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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특집] “박근혜, 큰 위기 세 번 온다” 

 

국민의 지지율은 1위를 질주하지만 그가 딛고 선 정치환경은 살얼음판 총선 참패 후 후보 교체론, PK와 친이계 이탈, 영남 야권 주자 부상 등 곳곳에 암초 ‘박근혜 대세론’이 정치권을 압도한다. 지금으로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부동의 대선 주자 1위다. 아직 그를 위협할 만한 주자는 여야를 막론하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권을 만들어본, 이른바 ‘선수’들 중엔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긴 어렵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8개월 뒤의 총선, 1년 4개월 뒤의 대선까지 변수가 널려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권의 실패, 총선 패배, 독자 후보 옹립, 친이계 탈당, 대선 패배 등 최악의 시나리오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최근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YS) 민자당 대통령 후보에게 3000억원을 지원했다는 회고록을 발간,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번 회고록 공방을 마지막으로 3당 합당 구조가 거의 끝물에 왔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1990년 3당 합당의 주역이었던 두 사람이 뒤늦게 자서전을 둘러싸고 치고받는 모양새가 3당 합당 구조의 정신적 청산을 연상케 한다고 지적했다.

민정당은 대구·경북(TK), 통일민주당은 부산·경남(PK), 신민주공화당은 충청권에 뿌리를 두었다. 따라서 이 3당이 뭉친 민자당은 한 지붕 세 가족 구조였다. 당시 호남에 근거지를 둔 김대중(DJ) 총재의 평민당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으나 몇 년 뒤인 1997년 대선에서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DJ와 손을 잡음으로써 충청권이 먼저 3당 합당 구조에서 완전히 떨어져나갔다. 남은 두 가족인 TK와 PK가 한나라당의 울타리에서 지지기반을 형성해왔다. 이제 노 전 대통령이 YS를 공격했으니 3당 합당의 주역들이 모두 제 갈 길을 간 셈이다. 박 대표는 “특히 민주당 등 야권은 인위적인 3당 합당 구조를 예전의 상태로 돌려놓고픈 마음이 간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朴, 위기의 근원은 구조의 문제

야권이 돌아가고 싶은 예전의 상태는 YS·DJ가 야당으로 한 편을 이뤄 1970~1980년대 박정희-전두환 정권과 싸우던 시절이다. TK는 권력의 철두철미한 메카였고, PK와 호남은 확신에 찬 저항의 상징이었다. PK가 다시 야도로 돌아서면 3당 합당 이전의 상태로 환원하는 게 된다. 그 단초가 보인다. 3당 합당 이후 보수화했던 PK에 야성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김두관 후보가 경남지사에 당선되고 민주당 김정길 후보가 부산시장선거에서 44.5%의 득표율을 올렸다. 한나라당은 이제 내년 4월 총선을 걱정한다. 정두언 여의도연구소장은 “부산·경남에선 무소속이 다수당이 될 확률이 높다”고 앓는 소리를 했다.

PK가 한나라당에서 야권으로 넘어가면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선길에 빨간불이 켜진다.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2002년 대선 때처럼 PK 출신 야권 후보가 나와 PK 표를 30% 정도만 가져가도 야권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지난 3년간 줄곧 1위 자리를 지켜온 박 전 대표라도 뾰족한 수가 없다. 최근 ‘박근혜 대세론’ 못지않게 정치권에서 떠도는 시나리오다.

박 전 대표가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한다면 아마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의 문제가 될 공산이 크다. 박성민 대표는 “내년 대선에서 박 전 대표가 승리할지 알 수 없지만 어려움을 겪는다면 개인의 변수보다는 한나라당과 보수 진영 전체의 변수가 더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표는 감동을 주거나 비전을 제시하는 경쟁 주자가 안 보일 때 지도자다운 이미지로 견고한 지지층을 형성”했기에 개인보다는 환경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당내 경선에서 지거나, 당내 경선에서 이기고 본선에서 위험해지는 상황이 온다면 본인의 귀책 사유보다는 시대적 상황의 변화, 한나라당과 보수가치를 보는 유권자의 태도 변화, 여권 내 역학구도 변화 등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8월 15일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37주기 고(故) 육영수 여사 추도식’에 참석한 박 전 대표. 그는 이 자리에서 ‘육영수식 자활복지’를 언급했다.

정치권 일각에는 그의 정치 지도자로서의 리더십과 정책적 안목 부재, 소통 방식의 폐쇄적 이미지 등 개인의 요인이 발목을 잡으리라는 관측도 있다. 충분히 제기될 법한 이야기지만 입증하기 어려운 주관적 평가의 영역에 속하거나 물증이 뒤따르기 어렵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 결함이 있다 해도 그게 대선 국면에서 불거져 유권자의 표심을 움직이기 전에는 잠재적 위험요소에 그친다. 그런 자질이 진짜 문제가 되는 시점은 집권 후 국정을 운용할 때부터다. 차라리 그와 친·인척, 측근들에게서 딱 부러지는 불법행위, 비리,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못할 사건들이 터져나온다면 친박 진영을 일거에 허무는 핵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표의 1차 시험대는 내년 4월 총선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7월 전당대회 지도부 개편을 통해 박 전 대표와 친박계에 신주류의 지위를 부여했다.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의 대주주가 된 이상 선거를 진두지휘해야 하고, 그 결과도 함께 떠안아야 한다.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야 당내 대선 후보 경선은 물론이고 대선에서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청와대의 주요 관계자는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대선의 지형이 바뀐다”고 했다. 총선에서 지면 여소야대 상황이 오고 유력한 후보를 가졌어도 대선에서 이기기 쉽지 않은 상황이 조성된다는 말이다. 그는 “대선이 혼란에 빠질 개연성이 높다”고 했다.

총선 참패, 공천 분란은 역풍 진원지

그러나 정권 심판적 성격이 강한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패배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은 “120석을 얻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2004년 탄핵의 역풍에 휘말려 한나라당이 악전고투를 벌였던 16대 총선 당시 의석(121석) 정도 얻으면 다행이라는 말이다. 정 의원은 “탄핵 당시보다 더 어려운 선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천 과정도 박 전 대표가 쉽게 넘기기 힘든 고비다. ‘총선=공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복잡한 정치 지형이 박 전 대표에게 큰 상처를 안기리라고 예상한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한 측근인사는 궁극적으로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는 박 전 대표로 결정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총선이라고 했다. 자파 세력을 유지하려고, 또 월박(越朴·친이계에서 친박계로 넘어오는 현상) 정치인들을 배려해 내년 총선에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기 힘들다고 그는 전망했다. 결국 총선 전후로 박 전 대표와 소장파와의 연대 기류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관측이다.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은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공천 여부를 놓고 이 부의장과 소장파 둘 중 한쪽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문제도 부담이다. 총선 과정에서의 당내 갈등 요인을 능숙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안팎의 역풍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민주당은 기대한다. 지금 한나라당 내부를 들여다보면 홍준표 대표는 독주하고 친박계는 통제에 애를 먹는 모습이라 이런 관측에 설득력을 더한다.

한나라당과 박 전 대표로선 세대 문제도 고민거리다. 청와대 측은 “여권에 불리한 요소의 하나가 세대변수인데 지역변수보다 더 불리한 경향을 보인다”고 우려했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진 이유 중 하나가 지역 간 연합 실패도 있지만 젊은 세대가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 재연될 소지가 상당하다. 세대변수가 중요한 게 40대까지가 이른바 젊은 시절 민주화를 경험한 세대로 채워져 있고, 지역감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나아가 문제의식이나 문화적 성향이 한나라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이 다수를 점한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20대에서 40대까지 다수의 지지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는 선까지는 가줘야 한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20, 30대에서 경쟁력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여론조사에서는 20, 30대가 선호하는 대선 후보 1위다. 그러나 “진정으로 지지해서라기보다는 인지도를 반영한 결과”라고 신율 명지대 교수는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변한다는 말이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박 전 대표는 이미 높은 정치인, 훌륭한 정치인의 반열에 올라 있어 20, 30대에게 친화력을 발휘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패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의석 분포를 짚어보자. 무소속과 군소정당 등이 50석가량 가져간다는 전제 하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250석을 놓고 다툰다. 정부의 지지율이 바닥이라 한나라당이 150석을 얻으면 사실상 압승이다. 140석 정도면 선방이고 130석도 1당의 지위를 유지하므로 기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20석 아래로 내려가면 민주당에 130석을 내주게 되므로 원내 2당으로 전락한다. 전체 원내 의석 구도는 보수(한나라당, 자유선진당, 보수 성향의 무소속)와 진보(민주당 등 야 5당, 진보 성향의 무소속)가 엇비슷하겠지만 2당 전락은 한나라당에 치명적이다.


▎지난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급속히 와해된 친이계. 이들의 향후 선택이 내년 한나라당 경선구도에 변수가 된다.

2당 전락 시 후보 교체론 나와

한나라당이 120석대로 떨어지면 이는 필연적으로 이 대통령과 정권의 실패로 귀결된다. 정태근 의원의 말이다. “내년 4월 19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130석에도 못 미치는 의석을 얻는다 치자.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은 다수당의 힘으로 이명박 정부 실정 규명에 주력한다. 주요 국책사업이나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와 청문회가 열린다. 정부의 주요 정책이 중단되거나 연기된다. 이렇게 되면 이명박 정부의 임기는 사실상 내년 4월로 끝난다.”

이때 박 전 대표의 지지율 향배를 놓고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 의원은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패배하면 정부평가가 더 하락하면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도 동반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일부 친박계 인사들은 “다행히도 이 대통령과 차별적인 이미지를 닦아온 덕에 총선 패배가 박 전 대표의 지지율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총선에서 지면 박 전 대표가 어려워지긴 하겠지만 우위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문재인 이사장이 대선 주자로 성장할지도 미지수인 데다 다른 야권의 대선 주자들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YS의 차남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박 전 대표의 지지율 하락뿐만 아니라 대안 후보 옹립 움직임까지 나타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금의 압도적 지지율을 유지하기도 힘들며, 후보 교체 요구가 강력히 대두된다. 여러 가지 정치 변수가 상존해 총선 결과에 따라서는 정국이 굉장히 요동칠 수도 있다.” 그는 야당의 슬로건인 복지정책에 몰입하는 한나라당은 필패의 길로 간다고 비판하는 등 총선 결과에 비관적이다.

성사 가능성이나 파괴력을 떠나 후보 교체론, 독자 후보 옹립론의 기류가 여권에 분명히 있다. 친이계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의 얘기를 들어보자. “내년 총선에서 당선되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4년 임기를 보장받는다. 12월 새로 뽑히는 대통령과는 3년여 임기를 같이하지만 다음 공천을 그에게서 받을 일은 없다. 그때 되면 그다음 유력 대선 주자의 영향력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선 당선자는 비교적 차기 대통령에게서 자유롭다. 개혁정치를 표방하는 소장파나 민주계 출신 인사들이 도저히 박 전 대표는 안 되겠고 그렇다고 미덥지 않은 민주당과 같이하기는 싫다고 한다면 그들끼리 마음에 맞는 대선 후보를 옹립할 수 있다.” 물론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예전만 못하거나 압도적이지 않아야 하고, 구심점이 될 대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 소식통은 설령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거나 선방한다고 해도 몇몇 수도권 개혁 성향의 의원들은 거사를 감행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동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박 전 대표가 당내 대세라고는 해도 본선 경쟁력은 여전히 의문인 데다 박 전 대표의 자질, 지향점, 소통 방식이 도저히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가치동맹을 통해 새 후보를 내세우려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치 일정이나 여건을 보면 전혀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지금은 구조적으로 대선 레이스에 불이 붙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의 관심이 온통 총선에 집중돼 대선은 그 뒤의 일이다. 그 나름대로 대선 구상이 있는 의원들도 총선 다음에 보자는 식이고, 어떻게든 총선에서 승리해야 하는 친박계도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박 전 대표 이름을 팔아서라도 당선되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돼야 집권이 순조롭다고 보기 때문이다.

분열주의 성향, 탈당과 정계개편

문제는 그다음이다. 총선에서 살아온 이들이 박 전 대표와 등지는 상황이다. 2004년 탄핵 국면 총선에서 박 전 대표의 지원을 받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박 전 대표 공격의 선봉에 선 예가 없지 않다. 또 개혁공천 물갈이를 하게 되면 각양각색의 신진인사가 몰려든다. 그들의 이념적 성향과 문화적 태도가 당내 대주주인 박 전 대표와 어울리느냐가 문제다. 민주당도 마찬가지겠지만 한나라당도 내년 총선을 거치면서 인적 구성이 훨씬 복잡해지고 목소리도 다양해질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이들에게 비전과 공유할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면 다른 대선 주자와 연대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신율 명지대 교수는 말했다.

전문가 상당수는 특단의 변수가 없는 한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치평론가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원은 “총선 직후 각자도생 차원에서 이합집산은 가능할지라도 박 전 대표와 맞서 구심점 노릇을 할 대선 주자가 등장할지는 의문”이라고 선을 그었다. 친이계 중심의 독자 후보 옹립 가능성을 점치는 신율 교수도 “그래도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는 박 전 대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소식통의 생각은 다르다. 총선 이후 대선 후보 경선 국면으로 가면서 균형보도가 이뤄지면, 즉 후보자들이 각 언론에 동일선상에서 다뤄진다면 여론이 균형점을 찾아가리라는 주장이다. “김문수·정몽준·김태호 등 여권의 잠재 주자 중에서 10% 선을 뚫고 올라오는 이가 생긴다. 특히 이들끼리 후보 단일화를 하면 훨씬 더 오른다.”


▎올 초 부산역 광장에서 가덕 신공항 건설을 촉구하는 부산시민들. 부산의 야성이 되살아나면서 친노 진영 등 야권이 집중 공략에 나설 태세다.

박 전 대표에 대한 공세가 한나라당 울타리 안에서만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뛰쳐나가는 이들도 생길 수 있다. 친박계의 한 핵심인사는 박 전 대표가 과거와는 다른 강력한 대세를 누리지만 두 가지 점에서 약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부가 하나고, 여권이 갖는 분열적 속성이 그 둘이다. 친박계 입장에서 지금 한나라당이 2007년과 같은 야당이면 대선으로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하다. 야당은 권력을 갖겠다는 의지가 다른 모든 욕구에 앞선다. 예를 들어 2002년 대선이나 2007년 대선에서는 범보수 진영의 정권 교체 열의가 넘쳤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이 대통령과 감정의 골이 깊게 패인 박 전 대표나 친박계가 한나라당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10년을 숙성해온 정권 교체의 염원이 구심력으로 작용한 결과다.

여당이 돼서는 얘기가 다르다. 정권 교체라는 강력한 동기가 사라졌기 때문에 개인의 이익이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원심력이 더 크게 작용한다. 분열의 유혹에 강하게 노출된다는 말이다. 1997년 대선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 때는 이인제 후보가 탈당했고, 2002년 노무현 후보 때는 후단협(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세력이 여당인 민주당에서 떨어져나갔다. 여당은 정권 교체 염원을 대체할 새로운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지 않으면 분열되기 십상이다. 친이계 인사들도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구성원을 한데 묶어줄 강력한 전략적 목표나 응집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식으로 불만을 터트리게 되리라고 추측했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 탈락하는 친이계들이 선수를 쳐서 탈당을 결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신율 교수는 전망한다. “총선 전이든 후든 보수 진영의 한 축인 친이계, 나아가 민주계열 인사들이 다른 대선 주자를 중심으로 뭉치거나 이탈하면 박근혜 대세론은 타격을 받는다.”

친박계가 주도권을 쥔 중앙당이 대선을 앞두고 MB와 일정 부분 차별화를 꾀할 때 친이계는 이를 핑계 삼아 독자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친박계는 친이계의 독자 후보론을 다분히 분열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유정복 의원은 “(한나라당 후보 선정 과정이) 무슨 계승체계도 아니고, 이명박 대통령도 그 부분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색했다. 전직 대통령의 모든 정책 노선을 같이해야만 후보 자격이 있다고 한다면 너무 편협하다는 지적이다. 유 의원은 “박 전 대표가 향후 정국 운영 비전을 아직 제시한 바 없는데 지레 이 대통령과는 다르다거나 독자 후보를 내겠다는 건 신중치 못한 사고”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단 한나라당에서 떨어져나온 여권 인사들은 외곽의 보수 세력과 연대를 꾀하려 할 것이라고 정치권에서는 점친다. 예컨대 보수 가치를 표방하는 사회운동체인 선진통일연합을 이끄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등과 연결해 정당을 만든다면 보수 진영이 갈라지는 정계 개편 국면이 올지 모른다. 또 이들은 대선 막판에 보수 진영의 후보 단일화도 추진할 수 있다. 이때도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지금처럼 압도적이면 별개지만 그렇지 않다면 후보 자리는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상황도 배제하기 힘들다. 이는 물론 시나리오에 불과하지만 현시점의 여론조사 결과를 내년 총선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로 거론된다. 한나라당 김영우 의원은 “지금 박 전 대표가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대세론에 빠져 이 대세가 계속 유지되리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대세지만 대세론에 빠져선 안 된다는 주문이다.

친이계의 한 책사는 “박 전 대표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내적 동력을 갖게 되는데 그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이 총선 이후에도 통합과 소통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간과한 채 박근혜 대세론으로만 나갔다간 큰코다친다는 경고다. 그는 “이런 정계 개편 동력은 힘 빠진 현직 대통령도 제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가 현시점의 지지율 우위를 토대로 다른 세력을 굴복시키더라도 총선 후 이념과 성향에 근거한 반기까지는 완벽하게 통제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영우 의원은 “전당대회 이후에도 친이계와 친박계의 긴장감은 여전하다”며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이 갈등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친이(親李)·반박(反朴) 표의 완강한 저항

이런저런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방안은 물론 압도적 지지율이다. 박 전 대표 지지율은 35% 선에 묶여 있다. 확장성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시아연구원(EAI)과 한국리서치는 매달 주요 대선 주자 지지율 조사를 함께 해왔다. 지난 7월 박 전 대표 지지율은 34.6%였다. 세종시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해 상반기 25% 선이던 지지율이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회동(8월)에서 화해한 이후인 지난해 10월 34.3%로 오르더니 이후로는 36%(올 2월)→37.1%(6월)→34.6%(7월)로 안정세를 보였다. 이 대통령 지지층을 일정 부분 흡수해 지지율을 35%까지 끌어올렸다. 그런데 10개월 가까이 그 언저리만 맴돈다.

왜 그럴까? 먼저 박 전 대표가 아직까지도 이명박 대통령 지지층을 온전히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당시 이 대통령 지지자 중 박 전 대표를 지지한 이는 25.3%에 그쳤다. 오히려 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이들(26.1%)이 더 많았다. 양측이 화해한 직후인 10월 조사에서는 이 대통령 지지층의 53.7%가 박 전 대표를 지지했다. 이런 추세는 얼마 안 가 40.3%(올 2월)→49.2%(6월)→42.6%(7월)로 떨어졌다. 이 대통령 지지층에서 여전히 박 전 대표 비토층이 존재한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원인은 개인적인 호불호, 정책의 문제, 여성이라는 이유 등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정한울 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이 대통령이 자기 지지층에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고, 그 지지층 개개인이 박 전 대표를 달리 평가할 수 있어 이 대통령의 지지층을 모두 흡수하기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지금보다는 더 노력해서 이 대통령 지지층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확장성 과제를 푸는 여러 단추의 하나가 이 대통령 지지층 흡수라는 얘기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의 주역들. 최근 노태우 회고록 발간을 계기로 3당 구조가 완전히 청산됐다는 지적이다(위 사진).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0일 추모 기도회에서 만나 손을 맞잡은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왼쪽)과 김 전 대통령 차남 김홍업 전 의원. DJ와 YS는 민추협 시절 한솥밥을 먹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규모로 따지자면 이 대통령 지지층보다는 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층이 더 크다. 국정지지율을 40%라고 가정하면 60%는 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EAI 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 비(非)지지층에서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비율은 33.2%(올 2월)→29.6%(6월)→27.7%(7월)로 3분의 1이 채 안 된다. 이들 비지지층 중 골수 야당 성향의 표를 제외한 중간층은 어느 정도 공략이 가능하다. 그래서 “박 전 대표가 확장성을 보강하자면 가능성을 떠나 덩어리가 클 뿐만 아니라 잠재성도 풍부한 이 대통령 비지지층을 겨냥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 부소장의 판단이다. 여기엔 한 가지 딜레마가 있다. 이를테면 포지션을 중도층으로 가져가면 기존 지지층이 떨어져나갈 우려가 있고, 그 자리에 있으면 확장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자면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다시 얼굴을 붉힐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이 대통령에 비판적인 중도층을 끌어안자면 때론 이 대통령에 대한 공격도 불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이계는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 틀어지는 순간 끝이라고 강조한다. 이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싸우게 되면 여권이 친이와 친박으로 갈라지는데 어떻게 총선과 대선을 치르겠느냐는 말이다. 현 정부 출범 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가 험악할 때 치러진 대부분의 선거에서 친박 지지층 일부가 투표를 포기해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고 때론 친이계 한나라당 후보의 낙선운동까지 벌였다고 알려졌다. 앞으로는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이 긴장모드로 접어들면 오히려 친이계 표가 이탈될 가능성이 커진다. 게다가 집권여당은 총선에서 여러모로 불리하다. 유권자들은 먼저 경제가 안 좋으면 그걸 탓하며 심판한다. 혹 경제가 좋으면 다른 이유를 찾는다. 예컨대 정치가 엉망이라며 손을 보려는 게 유권자들의 심리라고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말한다. 여권이 내년 총선을 잘 치르자면 먼저 경제가 좋아야 하고, 정치도 잘 풀려야 한다.

경제는 국정을 수행하는 이 대통령의 몫이기도 하다. 이런 마당에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려 좋을 건 없다는 논리다.

야당과도 통하는 친이계

사실 친박계가 친이계의 저변 세력을 끌어안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현 정부 공기업 감사에 임명된 친이계 인사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서울에서 모임을 갖는다. 보통 50~70명 안팎이 참석하며, 한나라당 지도부도 참석해 덕담을 하면서 정국 현안도 설명한다. 올 상반기에는 이주영 정책위의장, 홍준표 최고위원 등이 초빙됐고, 한나라당 전당대회 직전인 6월 30일에는 정두언 최고위원이 이 모임에서 연설했다. 이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한 한 공기업의 감사는 초청받은 한나라당 인사 대부분이 이 대통령과 현 정부를 대놓고 비난했다며 불쾌해했다. 정당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매도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가 차는 게 자신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어놓고 4년간 잘 지내다가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니까 현 정부를 실패한 정권으로 몬다. 이 의원들은 마치 이 대통령을 짓밟고 비판해야 총선에서 살아남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박근혜 대세론이 독’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명박 비판론 또한 독’이 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부족해도 잘한 것은 잘했다고 인정하고, 부족한 건 보완하겠다고 해야 옳은데 정부·여당의 정책기조를 무조건 뒤엎겠다는 자세에 크게 실망했다는 말이다. “지역구 유권자에게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성토하면서 표를 얻겠다는 발상은 독약을 먹는 것과 같다.”

임기가 끝나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할 정치인과 자신에게 임기가 보장된 공기업 임원들의 처지는 다르다. 그렇지만 이들 공기업 임원은 보수 진영 내 기류를 일정 부분 대변한다. 이들은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한나라당 지도부가 원칙도 없이 득표 전략으로만 당을 이끌어간다고 본다. 그 책임의 일부는 주류에 진입한 친박계도 나눠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마음 주기를 꺼리는 이가 적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한나라당 지지층은 뿌리가 다른 여러 세력으로 구성돼, 쉽게 포용되는 대상이 아니라고 김현철 부소장은 풀이한다. 지난 7월 언론에 보도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지하면서도 박 전 대표를 대통령감으로 인정하지 않는 친이·반박 유권자가 22%에 달했다. 김 부소장은 “이 22%는 과거 YS를 지지했던 수도권과 PK지역의 유권자 성향과 맥을 같이한다”고 했다. “박 전 대표 지역별 지지 성향을 보면 TK가 제일 강하고, 수도권과 PK가 비판적이다.”

1990년 3당 통합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결국 YS의 통일민주당을 지지했던 표가 지금의 친이·반박 유권자층의 원류라는 해석이다. 박 전 대표가 군부 세력에서 이어져오는 민정계보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양쪽의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이런 친이·반박 표들이 총선은 몰라도 대선에서는 야당으로 가지 않는다는 믿음이 한나라당에 있다. 한나라당 제2사무부총장 이춘식 의원은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가 되면 이 대통령 지지자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보았다. 또 친이·반박 성향 표가 박 전 대표와 죽이 맞지 않아 등을 돌린다는 관측에도 “그러다가 보수가 같이 죽는다는 생각에 이르면 결국 양보해서 자신들과 100% 같진 않아도 70% 정도는 같은 박 전 대표에게 몰아주리라 본다”고 이 의원은 말했다.

반면 김현철 부소장은 “친이·반박 표가 야당으로 가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반박한다. 그는 친이·반박 표가 과연 박 전 대표와 가까운지 아니면 민주당 등 야권과 가까운지 따져볼 일이라고 말했다.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다. 한나라당은 3당 합당의 민정·민주·공화 등 3계보가 공존하기에 좌에서 우까지 성향이 다양하다. 그중엔 여야 구분이 애매한 그룹도 있다. 민주계(민중당 출신 포함) 출신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국회본회의장에서 잠시 상념에 잠긴 박 전 대표.

김 부소장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겪었는데 그 세력도 실은 우리가 야당 할 때 같은 야당이었다”고 말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동교동계·상도동계는 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함께 힘을 모았던 사이다. 그는 한국도 선진국처럼 정권을 여야 간 주고받는 게 일상화된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DJ가 대통령 되면 빨갱이 나라 된다고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말은 의미가 없다. 지금 야당도 10년 동안 집권한 세력이므로 그들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다.” 이 대통령 지지 표가 모두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 부소장 말대로라면 박 전 대표가 친이·반박 표를 흡수해 외연을 확장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차라리 야권에서 PK 대선 주자가 나온다면 이 표를 쓸어갈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박 전 대표의 또 다른 고비는 PK 주자로 떠오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 표, 대세론을 상징하는 호남 표를 문 이사장이 대거 빨아들일 가능성 때문이다. 문 이사장의 책 <문재인의 운명> 발간을 축하하는 북 콘서트가 있던 7월 29일, 문 이사장 측근들은 행사장인 서울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에 모였다. 강남에 직장을 둔 한 측근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얼마 전 문 이사장의 공수부대 시절 사진이 인터넷에 오른 뒤 주요 신문의 지면을 장식했다. 가장 뜨거운 반응이 나온 쪽이 강남의 아줌마 층이었다. 마스크가 늠름하고 남자답게 생겨서 여성층에 호감을 줬다.” 이것이 얼마나 일반화된 반응인지 몰라도 군복무 중인 문 이사장 모습이 사람들의 뇌리에 인상적으로 남았다는 말이다. 그는 노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도 해외 산행 중에 턱수염이 무성한 초췌한 얼굴로 급히 귀국했다.

이런 장면들이 여성 유권자에게 많이 어필했다는 게 이 측근의 주장이다.

지금까지 박 전 대표는 육영수 여사의 단아함을 이어받았다 해서 여성층에도 인기가 좋았다. 홍영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박 전 대표를 일러 “‘여성이 여성을 찍지 않는다’는 속설을 뛰어넘은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지난 10여 년간의 박 전 대표 관련 여론조사의 대부분에서 여성 지지율이 더 높게 나왔다고 밝혔다. 유권자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 표의 향배도 박 전 대표 지지율 아성의 바로미터가 된다.

문재인, 여성 표와 호남

박 전 대표 대세론을 뒷받침하는 지지층은 야권의 텃밭이라 할 호남이다. 박 전 대표의 대세론은 반대 진영인 호남을 뭉치게 하지 않는 힘이 있다. 예컨대 한나라당이 이회창 후보를 밀었을 때는 호남이 무조건 뭉쳐 반대 후보를 지지했다. 이 후보가 가졌던 기득권적이고 한나라당적 이미지가 호남의 결집을 자극했다면 박 전 대표는 그런 이미지가 약한 편이다. 한나라당 대선 주자 중 호남에서도 지지율 1위를 달린다. 야권은 나름대로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을 결속하고자 DJ의 정적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 문제를 거듭 건드려봤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럴수록 박 전 대표의 압도적 지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문 이사장이 야권의 기대주로 관심을 모으는 데는 영남 출신이면서도 호남의 거부감이 적다는 일반의 인식도 한몫한다. 얼마 전에는 전국 단위 조사에서 그가 손학규 대표를 제치고 야권 1위 주자에 올랐다.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자료에 따르면 호남에서도 상승세다. 5월 5.6%던 호남 지지율이 6월 10.6%로 올랐다. 일단 호남의 물꼬가 문 이사장 쪽으로 터지기 시작하면 박근혜 대세론은 호남에서 무너지기 시작할 수 있다.

한나라당 내부가 박 전 대표를 놓고 각축을 벌이는 양상과 달리 당 외부에서는 박 전 대표의 역량과 정치적 자산을 존중해주는 기류도 있다. 임찬규 국민참여당 전략기획위원장은 “국민이 보지 않는 것 같아도 그 사람이 어떤 태도와 마음으로 정치를 하는가를 본다”면서 “서민층·중간층 입장에서는 박 전 대표는 상대적으로 신뢰감과 안정감을 주는 정서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박 전 대표의 고공 지지율에는 박 전 대통령의 향수가 근저에 깔릴 수 있지만 박 전 대표가 단순히 박 전 대통령의 아바타는 아니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를 일러 ‘수첩공주’라고 부르며 콘텐트 부족을 문제 삼기도 한다. 하지만 임 위원장은 “그의 토론이 공허하다는 느낌을 주진 않는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잊혀지지 않을 시점에서 맥을 짚고 짧은 말 속에 본질을 집약적으로 포착하는 능력을 갖춘 듯하다. 수첩공주와 같은 닉네임은 그를 폄하하려는 의도다.”

그는 단순하게 과거 사실을 물고늘어지는 네거티브 전략으론 박 전 대표를 상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법으로 문제가 될 사안이라면 과거 진보정부 10년 동안 몇 번이고 불거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가족의 행적도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될지 몰라도 박 전 대표의 대선 행보를 좌절시킬 만한 근본적인 흠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주변관리도 깔끔해 보이는데 어설프게 부도덕한 독재자의 딸로 몰아붙였다가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중도층의 민심이반을 불러와 거꾸로 박 전 대표의 지지율만 높여주는 결과를 부를지도 모른다는 해석이다.

진검승부 벼르는 야권

정작 국민참여당은 내년 대선이야말로 정책이 승부를 가르는 진검승부가 되리라고 본다. 박 전 대표가 복지담론을 주도하는 등 정책 행보에 적극 나서는 데다 과거 선거 때마다 판세에 영향을 주던 지역주의 요소가 상당 부분 희석됐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박 전 대표의 약점은 그의 정책 비전과 세상을 보는 안목에서 찾아질 걸로 예상한다. 국민참여당은 박 전 대표 주변에 주로 전문성을 갖춘 3, 4공화국 고위직 자제들이 이너서클을 이룬다고 추정했다. 반면 박경철·안철수와 같은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인사는 그들 주변에 근접도 못하고, 또 그럴 의사도 없다. 그래서 “박 전 대표 주변의 사람들이 경험이 많고, 안정적이고, 책임감도 있겠지만 시대적 과제를 극복해낼 만큼 미래 가치에 익숙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임 위원장은 말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박 전 대표 리더십을 일러 “위험하다”고 지적한 이유도 박 전 대표와 그 주변이 그러하다 보니 권위주의적이고, 관료 독재와 기득권 강화라는 과거 회귀적인 리더십으로 흐를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에서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면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점을 야권도 잘 안다. 하지만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정책 대안을 준비하고 수권정당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준다면 과거 회귀적인 박 전 대표에 멋진 승리를 안겨주리라고 판단한다. 박 전 대표 같은 정치인에게는 정공법이 더 통한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도 최근 전문가 그룹과 돌아가며 정책 현안을 토론하는 등 대선 수업에 여념이 없다. 다음 대선의 화두가 될 복지 문제도 깊이 공부한다고 전해졌다. 사회보장기본법을 발의하고, 생애주기형 복지 개념도 정립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박 전 대표에겐 아버지가 정치적 자산이자 늘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표는 최근 복지 구상을 공개하면서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이 복지였음을 주지시켰다.

강 교수는 “복지가 중요한 어젠다임은 분명하지만 정치인 박근혜의 이름이 아닌 아버지 이름으로 내걸었다”면서 “박 전 대표가 자신의 독자적인 그림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느냐에 외연 확대 여부가 달렸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박 전 대표가 민주화와 산업화 시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비전을 그렇게 썩 잘 보여주는 것 같지 않다고 강 교수는 덧붙였다.

201109호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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