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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뿌리는 신흥무관학교 광복군 청산리전투의 주력군 

특별인터뷰 | 2011년은 신흥무관학교 창립 100주년_ 설립자 이회영의 손자 이종찬 전 국정원장
이승만, 안중근의 조카 광복군 안춘생을 첫 정규 육사교장 임명한 뜻은… 

글 박성현 월간중앙 차장 [psh@joongang.co.kr]
사진 박상문 월간중앙 사진팀장 [moonpark@joongang.co.kr]
올해는 광복군 창설 70주년이 되는 해다. 임시정부는 1940년 중국 충칭에서 김구 주석 등 주요 요인이 참석한 가운데 광복군을 결성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 즉 출발점을 광복군 나아가 광복군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올 한 해 ‘우당 이회영 일가 망명 100주년 기념사업’을 펴온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회영의 손자)은 내년 신흥무관학교 창립 100주년을 맞아 국군의 역사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국군의 단절된 역사를 바로 이어야 한다는 논지다.
12월 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는 100년 전 이날을 기리는 음악회가 열린다. 바로 ‘우당 이회영 선생 일가 망명 100주년 기념음악회(가칭)’다. 1910년의 이날은 우당 선생 여섯 형제가 서울의 전 재산을 처분해 항일 망명길에 오른 날이다. 이날 삼삼오오 흩어져 집을 나선 우당 일가는 이튿날 얼어붙은 압록강을 썰매로 건넜으며, 중국 단둥을 거쳐 유하현 삼원보에 정착했다. 우당 일가는 이곳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가 배출한 인재들은 청산리전투, 봉오동전투 등 무장항일투쟁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우당의 손자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일본군의 삼엄한 경비와 검색을 피하고자 경계가 다소 느슨해질 새해무렵 온 가족이 압록강을 건넜다”고 전했다.



우당 집안은 일제강점기 지도층의 솔선수범,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 명문가로 손꼽힌다. 우당(友堂) 이회영과 다섯 형제는 임진왜란 때 국방과 외교에공을 세운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다. 우당 집안은 경주이씨 상서공(尙書公)파로 백사 이래 9명의 영의정과 1명의 좌의정 등 정승만 10명을 배출해 세간에서 최고의 명문가를 뜻하는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불렸다. 우당 형제의 아버지도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 씨다. 우당 형제들이 처분한 재산은 당시 화폐로 40만원이었다. 쌀로 계산하면 600억원이라는 설도 있고, 황소로 계산하면 1만3000두라는 설도 있다. 중구 명동의 YWCA 건물과 뒤편 주차장 그리고 명동 성당 앞부분 일대가 모두 그 당시 처분한 땅이다. 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양주(현 남양주)에서 한양으로 오는데 남의 땅을 밟지 않고도 올 만큼 광대한 토지를 보유했다. 지금의 시세로 따지면 수천억원대에 이른다는 추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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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호 (201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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