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Cover

Home>포브스>On the Cover

김이을 쎄트렉아이 대표 

한국 우주산업의 개척자 

장진원 기자
쎄트렉아이는 우주에서 검증된 위성체계 개발 능력을 보유한 국내 유일 기업이다. 지구 관측용 초고해상도 위성 분야에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회사를 이끄는 김이을 대표는 한국 독자 위성 개발사의 첫 장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내 우주산업을 대표하는 엔지니어이자 CEO다.

1992년,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며 32년 만에 문민정부 시대가 열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과 중국이 정식으로 수교를 맺은 것도 이 해다. 나라 밖에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났다. 국제연합(UN)은 1992년을 ‘세계 우주의 해’로 승인했다. 마침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나라 안팎에서 인류사의 변곡점이 이어지던 그해, 대한민국도 우주산업이라는,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여명기를 맞았다. 1992년 8월 11일, 남미 기아나 쿠루우주센터에서 발사된 ‘우리별 1호’ 인공위성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22번째로 자체 인공위성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이듬해에는 ‘우리별 2호’가 연이어 발사됐다. 우리별 1호가 영국 서리대학교와 공동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된 데 비해, 2호는 1호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원들과 국내 연구원들이 주축이 돼 위성 설계부터 제작, 시험까지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해냈다.

6년 후인 1999년 들어선 ‘우리별 3호’ 위성이 발사됐다. 한국 고유의 3축 자세 제어 방식을 적용한 소형 위성 시스템을 독자 개발해 기술적 진보를 더 크게 이뤄낸 쾌거였다. 우리별 인공위성 개발은 우주산업의 불모지였던 한국을 국제 무대에 데뷔시킨 일대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지구 관측, 통신, 천문 등 독자적인 위성 개발·제작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독자 인공위성 시대를 연 우리별 시리즈는 1999년 3호 발사 성공을 계기로 또 다른 전기를 맞았다. 민간이 주도하는 인공위성 제작 시대의 개화다. 1999년 12월 설립한 쎄트렉아이가 주인공이다. 우리별 위성 시리즈 개발에 참여한 핵심 인력들이 독립해 창업한 쎄트렉아이는 설립 당시는 물론 20년이 지난 지금도 위성 제작 전반에 걸친 기술을 보유하고 이를 우주에서 실증해낸 국내 유일의 위성체계 전문기업이다.

국내 유일의 위성체계 전문기업


한국의 인공위성 개발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과학기술대학이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과 통합됐고, 우주개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카이스트 안에 인공위성연구센터가 설립됐다. 과학기술대 초대 학장을 지낸 고(故) 최순달 박사가 센터 설립을 주도했다. 구미 선진국과 일본에 비해 걸음마 수준에도 못 미쳤던 우주개발에 발을 들이고, 관련 인재를 양성하려는 목표였다. 최대한 짧은 기간 안에 가장 효과적으로 우주기술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는 인공위성 개발 프로젝트로 구체화됐다.

“1989년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가 설립됐어요. 재학생 중 몇몇을 선발해 유학생·훈련생 개념으로 다양한 국가에 파견했죠. 국가적 미션을 받고 떠난 겁니다. 영국 서리대학교에 가장 많은 인원이 나갔고, 분야에 따라 미국, 일본에도 갔습니다. 저도 영국 런던대학교에 파견됐죠. 위성 탑재장치 제작 기술을 확보하라는 임무를 받았어요.”

쎄트렉아이를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김이을 대표는 한국의 초기 위성 개발사부터 들려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우리별 1호가 영국 서리대학교와 공동 개발된 배경이 그제야 이해됐다. 위성이든 발사체든 초기 우주기술 개발은 국가 주도의 기간산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리대학은 학교라는 배경 덕에 정부나 국책 기관에 비해 기술 전수와 공동 개발에 대한 개방성이 훨씬 컸다. 당시 카이스트가 서리대학에 가장 많은 인원을 파견한 배경이다. 제작 완성도와 난도가 비교적 낮은 소형 위성 개발 프로젝트였던지라 기술적 통제도 훨씬 덜했다. 그렇게 한국의 첫 독자 위성은 서리대학교와 국내 연구진의 합작품이 됐다.

우리별 3호는 1993년 2호 발사 이후 1999년 들어서야 발사됐다. 1호와 2호가 불과 1년 만에 거의 실시간으로 개발된 데 비해 3호는 제작까지 6년여에 이르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우리별이라는 이름만 같았을 뿐,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라는 김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2호의 개발 목적이 국산화였던 데 비해 3호는 지구 관측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한 상황에서 개발에 착수했다. 최고 해상도의 카메라를 장착한 소형 위성 제작이 목표였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프로젝트가 대성공을 거두자, 우리별 3호 개발에 참여한 연구진의 자신감도 한껏 높아졌다.

“우리별 1호는 카이스트 학생들이 참여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서리대가 제작하고 조립했어요. ‘남의별’ 아니냐는 비아냥도 들었죠. 빠른 속도로 기술을 확보하고 인력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접근했던 겁니다. 반면 3호는 그간 쌓은 경험과 기술을 기반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어요. 소형 위성 개발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기념비적 작품이었죠. 위성 발사 성공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흐를지는 전혀 몰랐지만요.”

카이스트가 소형 위성 개발에 매진하며 실력을 쌓아가자, 당시 정부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통합 계획을 세웠다. 카이스트 연구센터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소형 위성 개발로 쌓은 기술력을 더 고도화하기 위해 아예 독립하자, 항우연과 합치는 게 맞다, 그도 아니라면 제3의 대안을 찾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당시 이미 한국형 소형 위성의 가능성에 고무됐던 카이스트 연구진 중에는 국제 무대에서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는 위성 개발에 대한 꿈에 공감하는 이가 많았다. 김 대표도 그중 한 명이었다.

“우리가 만든 소형 관측 위성이 세계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할 거라 판단했습니다. 항우연과 통합하면 자칫 10여 년간 쌓아온 소형 위성 제작 노하우가 잠식될 거란 우려도 컸어요.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반항아 기질을 가진 이들이 모여 결국 사고를 쳤습니다. 1999년 12월 쎄트렉아이 창업에 나선 거죠. 당시 결정이 옳았는지는 사실 아무도 몰라요. 다만 쎄트렉아이가 국제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위성체 제작 민간기업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위성 본체·탑재체·지상체 등 핵심 기술 보유


현재 한국 민간기업 중 인공위성 체계 개발의 3대 핵심기술을 모두 보유한 곳은 쎄트렉아이가 유일하다. 인공위성 체계는 크게 위성 본체와 탑재체, 지상국 시스템으로 나뉜다. 본체는 탑재체가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기 위한 고속 기동, 고속 데이터 전송, 안정적인 전력 공급 기능을 수행한다. 탑재체는 위성의 운용 목적을 이루기 위해 본체에 설치하는데, 쎄트렉아이의 경우 대구경 광학계와 저잡음 검출기로 고품질 영상을 제공하는 전자광학 탑재체가 주요 품목이다. 마지막은 지상체다. 위성이 우주에서 보내온 데이터와 자료를 받아서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쎄트렉아이의 경쟁력은 이 세 가지 구성품을 거의 대부분 자체 제작한다는 데 있다. 특히 지구 관측용 중소형 위성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내 유일 기업이다. 지난 2014년에는 세계 최초로 해상도 1m급 소형 위성 개발·발사에 성공했고, 최근에는 30㎝급 초고해상도 중형 위성(위성 무게 700kg) 개발에도 성공했다. 초고해상도 전자광학 관측을 위한 중소형 위성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쎄트렉아이는 설립 초기부터 소형 위성에 집중해왔어요. 대형 위성은 글로별 경쟁사나 국가 주도 기관에 비해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죠, 우리별 위성 개발에서 확인한 소형 위성의 가치를 사업적으로 활용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지구 관측용 초고해상도 위성에 집중했는데, 일종의 니치마켓을 공략한 셈입니다.”

위성의 해상도는 전자광학 탑재체의 크기에 달려 있다. 카메라 크기가 커질수록 해상도도 높아진다. 탑재체의 부피가 커지면 이를 뒷받침할 본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100kg 사이즈 소형 위성의 해상도가 1m 정도라면, 700kg대 중형 위성의 해상도는 30㎝ 수준으로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우주에서 지상의 30㎝ 크기 물체를 식별해내는 기술 수준이다. 위성에서 관측한 정보를 받아내기 위한 지상체 시스템 역시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고도화돼야 한다.

“위성은 아무리 낮아도 지상에서 500㎞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그 정도 거리에서 30㎝ 크기의 물체를 인지하는 건 쉽지 않은 기술이죠. 현재 글로벌 기술 수준에서도 30㎝가 가장 높은 해상도입니다. 사실 카메라라기보다는 망원경에 가깝죠.”

몇 년 전만 해도 30㎝급 해상도는 대형 위성에서만 구현할 수 있었다. 중형 위성에서도 같은 수준의 초고해상도 기능을 갖춘 건 위성 제작 기술이 과거에 비해 그만큼 발전했기 때문이다. 쎄트렉아이도 소형 위성에서 경쟁력을 쌓은 뒤 탑재장비가 커지면서 중형 위성 개발까지 이뤄냈다. 현재 글로벌 위성 제조사들은 위성 크기를 줄이면서도 기존 성능을 유지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자동차 엔진의 다운사이징 기술을 이해하면 쉽다. 지구 관측용 소형 위성에서 시작해 중형 위성까지 경쟁력을 쌓아온 쎄트렉아이의 역량은 해외 대형 기업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현재 글로벌 민간 위성 시장에서는 프랑스 에어버스, 일본 NEC, 이스라엘 IAI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전반적인 위성 제작 능력과 기술에서 이들을 뛰어넘기는 아직 어렵다”면서도 “광학 기반 지구 관측에 특화된 영역에서는 쎄트렉아이의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3대 핵심 구성품을 개발하고 제작하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체계공학인 것 같습니다. 특정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한 제반 구성 요소를 잘 조합해서 고객이 원하는 완성도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노하우죠. 우주라는 공간이 갖는 고유한 특성과 환경에 맞는 품질보증 활동도 병행돼야 합니다. 여러 한계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죠.”

방산 등 국방 관련 수요 급증


김 대표의 설명대로 위성은 우주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운용되는 기기다. 지상과 전혀 다른 혹독한 환경을 견디고 극복해야만 한다. 단순히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하고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다. 쎄트렉아이가 창업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위성 개발과 제작 전반을 다루는 민간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여전히 유지하는 이유다.

“위성을 발사체에 실어야 하니 엄청난 진동을 견디는 게 첫째 조건입니다. 또 우주 환경과 지상의 가장 큰 차이는 방사선이죠. 지구보다 수백 배 높은 방사선 피폭을 견딜 수 있는 전자부품을 만들거나 이를 회피하는 방안을 설계에 반영해야 합니다. 태양 노출 여부에 따라 온도도 극심하게 달라집니다. 우주 공간의 모든 악조건을 견뎌내야 비로소 위성 운용이 가능해지죠.”

우리별 위성 개발 시절까지 포함해 25년 가까이 쌓아온 위성 제작 노하우는 쎄트렉아이가 가진 경쟁력의 원천이다. 지난 2005년 말레이시아에 위성 완제품을 수출해 ‘국산 위성 수출 1호’ 기록을 세운 데 이어 아랍에미리트(UAE), 스페인, 싱가포르, 튀르키예(위성 부품) 등으로 수출 시장을 넓혀왔다. 말레이시아 발주 위성은 2005년에 선적한 후 2009년 들어서야 발사에 성공했는데, 미국 스페이스엑스의 첫 소형 발사체 성공 사례라는 비하인드스토리가 흥미롭다.

“기존 위성 대부분이 지구 극궤도를 비행하는데 말레이시아는 자국 중심의 적도궤도를 원했어요. 이전에는 없는 케이스였죠. 소형 발사체 실험에서 네 번이나 실패한 스페이스엑스가 처음 성공한 케이스에 바로 쎄트렉아이의 위성이 탑재됐습니다. 현재 스페이스엑스가 세계 발사체 시장을 석권하는 데 주요한 계기가 된 셈이죠.”

자체 위성 제작과 납품을 비롯해 쎄트렉아이가 지금까지 참여한 위성 관련 프로젝트는 30여 개에 이른다. 쎄트렉아이가 강점을 지닌 특정 분야 위주로 참여한 정부 프로젝트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지상체 분야에선 독보적 기술력을 기반으로 국내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함께했다. 최근 들어선 국방 관련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주로 군사 목적의 감시·정찰 체계를 위한 지상체 개발이다. 이동형 수신처리 시스템, 무인항공기용 지상통제 시스템, 자체 개발한 다차원 영상 디스플레이 플랫폼(SMUDI) 등을 개발해 지리공간정보(GEOINT) 활용성을 높이는 등 우리 군의 전력 증강에 쎄트렉아이의 기술력이 내재돼 있다.

“우주산업은 대개 국가적 전략산업입니다. 다른 산업과 비교해 가장 큰 차별점이죠. 자연스럽게 국방·안보와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어요. 쎄트렉아이는 초고해상도 관측 위성이 주력입니다. 전략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의 정보를 관측하는 거죠. 태생 자체가 안보와 깊숙이 연결돼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미 많은 나라가 우주를 네 번째, 사이버 공간을 다섯 번째 전장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주산업의 경쟁력이 곧 그 나라의 국가 경쟁력인 시대죠.”

위성 제작으로 출발한 쎄트렉아이는 제조업이라는 본업 외에도 사업다각화 전략을 꾸준히 펼쳐왔다. 각각 2014년, 2018년 설립한 자회사 SIIS(쎄트렉아이 이미징서비스)와 SIA(쎄트렉아이 애널리틱스)다. 김 대표는 두 회사를 위성 운용 목적에 부합하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로 이해하면 쉽다고 설명했다. 고객이 원하는 정보나 인사이트를 확보하는 것은 관측용 위성 운용의 궁극적인 목표다. SIIS는 위성이나 항공기, 드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얻은 영상을 고객에게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SIA는 단순한 영상 제공을 넘어 관련 데이터를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분석해 고객이 원하는 정보로 가공하는 위성영상 정보 분석 전문기업이다. 김 대표는 “의료 분야에서 AI가 영상을 분석해 암을 진단하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된다”며 “수많은 학습을 거쳐 특정 패턴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페이스 시대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

쎄트렉아이는 2021년 들어 중대한 전환점에 들어섰다. 창업 당시 발기인 체제로 운영되던 기존 지배구조에서 벗어나 대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기로 한 결정이었다. 김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은 지분 확보와 공동사업 추진을 위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쎄트렉아이가 새로 발행한 주식의 20%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3자 배정 방식으로 590억원에 인수하고, 전환사채(500억원)를 취득한다는 내용이다. 전환사채 몫까지 포함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쎄트렉아이 지분율은 약 30% 수준이다.

김 대표는 유상증자를 통한 지배구조 변화는 오롯이 “장기 전략 실행을 위한 재원 확보 차원이었다”며 “어떤 결정이 회사의 미래와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느냐가 유일한 이유이자 기준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확보한 재원으로 초고해상도 중형 위성 개발과 R&D 시설 신축 등 인프라 확충이 가능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자본금 확충에 나선 결단은 시장에도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창업가들이 보유한 지분을 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엑시트’는커녕, 오히려 기존 지분율마저 쪼그라드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었다. 김 대표를 비롯한 창업 발기인 모두가 개인의 이익 대신 회사의 지속가능한 미래에 베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쎄트렉아이가 지배구조까지 바꾸는 결단을 내린 배경에는 우주산업의 급격한 변화가 맞물려 있다. 이른바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의 도래다. 각국 정부 등 국가 주도로 이뤄지던 우주개발사업이 민간으로 이전되는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이르는 말이다. 우주산업의 핵심인 위성과 발사체 기술 등이 민간에 개방되고,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서 개발과 생산 비용이 과거 대비 줄어든 것이 배경이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엑스,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의 버진갤럭틱 등이 대표적이다. 쎄트렉아이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뉴스페이스 주역 중 하나다. 김 대표는 다만 “우주산업의 태생적인 특성상, 민간보다는 민관(民官) 주도가 좀 더 타당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페이스라는 말이 화두로 떠오른 건 이미 6~7년 전이에요. 많은 분이 모든 영역을 민간이 이끄는 것으로 바뀌어간다고 생각하는데, 상업적 가능성이 큰 특정 분야를 민간이 주도하는 경우가 과거보다 늘어난 거라 생각합니다. 과거와 달리 공공과 민간이 함께 움직이는 거죠. 우주산업이 가진 전략적 가치를 고려하면 공공의 역할을 결코 무시할 수 없어요. 스페이스엑스도 나사(NASA)의 천문학적 투자가 없었다면 지금에 이르지 못했을 겁니다.”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인류 본연의 호기심만으로도 우주에 나갈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하는 김 대표의 얼굴에는 위성 개발 사업에 막 뛰어들었던 20대 청년의 호기심이 여전히 배어 있는 듯했다.

“미국이 전략적 가치만으로 보이저호를 띄웠을까요. 달에 인류를 보낸 이유가 단지 자원 선점 때문이었을까요. 체제 선전이나 상업적 가치도 없진 않았겠지만, 인류가 지닌 본능적 탐험 정신이 더 깊었을 겁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이죠. 뉴스페이스 시대를 흔히 대항해시대에 비유하는 이유 아닐까요.”

인터뷰 막바지, 김 대표는 “사업 목표와 계획도 중요하지만 조직문화 확립을 더 깊이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그의 집무실 보드에는 구체적 사업 목표 대신 조직문화와 경영 철학을 정리해둔 메모가 빼곡했다.

“자회사를 제외해도 직원 수가 400명을 넘어섰어요. 사업 초창기에는 위성 1세대가 공유한 비전과 원칙이 자연스럽게 조직에 녹아들었죠. 지금은 다릅니다. 회사가 커지고 발전할수록 목표와 비전을 열심히 전파해야만 한다는 걸 절감합니다. 쎄트렉아이는 기본적으로 제조사죠. 물건을 만드는 역량, 협업하는 역량, 일하는 방식의 우선순위 등 기본과 저변을 확고히 갖추는 게 저 같은 1세대의 가장 큰 소명입니다. 그렇게 하면 초고해상도 지구 관측용 위성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하겠다는 목표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거라 기대합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310호 (2023.09.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