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53) 

달, 밤을 밝히는 작은 빛 

달이 차오르고 기운다. 자연의 주기 앞에서 인간은 성장과 반복이라는 이치를 깨닫고, 보름달을 바라보며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기도 한다. 달의 다양한 의미를 머금고 있는 여러 미술작품을 살펴보자.

▎[일월오봉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밝히는 역할은 담당하는 것은 태양이다. 태양은 낮에 따듯하게 온도를 올려주고, 식물과 동물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다양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태양은 예로부터 숭배의 대상이었다. 대표적으로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Ra)를 섬겼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태양신 아폴론이 등장한다.

그러나 밤하늘을 비추는 것은 태양만이 아니다. 낮에 태양이 있다면, 밤에는 어두운 하늘에서 달이 빛을 뿜는다. 태양만큼 강하지도 않고, 태양처럼 늘 가득 찬 원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지구를 맴도는 유일한 위성인 달은 밤하늘의 빛을 담당해왔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고, 달 앞에서 여러 약속을 해왔다. 달은 많은 사람에게 감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대상임은 분명하다.

일월오봉도는 왕이 있는 곳이라면 실내외를 막론하고 왕 뒤에 놓였던 병풍이다. 일월오봉도는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 때 처음 등장했는데, 하늘을 밝히는 태양과 달은 조선 건국이 하늘의 뜻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왕이 서거하면 왕과 함께했던 일월오봉도도 함께 묻혔다.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 다섯 개 봉우리, 소나무가 그려진 병풍화로, 해와 달은 음양을 상징하며, 다섯 봉우리는 오행을 상징한다.

소원이 담긴 달


▎한유진 [자기를 위한 꽃꽂이] 2024
달항아리라고 불리는 하얀 도자기가 있다. 순백의 빛을 띠는 둥근 백자대호를 김환기 화백이 ‘달항아리’라고 부른 이후에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본디 달항아리 속에는 물이 담겼다. 백자 도자기에서는 물의 속성이 변치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렇기에 달항아리 속의 물에는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도 담겼다.

달은 가득 차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지만 언제나 순환하고 다시 가득 찬다. 이런 주기적인 시간은 성장과 재생,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유진 작가의 그림에는 달항아리가 자주 등장한다. ‘도기’와 ‘자기’는 재료부터 다르다. 산비탈이나 논 아래에서 채취한 흙으로 만들어 낮은 온도에서 구워낸 것이 도기라면, 자기는 산 정상의 바윗돌을 곱게 갈아 으깨어 재료로 사용한다. 깎아내는 아픔을 견디어낸 후 1200℃ 이상의 타는 듯한 고온 소성을 두 번이나 더 견디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라는 이름이 붙는다. 한유진 작가는 이 모습이 인생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힘겨운 경험과 고난들이 사실은 우리의 인생을 더욱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달항아리 제작 과정은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과정을 경험하고 나서야 우리의 삶이 비로소 진정한 성숙을 이룬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한유진 작가는 옛 조상들이 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듯, 그림을 그리며 행복과 안녕을 기원한다. 그리고 그림을 감상하는 모든 사람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낼 힘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달을 닮은 항아리를 그린다. 그렇기에 화려한 꽃이지만 작품 속 꽃들은 항아리의 형태를 침범하지 않는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주인공에게 자리를 양보하듯 그저 배경에 머물며 축하와 축복을 건넬 뿐이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우리네 희망을 받아주는 보름달처럼 단단하게 자리 잡은 달항아리가 그림을 보는 모든 이의 마음에 함께하길 바란다는 것이 한유진 작가의 설명이다.

달의 여신 셀레네


▎프라고나르 [디아나와 엔디미온] 1756
셀레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달의 여신이다. 문헌에 따라 해석하는 관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셀레네는 보름달, 디아나는 초승달을 의인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셀레네는 미소년 엔디미온에게 한눈에 반하게 된다.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그녀와 달리 인간이었던 엔디미온의 시간을 잡고 싶었던 셀레나는 그를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든다.

셀레네는 그리스어로 빛을 뜻하는 셀라스(selas)에서 유래했고, 엔디미온의 어원인 그리스어 엔디에인(endyein)은 ‘물에 뛰어들다’라는 뜻이다. 셀레네가 엔디미온을 껴안는 것은 달이 물에 뛰어드는 사람을 껴안는다는 것, 즉 해가 바닷속으로 지고 달이 떠오르는 밤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득 찬 달, 보름달


▎새뮤얼 팔머 [수확의 달] 1833
동양과 달리 서양권에서 달은 불길한 징조를 의미한다.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보름달이 뜨면, 그 달빛을 받고 잔 사람이 늑대인간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셰익스피어 희곡에는 보름달이 뜬 날에는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며 달을 조종한다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달을 뜻하는 루나(luna)에서 비롯된 영단어 루나틱(lunatic)은 ‘미치광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동양 문화권에서 달은 긍정의 의미를 많이 담고 있다. 보름달은 예로부터 풍요와 번성, 행운을 상징했다. 음력 1월 15일(정월대보름)에 뜨는 보름달을 보며 선조들은 한 해 농사의 풍년과 건강을 기원했다. 추수 시기에 뜬 보름달은 풍요로움을 상징하고,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차오르는 모습은 마치 곡식이 무르익어가는 모습과도 닮아 있다. 추석에 보름달이 뜨면, 온 가족이 모여 가족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원했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었다.

영국 화가 새뮤얼 팔머의 그림에는 금빛이 자주 등장한다. 풍요로움과 안식을 상징하는 금색은 추수하는 농부들의 손끝에서 빛이 난다. 함께 일하고 땀 흘리는 사람들, 모두가 풍요로운 가을의 수확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하늘의 빛, 달이다.

달의 주기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리듬과 삶의 주기를 떠올리게 한다. 보름달은 주기적인 변화와 성장의 완성을 나타내며, 이는 인간의 성장과 발전을 상징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이유는 보름달에 특별한 힘과 에너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둠을 밝히는 달의 밝은 빛이 소원을 이루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긍정적 변화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마음속의 달

달은 우리의 문화권에서 삶에 여러 면으로 개입한다. 매일 밤 하늘에 떠오르는 달은 일상의 일관성 없는 존재감을 상징한다. 달이 차오르고 기우는 과정은 성장과 반복이라는 교훈을 준다. 비록 달의 모습은 매일 바뀌지만, 그 자체에 담긴 아름다움과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삶이 어두운 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려움과 도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고 느낄 때, 때로는 길을 잃고 방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달은 언제나 떠 있고, 길을 비춰준다. 달이 어둠을 뚫고 빛을 비추듯, 삶에는 희망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달은 태양처럼 밝지 않다. 달을 밝게 만들어주는 것은 어두운 밤이다. 밤이 있어야 달이 빛나듯, 삶에도 어두운 순간이 있어야 진정한 강점과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달이 매일 밤 떠오르듯, 우리의 마음속에도 어려운 시기마다 떠오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 김소울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다. '치유미술관' 외 19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407호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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