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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삶] 철새 전문사진가 박웅 

“난 새에 미쳤어. 안 가본 곳 없거든” 

김슬기 월간중앙 기자 rookie@joongang.co.kr
건축가 생업 팽개치고 8년 동안 전국 서식시를 돌며 동고동락… 한반도 맹금류 중에서도 먹이사슬의 최고봉 참매의 일생을 담다

▎1. 참매가 강물에서 도망치는 쇠오리를 두 날개와 꼬리날개를 활짝 펴고 쫓고 있다. 2. 3. 참매가 강물 위에 큰 파문을 일으키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쇠오리를 낚아채는 순간. 4. 쇠오리를 낚아챈 참매가 쇠오리의 날갯죽지를 움켜쥐고 공중으로 솟구쳐 날고 있다.



8년간 한 마리의 새에 빠져 살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참매다. 이 매력적인 새는 그의 직업마저도 바꾸게 했다. 생태전문 사진가로 불리는 박웅(64) 씨다. 그의 본래 직업은 건축가다. 건축사무소 ‘다공’ 대표로 한동안 집을 지어 팔았다. 건축 설계를 하면서 사진기를 만졌는데 언제부턴가 인공보다는 자연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마음이 싹텄다.

처음엔 순전히 업무상의 스트레스를 풀려는 심산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전국의 산들을 하나둘 헤집고 다니면서부터다. 2004년에 한라산·지리산·설악산 등 우리 산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담아 <우중입산(雨中入山)>이란 사진집을 펴냈다.


▎철새 사진 촬영은 밤낮이 따로 없다. 해질 무렵, 강가에서 새들의 모습을 찍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박웅 씨.
지리산 잣까마귀 울음 듣고 새에 반해


▎박씨는 참매의 일대기를 찍기 위해 무려 8년의 세월을 바쳤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찍는다”는 게 그의 사진 철학이다.
이 산 저 산을 돌며 사진을 찍다 보니 산속의 새들이 그의 카메라로 들어왔다. 언젠가 지리산 천왕봉을 올랐다가 우연히 듣게 된 잣까마귀의 울음소리가 그의 영혼을 붙들었다고 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새를 쫓기 시작한 계기다.

그 뒤로 600미리 렌즈와 카메라를 담은 15kg 배낭을 메고 전국을 쏘다니며 새를 만났다. 한국에서 섭생하는 온갖 새가 그의 카메라에 내려앉았다. 올빼미와 소쩍새 등 밤이 낮인 새들의 생태를 찍으려고 밤이슬을 맞으며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적도 하루이틀이 아니다. 호랑지빠귀의 둥지를 찍으려 한여름 모기떼와 싸우며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종(種)을 잘 모르는 생소한 새를 만나는 날이면 일단 사진에 담은 뒤 새 전문가를 찾아가 묻고 도감을 펼쳐가며 공부했다.

2006년에 박씨는 마음을 옴짝달싹 못하게 사로잡은 새를 만났다. 천연기념물 제323호인 참매였다. 멸종위기 조류인 참매는 겨울철에 극소수의 개체만이 남하해 한반도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로 알려졌다. 참매와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2006년 5월 충주 시골마을의 한 주민이 “마을 뒷산에 어마어마하게 큰 새 둥지가 있다”고 제보해왔다.

박씨는 평소 알고 지내는 신문기자 한 사람과 둥지를 확인하러 나섰다. 날렵한 생김새를 가진 참매는 50㎝나 되는 회색 몸통에다 검은색 줄무늬 꼬리를 하고 있었다. 꿩이나 토끼, 쇠오리, 청설모, 다람쥐 등을 먹잇감으로 사냥한다. 동행한 기자가 박씨에게 “천연기념물 참매의 둥지가 맞다”는 확인해주었다. 참매의 고향이 한국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박씨는 모든 일을 때려치우고 참매의 사진 찍기에 골몰했다. 둥지 근처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참매 암컷이 알을 낳는 장면도 사진에 담았다. 동행한 기자는 이를 기사화해 참매의 국내 서식을 처음으로 알렸다. “그때처럼 가슴이 벅차 오른 적이 또 있을까 싶어요. 참매를 처음 만난 뒤 매년 그곳으로 달려가 참매의 일대기를 담고자 결심했죠. 멸종 위기 조류인 참매를 보호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거든요.”

이듬해 같은 마을을 찾았을 때 1년 전의 참매 둥지는 이미 훼손돼 있었지만 박씨는 근처의 숲을 오르내리다 새로운 둥지를 발견했다. 자신의 영역에 두세개의 둥지를 만들어놓는 참매의 습성을 알고 있었던 터였다. 박씨는 충주 말고도 충청남도 서산, 강원도 원주, 경기도 포천 등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참매 둥지를 찾으면 1주일도 좋고 한 달도 좋고 산속에 진을 치고 그 새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에 담았다. 2008년에 결국 그는 건축사 일마저 내팽개쳤다. 그에게 “새에 미쳤다”는 말이 따라다니는 이유다.

참매와의 동거는 고행(苦行)

참매의 생태를 찍기 위해 동고동락하다보니 이 새의 습성도 훤히 꿰뚫어보게 됐다. 맹금류인 참매는 둥지 주변에 낯선 소리가 나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반응한다. 그래서 촬영할 때는 참매를 자극하지 않으려 극도로 신경을 쓴다. 위장 텐트 안에 숨어 몇 시간을 숨죽이며 기다리기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새끼들을 둥지에 놔두고 떠난 참매를 기다리다 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기도 한다.

“참매의 둥지를 지켜보는 일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봐요. 참매가 둥지에 있을 때는 꿈쩍하지 않지만 자리를 한번 비우면 한나절씩 모습을 보이지 않아요. 아무리 셔터를 눌러도 똑같은 장면만 나오니까 지루한 작업이에요. 그때마다 ‘다른 새였다면 훨씬 편한 장소에서 멋진 장면을 찍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원망의 마음이 들기도 하죠. 참매의 사진 작업은 말 그대로 고행에 가까워요.”


▎2. 수컷 왕새매가 물어 온 먹이를 암컷 왕새매가 새끼들에게 먹이고 있다. 3. 천연기념물 201호인 큰고니 무리가 천수만의 아침 햇살을 받고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에서 고개를 몸에 파묻고 잠을 자고 있다. 4. 기동성이 유난히 좋은 새 사진을 찍을 때는 위장 텐트 안에 몸을 감춘 뒤 망원렌즈를 이용해 촬영한다.



8초를 담는데 8년을 기다렸다

1년동안 열심히 준비했다가 사진 한 장도 건지지 못하고 허탕을 치는 해도 있었다. 새끼가 부화하는 장면을 찍으려고 꼼짝 않고 둥지 곁을 지켰는데 결국 그해에 알이 부화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어미 참매의 눈치를 살피느라 카메라 셔터를 한 번 누르고 참매 한 번 쳐다보는 날도 있고, 새끼가 알을 까고 나오는 날짜를 예측할 수 없어 아침마다 나무에 올라 둥지의 알 상태를 확인하며 애태우던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뭐니뭐니해도 박씨에게 가장 큰 고역은 참매의 사냥 장면을 포착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주로 산속에서 사냥하는 참매는 매복을 하고 있다 순식간에 먹잇감을 해치운다. 사냥감을 쫓아다니지 않고 먹잇감이 다가올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리다가 한순간에 덮치는 식이다.

그러나 박씨의 열악한 장비를 이용해 나무와 숲으로 우거진 산 속에서 참매의 사냥 장면을 찍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참매의 사냥 장소를 미리 알아내 완벽하게 위장하고 숨죽이고 있다가도 참매가 낌새를 알아차리고 도망치는 일이 허다했다.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는 참매의 기질 때문에 눈앞에서 사냥을 목격하고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못한 때도 있었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박씨에게 인내심과 끈기를 넘어 지혜로움을 줬는지도 모른다. 한겨울이면 참매가 먹잇감이 줄어들어 숲을 떠나 강이나 들로 사냥을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박씨는 숲밖에서 참매의 사냥 장면을 찍기로 방향을 틀었다. 그 뒤로는 3년 동안 매일 강가로 출근했다. 참매가 나타나기 전에 차를 세워두고 몇 시간을 잠복하며 기다렸다.

“참매가 저를 낯설게 여기지 않게 하려고 같은 장소에 차를 세웠어요. 그런데 참매는 차 안에 있는 사람도 기막히게 알아채더군요. 제가 있는 것을 인식하고는 사냥을 아예 하지 않거나, 자동차와 가장 멀리 떨어진 쪽에서 사냥을 하는 식이에요. 이 촬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서는 아예 마음을 느긋하게 먹게 됐어요.”

수년 동안 쌓아온 박씨의 노력에 자연이 주는 선물이었을까? 2012년 2월, 잠복 4년째가 되던 해 박씨의 카메라에 결정적이 순간이 포착됐다. 참매의 사냥감인 쇠오리가 박씨가 세워둔 자동차 쪽을 향해 도망치면서 참매도 같은 쪽으로 날아든 것이다. 참매가 쇠오리를 낚아채 갈대밭에 내려앉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8초. 박씨는 반사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가 기다렸던 8년의 시간에 비하면 그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어쩐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러댔죠.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던 순간이 갑작스럽게 눈앞에 펼쳐지니까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 정신이 없었어요. 순식간에 벌어진 사냥장면을 찍고 나서 사진을 확인할 때는 정말 숨이 멎는 줄 알았어요.”


▎ 어미 딱새가 자신의 새끼보다 하루 먼저 부화된 뻐꾸기 새끼를 바라보고 있다.
뱁새처럼 작은 새의 일대기도 관심

지난해 12월 박씨가 낸 사진집 <참매 순간을 날다>는 그 결과물이다. 8년 동안 그가 고독한 시간들과 싸우며 기록한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참매의 아름다운 일대기 말이다.

박씨는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가 찍은 생태 사진 중에는 비행하는 새의 모습을 담은 역동적인 사진 못지 않게 정적인 사진도 많다. 새가 유유히 물위에 떠 있는 모습이나 고개를 파묻고 잠을 청하는 사진 등이 그렇다.

“사람들은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사진만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새가 늘 역동적이기만 한 건 아니에요. 저는 있는 그대로의 새를 찍고 싶었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아침 해가 오를 때에 잠에서 깨어난 오리들이 유유히 강가를 헤엄치는 모습이나 새끼와 함께 쉬는 어미새의 평온한 모습을 가장 좋아해요.”

박씨가 요즘 좋아하는 새는 뭘까? 뜻밖에도 ‘뱁새’라고 한다. 우리 속담 속에 황새 쫓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그 뱁새 말이다. 사람들에게 홀대 받는 뱁새지만 농작물을 해치지 않고 병충해를 잡아먹는 ‘이로운 새’라고 박씨는 옹호한다.

“뱁새가 둥지를 짓는 모습을 보면 장인이 명품을 만드는 모습이 떠오를 정도예요. 부리를 이용해 밥그릇 같은 둥지를 섬세하게 짓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작은 새지만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죠.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절로 들 정도예요.”

그의 목표는 참매처럼 다른 새들의 일대기도 차근차근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더불어 국내에 ‘야생 생태 자연공원’을 조성하고 싶은 꿈이 있다. 건축가이자 사진가인 그의 역량을 결합해서 녹여내는 큰 꿈이다.

“국내에서 하나뿐인 생태 자연공원을 만들고 싶어요. 가까이에서 새를 관찰할 수 있고, 새와 자연이 어우러질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요. 저는 사람들이 새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찾아와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배우고 새의 지혜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201403호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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