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Home>월간중앙>히스토리

“세자빈이 남자와 교합하듯 희롱” 

이향상의 色手語筆 | 조선 최초의 동성애, 봉씨-소쌍 스캔들
“저희끼리 혓바닥을 빨았사옵고…” 

조선 문종은 성품과 능력은 나무랄 데 없었으나 여자 관계에는 좀 비리비리했던 것 같다. 첫 번째 부인은 휘빈 김씨였다. 세자가 빈을 잘 찾지 않자, 김씨는 그 마음을 잡으려고 동궁이 좋아하는 궁녀의 신발 뒷굽을 잘라다가 불에 태운 재를 세자가 마시는 술에 몰래 타기도 했다. 두 마리의 뱀이 교접을 할 때 흘린 정기를 수건으로 닦아서 차고 있으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압승술(壓勝術·주술로 화를 누르는 일)도 썼다. 그 외에 마초라는 풀을 먹고 자란 나비를 말려서 차고 다니기도 하고, 붉은 박쥐 가루를 비방으로 썼다고 한다. 세종이 이것을 알고 방술이 요망스러워 국모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 2년 만에 이혼시켰다.



후세 사람들은 이 여인을 드세고 집착이 강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혹자는 그녀가 매력이 없었고 못생겼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랬을까? 그녀는 휘빈(徽嬪)이라 불렸다. ‘휘(徽)’는 너무 예뻐서 눈이 번쩍 뜨이는 그런 미색을 함의하지 않는가. 그런 이름을 붙인 데는 상응하는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김씨는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동궁은 눈을 주지도 않고, 잠자리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소헌왕후(어머니)의 주변에서 궁녀들과 자주 놀았다. 결혼 당시 세자는 14세였고, 세자빈은 17세였다. 환장할 노릇이 아닌가. 처음에는 너무 어려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독수공방으로 지내는 날이 길어지니 초조해졌다. 내가 뭐가 모자라서 저러는 거지? 남자를 끄는 매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처방을 구했다.

※ 해당 기사는 유료콘텐트로 [ 온라인 유료회원 ] 서비스를 통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010호 (2010.10.01)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