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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담은 구두, 벨루티 

 

정소나 기자
작은 레더 조각에 끝없이 의미를 부여하며 1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랑받고 있는 남성 수제화 브랜드 벨루티. 4대째 헤리티지를 계승하면서도 끝없는 혁신으로 독특한 개성을 표현해왔다. 벨루티는 어떻게 ‘영혼을 지닌 구두’, ‘예술품의 가치를 지닌 구두’라는 찬사를 받게 됐을까?

슈즈 한 켤레에 담은 장인정신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세네갈리아 출신의 창립자 알레산드로 벨루티(Alessandro Berluti)는 캐비닛 제작 기술을 연마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그 후 더 넓은 곳에서 재능을 펼쳐 보이고자 19세 나이에 고향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19세기 당시 창의적인 예술이 융성하던 파리에서 슈메이커로 전향한 그는 구두 제작에 전념했고,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인 그의 구두는 유럽 상류층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열광과 찬사를 받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현대무용가 이사도라 덩컨과 엘리자베스 아덴 등 유명 인사를 비롯해 전 세계에게 다양한 고객층이 형성되었고, 맞춤 슈즈의 기본인 하드우드 라스트(신발을 만들기 위해 나무로 제작된 발 모형)를 제작해 개개인의 발에 맞게 슈즈를 만들어 비스포크 슈메이커라는 명성을 얻었다. 1895년 새롭게 선보인 알레산드로 레이스업 슈즈와 함께 벨루티가 탄생했으며, 이 모델은 이후 벨루티의 상징이 되었다.

4대째 이어온 가족경영


▎1. 하드우드 라스트를 만들기 위해 준비 작업을 하는 장인의 모습. / 2. 슈즈의 소재로 쓰이는 베네치아 레더 두루마리. / 3. 발 사이즈에 맞는 라스트를 만들기 위해 목재를 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1928년 몽타보 거리에 오픈한 스토어는 알레산드로 벨루티의 아들 토렐로 벨루티(Torello Berluti)에게 이어졌다. 토렐로는 비스포크 슈즈 제작의 예술성을 기반으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완벽주의를 접목해 다양한 디자인의 구두를 선보였고, 독창적이면서도 우아하고 모던한 스타일을 열망하던 많은 고객에게 사랑을 받았다. 사업을 확장해나가던 벨루티는 마침내 1940년대 샹젤리제 인근 마베프 거리 26번지에 새로운 매장을 오픈했고, 그곳은 지금까지도 벨루티 매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 후 토렐로의 아들인 탈비니오 벨루티(Talbinio Berluti)가 14세부터 구두 제작을 배우고 건축 공부를 병행하면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족경영에 참여했다. 탈비니오 벨루티는 브랜드에 새로운 변화와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브랜드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열망이 있었다. 1959년, 그는 제작 시간을 줄이되 슈메이킹의 장인정신은 고스란히 담은 럭셔리 기성화 컬렉션을 선보이며 젊은 세대 속으로 들어가 벨루티의 고객층을 넓혔다.

1960년대 후반 사촌 탈비니오의 가업에 합류한 올가 벨루티는 넘치는 에너지와 예술적인 영감,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대담한 시도로 벨루티의 명성을 한층 드높였다. 쇼룸이자 파티 라운지로 사용되던 마베프 매장은 앤디 워홀, 프랑수아 트뤼포, 피에르 베르제, 이브 생로랑, 칼 라거펠트 등 유명인이 만나는 사교 장소이기도 했다. 수많은 예술가와 교류하며 친분을 쌓고, 많은 영향을 주고받은 벨루티 가문의 4대 계승자 올가 벨루티는 새로운 영감이 깃든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감성의 구두를 선보이며 남성 구두의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 올가 벨루티는 앤디 워홀과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고, 그를 위해 날렵한 라인이 돋보이는 모던한 ‘앤디 로퍼’를 선보였다. 이는 오늘날까지 벨루티의 아이코닉한 모델로 이어지고 있다.

단 한 사람을 위한 비스포크 슈즈


▎1, 3, 4 파티나와 스크리토, 상징적인 프린트 등 벨루티의 아이코닉한 디자인 코드를 담은 2024 SS 컬렉션. 패브릭과 레더가 혼합된 가먼트와 액세서리는 물론, 다양한 아이템에 걸쳐 조화로운 예술을 펼쳐냈다. / 2. 2017/2018 AW 컬렉션의 코듀로이 벨벳 셔츠와 2022/2023 AW 컬렉션의 드메져 드라페 부츠로 멋을 더했다. / 5. 2017/2018 AW 컬렉션에서 선보인 벨벳 베스트와 2021/2022 AW 컬렉션에서 선보인 클래식 인피니 더비 슈즈를 매치했다. / 6. 2024 SS 시즌 선보인 캐주얼에서 드레시한 스타일까지 두루 어울리는 베네치아 레더 소재의 패스트 트랙 레더 스니커즈.
오더메이드 슈즈 비스포크(Bespoke)는 벨루티의 상징이자 특별함을 보여주는 카테고리이다. 창립자인 알렉산드로 벨루티가 처음 선보인 이후 오늘날까지도 벨루티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탁월한 기술력과 독보적인 창의력을 계승해온 브랜드의 본질이자 장인정신의 진수이다. 비스포크 슈즈는 고객의 발 형태와 개인적인 취향, 요청 사항 등을 반영해 제작하는 특별한 슈즈로 약 6개월 동안 각 분야 전문가의 손으로 50시간 이상에 걸친 250여 번의 수작업으로 완성된다.

현재 벨루티의 비스포크 라인은 벨루티 본사의 수석 장인이 전 세계를 순회하며 맞춤 구두를 주문 받아 제작해주는 ‘비스포크 세션(Bespoke Session)’을 통해 이루어진다. 본사의 수석 슈메이커가 직접 방한해 사전 예약한 고객과 1대1로 만나 발 치수와 볼륨을 측정하고 대화를 나누며 신체적인 조건부터 라이프스타일까지 세밀하게 분석한다. 이후 고객의 니즈를 반영해 가죽의 종류, 컬러, 아웃솔 공법 등 구두 제작을 위한 모든 디테일을 직접 결정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토대로 라스트 메이커, 패턴 메이커, 스티처, 어셈블러, 컬러리스트 등이 약 250가지 공정을 거쳐 만든 슈즈를 시착한다. 그때 다시 한번 피팅과 볼륨, 스타일과 디테일 등 최종 제작을 위한 라스트를 재확인한 후 구두가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파티나(patina) 기법으로 풍부하고 깊이감 있는 컬러를 더하면 완벽하고 특별한, 오직 한 켤레의 구두를 만날 수 있다.

다채로운 컬러를 입다, 파티나의 예술

벨루티 하면 다채로운 컬러가 제일 먼저 생각날 정도로 파티나는 벨루티만의 특별한 매력이자 가장 강렬하고 상징적인 시그니처다. 1980년대 올가 벨루티가 개발한 파티나 기법은 블랙 또는 브라운 컬러가 대부분이었던 남성 슈즈에 다양한 색채감을 불어넣으며 컬러 혁명을 주도했다.

파티나는 다양한 천연염료와 에센셜 오일, 여러 종류의 브러시와 스폰지, 천 등을 이용해 슈즈의 색감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획기적인 기법이다. 우선 가죽을 깨끗하게 닦은 후 표면의 폴리싱을 제거하고 투명 폴리시를 이용해 가죽의 컬러를 탈색한 후 오랜 시간 동안 에센셜 오일과 천연염료, 다양한 왁스로 부드럽게 마사지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염료와 영양 크림 등을 이용해 컬러를 입히는 작업이 시작되고, 이후 다시금 오랜 시간 글레이징 작업으로 컬러에 깊이감과 풍부함을 더하면 파티나가 완성된다. 이때 컬러리스트가 색을 입히는 힘과 속도, 염료의 농도와 횟수에 따라 다양한 컬러와 깊이를 표현할 수 있다. 구두를 비롯한 가죽제품에 적용되는 파티나는 컬러를 입히는 데서 나아가 깊이, 입체감, 개성을 부여한다. 벨루티의 모든 구두는 이 기법을 활용해 수작업으로 색을 내기 때문에 같은 색상이라 해도 미묘하게 차이가 나며, 각각의 구두가 모두 유일한 색감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

풍부하고 깊이감 있는 컬러의 완성, 베네치아 레더


▎1. 장인의 작업대 위에 놓인 제작 도구들. / 2. 개개인의 발에 맞춘 목재 맞춤 라스트. / 3. 오묘한 컬러가 돋보이는 베네치아 파티나 가죽 소재의 에퓌르(Epure) 지갑. / 4. 슈즈에 파티나 기법을 적용해 컬러와 깊이, 입체감과 개성을 더한다. / 5. 2024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선보일 프랑스 대표팀의 유니폼.
남성 슈즈에 컬러를 부여하고 싶었던 올가 벨루티의 열망은 유연하고 섬세한 베네치아 레더(Venezia Leather)를 개발하면서 구체화됐다. 베네치아 레더는 고급 송아지 가죽에 마치 살아 있는 피부처럼 생명력을 유지하도록 벨루티 고유의 특별한 태닝 과정을 거쳐 풀 그레인 코팅을 하지 않은 최상의 가죽을 선별한 후 가장 완벽한 부분만 커팅해 제품 제작에 사용한다. 이 가죽은 뛰어난 유연성과 탄력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가죽의 퀄리티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색상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구두에 한 폭의 그림을 입히다, 비스포크 타투

구두 가죽에 새기는 타투는 벨루티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타투아주는 벨루티 타투북에 있는 문양이나 고객이 원하는 문양을 구두에 정성스럽게 새기는 개별 맞춤 서비스다. 수년에 걸친 연구 끝에 2003년 올가 벨루티가 완성한 타투 레더 테크닉은 장인정신과 기술력이 접목된 새로운 장르다. 벨루티의 상징적인 베네치아 레더에 바늘과 염료로 전문 타투 아티스트가 한 땀 한 땀 손으로 완성하는 작품이다. 사람 피부에 타투를 새기듯 구두와 가방, 벨트 등 가죽제품에 타투를 새겨 고객들의 다양한 개성을 반영한다. 이를 통해 벨루티 제품은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제품으로 재탄생한다. 벨루티 타투는 벨루티 전 매장에서 베네치아 레더 슈즈, 가방, 벨트, 지갑 등을 활용해 스페셜 오더로 만날 수 있으며 가격은 타투의 종류와 난이도에 따라 책정된다.

벨루티, 남성 토털 브랜드로 진화하다

최고급 남성 수제화 브랜드 벨루티는 1895년 파리에 첫 부티크를 오픈한 이래 4대에 걸쳐 이어온 전통과 장인정신에 기반한 기술력과 창의성을 유지하며 유럽 상류사회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사랑받고 있다. 12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존 F. 케네디, 앤디 워홀, 파블로 피카소, 칼 라거펠트, 이브 생로랑, 윈저 대공 등 세계의 정치와 패션, 예술을 이끈 수많은 유명 인사와 유럽 로열 패밀리들이 애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벨루티의 의류와 신발을, 정용진 신세계 그룹 회장이 백팩과 여행용 가방 등을 착용해 CEO가 사랑하는 브랜드로 알려지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파리를 비롯해 밀라노, 런던, 도쿄, 모스크바, 뉴욕, 베이징, 두바이, 서울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남성들이 동경하는 최고급 남성 수제화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993년 프랑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인수한 이후 벨루티는 국제적 명품 브랜드로서 위상을 공고히 했다. 벨루티는 명망 높은 슈메이커를 넘어 삶의 예술을 구현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2005년에는 가방 라인, 2011년에는 기성복 라인 등 표현의 영역을 자연스럽게 넓혀갔다. 벨루티는 남성의 우아함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으며, 마베프와 세브르의 벨루티 매장에서는 고객에게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특별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스포크 슈즈와 레디-투-웨어에서 보여준 벨루티의 장인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비스포크 테일러링은 최상급 퀄리티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카테고리이다.

‘그랑 메져’로 알려진 비스포크 마스터 테일러가 고객 한 명 한 명의 희망 사항과 요청 사항, 신체 특징과 개성, 의상의 용도 등을 고려해 완벽한 맞춤 피팅과 디자인으로 제작하는 특별한 수작업으로 완성된 의상이다. 벨루티의 모든 그랑 메져 슈트는 40년이 넘는 전문 테일러링의 역사를 자랑하는 메종 아르니스와 협업으로 제작한다. 1933년에 오픈한 프랑스의 5대 패션 메종 중 하나인 아르니스를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에 편입시킨 후 벨루티의 레이블을 붙여 고급 맞춤 정장을 제작하고 있다. 이로써 벨루티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비스포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초의 브랜드가 되었다.

오늘날 벨루티는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위한 프랑스 대표팀의 유니폼을 제작함으로써 벨루티의 장인정신과 프랑스 대표팀을 전 세계에 돋보이게 한다는 핵심 목표에 집중하고 있다.

2024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선보일 프랑스 대표팀의 유니폼은 프랑스에서 디자인되어 유럽 내에서만 공급되는 소재를 사용해 전통적으로 벨루티 의류 컬렉션을 생산해온 이탈리아의 아틀리에에서 품질과 마감에 관한 벨루티의 엄격한 기준을 준수해 제작했다. 그 결과 턱시도에서 영감을 받아 고급 소재, 파티나 효과 등 벨루티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스타일 코드를 접목한 유니폼을 완성했다. 벨루티가 제작한 유니폼의 메인 아이템인 우아한 미드나잇 블루 울 소재 턱시도 재킷은 ‘프랑스 국기’에서 영감을 받아 파티나 컬러로 재해석한 숄 칼라 디테일이 돋보인다. 벨루티 장인들의 열정과 노하우로 완성된 유니폼을 착용한 프랑스 선수단이 전 세계에 프랑스의 장인정신을 널리 알리는 앰배서더가 되어 역사적인 순간에 영원히 기억되리라 기대해본다.

특별한 전통과 탁월한 기술력을 겸비하고 항상 독보적인 색채를 유지해온 벨루티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혁신하고 탐구하며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나가고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업을 이어온 벨루티는 지금도 오직 신는 사람을 생각해 가장 우아하고 편안한 슈즈를 제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탁월한 장인정신과 형태에 대한 완벽한 이해, 가죽 기술과 파티나 테크닉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는 열정이야말로 벨루티가 명품을 넘어 예술품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아닐까?

[박스기사] 벨루티의 역사를 쓰며 현재를 만드는 BELUTI ICON

1. 알레산드로 | ALESSANDRO


알레산드로 벨루티가 선보인, 솔기 없이 단일 가죽 조각으로 제작된 레이스업 슈즈. 메종의 애호가였던 윈저(Windsor) 공작이 자신의 할머니에게서 배운, 끈을 교차하지 않고 일자로 묶어 풀리지 않는 이중 매듭 기술을 올가 벨루티에게 전수해주었다. 이 매듭은 ‘벨루티 매듭’으로 불리며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알레산드로 슈즈와 함께 메종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2. 앤디 | ANDY


1962년 팝아트계의 거장 앤디 워홀에게 제작 의뢰를 받아 올가 벨루티가 완성한, 스티칭 장식이 더해진 뱀프를 덧댄 슬림한 라인의 로퍼. 앤디 워홀은 이 로퍼에 단숨에 매료되었고 훗날 여러 세대에 걸쳐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로 탄생 62주년을 맞은 앤디는 여러 번 새롭게 재해석되며, 아방가르드한 특징을 간직한 채 벨루티를 상징하는 아이코닉한 슈즈로 자리 잡았다.

3. 스크리토 | SCRITTO


1990년대 벨루티는 올가 벨루티를 통해 가죽에 대한 새로운 관계 설정을 시작했다. 레더는 소재를 넘어 제2의 피부이자 의미와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가 되었다. 올가는 베네치아 레더 위에 아름다운 캘리그래피를 새겨 넣어 고급 문서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후 이 상징적인 스크립트의 가느다란 소용돌이는 새로운 슈즈나 가방을 장식하며 벨루티만의 개성을 발산하는 표식이 되었다.

-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제공 벨루티

202407호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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