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강호의 생각 여행(59) 돌로미티산맥에서 떠올린 호연지기 

 

알프스산맥의 일부인 이탈리아 돌로미티산맥을 찾았다. 대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황홀한 풍경에 넋을 잃고 탄성을 내뱉었다. 장엄하고 경이로운 풍광 앞에서 선진 대한민국에 걸맞은 호연지기란 무엇일지 떠올렸다.

▎트레 치메 반대쪽으로 펼쳐진 돌로미티산맥 풍광. 삐쭉삐쭉하고 날카로운 모습의 석회암 절벽이 장관을 이룬다.
올여름 알프스 여행은 이탈리아 돌로미티(Dolomiti)산맥으로 향했다. 이탈리아 동북부에 자리한 이곳은 언제나 환상적인 경치로 방문객을 설레게 하며 다시 오라고 유혹한다. 돌로미티산맥은 남부 알프스산맥의 일부로,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10년 전 겨울에는 이탈리아 북동부의 베네치아(이탈리아어 Venezia, 영어로는 Venice) 공항에서 자동차로 2시간 30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 코르티나담페초(이탈리아어 Cortina d’Ampezzo)에서 스키를 즐긴 적이 있다. 돌로미티산맥의 동쪽 지역이자 겨울스포츠의 중심지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열릴 예정이다.

올여름에는 돌로미티산맥의 서쪽 중심지인 볼차노(이탈리아어 Bolzano, 독일어 Bozen)에 여장을 풀고 산맥에서 가장 유명한 산괴(山塊, 산줄기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산의 덩어리) 두 곳을 찾아 가볍게 트레킹하기로 했다. 볼차노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도시로, 북쪽으로는 오스트리아 국경과 가깝다. 북쪽으로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더 북쪽으로는 독일 뮌헨, 남쪽으로는 이탈리아 베로나로 이어져 유럽의 남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에 자리한다.

이런 지리적 배경 때문에 예전부터 그 소속 영역을 두고 다툼이 잦았는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완전히 이탈리아의 영토가 됐다. 따라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오스트리아 계통이 많아 주민의 26%가 제1 언어로 독일어를 사용한다. 독일어와 이탈리아어가 섞인 식당 메뉴나 간판이 많아 외국인 관광객들은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알프스 지역에 있는 볼차노는 여름에는 등산, 겨울에는 스키 관광객이 많이 몰려드는 관광 중심지다. 지역 특산물로 포도가 유명해 식당에서는 이 지역에서 생산한 포도주가 주로 제공된다. 볼차노 올드타운에 자리한 카스텔 회르텐베르크(Castel Hörtenberg) 호텔에 묵었다. 르네상스 시대 성을 개조한 호텔인데 아침을 먹은 아담한 식당의 분위기와 음식이 좋았고, 사우나 시설과 소형 수영장도 휴식하기에 좋은 분위기였다.

첫날, 돌로미티 트레킹을 위해 볼차노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오르티세이(Ortisei)로 약 한 시간 정도 이동했다. 곤돌라 정류장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 옆으로 여러 층에 입구가 있는 대형 지하 주차장이 눈길을 끌었다. 아마도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 요긴한 주차 장소가 될 것이다. 이곳 발 가르데나의 주요 마을인 오르티세이 정류장에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곤돌라라고 하는 모양의 케이블카(Cable Car 또는 Rope Way)가 설치돼 있다. 2000m 높이의 알페 디 시우시 고원까지 몇 분 만에 데려다주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돌로미티산맥


▎연이은 감탄으로 입을 다물 수 없는 사소룽고의 웅장한 경관.
“와~~~~~~ 우~~~~!!!” 곤돌라에서 내려서 밖으로 걸어 나가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는 순간, 대자연의 신비함에 놀라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전 세계를 수없이 다녀보았지만 이토록 아름답고 신비한 풍광은 처음이었다. 겨울에 본 돌로미티산맥은 하얀 눈이 겹겹이 쌓여 있어서 그 속을 드러내지 않는 백색의 풍광이었다. 여름철 돌로미티산맥은 눈이 녹아 사라져서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그 형태의 신비로움과 규모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떡 벌어진다. 우리가 서서 바라보고 있는 곳은 이탈리아 알프스의 서부 돌로미티산맥에 있는 사소룽고(이탈리아어 Gruppo del Sassolungo, 3181m, 긴 봉우리·긴 바위) 산괴다. 거대한 산괴 앞으로 해발 2000m에 달하는, 유럽에서 가장 광활한 고원 지역인 알페 디 시우시(Alpe di Siusi, 라틴어 Mont Seuc, 독일어 Seiser Alm)가 눈부시게 푸른 초원을 펼치고 있었다. 여름에는 곤돌라의 최상단 정류장인 이 지점이 산책과 트레킹을 시작하기에 이상적인 출발점이고, 아름다운 전망이 있는 휴식처가 될 수 있다. 숨 막힐 듯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다시 리프트(Chairlift)를 타고 초원 속으로 하강했다.

알페 디 시우시 고원은 돌로미티에서 가장 햇볕이 잘 드는 곳이다. 이번엔 운 좋게도 날씨까지 너무 화창해 광활하게 펼쳐진 초원의 초록빛이 회색 빛깔의 사소룽고 산괴와 조화를 이뤘다.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알페 디 시우시는 가장 큰 고산 목초지이며 유럽에서 아주 유명한 스키·트레킹 지역 중 하나다. 백팩을 메고 초원과 언덕을 트레킹하는데 여기저기에 스키 리프트가 보인다. 겨울에 이 멋진 곳에 스키를 타러 오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는 것을 보니 아직도 호기심 많은 청춘인가 보다.

여름철 방문객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대자연을 호흡하며 즐기고 있었다.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백팩을 메고 높고 낮은 곳에서 각자 수준에 맞게 트레킹하는 사람들, 쉼터 풀밭에 누워 여유로움과 한가로움을 즐기는 사람들이 대자연을 만끽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지 않은 언덕길을 걸을 때는 경치에 취해서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하며 판소리 사철가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그리고 이 멋진 풍광을 기억에 담기 위해서 사진 촬영에 몰두하기도 했다. 기분 좋은 트레킹 후엔 근처 산장 야외 바에서 맥주로 갈증을 달랬다.


▎트레 치메의 세 봉우리를 방문할 때 거점인 해발 2333m에 자리한 아우론초 산장.
리프트로 다시 정상 곤돌라 정류장 쪽으로 올라가 옆에 있는 최고 전망의 파노라마 레스토랑(Panoramic restaurant at the top station)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입구에는 ‘2005m’라고 씌어 있으니 한라산 정상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식당이다. 창가에 자리를 잡았는데 사소룽고의 파노라마 전망이 압권이다. 참으로 멋드러진 풍광을 바라보며 식사하니 와인 맛과 음식 맛이 일품이다. 언젠가 꼭 다시 와서 겨울 풍경도 보고 싶은 알페 디 시우시를 뒤로하며 하루 일정을 마쳤다.

둘째 날은 돌로미티산맥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산괴인 트레 치메(이탈리아어 Tre Cime, 독일어 Drei Zinnen, 영어 Three Peaks, 한국어로는 세 봉우리), 즉 이탈리아 북동부의 섹스텐 돌로미티(Sexten Dolomites)에 있는 세 개의 독특한 봉우리를 찾았다. 볼차노에서 동북쪽으로 2시간 30분가량 달려서 미주리나 호수 근처의 트레 치메 입구에 도착했다. 트레 치메는 워낙 유명한 장소라서 여름철에는 차량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입산 전에 매표관리소에서 차량 출입 규모를 통제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부터 아우론초 산장(Rifugio Auronzo)까지 알록달록한 색상 위에 ‘DOLOMITI’라는 사인으로 장식한 대중 버스도 운영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버스를 대절한 덕분에 별문제 없이 매표관리소를 통과했다. 트레 치메의 세 봉우리를 보기 위해서 해발 2333m에 위치한 아우론초 산장까지 꼬불꼬불한 길을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올랐다.

주차장에 도착해 조금 걸어 올라 산장에 도착했다. 전방에는 그 유명한 트레 치메의 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360도로 경관을 돌아보니 삐쭉삐쭉 날카롭게 솟아오른 수많은 봉우리가 돌로미티산맥의 기막힌 파노라마 경치를 보여준다.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이 경치를 보러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이 찾는 이유가 이해됐다.

인류를 위한 지속가능성 찾아야


▎유럽에서 가장 광활한 고원 지역인 알페 디 시우시로 향하는 곤돌라 정류장.
아우론초 산장에서 트레 치메 봉우리 밑으로 트레킹하는 길은 산허리를 가로질러 조성돼 있었다. 트레킹 시작 지점에 옛날 사진과 더불어 전쟁에 관한 기사가 실린 게시판이 눈길을 끌었다. ‘세 봉우리 그림자 속의 큰 전쟁(LA GRANDE GUERRA ALL OMBRA DELLE TRE CIME)‘이라는 제목 아래, 1차 세계대전 당시 트레 치메 근처의 군대 배치나 작전에 관해 흑백사진과 긴 기사로 게시판을 만들어놓았다. 그 당시 설치됐던 군 시설이나 공격과 방어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이 아름답고 장엄한 봉우리들이 1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이라고 하니 믿기지 않았다. 전쟁 중에 사용된 참호, 대피소, 관측소를 따라 걸으며 요새, 포병대 진지, 기타 역사적 유물의 잔해를 관찰하고 주변 봉우리의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도 있다고 한다.

1919년까지 이 봉우리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국경의 일부를 형성했다. 지금은 이탈리아 남티롤 지방과 벨루노 지방의 국경에 있으며 여전히 독일어 사용 인구와 이탈리아어 사용 인구의 언어적 경계의 일부이다. 따라서 같은 장소라도 이탈리아어, 독일어, 기타지역 언어로 표시돼 있다. 이 지역을 방문할 때는 사전에 역사 공부를 하면 도움이 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며 트레 치메의 세 봉우리 바로 밑을 가로지르는 경로를 따라서 트레킹을 즐겼다. 거대한 절벽으로 이루어진 세 봉우리를 보면서 감탄하며 걸었다. 반대쪽으로는 엄청난 깊이의 계곡이 있고, 그 건너편에는 정말 특이한 석회암 절벽과 삐쭉삐쭉하고 날카로운 산봉우리들이 빚어내는 경치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몰입하며 즐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멋진 절벽을 이루는 세 봉우리의 이름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작은 봉우리(Cima Piccola, 2857m), 큰 봉우리(Cima Grande, 2999m), 서쪽 봉우리(Cima Ovest, 2973m)라고 한다. 이 지역은 평탄한 트레킹 코스부터 도전적인 고산 등반까지 방문객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게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여러 날 머물며 다양한 코스로 트레킹을 해보고 싶었다. 자연 풍광의 경이로움에 푹 빠져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보고 싶은 곳이다.


▎돌로미티산맥에서 가장 유명한 산괴인 트레 치메의 봉우리들.
트레킹을 마치고 다시 꼬불꼬불한 산길을 내려와서 미주리나 호수를 찾았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호수에는 방문객들이 보트를 타고 수영도 하는 평화스러운 전경이 펼쳐졌다. 아름다운 호수 건너편으로 높게 치솟은 돌로미티산맥이 배경 사진처럼 펼쳐져 있다. 미주리나호수 옆에는 트레 치메 바·기념품점·카페가 있고, 건물 밖에는 여러 나라 국기를 게양해놓았다. 그 가운데 태극기도 눈에 띄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장엄하고 경이로운 풍광을 자랑하는 돌로미티산맥을 돌아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심호흡하니 호연지기(浩然之氣)가 길러질 것 같다. 호연지기는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원기이고, 거침없이 넓고 큰 기개다. 『맹자: 孟子』 ‘공손추(公孫丑)’ 상편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의 제자인 공손추가 호연지기를 묻자, 맹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전제하면서 답했다. 그 호연지기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한 것으로 곧음으로써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하늘과 땅 사이에 꽉 차게 된다. 그 기(氣) 됨이 의(義)와 도(道)가 배합되니, 이것이 없으면 호연지기가 시들해진다. 이는 의(義)를 많이 축적하여 생겨나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갑자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敢問何謂浩然之氣? 曰, 難言也.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間. 其爲氣 也 配義與道 無是 餒也 是集義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 감문하위호연지기? 왈, 난언야. 기위기야 지대지강. 이직양이무해 즉색우천지지간. 기위기야 배의여도 무시뇌야. 시집의소생자 비의습이취지야).”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 속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선진국이다. 많은 외국인 유학생이 배움을 찾기 위해 유학도 온다. 따라서 우리가 자랑하는 한국에서 창립된 세계 최고 기업들과 국가의 리더들도 그에 걸맞은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한다. 세계를 누비는 세계적 기업들은 호연지기를 갖고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새로이 창조해나가야 한다. 이윤 추구를 넘어서서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실행해야만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미래에 우리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젊은 세대나 현재의 기성세대는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고 오랜 기간 의(義)를 많이 축적해야 하는 호연지기를 갖추어 우리 국민과 인류를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대자연에 들어가서 거침없이 넓고 큰 기개인 호연지기를 키워보자!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세계 최대 펌프 제조기업인 덴마크 그런포스그룹의 한국 법인 창립 CEO 등 33년간 글로벌 기업 및 한국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고, 2014년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협회(KCMC) 회장 및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와 2세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을 컨설팅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411호 (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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