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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 높은 친일스파이 ‘흑치마’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이상국의 미인별곡 |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 裵貞子
독립운동가 잡아들이는 족집게… 종군위안부 선동한 70대 노파 

먼저 구하 스님(金九河·1872~1965) 얘기를 좀 하자. 이분은 한때 조선 총독 데라우치에게 150환짜리(쌀 10가마 값) 은제 컵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나와 친일인사로 분류됐다. 그런데 통도사 측에서 그가 일제강점기에 안창호를 비롯한 독립운동가에게 자금 1만3000환을 지원했다는 증거자료(1927년에 쓴 영수증)를 찾아 내 공개했다. 2005년 2월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통도사에는 걸인 차림의 낯선 인물들이 찾아와 구하 스님 방 앞에서 행패를 부리곤 했다. 그때 스님은 주위의 시자승들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빠르게 걸인에게 돈을 줘서 보냈다고 한다. 그에게 시봉을 들었던 현문 스님의 전언이다. 그들은 독립운동가였고 일제 형사들이 이런 낌새를 눈치 채고 통도사를 급습하기도 했다. 그때 구하 스님은 사제인 경봉과 함께 사하촌의 기생집에 머무르며 며칠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화류계에 돈을 뿌린 것처럼 꾸며 자금의 행방을 감추기 위해서였다.구하는 어떤 사람인가. 한국전쟁 이후 15년간 통도사 주지로 활동한 불교계의 거목이다. 그는 취운암에서 수행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명필로도 이름을 떨쳤다.말년의 구하 스님이 문득 어린 시절 얘기를 털어놓았다.“나는 태어날 때 아버지가 없었어. 찢어질 듯 가난한 집안이라 입에 풀칠도 어려웠지. 내가 두 살 때(1874년) 어머니가 나를 통도사 산문 앞에 버리고 갔지. 잘 울지도 못하는 업둥이를 스님들이 데려와 키웠지. 내가 동승일때 기생 하나가 머리를 깎고 통도사로 들어왔어. 계향(桂香)이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더군. 나보다 두 살 많은 열두 살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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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호 (20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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