 이외 법률 사무를 금지하는 일본 관련 법 ‘변호사법 72조’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변호사법 72조에 제시된 ‘보수를 얻는 목적’, ‘법률분쟁과 의의가 있는 안건’, ‘법률상의 전문적 지식에 근거하여 법률적 견해를 기술’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리걸테크의 제공은 변호사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규정지었다. 만일 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도 변호사나 로펌이 서비스를 제공받아 스스로 필요에 따라 수정하는 경우는 불법이 아니라고 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부터 AI 계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본의 리걸테크 기업 4곳이 협회를 설립하고 각사 서비스의 적법성을 홍보해왔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결정에 따라 변호사닷컴 등 일본의 리걸테크 기업들은 가이드라인에 맞춰 여러 서비스와 비즈니스 개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특히 유럽에서는 앞으로 수년 후에는 AI 규제법이 시행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국가별로 규제에 대응하는 체제 구축과 개발 경쟁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스기사] 디지털포렌식과 미국의 리걸테크


미국에는 변호사가 많아 로펌 간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 로펌은 비용 절감뿐 아니라 서비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지난 수년간 리걸테크 도입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특히 미국이 리걸테크를 빠르게 추진한 배경에는 ‘디스커버리(증거 공개)’ 절차가 있다. 디스커버리는 정식 사실심리에 앞서 당사자 간 이뤄지는 법정 외 증거 공개 절차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메일 이용이 본격화하면서 공개 대상이 되는 증거 대부분을 전자 데이터가 차지하게 됐다. 전자 데이터 증거 공개는 ‘e디스커버리’라고 불린다. e디스커버리는 취급해야 하는 정보량이 많고, 증거가 되는 문서의 변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특수 IT 기술인 디지털포렌식을 적용해 공개 절차를 진행하는 업무가 정착했다.

디지털포렌식 기술을 이용해 서버나 PC에 보존돼 있는 문서의 보전·수집, 데이터의 처리·분석을 실시한다. e디스커버리 분야에서 2010년대부터 AI를 도입됐고 성능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

디지털포렌식 기술은 하이테크 범죄와 정보 유출, 품질 및 감사 부정, 카르텔 및 뇌물 수수를 비롯한 규정(Compliance) 위반 등 부정 조사에서 유용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서버나 PC 등 디지털 기록 속에 남겨진 증거를 보전·수집·조사·해석하는 디지털포렌식 기술 제공 기업이 잇달아 서비스를 개시하고 있다. 특히 법무 부문·지식재산권 부문에 적용된 솔루션은 전체 비즈니스를 다루는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더불어 ESG에 대한 의식이 고조되면서 규정 준수 시스템의 강화가 요구되는 가운데, 디지털포렌식 구현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정착해가고 있다.

-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r

202309호 (2023.08.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