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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케이스 하나로 세계를 평정한 리모와 

 

정소나 기자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작가 앤드류 매튜스의 말처럼 리모와는 여행의 모든 과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슈트케이스다. ‘모든 가방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Every case tells a story)’고 이야기하며 케이스의 흠집조차도 여행의 추억으로 승화하는 평생의 여행 파트너가 되었다. 리모와가 글로벌 제트세트(jet set) 족의 상징이자 럭셔리 슈트케이스의 대명사가 된 비결은 뭘까.

우연을 기회 삼아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다

기능적인 슈트케이스를 럭셔리 패션으로 끌어올린 리모와의 여정은 1898년 독일 쾰른에서 시작됐다. 창립자 파울 모르스체크(Paul Morszeck)는 “가장 현대적인 여행 가방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최대한 편리한 여행 가방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배와 마차를 타고 긴 여행을 다니는 상류층을 겨냥해 가장 좋은 재질의 나무와 가죽으로 만든 최고급 품질의 커다란 여행 가방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동안 입소문이 났고, 아들 리하르트 모르스체크(Richard Morszeck)까지 경영에 참여하며 가업을 이어나갔다.

1937년, 배와 마차 대신 비행기 여행이 대중화됨에 따라 이전보다 좀 더 가벼운 슈트케이스를 만들려 애쓰던 중 공장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나무와 가죽 등 주요 재료들이 다 타서 재가 되었지만 가방의 부속을 위한 재료였던 알루미늄만은 멀쩡했다. 그들은 위기를 기회 삼아 화염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알루미늄으로 슈트케이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세계 최초로 경량 알루미늄으로 만든 혁신적인 슈트케이스를 세상에 내놨다.




리모와(RIMOWA)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다. 본격적으로 경영에 나선 리하르트의 이름과 독일어로 ‘상표’를 의미하는 단어를 더한 ‘리하르트 모르스체크 바렌 차이헨(Richard Morszeck Warenzeichen)’에서 앞의 두 글자씩을 따 브랜드명을 만들었다. 무게가 가벼워 비행기에 싣기에 부담이 없고, 화재를 잘 견디는 알루미늄 소재의 리모와 슈트케이스는 단숨에 세계 상류층 여행객들을 사로잡으며 인기 제품이 됐다.


▎200여 개의 부품, 90단계가 넘는 공정의 수작업을 거쳐야 슈트케이스 하나가 탄생한다.


리모와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새기다


▎1976년, 고가의 촬영 장비를 악천후나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포토 케이스가 개발됐다.
위기를 혁신의 기회로 만든 리모와는 10년 동안의 디자인 개발 끝에 1950년대 알루미늄 슈트케이스에 그루브 디테일을 새겨 넣었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져 리모와만의 아이덴티티이자 오늘날 슈트케이스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그루브 디테일은 세계 최초로 동체 전체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독일 항공 제작사 융커스 F13 비행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디자인이다. 가방 위에 좁고 길게 홈을 새긴 디자인으로, 슈트케이스가 무겁더라도 운반하기 편리하며 여러 개를 쌓아 보관해도 케이스가 쉽게 미끄러지지 않아 내용물을 안전하게 보호해준다. 케이스 표면에 스크래치가 덜 나도록 하는 효과도 있다.

이렇게 알루미늄 소재와 그루브 디테일을 활용한 슈트케이스는 전 세계를 누비는 제트세트족의 아이코닉한 스타일이 되었고, 리모와 슈트케이스는 럭셔리 트래블 룩에 빠져서는 안 되는 상징적인 아이템이 되었다.


▎클래식한 알루미늄 소재에 그루브 디테일로 스타일까지 갖춘 슈트케이스는 리모와를 상징하는 아이덴티티다.


소재의 혁신으로 명성을 더하다

1976년 3대손인 디터 모르스체크(Dieter Morszeck)가 세계 최초로 방수 처리된 포토 케이스와 열대지방용 포토 케이스를 개발했다. 리모와는 고가의 촬영 장비를 악천후나 충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포토 케이스로 저명한 사진가, 영화감독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꼼꼼한 작업이 필요한 만큼 지금까지도 수작업으로 만드는 포토 케이스는 ‘촬영 장비 케이스의 대명사’라는 또 다른 수식어를 얻으며 럭셔리 브랜드의 반열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

2000년대에는 내구성과 경량감을 동시에 갖춘 최초의 폴리카보네이트 슈트케이스를 선보여 알루미늄 슈트케이스 이상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폴리카보네이트는 알루미늄과 달리 취향에 맞춰 원하는 색상을 적용할 수 있게 했으며, 영하 40℃에서 영상 125℃의 온도를 견딜 수 있다는 장점까지 더했다. 또 완충장치가 달린 축과 볼 베어링을 장착해 특허받은 멀티휠 시스템으로 8개 휠이 360도 회전해 자유롭게 방향 전환이 가능하고, 손목에 부담을 줄여준다.


▎1950년대 그루브 알루미늄 슈트케이스를 처음으로 선보인 이래 브랜드의 가장 아이코닉한 디자인으로 손꼽히는 오리지널 컬렉션.
폴리카보네이트로 보호되면서 8개 바퀴로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이 신박한 가방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슈트케이스로 이름을 알리며 업계를 뒤흔들었다. 이 밖에도 수하물의 파손을 막아주는 TSA 잠금장치와 안락한 그립감의 텔레스코픽 핸들 등 세심한 마감으로 최대한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도록 신경쓰며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을 이어나가고 있다.

기억과 기록을 담은 평생 여행의 동반자가 되다


▎알루미늄과 달리 취향에 맞춰 원하는 색상을 적용할 수 있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를 사용해 형형색색 컬러를 입은 에센셜 컬렉션.
흠집 하나 없이 매끈한 표면을 뽐내며 여행의 첫발을 함께 뗐던 빛나는 슈트케이스는 시간이 지나며 찌그러지고 스크래치가 늘어간다. 놀란 마음에 상처를 가리려고 하나둘 붙이기 시작한 여행지의 기념 스티커들은 여행의 기록과 기억을 상징하는 추억이 되어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된다. 스티커의 가치를 놓치지 않은 리모와는 꾸준히 다양한 스티커를 제작하며 고객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활용한다. 이렇게 곳곳에 긁힌 스크래치와 찍힌 자국이 전 세계 여행지의 스티커로 멋스럽게 덮여 있는 리모와 슈트케이스는 여행자 자신만의 인생 여행의 기록이자 추억을 지닌 평생의 여행 파트너가 됐다.

‘RE-CRAFTED(리크래프티드)’ 프로그램은 여행자만의 추억과 기록에 새 생명을 부여하고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리모와만의 차별점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에 공식 론칭한 리크래프티드는 그동안 사용하던 알루미늄 슈트케이스를 지정된 리모와 매장에서 바우처와 교환하면, 이후 브랜드에서 재탄생의 과정을 거쳐 빈티지 슈트케이스로 재판매되는 프로그램이다. 스크래치나 찌그러짐, 스티커 하나하나가 여행 스토리를 담고 있는 만큼 이전 주인의 스토리는 최대한 보존하되, 장인의 손길을 더해 새로운 제품만큼 업그레이드된 컨디션으로 판매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슈트케이스가 단순히 여행에 필요한 짐을 넣는 도구를 넘어 ‘평생의 여행 동반자’라는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리크래프티드 프로그램은 여행자만의 추억과 기록에 새 생명을 부여하고 지속가능성을 추구해 리모와의 ‘평생의 여행 동반자’라는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또 전 세계에 100여 개 전문 서비스센터를 운영해 낯선 여행지에서 캐리어가 손상되었을 때도 안심하고 수리를 받을 수 있다. 특히 2022년 7월 25일부터 구매한 슈트케이스에는 가방에 담긴 모든 추억을 평생 간직할 수 있는 평생 보증 서비스를 제공한다.

LVMH와 함께 모빌리티 브랜드로 진화하다

리모와는 지난 2017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럭셔리 제국 LVMH에 합병됐다. 어딘가로 가기 위해 옷을 입듯 패션의 완성은 여행이라고 생각한 LVMH가 리모와의 지분 80%를 6억4000만 유로(한화 약 8000억원)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이후 10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슈트케이스라는 한 우물만 파온 리모와는 조금씩 그 세계를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백팩과 토트백 등 일상용 백으로 이루어진 네버 스틸(Never Still) 컬렉션과 콤팩트한 그루브 디테일 보디와 시크한 레더 포인트의 조화가 돋보이는 크로스보디 백 컬렉션 퍼스널(Personal)을 새롭게 선보였다. 이를 통해 일상생활에서도 유행을 선도하는 모빌리티 브랜드로 진화했음을 알렸다.

또 몽클레르, 슈프림, 오프화이트, 포르쉐, 티파니앤코, 디올 등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브랜드에 패션을 입히기 시작했다. 특히 2018년 슈프림과 함께 선보인 슈트케이스는 젊은 패션피플들의 소유욕을 자극하며 단 34초 만에 온라인 매진되며 단숨에 리모와를 트렌디한 브랜드로 바꿔놓았다. 연이어 오프화이트와 컬래버레이션해 내용물이 훤히 드러나면서도 견고한 소재로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투명 캐리어를 선보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를 통해 단순히 여행에 국한되지 않는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사이즈, 컬러, 태그, 핸들, 휠 등을 선택해 자신만의 취향을 담는 비스포크 서비스로 세상에 하나뿐인 리모와를 만드는 트렌드도 만들었다. 광고와 캠페인뿐 아니라 ‘이동’에 대해 고찰하는 [SEIT 1898]라는 제목의 브랜드 히스토리 전시회, 매거진·서적 출간 등 스페셜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여행 캐리어 브랜드를 넘어 패셔너블한 모빌리티 브랜드로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덕분에 코로나 때 여행이 멈추면서 주춤했던 매출도 증가세로 돌아섰다. 리모와 코리아만 해도 2022년 매출은 359억원으로 전년 대비 122% 성장했다.

리모와는 계속해서 장인정신을 담은 유구한 전통에 현대 기술의 정밀성을 결합해 그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소재 부문에서 혁신을 거듭하고, 여행을 위한 슈트케이스뿐 아니라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패셔너블한 백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지만, 126년 동안 한결같이 고수해온 원칙은 ‘수작업’으로 여행 가방을 완성한다는 점이다. 리모와 슈트케이스 하나에 평균적으로 200개 넘는 부품이 들어가고 90단계 이상의 공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는 모두 숙련된 장인들이 손으로 작업한다.

이렇듯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을 이어가고 있지만 장인정신을 고수하며 전통성을 버리지 않겠다는 신념이야말로 오늘날 리모와가 수많은 여행자에게 평생 여정의 동반자이자 럭셔리 슈트케이스의 상징이 된 원동력이다.

1898년에 시작된 리모와를 동행자 삼아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여행객들은 이제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찌그러지고 긁힌 자국들과 캐리어에 빼곡히 붙어 있는 여행지의 스티커들은 추억을 소환하고 모험을 자축하는 훈장이자 리모와만의 문화가 됐다.

시대를 앞서가는 끊임없는 혁신으로 여행 가방 업계에서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가장 많이 붙은 브랜드 리모와. 첨단 소재 위에 장인들의 수작업을 더한 후 여행자들의 추억을 켜켜이 담은 최고의 슈트케이스와 함께하는 새로운 세계로의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리모와를 이끄는 사람 - 리모와의 CEO 위그 보네-마장베르(Hugues Bonnet-Masimbert)는 지난 2021년부터 리모와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LVMH에서 25년 넘게 근무한 그는 로에베, 셀린느, 루이비통, 벨루티, 리모와까지 총 5개 브랜드를 거쳤다. 2018년 세일즈 & 고객 운영 부사장으로 리모와에 합류해 e 커머스 사업을 주도하고, 급격한 성장을 이끌고 있다. 또 리모와의 유통 체계를 재편해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새로운 수단을 활용한 마케팅과 유통에 활발하게 투자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튼튼하고 믿음직스러운 슈트케이스를 넘어 아름다운 여행의 동반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품을 만들며, 오랜 시간 동안 계승해온 전통에 기술의 혁신을 더해 리모와의 세계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r _ 사진 제공 리모와

202404호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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