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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의 어두운 단면, 기후변화와 사회적 비용이렇게 좋은 오프라인 학회 활동을 미국 정부는 왜 줄이려고 할까? 과학 발전은 경제 발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사실 미국 정부가 걱정하는 건 과학자들의 학술 활동이 아니다. 다만, 이런 학술 활동을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이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팅이나 학회 참석을 위한 이동이 미국 전체 출장의 40%에 육박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사람들이 자가격리를 하게 되자 탄소배출량이 급격하게 줄면서 근래에 보기 힘들었던 생태계 치유 현상들을 세계 각국에서 목격했다. 이는 우리의 이동수단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바꿔나가야 할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줬다.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장애나 경비, 혹은 자녀 양육 문제 등으로 이동 거리가 먼 장소에서 열리는 학회에 자주 참석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의 숫자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학자들보다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학회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는 과학자들이 네트워크를 더욱 돈독하게 다지고 논문에 출판되지도 않은 가장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는 일이 늘면서, 새로운 지식과 학술 자원을 널리 공유하기 위한 자리인데도 학회가 더 많이 열릴수록 지식, 자금, 인력 등 많은 자원이 참석자들 위주로 편중되어 학계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많다. 또 3~4일간 계속 되는 학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그 기간 동안 남겨진 수업과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사회적 비용도 무시하기 힘들다.
학회의 미래, 미래의 학회이번 학회에 참가한 40여 명 중 7명이 개인 소장하고 있는 애플 비전 프로(Vision Pro) 헤드셋을 들고 왔고, 이 중에는 애플에서 초창기 비전 프로 개발에 참여했던 사람도 있었다. 각자 애플 비전 프로를 쓴 상태에서 학회장의 다른 방이나 복도 등으로 이동해 행사장에 모여 있던 참가자들과 원격으로 교류해봤다. 비전 프로 헤드셋을 쓴 참가자들은 머신러닝 기법으로 생성된 투명 아바타(Apple Persona)를 사용해 토르소 형태로 머리와 상반신 일부가 떠 있는데, 이들의 존재를 볼 수 있는 건 비전 프로를 사용하고 있거나 헤드셋에서 보이는 것을 핸드폰으로 공유/미러링하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다른 참가자들은 페르소나가 바로 옆에 동동 떠 있어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라, 하나의 현실에서 두 개의 평행 우주-가상 공간이 보이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애플의 페르소나는 얼굴 표정의 움직임 등이 굉장히 정교한 편이고 정확히 그 사람의 키 정도 높이에 떠 있어서 투명한 느낌이 나는데도, 그 페르소나를 뚫고 지나가기 힘들었다. 분명 헤드셋을 쓰고 있는 사람들 눈에만 보이는 픽셀인 줄 알면서도 굳이 페르소나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돌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몰입감이 훨씬 높은 가상현실(VR)에서 회의를 진행할 때 가장 불편한 부분은 현실 세계의 사람이나 물건들과 완전히 격리된 상태라서, 현실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 힘들고 핸드폰을 볼 수도 없다는 점이다. 대신 몰입감이 좋기 때문에 화상회의를 할 때처럼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카메라를 끈 채 다른 일에 열중하는 사람은 없다. 반면, 혼합현실의 한 종류인 비전 프로는 전부 다 같이 헤드셋을 쓴 상태가 아니라면 이번 학회에서의 상황처럼 모두 같은 공간에 있기는 하지만 마치 평행의 우주에 있는 듯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분리된다.비전 프로를 여러 참가자와 같이 사용해보니 앞으로 멀지 않은 미래에 혼합현실을 응용한 하이브리드형 학회가 가능할 것 같다.
※ 안선주 -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