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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불만’에 망가진 신라, 맏아들이 가둔 견훤 

프리즘 | 족벌정치가 國亡 부른다
원칙 없는 가족왕조… 결속 강해 보여도 한순간에 무너져 

신명호 부경대 교수 [smh@pknu.ac.kr]
천년왕국 신라가 멸망의 나락으로 빠져든 원인은 무엇인가? 후백제를 세운 카리스마적 지도자 견훤이 자기 손으로 제 왕국을 무너뜨린 비극은 또 어떤가. 왕조의 멸망에는 대개 비슷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분권형 왕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중요한 원칙을 왕이 제 손으로 저버린 나머지 혼란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근대 이전 한국 역사에 등장했던 왕조 국가들은 크게 두 가지 정치 형태를 띠었다. 첫째는 왕뿐 아니라 왕자나 부마 같은 왕족도 정치적·군사적 실권을 장악하던 정치 형태였다. 이런 정치 체제는 국가 권력이 왕과 왕족 사이에 분점되었으므로 분권적 왕조 체제라 할 수 있다. 다만 권력을 분점했던 왕과 왕족이 같은 혈족이었다는 면에서 분권적 왕조 체제는 족벌정치 체제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둘째는 왕 혼자 정치적·군사적 실권을 독점하고 왕족은 국가 권력에서 배제되는 정치 형태였다. 이런 정치체제는 국가 권력이 왕 한 명에게 독점되었으므로 독점적 왕조 체제라 할 수 있다. 한국사에서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그리고 후삼국시대까지는 국가 권력이 왕과 왕족 사이에 분점되는 족벌정치 체제의 형태를 띠었다. 예컨대 신라의 골품제(骨品制)가 그것이다. 골품제하에서 왕족은 군사령관, 중앙관부 장관, 지방장관 등 정치적·군사적 실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반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왕자와 부마들은 정치권력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그들은 높은 작위를 받고 많은 봉급을 받기는 했지만 정치적·군사적 실권은 전혀 없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왕족은 군사령관, 중앙관부장관, 지방장관은 말할 것도 없고 실권을 갖는 공직에는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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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호 (20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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