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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男妾’ 홍국영의 눈물 

프리즘 | 왕의 남자
군주의 사랑을 믿고 오만…결국 귀양지에서 객사 

신명호 부경대 교수 [smh@pknu.ac.kr]
“관리가 공직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제왕의 마음에 들어 알아줌을 얻느니만 못하다.” 최고 권력의 신임은 그만큼 힘이 있다. 그러나 최고 권력의 애증은 변화무쌍하다. 최고 권력은 언젠가는 신임을 거둬들이게 마련이다. 그러면 신임만큼이나 가혹한 대가가 기다리고 있다. ‘왕의 남자’ 대개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까닭이다. ‘왕의 남자’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조선정조 3년(1779) 9월 26일 오전 8시 무렵. 도승지 홍국영은 조정 중신과 함께 창덕궁 희정당 앞에 위치한 성정각(誠正閣)으로 갔다. 정조를 알현하기 위해서였다. 영의정 김상철을 위시해 좌의정 서명선, 한성판윤 구선복 등 중신이 차례로 들어와 정조 앞에 부복했다. 중신을 대표해 영의정 김상철이 문안 인사를 올렸다.

“어제 날씨가 아주 좋았고 대사례(大射禮)도 잘 끝나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수고롭게 움직이신 뒤 기체후는 어떠신지요?”

정조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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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호 (20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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