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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이포나루서 오른 옛城 , 힘센 두 女人을 만나다 

이덕일의 산성기행 | 파사산성
여장군 불상 아래 샘물 마시고 명성황후 생가에서 권력무상 맛보다 

여주의 이름은 ‘검은 말(驪馬)’에서 왔다고 한다. 파사국의 옛 도읍이라고도 한다. 그곳에 남한강의 물길과 세곡선의 운행을 지키던 작은 산성이 있다. 성돌마다 여러 가지 전설이 얽혀 있는 파사산성에 올랐다.
충주에서 서울에 이르는 남한강 물길은 신작로나 철길이 뚫리기 전까지 나라의 고속도로 역할을 수행했다. 경상도·강원도·충청도의 물산과 세미(稅米)가 남한강 뱃길을 이용해 서울로 집결한 것이다. 그 뱃길이 1974년 팔당댐이 생기면서 아예 끊어지고 말았다. 남한강의 물길은 원주 부론면의 흥원창을 지나면서 섬강의 물과 합쳐져 여주 신륵사 앞을 흐른다. 여주를 지나는 남한강을 이곳 사람들은 ‘여강(驪江)’이라 부른다.



여주에서 서울까지는 200리다. 여주는 고구려 때는 ‘골내근현(骨乃斤縣)’, 신라 경덕왕 때는 ‘황효’, 고려 때는‘황려’ 또는 ‘영의’로 불리다 충렬왕 때 왕의 모후인 순경 태후 김씨의 고향이라 하여 여흥군으로 승격되었고, 조선에 들어와 여주목이 되었다. 조선조의 여러 왕비를 배출한 여흥 민씨의 본향이기도 하다. 여강의 상류에 ‘마암(馬巖)’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이곳 물에서 황마(黃馬)와 여마(驪馬)가 나왔다고 하여 한때 고을 이름이 황려로 불렸다. 지금의 여주 또는 여강이라는 이름의 내력도 ‘검은 말’이라는 뜻의 ‘려(驪)’자에서 연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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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호 (20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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