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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 2인자 ‘빈자리’ 최룡해·김원홍 각축 

장성택 실각 후 북한 권력구도 향배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고모부’ 전격 처형은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 증거… 김양건이 담당하는 대남정책엔 큰 변화 없을 듯

▎명실상부한 2인자였던 장성택의 전격 실각·처형 이후 북한 내 권력구도 향배와 남북관계 변화 여부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왼쪽 원 안)이 2013년 5월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는 모습.



장성택이 하루아침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장성택은 김정일의 매부이자 김정은의 고모부, ‘김정은 체제’의 2인자였기에 그 여진(餘震)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장성택의 숙청이 북한 권력구조와 남북관계에 몰고 올 후폭풍은 없을까?

2013년 12월 8일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와 관련한 문제’를 토의한 후 그를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고 출당·제명을 결정했다.

그리고 4일 후인 12월 12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에서 장성택에게 ‘국가전복음모행위’ 혐의로 사형 판결을 내리고 이를 곧바로 집행했다. 그동안 국내 대부분의 전문가와 언론이 ‘북한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간주해온 장성택이 하루아침에 ‘반당반혁명분자’로 내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이다.

북한은 2012년 7월 15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리영호 총참모장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로 몰지는 않았으며 출당·제명시키지도 않았다. 이에 비하면 장성택의 사형은 매우 강도 높은 극단적인 처벌이며 경악을 금하기 어려운 잔혹한 조치다.

이와 관련 다수의 국내외 전문가는 장성택 숙청이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를 ‘급변 사태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등 조금은 성급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필자는 이 같은 ‘희망적 사고’에 기초한 분석을 넘어서 장성택 숙청이 발생한 배경을 면밀히 분석하고 북한체제가 향후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진단하고자 한다.


1 2012년 평양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 때 김정은 제1위원장과 장성택 부위원장. 2 북한 김책공업종합대학 학생들이 장성택 숙청을 결정한 당정치국 확대회의 소식을 접한 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충성을 결의하고 있다.
핵심측근 리룡하와 장수길 먼저 처형

북한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지적한 장성택의 죄명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가 지적한 죄명 간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는 장성택의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에 대해서만 지적했는데, 4일 만에 갑자기 죄명이 ‘국가전복음모행위’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이는 북한이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 혐의만 가지고 장성택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는 것을 대외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 장성택에게 ‘국가전복음모행위’라는 구제 불가능한 죄명을 뒤집어씌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장성택에게 ‘국가전복음모행위’를 했다는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를 고문하고 구타했다는 것은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그러므로 북한이 12월 8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통해 지적한 죄명이 장성택의 진짜 숙청 이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의 해임 사유와 관련, 그가 “앞에서는 당과 수령을 받드는 척하고 뒤에 돌아앉아서는 동상이몽·양봉음위(북한 사전에 의하면 ‘겉으로는 지지하고 받드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반대하고 뒤로 돌아서서 딴짓하는 것’을 의미)하는 종파적 행위를 일삼았다”고 밝혔다. “장성택이 정치적 야심으로부터 출발해 지난 시기 엄중한 과오를 범해 처벌을 받은 자들을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산하 단위 간부대열에 박아 넣으면서 세력을 넓히고 지반을 꾸리려고 획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에서는 장성택 일당의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고 주시해오면서 여러 차례 경고도 하고 타격도 줬지만 응하지 않고 도수를 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어 장성택을 제거하고 그 일당을 숙청함으로써 당 안에 새로 싹트는 위험천만한 분파적 행동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겼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또한 장성택이 “권력을 남용해 부정부패 행위를 일삼고 여러 여성과 부당한 관계를 가지였으며 고급식당의 뒷골방들에서 술놀이와 먹자판을 벌였다”고 공격함으로써 그를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완전히 매장시키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장성택의 처형은 갑자기 결정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착실히 준비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먼저 장성택의 핵심 측근부터 공개처형하고, 그 다음에 장성택을 처형하는 순서를 택했다.

국정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 11월 하순에 장성택의 핵심 측근인 리룡하 당중앙위원회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관련 당중앙위원회 간부들 앞에서 공개처형됐다. 그리고 북한은 내부적으로 장성택 측근들을 ‘반당’ 혐의로 공개처형한 사실을 전파하고, 김정은에 대한 절대충성을 강조하는 사상교육을 실시하는 등 내부 동요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다.

리룡하와 장수길의 죄명은 크게 ‘월권’과 ‘분파행위’,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거부’로 알려졌다. 북한 지도부는 장성택의 핵심 측근들을 전시법에 따라 군사재판에 넘겨 공개처형했는데, 이는 김정일 시대에 이어 김정은 시대에도 공포정치가 통치의 중요한 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리룡하와 장수길 모두 당중앙위원회의 간부였으므로 이들의 ‘반당 혐의’에 대한 조사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과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2013년 12월 3일 “올해 들어 보위부에서 장성택 심복에 대한 비리혐의를 포착하고 내사에 들어가는 등 일부에서 견제 분위기가 나타나면서 장성택은 공개 활동을 자제해왔다”고 밝혔다. 최룡해가 관장하는 총정치국이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에 대해 조사할 권한이 없는 점을 고려할 때 최룡해나 군부가 장성택 측근의 숙청에 관여했을 가능성은 낮다.

북한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소집해 장성택 숙청을 대내외에 공개한 것은 장성택 측근의 공개처형 사실이 외부 세계에 알려지고, 그의 매형인 전영진 쿠바 주재 대사와 조카인 장용철 말레이시아 주재 대사 소환 등이 확인되는 상황에서 북한 지도부가 언제까지나 장성택 숙청 사실을 외부에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차제에 이 문제를 대내적으로도 크게 ‘비상사건화’함으로써 유사한 권력누수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도 정치국 확대회의 소집 배경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는 “장성택이 최룡해 총정치국장 등 군부세력과의 파워게임에 밀려 실각했다”고 주장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전형적인 당 엘리트로 총정치국장 직책을 갖고 군대에 대한 당의 통제를 보장받고 있다. 그러므로 최룡해는 단순한 ‘군부세력’이 아니라 ‘반당반군’(半黨半軍) 엘리트로 봐야 할 것이다.

군부 견제로 실각했을 가능성 작아

전통적인 군부 엘리트인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의 위상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계속 하락해 현 리영길 총참모장과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은 당중앙위원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직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장성택이 군부 세력과의 파워게임에 밀려 실각했다는 주장은 북한의 현실과 괴리돼 있다.

김정은은 2012년 10월 29일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열린 김일성·김정일 동상 제막식에서 한 연설에서 “당과 수령에게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군사가 기질이 있고 작전 전술에 능하다고 해도 우리에겐 필요 없다”고 강조하면서 김정은의 군부 장악에 크게 기여한 리영호의 해임을 정당화한 바 있다.

이 같은 논리를 장성택에게 적용한다면, 장 부위원장이 김정은의 고모부이고 과거 김정은의 후계체계 구축과 김정일 사후 김정은의 국정 장악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와 그의 측근들이 ‘반당·반혁명 종파행위’를 했다면 용서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김정은이 자신의 고모부이자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로 몰아 숙청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고모인 김경희의 단순한 묵인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 동의가 필요했을 것이다. 북한이 장성택이 “여러 여성과 부당한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까지 언급한 것은 이 문제와 관련한 김경희와 김정은의 분노를 반영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군주제적 스탈린주의 체제’인 북한에서 장성택은 왕족과 결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에 맞게 품위 있게 처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상 왕조체제인 북한에서 ‘선왕’(先王) 김정일의 여동생과 결혼한 장성택이 다른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 것은 ‘왕가’(백두혈통)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다. 김정일 생시에 장성택이 바람을 피웠다면, 그 사실이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됐을 수 있다. 하지만 김경희에게는 나중에 간접적으로 알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사후 김경희가 사실상 조직비서직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최근 2년간 장성택의 모든 외도는 김경희에게 직접 보고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김경희와 장성택 간에 형식적으로나마 유지되던 부부관계가 완전히 끊기고, 김정은과 장성택 간의 조카-고모부 관계가 완전히 끊김으로써 김정은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을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까지 완전히 매장하는 숙청을 단행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리룡하와 장수길이 처형된 2013년 11월 하순에 있었던 김정은의 주요 활동으로는 11월 20일 인민군 제2차 보위일군대회 지도, 26일 평양건축종합대학 현지지도, 29일 삼지연군 사업 지도 및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991군부대 방문 등이 있다.

11월 20일 개최된 보위일군대회의 주석단에는 최룡해 총정치국장·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김수길 총정치국 조직부국장·렴철성 총정치국 선전부국장·조경철 보위총국장(보위사령관)이 착석했다. 김정은이 보위일군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공훈국가합창단 공연을 관람할 때는 최룡해·김원홍·김수길·렴철성·조경철 외에도 황병서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동석했다.

11월 29일 김정은의 삼지연학생소년궁전과 백두산지구 체육촌 등 방문에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양건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장, 한광상 당중앙위원회 재정경리부장, 박태성 당중앙위원회 부부장, 황병서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부부장, 김병호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 홍영칠 당중앙위원회 기계공업부 부부장, 마원춘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이 동행했다.


▎장성택이 전격 처형된 데는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의 ‘적극적’ 동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김정은과 김경희(앞줄 오른쪽 4번째)가 당 회의 때 나란히 앉아 발언을 경청하는 모습.




김원홍이 최룡해 ‘견제 역할’ 맡을 듯

이때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의 이름이 제일 먼저 호명되고, 동행 인물 중에는 황병서 조직지도부 부부장도 포함됐다. 김정은 동행 인물 중 김원홍을 제외하면 모두 당중앙위원회의 부장 또는 부부장들이다.

같은 날 김정은의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991군부대 방문에는 최룡해 총정치국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황병서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동행했다.

리룡하와 장수길의 공개처형은 11월 29일 김정은의 삼지연군 방문 이전에 이뤄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은은 리룡하와 장수길의 공개처형 후 핵심 측근들과 함께 삼지연을 방문해 장성택의 실각으로 인한 업무 공백을 메우고, 장성택이 담당해온 외자유치·체육지도 등의 권한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등을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북한의 파워 엘리트 중 김정은의 공개 활동에 장성택의 뒤를 이어 둘째로 가장 많이 수행했고, 2013년에는 가장 많이 수행한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장성택의 실각으로 확실한 제2인자 자리를 굳혔다. 최룡해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그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간부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일 것이다. 장성택 측근의 반당 혐의 적발에 주도적 역할을 한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의 영향력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층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1980년대에도 당중앙위원회 행정부가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면서 조직지도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다가 해체된 적이 있다. 당시 김정일은 “당중앙위원회 행정부가 ‘당 위의 당’이냐”고 비판하면서 행정부를 해체하고 조직지도부에 통합시켰다. 이번에도 당중앙위원회 행정부는 조직지도부에 흡수 통합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게 되면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의 조연준, 김경옥 제1부부장의 영향력도 더욱 확대될 것이다.

장성택의 실각으로 김정남에 대한 보호막이 상대적으로 약화됐지만, 김경희가 살아있는 한 그가 김정남을 보호하려할 것이다. 그러나 김경희마저 사망한다면 김정남은 신변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망명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남은 잘 알려졌다시피 김정일의 장남이자 김정은의 이복형이다.

장성택 처형은 북한의 엘리트들에게 불안감을 높여 향후 김정은에 대한 충성경쟁을 유발하고 그로 인해 김정은의 권력은 더욱 공고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이 2012년에 군부의 핵심 실세였던 리영호 총참모장을 전격적으로 해임한데 이어 2013년 12월 8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개최해 장성택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시키고 사형까지 시킨 것은 그가 그만큼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정남은 김정일의 장남이지만 권좌를 이복동생인 김정은에게 양보해야 했다. 고모인 김경희마저 사망한다면 김정남 역시 안위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장성택의 실각으로 급격히 커진 최룡해의 영향력을 김정은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정권 불안정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모 김경희 죽으면 김정남도 위험

장성택의 실각으로 그가 관장해온 라선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 위화도경제지대 북·중 공동개발과 외자유치에 단기적으로는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런데 장성택의 2012년 방중시 라선특구와 황금평, 위화도 특구 관련 북·중 간 주요 현안이 타결됐으므로 장성택의 실각이 이들 특구 사업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라선특구와 황금평, 위화도 특구 개발과 외자유치 사업이 내각으로 이관되면 박봉주 총리의 경제 개혁과 개방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에 장성택은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총서기를 만났으나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에는 중국에 가보지 못했다.

반면 최룡해는 2013년 5월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방중해 시진핑 총서기를 만났다. 그러므로 향후 북중 간의 정치대화는 최룡해 총정치국장이나 김영일 당중앙위원회 국제 비서 등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장성택이 북한의 대남정책에 크게 관여한 바가 없으므로 그의 실각이 대남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장이 김정은의 삼지연군 방문에 수행한 것은 김정은이 김양건을 여전히 깊게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장성택 실각이라는 내부 문제를 국정원이 발표한 것과 관련해 북한이 국정원을 보는 시각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향후 남북정상회담 추진 시 북한이 남한 국정원과의 접촉을 꺼리게 하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201401호 (20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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