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글로벌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건설사업관리(Project Management: PM) 전문 기업이다. 한편으론 임직원 행복 최우선 경영, 봉사와 나눔 경영이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증명하는 실험실이기도 하다. 창업 이후 회사를 이끌어온 김종훈 회장은 28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천국 같은 회사’를 꿈꾸고 만들어왔다.
한미글로벌 임직원들은 매년 그해의 경영방침이 담긴 종이카드를 한 장씩 받는다. 2024년 한미글로벌의 경영방침은 “변화와 혁신으로 미래를 준비하자”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글로벌 경영 심화, 비즈니스모델 혁신과 차별화, 행복경영 실행력 강화와 내실경영’ 등 세 가지다.이 밖에도 작은 카드에는 창립 후 지금까지 지켜온 회사의 핵심 가치, 비전과 미션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지갑이든 책 사이가 됐든, 전 직원이 품에 간직해 숙지하고 실천하자는 의미다.더 자세히 살펴봤다. 한미글로벌의 핵심 가치는 정직, 안전, 고객, 탁월, 공헌 등 5개 테마로 요약된다. 기업 비전은 “2027년까지 Excellent People로 Excellent Company를 만들고, 탁월한 인재가 넘치는 구성원 중심의 행복한 회사가 된다”이다. “지속적인 혁신을 통하여 건설산업의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인류사회 발전에 공헌한다”는 기업 미션도 빼놓을 수 없다.독특한 건 ‘몇 년도까지 매출 OOO억원 달성’ 같은 수치와 구호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신 행복한 회사나 인류사회 발전 같은 유토피아적 이상이 눈에 들어온다. 창업 CEO인 김종훈 회장은 이미 지난 2010년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는 제목의 베스트셀러를 펴내기도 했다.김 회장은 책에서 “1996년 창립 때부터 ‘꿈의 직장’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매진해왔다”고 밝혔다. 구성원들이 출근하고 싶어 안달하고, 휴가 가서도 동료들이 보고 싶어 빨리 돌아오고 싶어 하는 직장을 만들겠다는 꿈이었다. 방법과 실행이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을 뿐, 천국 같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그의 비전은 28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대기업에 견줘도 손색없는 복리후생과 출산 지원 등 가족친화 제도는 이미 재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구성원이 행복하면 당연히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강해지고 그만큼 열심히 일한다. 고객이 만족하면 기업가치가 커지고 주주도 만족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김 회장의 지론은 눈에 보이는 경영 성과로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전 창업해 도산 위기를 겪었고, 이후 숱한 고비를 넘겨오면서도 한미글로벌의 지속 성장과 내실경영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다. 2023년에는 건설경기 위축에도 불구하고 (연결기준) 매출액 4129억원, 영업이익 296억원을 기록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구성원이 행복한 천국 같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김 회장과 임직원의 28년 집념이 만들어낸 성과다.
직원이 가장 행복한 천국 같은 회사한미글로벌은 한국 최초의 건설사업관리(PM·CM) 전문 회사다. 1996년 창업 당시 국내 건설업은 시행·시공만 있었지, 이를 사전에 계획하고 통합 관리한다는 개념조차 없었다. CM(Construction Management)사는 최신건설공법, 시장분석, 원가·공정관리 등 여러 전문 지식을 갖추고 기획, 설계, 시공, 감리, 사후관리 등 프로젝트의 전 분야를 관리한다. 건설 프로젝트의 종합관리자 역할이다. 김 회장은 “창업 당시에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니 사업을 알리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CM송 만드는 회사냐는 장난 섞인 말까지 들어봤다”고 회고했다.서울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김 회장은 한샘건축연구소, 삼성물산 등에서 사회 경력을 쌓았다. 중동 건설 특수가 한창이던 1979년, 사우디 건설현장 파견 경험은 오늘날 한미글로벌이 있게 한 초석이 됐다.“한국의 건설 수준이 선진국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진 시절이었습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건설사, PM·CM사들이 몰려든 현장에서 경쟁하다 보니 우리의 부족함을 절감했죠. 특히 계획한 대로 한 번에 끝내는 선진국 건설을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우린 지었다 부쉈다 반복하며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데 말이죠. 선진국 현장을 보니 CM이 막강한 역할을 하더군요. 공부하고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한미글로벌이 한국에서 CM이라는 분야에 첫발을 뗀 1996년 즈음은 후진적 건설 관행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불러오는지 생생히 보여준 시절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로 50여 명이 사망한 데 이어, 이듬해인 1995년에는 강남 한복판에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0여 명이 사망하는 초대형 재난 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건설 안전이 나라 전반에 걸쳐 화두가 됐다.“이런 대형 사고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나 고민했습니다. 답은 건설산업의 선진화·글로벌화밖에 없었어요. 선진 CM 기술력을 확보한 외국 인재들과의 협업이 필수라고 생각해 미국의 파슨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했습니다. 한미글로벌 전신인 한미파슨스의 시작이었죠.”글로벌 전문가를 영입하고 합작하는 방식은 삼성 시절 경험이 바탕이 됐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법적 의무 감리와 별도로 외국 전문가를 들여와 건설 현장에 배치했다. 김 회장은 당시 삼성그룹에 소속돼 50개 주요 현장의 해외 전문가 채용과 프로그램 총감독을 맡았다.“이건희 회장의 일류화 정신 덕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해당 프로젝트가 끝난 후 해외 전문가들이 돌아가고 나면 다시 원상복구 되기 일쑤였습니다. 프로젝트 베이스가 아니라 아예 전문회사를 만들자는 제안을 함께 일했던 파슨스에 전달했어요. 다행히 좋은 반응을 얻어 창업에 나섰죠.”
한국 최초의 건설사업관리 전문 기업
▎2002년 상암동 서울월드컵주경기장 준공 후, 당시 고건 서울시장(왼쪽 두 번째) 등 관계자와 기념사진을 찍은 김종훈 회장 (오른쪽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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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를 장악해 큰돈을 벌겠다’는 목표 같은 건 애당초 없었다. “그저 우리 건설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화를 달성한다는 사명 의식이 제일 컸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이어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돕겠다는 기업가정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마지막으로 구성원이 중심이 돼 그들이 제일 행복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출발부터 여느 기업과는 확연히 다른 비전이었다.“1990년대 초중반,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건설책임자를 맡았습니다. 장기 프로젝트라 가족과 함께 떠났죠. 아이들이 현지 국제학교에 다녔는데 방학하면 스트레스, 개학하면 웃음꽃이 피더군요. 한국과는 정반대 아닙니까. 이유는 간단했어요.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재미있고 유익하니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가고 싶은 곳이 된 겁니다. 단순했죠. 창업 때부터 ‘우리도 출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자’고 다짐했어요. 구성원의 행복이 사업 성과를 높이고, 결국 고객과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가치도 올릴 거라 확신했습니다.”한미글로벌은 회사를 천국에 비유할 만큼 구성원 행복이 주요 경영 목표 중 하나다. 대기업을 뛰어넘는 가족친화 지원제도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다자녀 지원 강화가 대표적이다. 셋째 아이 출산 시 조건 없이 특진시키고 출산지원금을 지급한다. 넷째를 출산하면 육아도우미 비용을 1년간 지원한다. 자녀 수에 제한 없이 만3~5세 자녀의 보육비를 매달 10만원 지급하고,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자녀 수 제한 없이 학자금을 지원한다. 신입사원 채용 시에도 자녀가 있으면 가산점을 준다. 유자녀 우대는 비혼 출산과 입양 자녀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 이 밖에도 난임 치료비 지원, 출산장려금, 출산휴가 120일(법적 기준 90일), 육아휴직 자녀 1명당 2년(최소 3개월 의무 사용), 결혼 주택자금 대출 등 기업 구성원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구성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든다는 목표는 종업원지주제로 구체화됐다. 김 회장은 창립 초기부터 국내외 대주주들로부터 주식을 사들여 구성원 100%가 주식을 소유하게 했다. 기업공개 이후에도 모든 구성원이 회사 주식을 소유하는 전통은 바뀌지 않았다. 창업 CEO인 김 회장의 지분은 10%대 남짓이다. 창업자이자 최대주주로선 이례적인 수준이다.“상장 당시 주식 100%를 직원들이 보유한 독특한 회사였어요. 나도 최대주주일 뿐, 지금도 거의 모든 직원이 회사 주식을 갖고 있습니다. 신입사원도 몇 주라도 갖게 하죠. 직원은 회사나 경영진의 머슴이 아닙니다. 그들이 바로 주인이에요.”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회사라 해서 놀고 먹는 장면을 상상하면 오산이다. “회사가 직원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무자비한 훈련과 교육”이라는 게 김 회장의 평소 지론. 사업 초기 파슨스와 합작에 나선 것도 선진 CM 역량을 국내에 이식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창업 당시 한미건설기술이었던 사명은 2000년 들어 한미파슨스로 바꿨다. 국내에서 닦은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진출을 본격화기 위해서였다.“2006년부터 중동 지역에 진출했어요. 당시 미국 파슨스는 중동에서 지명도가 높은 브랜드였습니다. 홍해 인근 얀부(Yanbu)라는 산업도시 전체를 개발할 정도였죠. 실제로 사명 덕을 많이 봤습니다. 한편으로 파슨스 입장에선 그리 유쾌하지 않았을 거예요. 한국이라는 로컬 시장에 집중할 합작사를 세운 거지, 해외에서 경쟁할 상대를 만든 건 아니잖아요. 결국 몇 년 후 유쾌하게 결별했습니다.”김 회장은 2011년 들어 사명을 한미글로벌로 바꾸고 해외시장 개척을 더욱 가속화했다. 지금까지 한미글로벌이 진출한 나라는 60개국에 이르고, 현재도 20여 개국에서 PM·CM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올해 1분기 회사 매출 중 55%가 해외에서 나왔을 정도로 글로벌 PM·CM 전문 기업으로 성장했다. 2022년에는 세계적인 건설 전문지 ENR이 발표한 글로벌 PM·CM 순위에서 8위에 올랐다. 중견기업 중에서도 삼성과 현대 못지않은 글로벌기업이 등장한 셈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PM·CM 전문 기업세계 무대에서 검증된 구미(歐美) 기업을 활발히 인수합병(M&A)하는 전략도 한미글로벌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 축이다. 지난 2021년 미국의 대표적인 토목·건축 설계회사인 오텍(Otak)과 PM 서비스 회사 데이 씨피엠(DAY CPM), 타르 휘트먼 그룹(Tarr Whitman Group) 인수를 비롯해 최근 5년 동안에만 영국 건설사업 관리업체 K2 컨설턴시 그룹(K2 Consultancy Group), 영국 건설사업 관리·원가관리·건축설계 관리업체 워커사임(Walker Sime) 등을 인수했다. 현재 한미글로벌이 인수한 영미권 기업은 6곳에 달한다. 미국인 400명, 영국인 200명이 근무하는 글로벌 그룹사에 한국인 파견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도 흥미롭다.“현지 직원들을 못 믿으니 본사 직원을 파견하는 겁니다. 오늘 아침에도 보드(Board) 미팅을 화상으로 진행했어요. 오텍 인수 후 글로벌 M&A도 모두 오텍 주도로 이뤄졌죠. 글로벌 시장에선 오텍이 한미글로벌보다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김 회장은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한미글로벌 경쟁력의 원천도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 일하는 인재들에게서 찾았다. 국내 경쟁사가 대부분 설계회사의 한 사업부서 수준인 데 비해, 한미글로벌은 2200명에 달하는 글로벌 임직원이 PM·CM에 올인하니 비교 자체가 어렵다.“건설 프로젝트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발주자, 설계사, 건설사, 전문업체 등 이해관계자가 많고 수백 개에 달하는 업체가 얽혀 있어요. 이 모두를 아울러 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게 CM의 역할입니다. 발주자의 건설본부 역할이라 보면 쉽죠. 철저한 사전 기획과 설계, 시뮬레이션으로 공기와 비용을 최대한 단축하는 게 우리의 역할입니다.”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우수한 CM이 건설 현장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1998년 국내 공공사업 최초로 CM 방식을 도입한 프로젝트다. 당시 국가적 난제로 대두된 월드컵경기장 건설의 해결책으로 한미글로벌은 선진 프리콘(Pre-con) 기술을 도입했다. 김 회장이 지난 2020년 펴낸 책 제목이기도 한 프리콘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모아 계획, 설계, 시공, 유지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사전에 미리 체크하고 관리하는 기법을 말한다.월드컵 시작 전까지 완공 여부를 장담하지 못했던 서울월드컵경기장은 한미글로벌의 프리콘 도입으로 공기를 4개월이나 단축해 2001년 11월 준공했다. 대형 경기장의 경우 대회가 끝난 후 유지관리비 때문에 적자가 발생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사후 관리시설, 즉 각종 수익시설(예식장, 수영장, 할인점, 체육시설 등) 도입도 제안했다. 지금까지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전국 월드컵경기장 중 유일하게 흑자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역량 있는 CM을 통한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을 설명하던 김 회장은 최근의 아파트 건설 중단 사태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뱉었다.“건설단가가 올라서 사업이 중단됐다는 뉴스를 보세요. 멋지게 설계만 해놓으면 다가 아닙니다. 예산과 비용 관리는 전혀 하지 않고 공사부터 진행하다가, 공사비 더 안 주면 사업을 중단하겠다며 조합과 싸우는 거죠. 그 과정에서 실제로 공사가 좌초되기도 하고요. 아파트 같은 대규모 공공주택 건설에도 PM·CM 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미래 경쟁력 확보도 김 회장이 놓지 않는 분야다. 창업 이래 선진 PM·CM 기법을 익히는 데 전력해온 것처럼,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첨단 ICT 기술을 건설관리에도 적용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미 지난 2018년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T) 추진실을 사내에 조직하라고 지시했다. 최근에는 디지털, 로보틱스, 메타버스, 생성형 AI 등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카이스트 교수진을 모시고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기 위한 직원 교육에도 나섰다.
기업을 넘어 사회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리다
▎김종훈 회장은 이미 지난 2018년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추진실을 조직했다. 첨단 ICT·디지털 기술을 PM에 도입하기 위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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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돌릴 틈 없이 빠르게 전환하는 산업 트렌드 속에서도 김 회장은 창업 후 28년간 놓지 않은 경영 원칙이 있다고 말했다. 경영방침 종이 카드에 적힌 정직, 안전, 고객, 탁월, 공헌이다. 김 회장은 이를 한미글로벌의 핵심 가치로 정립했다.“핵심 가치와 비전, 미션을 차례로 수립하고 그걸 지키기 위해 28년간 최선을 다했습니다. 외부 과시용, 게시판용 구호가 절대 아니에요. 일례로 정직이라는 가치에 위배되면 가차 없이 ‘원스라이크아웃’제를 적용합니다. 건설산업은 아직도 부패의 사슬고리가 작동하는 진흙밭과 같아요.”지난 2009년 김 회장은 일하는 방식을 더욱 구체화해 집대성했다. [한미글로벌 웨이(The HanmiGlobal Way)]라는 제목의 소책자도 펴냈다. 여기에는 경영 원칙부터 사람, 조직문화, 시스템과 운영, 일하는 방식, 행복경영 등 한미글로벌 임직원이 인식해 행동 기준으로 삼아야 할 준칙들이 망라돼 있다. 김 회장은 이를 “한미글로벌의 바이블”이라고 표현했다.“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먼저 재미가 있어야죠. 일과 재미는 어찌 보면 양립하기 힘든 개념이지만 직장에서 재미를 찾기 위한 여러 활동을 회사가 적극 지원합니다. 두 번째는 성장이에요. 10년 후 어떤 모습일지 기대되는 회사여야 합니다. 직원 교육에 돈을 아끼지 않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은 봉사와 감사예요. 사람의 행복은 남을 돕는 데서 가장 크게 발현됩니다.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지금 두 발로 서 있는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죠.”김 회장은 회사 구성원을 넘어 사회 전반의 행복지수를 올리는 데도 회사 경영만큼이나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10년 사재를 출연해 세운 사회복지법인 ‘따뜻한동행’이 대표적이다. 재원 마련 방식도 독특하다. 한미글로벌 구성원들이 월급의 1%를, 회사가 2%를 내 총 3%를 기부한다. 2010년 낡은 장애인 시설을 고쳐주며 시작한 공간복지 사업은 지난해 1000호를 돌파했다. 올해만 153억원을 집행하며 대기업 수준의 복지법인으로 성장했다.기업 주도의 저출산 극복 정책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운동에도 열심이다. 이를 위해 2022년에는 인구문제 전문 비영리 민간 연구기관인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을 출범했다. 인구문제 해결을 위한 어젠다를 지속적으로 제시하며 저출산에 대한 전 국가적인 관심과 대응책을 이끌어내고 있다.“저출산 극복을 위해 20년간 사내에서 여러 활동을 해왔습니다. 인구연구원을 설립할 때는 하는 일이 많고 벌써 은퇴해도 괜찮을 나이인데 또다시 일을 벌이는 게 맞나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결론은 ‘나라도 나서야겠다’였어요. 개인이 아닌 나라를 구하는 일이라는 사명감에 연구원을 세웠습니다.”부동산개발 자회사 한미글로벌디앤아이(D&I)가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에 공급하는 시니어 레지던스 ‘위례 심포니아’도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다.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시니어 레지던스로 ‘건강 주택’을 표방한다.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와 한의사 박찬서 원장의 특별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인구 감소와 별개로 초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책도 중요하다”며 “시니어 레지던스를 일찍부터 준비하고 기획했다”고 말했다.70대 중반에 들어선 창업 CEO에게 지속가능 경영은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숙제다. 김 회장은 초일류 기업을 “최고의 인재를 고용하고, 항상 변화와 혁신하면서 탁월함으로 지속 성장하며, 국가와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기업”이라 정의했다. 특히 강조한 건 CEO, 즉 리더의 역할이다.“기업은 망하기 쉽습니다. 최고경영자가 2년만 열심히 헛발질하면 바로 말아먹어요. 100년 기업은 고사하고 말이죠. 그만큼 CEO의 자기 컨트롤이 중요합니다. 과욕을 부리는 것도 좋지 않아요. 기업 규모를 키우고 신사업에만 몰두하는 건 위험합니다. 대신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항상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힘써야 해요. 100년 기업이 되기 위해선 탁월한 인재와 조직문화, 이를 뒷받침할 시스템 경영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한미글로벌은 기업 승계에서도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전통을 세워가고 있다. 김 회장이 보유한 한미글로벌 지분은 10.4%에 불과하다. 자식이나 배우자 몫은 제로(0)다. 일찍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승계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누군가는 김종훈의 한미글로벌을 넘겨받아 더 좋은 기업을 일궈내야 하죠. 자식에게 승계하는 건 오히려 쉬워요. 잘하고 못하고 문제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우리 비즈니스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그만큼 전문성을 갖춰야 해요. 자식들과는 승계는커녕 회사에 관한 이야기도 잘 나누지 않습니다.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이 시스템에 따라 창업자 수준의 전권을 가지고 다음 경영을 이어가야죠.”인터뷰 말미 개인적인 목표와 바람을 묻는 질문에 김 회장은 “건강관리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답하더니 난데없이 ‘싱크탱크’ 이야기를 풀어내며 목소리를 높였다.“한국에는 아직도 제대로 된 싱크탱크가 없어요. 2021년부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기저기 후원도 해봤지만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사회 발전을 더디게 하는 엉터리 제도와 정책이 많은 것도 싱크탱크의 역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잘 압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게 아쉬울 뿐이죠.”김 회장은 이어 규제 혁파, 선진 제도·시스템 도입과 정착, 부패 척결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쏟아내며 역설했다. ‘선진도상국’이라는 자조 섞인 분석을 끊어내야 한다는 토로였다. 나이를 이야기하며 뱉어낸 푸념 대신,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회사에도 사회에도 많이 남은게 분명했다.-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