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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웅환 한국벤처투자(KVIC) 대표 

투자 혹한기 극복할 ‘율도국 프로젝트’ 

노유선 기자
국내 벤처·스타트업 투자 혹한기가 장기화하면서 유웅환 한국벤처투자 대표가 이른바 ‘율도국 프로젝트’에 발 벗고 나섰다. 실력 있는 한국 청년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유 대표의 판단이다. 그에게 율도국 프로젝트의 큰 그림과 한국벤처투자의 미래 전략에 대해 물었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유웅환 한국벤처투자 대표는 글로벌 기업 인텔과 삼성전자, SK텔레콤 등에서 활약한 바 있다.
한국 벤처·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한국벤처투자(KVIC·Korea Venture Investment Corp.)가 ‘율도국 프로젝트’에 나선다. ‘율도국’은 조선시대 학자 허균의 고전소설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신비의 섬이다. 소설 속 주인공 홍길동은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주는 의적으로, 바다 건너 외딴섬 ‘율도국’으로 떠나 그곳에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한다.

지난 10월 16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빌딩에서 만난 유웅환(52) 한국벤처투자 대표는 “한국 청년들이 전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며 “이른바 율도국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벤처투자는 글로벌 모태펀드 운용을 도맡는다. 모태펀드는 정부가 중소·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해 조성하는 재간접펀드다. 중기부가 투자조합을 결성하면 한국벤처투자는 위탁운용사를 선정하는 등 투자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구조다.

율도국, 한국벤처투자, 모태펀드 모두 대중에게 생소한 단어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유 대표는 1년간 한국벤처투자를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데 전념해왔다. 그는 “국내 벤처·스타트업의 역량과 한국벤처투자의 성과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안타까웠다”며 “미국과 영국, 중동지역 등에서 동분서주하며 글로벌 벤처캐피털(VC)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고 회고했다. 이어 “율도국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한국 청년이 더 큰 무대에서도 도전정신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2005년 6월 한국벤처투자 주식회사로 출발한 이곳은 2020년 벤처투자법(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제66조)이 제정되면서 법정기관으로 전환됐다. 창업, 성장, 투자금 회수,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하지만 지난 8년 동안 한국벤처투자는 소위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해외 진출에 더딘 진척을 보였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중국, 싱가포르 사무소가 연이어 문을 열었지만 이후에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유 대표는 이에 주목해 지난 6월 영국으로 건너가 도미닉 존슨 산업통상부 투자 부장관을 만나 연내 런던 사무소(코리아 벤처창업 투자센터) 개소를 결정지었다.

이는 그동안 유 대표가 글로벌 사회에서 쌓아 올린 신뢰도 덕분이란 평이다. 유 대표는 글로벌기업 인텔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등을 두루 거친 인물로,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상무와 SK텔레콤 부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제20대 대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으로 영입된 바 있다.

글로벌 프로토콜 체화된 한국 벤처·스타트업 양성


▎유웅환 대표는… / 광운대 컴퓨터공학 학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 석박사, 인텔 수석 매니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상무, 현대자동차 연구소 이사, SK텔레콤 ESG혁신그룹장(부사장), 한국벤처투자 대표이사(2022년 9월)
유 대표는 “글로벌 파트너를 만나 한국 벤처·스타트업의 높은 성장성과 미래 가치를 홍보하는 일이 급선무다”라며 “글로벌 파트너십은 새로운 출자 사업을 마련하고 한국 청년의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벤처투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국내 투자기업 중 유니콘(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인 비상장기업)과 유니콘 후보 기업(기업가치 2000억원 이상 1조원 미만인 비상장기업)은 총 153곳으로, 2021년 12월 말과 비교해 44곳이 늘었다. 153곳 중 유니콘은 22곳, 유니콘 후보 기업은 131곳에 달한다.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유니콘 후보 기업 수가 대폭 늘어난 것은 긍정적 신호”라고 전했다.

하지만 취임 1년간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다. 유 대표는 지난 9월 출간한 저서 『반도체 열전』에서 ‘자문하는 습관’을 피력한 바 있다. 그는 “나는 무엇을 해야 보람이 있고 스스로 만족할지, (중략) 조금 더 거창하게는 내 계획의 비전은 무엇인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요즘 무엇을 자문하는지 묻자, “한국 청년의 미래와 글로벌 프로토콜(규약)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10여 년 동안 글로벌기업에 몸담았던 그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 프로토콜에 취약하다고 판단했다.

“미국 인텔에서 일했던 30대에는 선진 시스템을 체득하느라 바빴습니다. 뼛속 깊이 느끼고 있는지 자문하는 습관이 생겼죠. 40대에는 이를 국내 기업에 적용해 한국 경제의 성장에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쉽지 않더군요. 50대인 지금은, 벤처·스타트업에 몸담은 한국 청년들이 창업 초반부터 글로벌 프로토콜에 친숙하게 하려면 한국벤처투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유 대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열풍을 긍정적으로 봤다. 그는 “그린워싱이나 반ESG펀드가 등장하면서 ESG라는 용어 자체의 이미지가 퇴색된 것은 사실이지만 ESG가 함축하는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며 “아직도 다수의 한국 기업은 이러한 가치를 내재화하지 못한 채 글로벌 프로토콜을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혁신의 아이콘인 글로벌기업 애플이 앞장서서 혁신을 외친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너무도 당연하기에 굳이 혁신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SG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ESG 가치를 실천해온 글로벌기업이 많습니다. 그들은 1년, 365일 ESG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ESG를 자화자찬하지 않아요.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용어의 속성보다 내재된 가치에 주목해야 합니다. 인권을 보호하고 지식재산권(IP)을 존중하고 경영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글로벌 프로토콜입니다. 이를 준수해야만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얻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요.”

그는 한국 기업의 ESG 수준이 낮은 원인으로 ‘모난 돌이 정 맞는 문화’를 지적했다. 도전 정신이 ESG 수준을 높이고 결국 혁신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유 대표는 “한국에는 여전히 도전 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제안을 내놓으면 ‘조직에 적합하지 못한 사람’ 또는 ‘튀는 사람’으로 낙인찍는 문화가 있다”며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경직성 때문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한국벤처투자는 국내 벤처·스타트업의 ESG 수준을 격상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비전 스케일이 큰 기업을 독려합니다. 단기적으로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기업을 눈여겨보고 있어요.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즈니스를 시작한 벤처·스타트업이 있다면 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입니다. 이러한 기업은 향후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일조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국벤처투자가 한국 기업에 거는 기대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유 대표는 국내 기업의 ESG 경영과 함께 디지털전환(DX)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대외 경쟁력을 높이려면 글로벌 프로토콜과 더불어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내부 리소스를 최적화해 경영의 효율성을 증대해야만 한국 기업은 자생력을 가질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기업의 자생력이 있어야 시장이 더 시장 중심으로, 시장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며 “이러한 생태계 조성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투자 사각지대와 수도권 쏠림 현상에 적극 대응할 방침

유 대표의 확고한 신념과 미래 전략에도 불구하고 한국벤처투자는 특정 업종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올 상반기 한국벤처투자가 발표한 [마켓워치-모태펀드 결성·투자·회수 동향]에 따르면 올 2분기 국내 모태펀드 투자 대상 기업 중 30.4%가 ICT(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 서비스 기업과 ICT 제조 기업이었다. 2위는 유통·서비스 기업(17.7%)이고 3위 바이오·의료 기업(13.6%), 4위 영상·공연·음반 기업(12.4%) 등이 뒤를 이었다. 엔지니어 출신인 유 대표의 저서명 또한 『반도체 열전』이다.

이에 대해 유 대표는 “최근 성장 가능성이 높은 2차전지와 인공지능(AI), 로봇 등 딥테크(deep tech·첨단기술) 분야에 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라며 “하지만 한국벤처투자는 투자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 산업군에 고르게 투자가 이뤄지도록 출자사업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한국투자벤처는 콘텐트 전문가를 새롭게 영입했다”며 “한국 문화를 글로벌 사회에 전할 미디어 콘텐트 산업을 지원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년 K-콘텐트 펀드 예산안을 올해보다 1000억원가량 많은 2900억원으로 편성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벤처투자는 신규 투자액의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도 논란을 빚고 있다. 올 2분기 모태펀드 신규투자액(누적 기준)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 경기,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 소재 기업에 대한 투자금액이 6737억원으로 전체의 68.3%를 차지한다. 비수도권 기업에 대한 투자금액은 2777억원(27.3%), 해외 소재 기업에 대한 투자금액은 350억원(3.6%)이다. 5대 광역시 기업에 1575억원, 기타 지방 기업에 1202억원이 투자됐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유 대표는 “기본적으로 수도권에 기업이 많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혁신 벤처모펀드’를 확대해 지역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할 방침입니다. 현재 조성된 지역혁신 벤처모펀드는 총 3155억원 규모입니다. 충청(903억원), 부산(900억원), 대구·제주·광주(894억원), 동남권(840억원), 전북·강원(588억원) 순입니다. 이를 6100억원 규모로 늘려 제대로 운용하는 것이 현재 당면한 과제입니다.”

유 대표에게 한국의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물었다. 시장에서 벤처·스타트업계로 유입되는 자금은 지속적인 감소세에 놓여 있다. 모태펀드도 마찬가지다. 지난 3년간 모태펀드 신규투자 추이를 살펴보면 2021년 3조9017억원이었던 투자액은 2022년 2조7847억원, 올해 2분기 누적 9864억원으로 줄었다. 유 대표는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등 3중고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공격적으로 투자를 지속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VC업계에 정부가 벤처·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이 있다는 시그널을 계속 줘야 업계가 투자에 대한 신뢰감을 갖고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유 대표는 한국 청년들에게 ‘킬러 본능’을 주문했다. 그는 저서에서도 “인재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고민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며 이를 ‘타고난 공격성’ 또는 킬러 본능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조직에서 튀지 않으려고 적극적인 태도를 자제하다 보면 절대로 집단지성이 모일 수가 없다”며 “공격적인 토론 문화 속에서 여러 아이디어가 융복합해야만 창조적 파괴가 일어난다”고 피력했다. 끝으로 유 대표에게 남은 임기 동안 한국벤처투자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물었다.

“미국 금리인상이 멈추고 하락 기조가 생기면 투자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때까지 한국벤처·스타트업들은 지속적으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한국벤처투자는 국내외 VC업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묘안을 만들어나갈 겁니다. 현재 국내 8조원 이상의 투자 여력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투자금이 시장에 유입되도록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김상선 기자

202311호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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