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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곤 i-SMR기술사업단 단장 - 다시 쓰는 원전 수출 성공의 역사 

[원전강국의 K-SMR④] 

노유선 기자
김한곤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i-SMR)기술사업단 단장이 한국 원전 수출 역사에 또다시 한 획을 그을 전망이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성공에 이바지한 김 단장이 한국의 SMR 개발·상용화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김한곤 i-SMR기술사업단 단장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의 주역 중 한 명이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적인 ‘원전 강국’으로 꼽힌다. 한국의 원전 산업을 이끌어온 인물 가운데 김한곤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i-SMR, innovative-Small Modular Reactor)기술사업단 단장은 업계가 인정하는 스페셜리스트다. 지난 2009년 한국은 원전 선진국 프랑스를 제치고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4기 수주에 성공하며 세계 여섯 번째 원전 수출국 반열에 올랐다. UAE에 수출한 원전 모델은 한국이 독자 개발한 신형 가압경수로 ‘APR(Advanced Power Reactor)-1400’이었다. 당시 APR-1400은 글로벌 원전업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가장 경제적’이라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역사적인 영광의 현장에 김 단장도 있었다. 당시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중앙연구원에서 APR-1400의 안전계통 개발에 참여했던 김 단장은 이후 한수원 중앙연구원 소장과 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그가 이끄는 i-SMR기술사업단(이하 사업단)은 지난 2023년 7월 출범했다. 한국의 SMR 개발이 원전 선진국과 비교해 5년가량 늦어졌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김 단장이 입을 열었다. 한국이 SMR 산업에 뒤늦게 참여한 건 맞지만 적신호를 운운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원전 수출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김 단장은 이번에도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2021년 국회에서 ‘혁신형 SMR 포럼’이 처음으로 열렸어요. 여야 구분 없이 막대한 에너지 수급 문제에 공감했습니다. i-SMR 기획을 시작한 단초였죠. 지난 2월에는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확정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2035년에는 SMR 1기가 준공돼야 합니다. 2035~2036년 SMR 상용화 실증 1기로 0.7기가와트에 달하는 전력을 확보한다고 명시돼 있어요. 한국의 SMR 경쟁력 제고에 국회가 동의했고 정부도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에요.”

i-SMR은 기존 대형 원전에 들어가는 가압경수로를 작은 모듈형으로 바꾼 것이다. 가압경수로는 3세대 노형에 속해 4세대 SMR 대신 혁신형(innovative) SMR이라 불린다. 모듈 4개가 SMR 1기를 이루는 구조로, 모듈당 전기 출력은 170MWe이며, SMR 1기가 생산하는 전기 출력은 총 680MWe다. 한국의 i-SMR 상용화 목표는 2035년 6월쯤이다. 지난 3월 17일 충북 대전에 있는 사업단 사무실에서 만난 김 단장은 “한국이 정한 일정과 목표는 실현 가능하며 확실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에게 자신감의 근거와 함께 오늘날 SMR이 화두인 배경, 한국 원전 기술력의 글로벌 입지 등을 물었다.

SMR 둘러싼 아이러니에 정면 승부


김 단장은 SMR의 필요성을 기후변화 현상에서 찾았다. 김 단장은 “201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SMR 논의가 본격화된 계기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목표 때문”이라며 “그런데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는 전력 수요에 부응하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글로벌 전력 사용량에서 석탄 화력이 약 60%를 차지한다”며 “이러한 비중을 낮추고 궁극적으로 탄소 에너지원을 없애려면 현실적으로 유일한 대안이 원전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대형 원전의 안전성 문제가 부각되면서, 이보다 1000배 이상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SMR에 주목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2030년 무렵부터 본격 개황을 앞둔 SMR 시장이 업계의 전망대로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지도 의문이다. 김 단장은 “시장성은 충분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글로벌 전력 사용량의 60%는 대형 원전을 2030년부터 20년간 매년 100개 정도를 건설해야 맞출 수 있는 양”이라며 “SMR로 따지면 매년 1000개 이상을 지어야 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각국은 잠재적 수요가 높은 SMR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개발 중인 SMR은 80여 종이다. 김 단장은 “어느 국가, 어떤 기업이 가장 먼저 상용화할지 전쟁을 치르는 중”이라며 “이 경쟁에서 순위권에 든 국가가 시장점유율 상위권에 포진해 시장을 선점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 고객이 되겠다고 외치는 국가는 흔치 않다. 상용화 경쟁 못지않게 이후 운용 시 실패 가능성이 병존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첫 번째 고객이 되길 원하지 않아요. 반신반의하는 거죠. 어떤 분야든 첫 시도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석탄화력발전소를 SMR로 대체하려는 나라들도 타국에서 먼저 성공한 SMR을 자국에 건설하길 바랍니다.”

i-SMR 사업화 위해 별도 기관 설립 예정

한국 정부는 SMR 수출에 앞서 i-SMR 상용화 깃발을 한반도에 꽂겠다는 입장이다. 실패하지 않으리란 확신 때문이다. 근거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과 안전성이 양립하는 데 있다. 온 타임 온 버짓은 프로젝트를 정해진 기간과 주어진 예산 안에서 완료했다는 뜻이다. 한국은 UAE 바라카 원전 4기 건설 당시 약속된 공사 기간과 예산에 맞춰 준공해냈다.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한국은 시공 능력과 경제성을 동시에 입증해 국제 신인도를 확보했다. ‘원전 강국’이란 별칭도 이때 얻었다.

해외 SMR 기업 대다수가 자사 SMR의 상용화 시기를 2030년쯤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보다 5년 정도 이르다. SMR 후발 주자로서 시장 선점에 불리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김 단장은 “원전 건설은 약속된 시기를 미루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그래야 글로벌 SMR 시장에서 한국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냉철하게 답했다. 사업단은 2028년까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i-SMR 표준설계인가를 받고 2029년 초반 부지 선정을 위한 주민설명회 등을 거쳐 2030년 초반 건설 허가를 획득할 계획이다.

또 김 단장은 정부가 글로벌 SMR 시장 진출을 위한 단계별 전략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그는 “우선 한국에서 i-SMR 상용화에 성공해 안전한 SMR을 저렴한 비용에 건설할 수 있다는 걸 전 세계에 증명할 것”이라며 “그러면 수출용 i-SMR 사업화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도 이제는 기술개발과 사업 모델 기획을 병행할 방침”이라며 “산업부가 조만간 i-SMR 사업화를 위한 별도의 전담 기관을 세울 예정으로, 여기서 만든 비즈니스모델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구상”이라고 밝혔다.

어느덧 사업단 출범 3년 차다. 소회를 묻자 김 단장은 “한국 원자력 개발 역사에서 과기부와 산업부가 함께 참여한 건 i-SMR이 처음이라 매우 뜻깊다”며 “그동안 과기부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형 SMR인 SMART를 개발해왔고 산업부는 APR-1400과 같은 대형 원전을 다뤄왔다”고 설명했다. 현재 김 단장이 이끄는 사업단은 과기부와 산업부의 두 기술을 하나로 합치는 작업을 수행 중이다. 여야와 정부가 한뜻으로 i-SMR을 지원하는 만큼 기대감도 높은 상황이지만 김 단장의 어깨가 그리 무겁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 대전=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최기웅 기자

202504호 (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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