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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28) 유연경 예술의전당 공연예술본부 공연기획부 부장 

일상에 스며든 클래식 선율 

정소나 기자
수년간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으로 움츠러들었던 한국 클래식 공연계가 이전의 모습을 되찾으며 활기를 띠고 있다. 티켓 파워가 있는 스타 연주자들이 시장을 견인하고, 콘텐트와 미디어를 결합한 공연들이 관객 저변을 확대하며 공연 시장을 키우고 있다. 다채롭고 기발한 공연 레퍼토리로 난해한 클래식도 친근하게 해석하며 클래식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공연기획자 유연경 부장을 만났다.

▎정승우 이사장과 유연경 부장이 우리나라 클래식 공연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획자는 보통 어떤 작업이나 작품들의 진행 계획을 수립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공연 한 편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콘셉트부터 프로그램 확정, 출연진 섭외 등 세부적으로 준비하고 신경 써야 할 사항이 너무 많다. 우리가 늘 당연하게 접하고 익숙하게 즐겨온 수많은 클래식 공연이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그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것이 공연기획자의 역할이다.

정승우 이사장이 만난 이달의 아트 피플은 관객이 쉽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클래식 공연을 기획해 클래식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는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 유연경 부장이다.

유 부장은 중학교 1학년 때 유학길에 올라 미국의 3대 예술고등학교 중 하나인 아이딜와일드 아트스쿨(Idyllwild Arts Academy)에서 플루트를 전공했다. 버클리음악대학(Berklee College of Music)에 진학해서는 뮤직 비즈니스/매니지먼트(Music Business/ Management)를 공부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2003년부터 현재까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기획 업무를 담당하며 [아티스트 라운지], [11시 콘서트], [콘서트 오페라], [클래식 스타 시리즈], [손범수·진양혜의 토크&콘서트] 등 퀄리티와 대중성을 겸비한 수많은 인기 공연을 기획했다.

2016년부터는 성신여자대학교 음악대학 대학원에 출강해 공연예술과 음악 경영을 가르치며 생생한 현장 경험들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있다.

클래식 공연기획자의 역할이 궁금하다.

내가 생각하는 클래식 공연기획자란 관객과 아티스트가 만나 교감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작품을 선택하고 기획하여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하고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그 결과를 분석하는 등 모든 과정을 총괄한다.

또 단순히 공연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아티스트가 자신의 연주 역량을 마음껏 발휘해 무대에서 더 빛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서포트하는 것도 공연기획자의 몫이다.

시작부터 화려하고 중요한 업무를 맡지는 않았을 텐데.

공연 기획 일을 시작하고 처음 맡은 업무는 공연 홍보물 디자인과 인쇄물 제작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워낙 미술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기에 신나게 일할 수 있었다. 공연 콘셉트나 머릿속에 있는 기획 아이디어를 직접 그린 스케치북을 디자이너에게 보여줘 더욱 빠르게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게 도왔다. 요즘 후배들은 홍보 시안 작업을 할 때 인터넷에서 손쉽게 레퍼런스 이미지를 찾고, 포토샵 작업으로 마무리해 완성도를 높인다. 하지만 나는 아날로그적이지만 열정으로 가득했던 손때 묻은 스케치북에 더 마음이 간다. 지금도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드로잉할 수 있는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닐 정도다.

공연을 기획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공연기획자라면 누구나 ‘관객과 아티스트 모두가 만족하는 최고 퀄리티의 공연을 만들겠다’는 단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기획 공연은 대관 공연과 달리 각 공연장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의전당이 직접 기획해서 만드는 공연은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공연이어야 한다. 관객들의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차별화된 공연을 만들어야 하는데, 경쟁해야 할 장르와 채널이 너무 많아진 요즘에는 더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코로나가 공연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빠지고 공연이 제한되면서 비대면 온라인 공연이 활성화되었다. 예술의전당도 팬데믹 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공연 영상 수요에 맞춰 공연 영상 제작 스튜디오 ‘실감’을 운영했다. 지난해에는 영화 수준의 화질로 제작한 퀄리티 높은 공연 영상을 언제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는 공연 영상 플랫폼 ‘디지털 스테이지’를 론칭하는 등 코로나는 공연 영상 사업에 공을 들이는 계기가 됐다.

무대에 설 기회가 줄어든 아티스트들은 직접 연주 영상을 촬영해 자신의 채널에 업로드하고, SNS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며 관객들과 소통하는 등 마케팅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사실 코로나가 잦아들어도 ‘온라인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도 많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티스트와 관객이 한 공간에서 직접 교감할 수 있다는 매력은 AI로 대체할 수 없는 순수예술만의 영역이었다. 또 코로나19로 해외 유명 연주자들의 내한 공연이 주춤한 사이 국내파 연주자들이 입지를 견고히 다졌고,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국내 연주자들은 스타덤에 올라 팬덤을 형성하며 전석 매진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영화·미디어·유튜브 등 대중적 콘텐트 기반 공연이 늘어나며 클래식 시장이 대중화되고 더 많은 관객이 유입되는 등 새로운 공연 문화가 생겨났다.


▎20년이 넘도록 공연 현장을 지키며 클래식 공연기획자로 활동 중인 유연경 부장.
아티스트 라운지와 11시 콘서트, 콘서트 오페라 등 히트 공연의 기획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 지금까지 만들어온 공연을 세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대략 1200개 정도가 되더라. 2004년 시작해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11시 콘서트’의 첫 기획 회의가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 당시 나는 막내 기획자였는데, 선배님들의 열띤 토론을 잊을 수 없다. 마티네 공연(점심시간 전후로 여는 클래식 공연)이 생소할 당시, 국내에서 처음으로 마티네 공연을 선보이고자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저녁에 시간을 내기 힘든 주부들을 타깃으로, 가족들을 일터와 학교로 보내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오전 11시를 시작 시간으로 정했다. 공연 레퍼토리는 풀 협주곡이나 교향곡 대신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유명한 클래식 곡들을 짧은 호흡으로 들을 수 있게 구성했다. 여기에 실력 있는 연주자, 위트 있는 해설자, 저렴한 티켓 가격이 어우러져 장소, 관객, 프로그램 등 삼박자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공연을 완성할 수 있었다.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으며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장수 클래식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콘서트 오페라’, ‘아티스트 라운지’ 모두 그 당시 다른 공연장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포맷으로 진행했던 공연이기에 기억에 남는다. 특히 콘서트 오페라는 이제는 어느 공연장에 가도 접할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공연이 되었지만, 처음으로 콘서트홀에 오페라 작품을 올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콘서트홀 무대가 오페라극장보다 관객과 가깝고, 음향시스템이 월등히 좋다는 장점을 활용해 관객들이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공연이 계속될수록 관객들의 칭찬을 담은 후기들이 이어져 큰 보람을 느꼈다.

코로나 기간에 선보였던 특별한 ‘오페라 갈라’도 생각난다.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 작품인 [마술피리], [돈조반니], [피가로의 결혼]과 푸치니의 [토스카], 베르디의 [리골레토],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등 유명한 오페라 작품 6개에서 친숙한 아리아와 주요 장면만 따로 모아 선보인 공연으로 3일 동안 진행했다. 6개 공연의 레퍼토리부터 의상, 세트까지 동시에 준비하느라 모든 과정이 도전의 연속이었지만, 모든 스태프가 짧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힘들었던 것도 다 잊을 만큼 관객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던, 결코 잊을 수 없는 프로젝트다.

공연을 준비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한 해외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앞두고 제1바이올린 연주자 중 한 명에게서 일본에서 한국으로 먼저 보낸 비행기 수화물 안에 본인 여권을 넣고 짐을 부쳐버렸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급히 공항으로 달려가 연주자들보다 먼저 도착한 수하물 속에서 여권을 찾아 하루 만에 도착하는 국제 운송으로 일본에 있는 연주자에게 보냈다. 가까스로 여권을 받은 연주자는 공연 당일 2부부터 연주에 합류할 수 있었다.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

또 예술의전당 음악당 개관 30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었던 ‘사라 장과 17인의 비루투오지’라는 공연도 떠오른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하며 성장한 국내파 아티스트 17인이 함께 실내악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공연이었다. 연주자 17인은 모두 사라 장을 보고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키워온 ‘사라장 키즈’로, 한 명 한 명이 굉장한 실력파 솔리스트였다. 공연 리허설 시간이 정말 길었는데, 리허설에 참석할 때마다 모두가 힘들다는 내색 한번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히어로와 한 무대에서 연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고 공연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공연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전석 매진으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사실 직접 기획한 공연은 관람석에서 감상하기 힘든데, 이 공연만큼은 2부 한 곡이라도 꼭 직접 듣고 싶어 관람석에서 마지막 곡을 들으며 관객들과 함께 기립 박수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공연에 따라 소위 ‘명당’으로 불리는 관람석이 따로 있을 것 같다.

유명한 지휘자가 이끄는 공연을 보고 싶다면 합창석을 추천한다. 티켓 가격이 저렴할 뿐 아니라 무대 바로 위에 위치해 연주자들과도 가깝다. 또 지휘자의 표정은 물론 공연 중간에 악보를 넘기는 모습까지도 놓치지 않고 감상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 심포니 교향곡을 듣고 싶다면 소리가 위로 퍼지기에 2층 중앙 블록을 권한다. 또 피아노 협연자의 연주에 집중하고 싶다면 사이드 좌석을 피하는 것이 좋다. 피아니스트의 손 움직임을 보며 감상할 수 있는 a블록, b블록 또는 c블록의 왼쪽에 앉는 것을 추천한다.

올여름 예정된 공연 중 눈여겨봐야 할 공연이 있을까.

당장 7월에는 소프라노 홍혜경, 베이스 연광철,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등 월드클래스 성악가 3인과 함께하는 ‘보컬 마스터 시리즈’, 지난 2021년 아시아 무용수 최초로 파리 오페라 발레단 최고 무용수 에투알로 승급한 박세은이 이끄는 ‘파리 오페라 발레 에투알 갈라 2024’를 주목해보면 좋겠다. 8월에는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프로덕션의 오페라 ‘오텔로’를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2024 예술의전당 어린이 가족 페스티벌’이 7월 12일부터 8월 18일까지 열리니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예술 경험을 해보길 권한다.

클래식 공연기획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남들과 똑같이 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공부하며 어떤 미션이 주어졌을 때 성공할 때까지 시도한다면 언젠가는 자기 것이 되고, 자신만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공연기획자에게는 자신의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 사람들과의 네트워킹도 정말 중요하다. 언젠가는 내가 만드는 프로젝트에 여러 장르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한 날이 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체력 관리는 필수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움직임이 많은 공연기획자들에게는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 몸이 건강해야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공연을 오래도록 즐기며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정승우 -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원동현 객원기자

202407호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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