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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5주년 특별기획 - “싱가포르 정부는 세상의 변화를 포착하는 불침번” 

림 스위 니안 (Lim Swee Nian)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 아·태 담당국장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사진·전민규 기자
기회에 밝은 기업인들과 교감 통해 글로벌 트렌드 파악… 열린 정부일수록 잘못된 정책을 초기에 과감히 뜯어고쳐



1960~80년대 한국의 개발 연대를 이끈 정부조직이 경제기획원(EPB·Economic Planning Board)이라면 싱가포르의 선진화를 주도한 기구로는 경제개발청(EDB·Economic Development Board)을 들 수 있다. 공교롭게도 두 조직은 같은 해(1961년)에 설립돼 두 나라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했다.

한국의 경제기획원은 1994년 12월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재무부와 함께 재정경제원(기획재정부의 전신)으로 통합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EDB는 여전히 싱가포르의 글로벌 사업 전략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중추기관으로 활약한다. 목표는 역동하는 비즈니스와 양질의 일자리 공급을 통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기반 창출이다.

지난 2월 21일 오후 싱가포르 노스브리지 로드에 위치한 EDB 사무실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담당하는 림 스위 니안(Lim Swee Nian·林瑞年) 경제개발청 국장을 만나 싱가포르 국가경쟁력의 원천과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2년 연속 2위를 차지했다. 공직자로서 감회가 깊을 듯한데.

“그건 우리의 현재적 좌표라고 본다. 경제개발청 공무원들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나 다름없다. 국가경쟁력 순위는 우리가 제대로 일했다는 결과물이어서 자부심이 크다.”

여러 경제 주체 중에서 정부는 주로 어떤 역할을 하나?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기업인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기업이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경쟁력을 극대화하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금융지원 등 활동 여건을 제공한다.”

아시아의 후발국으로서 주력 업종 대부분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졌다. 그 비결이 있다면?

“우리가 특별히 미래를 꿰뚫어보는 건 아니다. 나라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예의주시하고, 그 결과를 한데 모은다. 지구촌 주류적 흐름이 파악되면 글로벌 기업의 활동 동향을 분석, 토론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를 통해 차세대 비즈니스의 향배를 예측하는 것이다. 기업인의 후각은 예민해서 새 트렌드와 사업 기회를 잡는 데 그 누구보다 기민하다. 기업인들과 채널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행보를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

독립이래 싱가포르 경제와 산업의 물줄기를 바꾼 중요한 정책 결정을 꼽는다면?

“싱가포르는 1980년대 들어 석유화학산업을 일으키고자 했다. 주롱아일랜드를 비롯한 7개 섬이 똘똘 뭉쳐 싱가포르 특유의 석유화학산업을 창출해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바이오메디컬 산업이 싱가포르의 기술력·연구개발력을 입증했다. 외부에서는 카지노 산업에 주목하지만 이는 외국인을 끌어들이는 관광산업의 일부에 불과하다. 마리나베이샌즈나 센토사 리조트에서 카지노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도 안되며, 호텔·컨벤션·쇼핑센터를 아우르는 리조트 산업의 일부일 뿐이다.”

경제 성장의 속도와 방향은 시민에게 달렸다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정책은 어떤 절차를 거쳐 결정되나?

“먼저 정부 기관 내 의견수렴을 한다. 새 정책이 제시되면 관련된 모든 부서·기관이 논의에 뛰어든다. 저마다 사안의 성격을 이해하려고 적극 개입한다. 다른 대안은 없는지도 살펴보고, 그 정책이 가져올 부작용까지도 일일이 점검한다. 이를 위해 관련 부처, 기관 간의 생각과 지향을 공유하는 플랫폼을 따로 둔다.

정책의 실행을 조정하는 중개기관으로는 EWI(Environment & Water Industry Programme Office), EIPO(Energy Innovation Programme Office) 등을 들 수 있다. 정책이 가져올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정책 시행 후 뭔가 어긋나는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뜯어고치는 민첩성·유연성이 요구된다. 이는 핵심적 고려사항이다. 그러자면 변화에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국가 경제를 이끌자면 온갖 도전에 직면하게 될 텐데 어떻게 극복하나?

“EDB 같은 산업개발부서는 늘 싱가포르 산업의 변형과 혁신을 꾀해야 한다. 싱가포르가 최고의 국가 경쟁력을 갖도록 새 성장산업을 발굴해야 한다. 이때 어려운 점은 새 기회를 찾기 위해 (남들이 안 가는) 새로운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모든 가용 자원을 어떻게 동원할까를 고민하고, 이를 구현하는 데 관련 정부 부처 모두가 뛰어든다. 교육 측면에서도 기업이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도로나 산업용지, 통신설비 등의 산업 인프라를 조성할 때도 모든 정부 부처가 한 덩어리로 움직인다.”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싱가포르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인구가 적은 싱가포르가 세상에 없는 산업을 선제적으로 치고 나갈 수도, 새 흐름을 주도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단지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하고, 늘 이웃나라나 다른 산업 분야에 새 산업, 새 영역이 있는지를 주시한다. 세계의 트렌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가운데서 우리 같은 작은 국가가 비집고 들어갈 기회나 영역이 있는지를 판단한다. 구체적인 액션플랜도 새로운 흐름을 타야 성공한다.”

해외 투자자들에게 싱가포르는 어떤 매력을 준다고 보나?

“거듭 말하지만 싱가포르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다. 제도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나무랄 데 없다. 정부는 기업인이 자신감을 갖고 경영하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집중한다. 기업인은 물론 투자자, 연구개발 인력 등 모든 구성원이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환경 말이다. 싱가포르의 법령과 금융 모두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리적으로도 유럽과 아시아 등 각지로 상품 수출이 용이하고, 인력과 자본이 쉽게 오가는 위치다.

당연히 다양한 정보가 집결되면서 사업기회도 창출된다. 싱가포르 시민들은 기업활동에 필요한 지식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또 세계 무역의 거점으로 선박·항공 등 물리적 연계가 잘돼 있다. 한국·미국·중국·일본 등 세계 주요 국가들과 FTA를 체결, 자유무역 활성화에도 적극 나선다. 싱가포르에서는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기꺼이 오고 싶어한다.”

정부의 인구·이민 정책에 대한 일부 주민의 불만은 어떻게 해소할 텐가?

“리센룽 총리가 모종의 합의를 모색 중이라고 안다. 우리는 성장률이 떨어지는 가운데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충분히 따져보고 싱가포르에 필요한 인프라나 지향해야 할 사회상을 결정할 것이다. 싱가포르의 경제 성장 속도와 방향, 실행은 시민들에게 달려있다고 본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한국은 제조업, 홍콩은 부동산 개발 등 서비스 분야가 발달했다. 싱가포르는 그 중간을 취했다. 경제 구조와 성장동력이 다른 한국과 싱가포르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세계 트렌드를 잘 따라가고 있으며 수출도 많이 한다. 아마도 한국의 비교 대상은 일본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발전 정도나 경제구조가 일본과 비슷하고 문화적 동질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싱가포르보다 인구가 10배나 많다. 따라서 한국이 맞이할 경제적 난관도 10배는 더 크다고 하겠다.”

201304호 (201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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