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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유니콘의 비상을 위한 조건] 조성익 텔레픽스 대표 

뉴 스페이스 시대, 한국의 위상 

노유선 기자
지난 6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글로벌 ICT 미래 유니콘’에 포함된 ‘텔레픽스’는 한국 우주항공 스타트업으로서 뉴 스페이스 시대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정부 유관 기관에 의존하던 매출 구성도 수출 비중을 늘리며 개선하는 중이다. 주력 제품은 위성 탑재용 초소형 카메라와 데이터 분석 솔루션이다.

뉴 스페이스 시대. 우주는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 시대는 올드 스페이스에서 뉴 스페이스로 전환했다. 우주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는 오늘날, 정보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하에 민간이 우주개발을 이끄는 ‘뉴 스페이스’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것이다.

우주경제 시대에 한국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영국 우주국(UKSA)처럼 정부의 일관된 우주산업 정책이 미비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우주기술 특허출원 순위에서 7위를 기록했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 1990~2020년간 한국이 내놓은 우주기술 특허출원은 총 840건으로, 글로벌 점유율 4%를 차지했다. 1위는 미국이며 2위 중국, 3위 프랑스, 4위 일본 등이 뒤를 이었다.

이 가운데 한국이 뉴 스페이스 시대를 선점하는 데 기여하는 국내 우주항공 스타트업이 있다. 아직 위성을 발사하지도 않았는데도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2019년 설립된 우주항공 스타트업 ‘텔레픽스(telePIX)’는 지난 10월 폴란드 위성개발 업체 ‘샛레브 S.A(SatRev S.A)’와 위성 관측 정보 제공 계약을 체결했다. 내년 중반 발사를 앞둔 텔레픽스의 첫 번째 위성 ‘블루본(BlueBON)’은 지구 궤도를 돌며 초소형 카메라로 촬영한 해상 데이터를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분석할 예정이다.

텔레픽스는 초소형 위성탑재 카메라와 관측 빅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특히 위성에 탑재되는 카메라를 직접 설계하고 조립한다. 폴란드 외 멕시코 기업과도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다. 지난 6월 멕시코 위성개발 기업 ‘스페이스 제로 그래비티(Space Zero Gravity)’와 업무협약을 맺은 데 이어, 최근에는 ‘스러스터 언리미티드(Thruster Unlimited)’와 관측 데이터를 활용해 부가가치 서비스를 개발하는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우주경제 시대에 걸맞은 구독형 BM


▎왼쪽부터 김성희 CTO, 조성익 대표, 권다롱새 CDS, 전승환 글로벌사업 부문장.
지난 11월 10일 서울 여의도 텔레픽스 본사에서 조성익(45) 대표와 김성희 최고기술책임자(CTO), 권다롱새 최고데이터사이언티스트(CDS)를 만났다. 연세대 천문 우주학과에서 학사와 석박사를 마친 조 대표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위성센터장을 역임했다. 조 대표와 대학 동문인 김 CTO는 17년 동안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위성탑재 카메라를 개발했으며, 최근 텔레픽스에 합류한 권 CDS는 서울대 통계학 학석사와 미국 시카고대 통계학 박사 과정을 마친 뒤 삼성SDS에서 데이터 전문가로 활약했다.

이른바 ‘텔레픽스 어벤저스’와 함께 눈에 띈 건 우주발사체를 표현한 팝아트 작품이었다. 조 대표는 아티스트 낸시랭이 새롭게 선보이는 스페이스아트(SpaceArt)에 크게 공감했다고 말했다. 낸시랭의 스페이스아트 작품은 독창성을 인정받아 국제 우주 항공 학회 포스터에도 실린 바 있다. 텔레픽스가 위성 발사 전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데는 이처럼 우주산업에 대한 진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텔레픽스가 그리는 우주경제 시대를 구체적으로 들어봤다.

세 분 모두 안정적인 직장을 나와 스타트업에 종사하고 있다. 두려움은 없었나.

조성익(이하 조) 2014년 무렵 프랑스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와 공동으로 위성을 개발하게 됐다. 당시 이미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민간업체가 우주항공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를 목도하자 한국 역시 우주산업을 정부 출연 연구소나 국가기관에 국한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간업체도 자사가 만들고 싶은 위성을 직접 개발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텔레픽스는 2019년에 설립됐으니 글로벌 시장에선 한참 후발 주자다. 하지만 우주산업이 아직 초창기이기 때문에 패스트팔로워로서 금방 기술 트렌드를 따라잡을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위성 발사 전부터 해외 수출 계약이 성사됐다. 비결이 뭔가.

조: 글로벌 시장에 문을 두드린 건 지난해부터다. 1년~1년 반이 지나니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다. 인공위성은 본체와 탑재체(카메라)로 구성된다. 텔레픽스의 주력 아이템은 탑재 카메라와 데이터 분석 솔루션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아우른다. 본체에 들어가는 여러 구성 요소를 생산·판매하는 기업을 업계에선 ‘본체 플랫폼 업체’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텔레픽스의 고객군 중 하나다. 본체 플랫폼 업체가 텔레픽스와 파트너십을 맺는 이유는 텔레픽스가 탑재 카메라와 위성관측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합친 구독형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전승환 글로벌사업부문장이 전 세계 잠재 고객사의 니즈를 면밀하게 분석해 독특한 비즈니스모델을 고안해냈다.

구독형 비즈니스모델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조: 마이크로 위성이라 해도 본체와 탑재체를 만드는 데 보통 3~5년이 걸린다. 투자 비용도 만만치 않다. 중남미와 동남아 국가의 경우 니즈는 있지만 시간과 비용 문제로 투자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텔레픽스는 초반에 계약금 일부를 받고 개발 진도에 따라 10~20%씩 추가 비용을 받는 방식을 택했다. 여기에 관측 데이터 소유권과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구독형으로 판매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이라고 자신한다. 이렇게 안정적인 캐시플로를 구축해나갈 방침이다.

데이터의 융합, 새로운 가치 창출


▎(좌)블루본 (우)슈에뜨 / 사진: 텔레픽스
관측 데이터가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하다.

권다롱새 CDS(이하 권): 위성 탑재 카메라가 촬영한 결과물인 로 데이터(raw data)는 사람이 알아볼 수 없는 신호에 불과하다. 식별 가능한 이미지가 아니라 숫자에 불과한 신호들만 가득 담겨 있다. 이를 전처리하는 작업에 상당한 전문성이 수반된다. 텔레픽스는 데이터를 정제된 데이터로 처리한 뒤 AI로 분석해 최종 산출물을 만들어낸다. 이때 데이터가 의미 있는 정보로 활용되려면 데이터 융합이 필요하다. 다양한 데이터가 합쳐지면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창조해낸다. 이런 양질의 정보를 고객사에 제공해 이들이 효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

조: 위성 관측 데이터로 해양 선박 위치 정보를 파악하면 불법 선박을 탐지할 수 있다. 또 기후변화를 예측하고 산불 발생 가능성을 판단하는 데도 활용될 전망이다. 이를 바탕으로 보험업계나 투자업계에서 포트폴리오를 새롭게 짤 수도 있다. 관측 데이터는 다양한 산업에 적용돼 부가가치가 높은 인사이트를 창출해낼 것이다. 텔레픽스가 일종의 에이전트가 되는 셈이다.

하드웨어 측면에서 텔레픽스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김성희 CTO(이하 김): 초소형 카메라와 에지 컴퓨팅이 가능한 온보드(On-Board) 프로세서를 모두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카메라 설계부터 정렬, 조립까지 모두 텔레픽스만의 기술로 이뤄졌다. 온보드 프로세싱이란 카메라가 관측 로 데이터를 지상으로 내려보내기 전에 AI 기술로 전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AI 판단하에 중요한 데이터만 송출하기 때문에 지상에서 실시간으로 필요한 데이터를 받을 수 있다.

조: 그뿐만 아니라 핵심 부품 내재화에 따라 비즈니스 수직 계열화를 구축하고, 현재 부품 일부를 협력업체에서 생산하고 있다. 부품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고객사와 약속한 시점에 제품을 제공할 수 없지 않나. 이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부품 생산 공장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자 논의 중이다.

블루본 위성 발사 시점이 내년 중반으로 연기됐다.

김: 위성에 탑재될 직경 100㎜ 카메라인 블루본의 개발은 이미 완료됐다. 다만 본체 개발업체 선정과 우주 환경 시험 일정 등을 조율하느라 발사 시점이 늦춰졌을 뿐이다. 실패를 최소화해야 하지 않겠나. 오는 12월 우주 환경 시험을 수행하고 내년 초부터 발사 대기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블루본은 블루카본(해조류 등 해양생태계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을 모니터링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향후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활용도가 높을 전망이다. 블루본 다음으로 준비 중인 제품은 슈에뜨(Chouette)라는 위성 카메라 시스템이다. 슈에뜨는 프랑스어로 ‘올빼미’를 뜻하는데, 야간에서 높은 시력을 자랑하는 올빼미처럼 초광시야 고해상도 기술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슈에뜨는 2025년 발사 예정이다.

예비 유니콘 타이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과 궁극적인 목표가 궁금하다.

조: 스타트업도 결국은 기업이다. 자생적인 생존력을 가지지 못한 기업의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창업 초반부터 매출이나 영업이익 등 재무적 측면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우주산업은 장기 프로젝트이기에 점진적으로 성장하고자 단계별 로드맵을 매우 체계적으로 구상했다. 그렇다고 수익성을 놓칠 수는 없었다. 2019년 설립된 딥 테크(Deep-tech) 스페이스 스타트업이라 아직 초기 단계라고 해도, 재빨리 제품을 시장에서 인정받고 여기서 얻은 수익을 그 다음 신제품 개발에 재투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한 단계씩 전진하다 보면 전 세계를 생중계하는 ‘지구의 실시간 CCTV’ 기업으로 거듭나 있지 않을까 꿈꿔본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김상선 기자

202312호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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