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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 “입법권·조직권·재정권 있어야 완벽한 지방자치” 

3選 광역단체장들의 고언(苦言) - 허남식 부산시장 

서부산권·원도심 개발로 부산의 미래지도 바꿔…부산과 부산정서 잘 아는 사람이 차기 시장 돼야

▎허남식 부산시장은 지방분권이 이뤄져야 완벽한 지방자치시대를 열 수 있다고 강조한다. 12월 10일 부산시청 시장 접견실에서 <월간중앙>과 인터뷰하는 허 시장.



‘소리 없는 불도저’. 허남식(65) 부산시장의 별명이다. 조용하지만 무섭게 밀어붙이는 허 시장의 업무 스타일을 두고 언론에서 붙여준 것이다. 허 시장은 별명처럼 지난 10년간 요란스럽지 않게 부산의 변화를 주도했다. 해운대 센텀시티와 마린시티는 미국 뉴욕의 맨해튼처럼 부산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살고 싶은 신도시로 거듭났다. 또 허남식 스타일로 인프라를 새로 구축해 부산의 도시다움을 완성하며 세계적 도시로 변모시켰다.

하드웨어적 도시 인프라뿐만이 아니다. 폐교를 활용한 ‘창의문화촌’ 조성, 감천문화마을 등 과거와 현재의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힘썼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불꽃축제는 부산의 자랑거리가 된 지 오래다.

‘크고 강한 부산’을 그의 마지막 임기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허 시장은 뜻하는 바를 얼마나 이뤘다고 생각할까? ‘3선’의 임기말을 맞은 그를 12월 10일 부산시청에서 만났다. 접견실에 들어서자 대형 패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현 금융단지, 북항 재개발, 부산시민공원 등 한창 조성 중인 사업장의 조감도가 놓여 있다.

패널 밑에 바퀴를 단 이동식이다. 시장이 내방객과 사진을 찍을 때 배경으로 쓴다. 조감도에 있는 사업들은 모두 부산의 미래를 바꿀 대형 프로젝트들이다. 그런데 그 안에 비행기 한 대가 덩그렇게 그려져 있다. 다소 엉뚱한 것 같다는 질문에 “신공항 추진에 대한 부산시와 시민들의 의지”라고 허 시장이 부연한다.

원도심에 조성되는 부산시민공원은 부산시민단체연대가 선정한 허 시장이 가장 잘한 시정 중 하나로 뽑혔다. 허 시장은 부산 도심에 위치해 발전의 걸림돌이 됐던 미군의 하야리아 캠프 부지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다.

“일제 시대 일본군에 이은 미군 점령지였다가 100년 만에 반환된 부지를 놓고 개발 대신 공원을 만들어 부산 시민들의 품에 안겨드리고 싶었다. 2014년 4월께 완공되는 부산시민공원은 뉴욕 센트럴파크나 런던 하이드파크 부럽지 않은 명품 도심공원으로 조성돼 지역의 또 다른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부산 시정을 손바닥 보듯

허 시장은 경남 의령 출신이다. 고향 마을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난한 산골 벽촌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점심을 건너뛰고 저녁도 고구마로 때우는 집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의령중·마산고를 거쳐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다니며 제19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79년 민원계장으로 공직자로서 부산시에 첫발을 디딘 후 만 34년간 부산에서만 봉직했다. ‘부산시청의 살아있는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런데 그런 허 시장을 두고 아랫사람들은 괴롭다고 하소연한다. ‘부산행정의 달인’이다 보니 한 치의 착오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아서다. 허 시장이 말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허 시장은 “조그만 행정 실수 하나가 부산 시민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힐 수 있다”며 “행정에서는 실수나 착오가 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허 시장은 인터뷰 도중 참모들이 준비한 자료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돌발성 질문에 대한 대답도 막힘이 없다. 숫자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그만큼 부산 시정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방증이다. “직원들의 불평 어린 하소연이 이해된다”고 하자, 허 시장은 “부산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며 웃어 넘긴다.

3선을 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10년 동안 부산을 세계일류도시로 도약시키기 위해 도시발전의 큰 축인 하드웨어적 도시인프라 구축에 최선을 다했다. 미래 부산발전의 큰 틀은 마련했다. 특히 동서 균형발전을 위해 강서지역 그린벨트 해제 등 본격적 ‘서부산 시대’를 열었다. 그 원동력은 당연하지만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이었다. 그러나 부산 시민의 오랜 숙원인 신공항 건설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무산된 점은 아쉽다.”

동부산과 서부산, 원도심 간의 격차가 심화됐다는 지적도 있는데.

“서부산과 원도심 발전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부산 시내에서 지역 균형발전은 내 시정 철학이다. 부산신항 배후인 낙동강 서쪽 지역에 33㎢(약 1천만 평)에 달하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조성하고 있는 국제산업물류도시는 다들 불가능한 사업으로 여겼었다. 지난해에는 이 중 12㎢(약 360만 평)를 친수구역으로 지정해 에코델타시티 조성 사업에 들어갔다. 2018년까지 복합물류·첨단산업, 관광휴양도시, 친환경 주거 기능을 겸한 이상적 수변도시가 만들어진다.

신항만·명지국제도시 등도 서부산 발전을 위한 청사진이다. 부산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꿀 북항 재개발은 원도심 부활의 중심 사업이다. 금융중심지도 해운대가 아닌 문현동에 만들었다. 산복도로를 개발해 산복도로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원도심 주거환경 개선에 연간 1천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이런 사업이 모두 완성되면 부산의 균형발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부산시의 산복도로 개발 방식은 독창적이다. 깨끗이 밀어버리고 신도시를 개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발을 하되 그곳의 역사성과 문화를 보존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허 시장의 아이디어였다.

“부산의 산복도로 주변은 6·25 때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만들어진 터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가구수에 비해 대지도 넓지 않은 편이고. 산복도로라는 이름 그대로 도로사정도 좋지 않다. 이런 곳을 뉴타운 방식으로 개발하면 거주민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겨주게 된다. 예산도 많이 투입해야 한다.

이곳의 주거환경 개선은 해야 하는데 시 재정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 최대한 보존을 해서 스토리를 입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 의견수렴 과정에서 반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가? 감천문화마을의 경우 미국 CNN 등 세계 유수의 언론이 앞다퉈 ‘한국의 마추픽추’라고 보도한다. 마을 자체가 관광상품이 된 것이다.”

전국 최초로 2013년 10월 말에 문을 연 상설야시장 ‘부평 깡통야시장’도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허 시장은 대만 타이베이 스린 야시장을 방문했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처음엔 상인들의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야간에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고 다문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보자고 상인들을 설득했다. 개장 한 달이 채 안 됐지만, 평일에는 3천여 명, 주말에는 5천~6천 명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지난 10년 동안, 부산은 도시품격과 위상이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기다 지역경제 발전 성과도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기업이 떠나던 도시’에서 ‘들어오는 도시’로 변했다. 신항 배후 경제자유구역은 글로벌 기업 입지로 떠올랐다. ‘동북아 최적’이라는 입소문도 들린다. 2009년 5명 이상 고용기업 기준으로 엇비슷했던 전입(25개)·전출(20개) 기업이 2010년 58대 28, 2011년엔 63대 11을 기록했다. 산업단지 확충과 다양한 인센티브 제공, 지속적인 기업 유치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관광·전시 컨벤션산업 강화로 부산의 ‘신성장동력’ 한 가지를 확보했다. 부산은 아시아의 4대 국제회의도시, 세계 15위권 컨벤션 도시로 성장했다. 부산은 또 연간 200만 명 이상의 외국관광객이 찾는 관광도시로 성장했고, 영화의 전당 개관(2011년 9월)으로 부산을 아시아 최고의 영화·영상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허남식 시장이 2013년 9월 3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기자회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민선 자치 22년, 지방재정 분권 이뤄져야

허남식 시장은 2004년 6·5 보궐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서 당선됐다. 당시 상대 후보는 선배 공무원인 열린 우리당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다. 허 시장과 오 전 장관은 모두 전임자인 고 안상영 시장 밑에서 정무부시장과 행정부시장을 지냈다. 한 명의 보스를 보좌했지만, 정치적 길은 달랐던 셈이다.

허 시장은 ‘일 잘한다’는 것보다 ‘약속을 잘 지킨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곧 일을 잘하는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인지 그는 조직 안팎에서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부산시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민선 5기 시도지사 공약이행 평가에서 3년 연속 최고 등급을 받았다. 허 시장은 민선 5기, 3선 시장에 나섰을 때 신경제·창조도시·선진복지·생활문화·글로벌 등 5대 분야, 20대 전략, 100대 사업(세부과제 339개)을 공약했다. 이 중 완료 사업은 296개, 계속 사업은 43개로 평가됐다. ‘원칙’과 ‘신뢰’를 시정 운영철학으로 정하고 실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 시장은 “공약이행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각종 복지관련 공약의 이행과 관련해 지방정부의 수장으로서 허 시장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공약의 책임을 지방에 전가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보나?

“기초노령연금 제도는 필요하다. 문제는 재원조달 방안이다. 하지만 국가가 시행해야 할 복지정책 비용을 지방정부가 부담하는 것은 지방재정 형편상 한계가 있다. 이 일은 중앙정부가 해야 한다. 아니면, 지방소비세율의 대폭 인상 같은 방법으로 지방재정을 확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부산시는 2014년 7월 1일부터 기초노령연금이 확대 시행될 경우 2013년에 비해 2014년 550억 원, 2015년 1150억 원의 추가 재원부담을 떠안게 된다. 재정이 열악한 부산시로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지방의 재정난을 해결할 방안을 제시한다면?

“현 지방세 구조로는 지방행정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내국세에서 국세·지방세 비율이 8대 2 정도인데, 재정사용액은 6대 4 정도다. 미국은 6대 4, 독일은 5대 5 수준이다. 장기적으로 지방정부 재정지출에 상응하도록 국세·지방세 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편해야 한다. 현재의 재정자립도 수치는 별 의미가 없다. 세입에 맞춰 예산을 편성하면 자립도는 높아진다. 재정 수요를 봐야 한다. 재정수요는 많은데 재원이 없으니 못하는 일이 많다. 지방재정의 분권화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그래도 지방소비세율이 5%에서 11%로 인상됐지 않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더 확대돼야 한다. 소비세율 인상은 예고된 것이다. 취득세만큼 보전됐어야 했지만 안 됐다.”

“제2도시 부산 키워야 국가경쟁력 한 단계 도약”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지 20년이 됐다.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했다고 보나?

“아직 낙제점이다. 지방자치제도의 기본권은 자치입법권·자치조직권·자치재정권인데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법에 위배되지 않으면 조례를 제정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는 법으로 정한 것만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실질적 입법권이 없는 것이다. 자치조직권 역시 지방 특성에 맞게 운영돼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

400만 광역시와 100만 광역시의 조직이 같을 순 없지 않나?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권한을 확대하면 방만경영을 우려하는데, 지자체장이 선출직인 만큼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자치재정권 역시 조례로 세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지방정부에는 재량권이 없다. 이런 점에서 완벽한 지방자치라고 볼 수 없다. 안타깝다.”

또한 그는 교육행정권의 지자체 이양도 주장했다. “교육청 예산의 절반을 지자체에서 지원하는데 아무런 권한이 없다. 교육행정권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줘야 한다. 그게 더 효율적이다. 교육의 독립성은 교육감과 시·도지사를 러닝메이트로 한다든지, 아니면 시·도지사가 의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허 시장은 수도권 집중화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국가 미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 경제는 서울·수도권에만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 부산은 한국 제2도시지만 그 위상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웬만한 대기업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다.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도록 부산을 키워야 한다.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다.”

부산의 숙원사업인 신공항에 대해 아쉬움이 많은 것 같다.

“일부지만 수요가 없는 곳에 국제적 공항이 정치적 논리로 건설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다. 인천공항 하나로 우리나라 전역을 커버하는 것은 무리다. 제대로 된 허브 공항이 두 개는 있어야 한다. 일본에는 나리타 공항과 간사이 공항이 있다. 여객과 함께 항공화물도 대단히 중요하다.

국토 동남권에 있는 산업을 위해서라도 이 지역에 허브 공항이 있어야 한다. 현재 김해공항은 늘어나는 수요 때문에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영종도에 있는 인천공항을 보면 공항 입지의 해답이 있다. 다행히 현 정부 들어 사업이 재추진되고 있다. 부산 시민이 바라는 대로 추진될 것으로 본다.”

부산에서는 허남식 시장의 뒤를 이을 차기 시장 후보를 두고 40대로의 ‘세대교체론’이 떠오르고 있다. 부산 지역의 한 유력 언론이 제기하기 시작한 ‘세대교체론’의 핵심은 안철수·문재인과 같은 대선 주자를 이을 새로운 인물을 내년 지방선거에서 선출해 미래에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희망의 인물’로 키우자는 게 골자다.

차기 부산시장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고 보나?

“부산을 잘 알고, 또 시민들의 정서를 잘 알아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부산을 발전시킬 비전·전략·철학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을 이뤄낼 수 있는 능력은 기본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돌파할 수 있는 열정도 있어야 한다.”

퇴임 이후 행보에 대한 질문에 허 시장은 “아무런 계획이 없다”며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 속에서 여운이 느껴졌다. 부산은 올해로 광역시 승격 50주년이 됐다. 허 시장은 앞으로 100년 부산 발전과 ‘세계도시, 부산’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차기 시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북극항로와 유라시아 대륙 횡단철도 시대가 열리면 부산은 동북아의 새로운 관문도시가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허 시장이 퇴임 후에 부산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201401호 (20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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