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호 케이스마텍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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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을 앞두고 회사에 사직서를 던진 후 무작정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의 여정에 나선 것은 2010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이 순례자의 길은 죽기 전에 걷고자 했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그렇게 빨리 그 길에 서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마치 그 길의 끝자락에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하지만 프랑스의 작은 마을 생장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을 향하는 첫날 코스부터 현실적인 난관에 봉착했다. 겨울 한복판 그 길에서 순례자를 찾아보기도 어려웠고, 평소 걷는 것에 자신이 있었지만 쌓인 눈 앞에서 막막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그렇게 일주일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면서 동행도 생겼고, 10㎏에 가까운 배낭도 그럭저럭 버틸 만한 수준이 됐다. 다시금 이 길에 오게 된 이유를 생각하며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잡스러운 생각, 눈앞의 풍광과 소리는 핑곗거리가 되어 여전히 집중이 쉽지 않았다.결국 내가 태어나서 이 길을 찾아오기까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삶의 파편을 되새김하기로 방법을 바꾸어보았다. 거기에는 기쁨과 슬픔, 외로움, 부끄러움 등 다양한 기억이 존재했다. 나름의 왜곡이 있겠지만 가급적 그때의 기분과 생각에 근접해보려고 노력했다. 특히 부끄러움이나 실패에 대한 기억을 회상했을 때는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하고, 자조 섞인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그렇게 혼자 때로는 동행과 함께 걸으며 808㎞ 순례자의 길 끝에 다다랐을 즈음에는 오히려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한 느낌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보다는 ‘오늘에 충실한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믿음이 생겼다.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십여 년이 지났다. 그 후로도 인생과 사업이 단 한 번도 쉬웠던 해는 없었다.매해 위기와 기회가 번갈아 찾아왔고, 다음 해의 계획과 고민으로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또다시 새해다. 쏟아지는 시장 전망은 하나같이 2023년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 예상한다. 오늘도 나는 십여 년 전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느끼고 다짐했던 ‘오늘에 더욱 충실하자’는 믿음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