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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훈 기자의 사람속으로_ 피 흐르는 입술로 젓대 불어 봤느냐 

경주 만파식적보존회 문동옥 이사장

15년 불어야 音이 서고 20년 돼야 박자 탄다… 36년 대금人生
민속촌 생활하다 김동진 스승 만나… 서당만 다닌 無學에 대학출강 10년 

글 이만훈 월간중앙 기획위원 [mhlee@joongang.co.kr]
사진 최재영 월간중앙 사진부장 [presscom@hanmail.net]
전기가 없던 시절 째지게 가난했던 소년의 집에 유일한 ‘가전제품’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나지오’로 불리던 라디오였다. 그것은 원시적이지만 유일하게 딴 세상과 통하는 마법의 도구였다. 학교 대신 서당에 다녔던 소년은 밤 10시만 되면 한문책을 덮고 라디오에 귀를 묻었다. 바로 ‘전설따라 삼천리’ 때문이었다. 내용도 그렇거니와 고비마다 “애닯고도 애달픈 일이었습니다 그려. 해설랑은…” 하며 흘러나오는 성우의 구수한 추임새에 오금을 접었다 폈다 하며 숨을 죽였다. 특히 소년을 사로잡은 것은 클라이맥스 전후로 깔리는 젓대(대금) 소리였다. 흐느끼는 듯 가슴을 후벼 파며 잦아드는 그 소리는 늘 소년의 가슴을 울렸다. 어느새 소년에게는 습관이 하나 생겨났다. 대나무건 비닐하우스용 파이프건 속이 빈 것만 보면 피리를 만들어 불기 시작했다. 대나무 잎이 서걱대는 소리를 듣거나 소나무 숲에서 솔바람이라도 맞는 날에는 어김없이 어스름한 달밤에 도포 자락을 휘날리면서 멋진 가락을 뽑아내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폼을 잡곤 했다. 현재 경주에서 사단법인 ‘만파식적보존회’를 이끌며 대금으로 한 이름 하는 문동옥(53) 이사장. 그는 소년시절을 이렇게 보냈다.



문 이사장은 서당에서 사서(四書)를 뗀 게 학력의 전부다. 쉽게 말해 무학(無學)이다. 하지만 그는 대금으로 10여 년째 대학에 출강하고 이래저래 거쳐 간 제자만 줄잡아 1000명은 된다. 뿐만 아니라 국악협회 경북도지회장을 맡는 등 국악계의 중진으로 각종 대회에 단골 심사위원으로 불려 다니는 명사(名士)가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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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호 (201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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