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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 해삼, 자해와 공생의 이중주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신체 일부 끊거나 터뜨려 포식자 물리치고 주변 물고기들과는 평화적 공존



해삼(海蔘)은 말 그대로 ‘바다 인삼’이란 뜻으로 영어로는 ‘sea-cucumber(바다오이)’라고 하니, 살았을 때 보면 몸이 원통형으로 길쭉하고 우둘투둘한 돌기가 가득난 것이 천생 오이를 빼닮았다. 그런가 하면 일본사람들은 쥐처럼 생겼다고 ‘해서(海鼠·sea mice)’라 부르기도 한다.

해삼은 불가사리나 성게와 함께 ‘살갗에 가시 난 동물’이란 뜻인 극피동물(棘皮動物)로 해삼강에 속하는 모든 것을 통칭한다. 좌우대칭이면서 몸은 기다란 원기둥 꼴이고, 입 둘레에 촉수(觸鬚·tentacles)가 여럿 빙 둘러 나 있으며, 아랫면에 붙어 있는 아주 작고 가는 관족(管足·tube feet)을 이용해 바다 밑을 긴다.

해삼은 해저에 깔린 모래진흙을 입에 집어넣어 그 속에 있는 미생물이나 유기물을 먹는 무리, 촉수를 넓게 벌려 흘러내리는 유기물을 모아 먹는 놈, 해조류를 뜯어 먹는 녀석, 해파리와 구별하기 어려운 놈이 바다를 둥둥 떠다니면서 플랑크톤을 모아 먹는 등등 섭식방법이 종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개중에는 마치 지렁이가 땅굴을 파고 유기물을 먹어 똥을 싸서 땅을 걸게 하듯이, 개흙을 먹어 유기물 범벅인 바닥을 정화하여 생태계의 물질순환을 돕기도 한다.

피부 속에 든 석회질의 작은 골편(骨片) 모양에 따라 해삼을 분류하며, 해삼을 씹으면 오도독거리는 것은 바로 피부 밑에 있는 골편(내골격·內骨格)이 있기 때문이다. 가을에서 봄까지 얕은 바다에서 볼 수 있지만 수온이 올라가는 한여름이면 바다 깊이 서늘한 곳으로 옮겨 가 식음을 전폐하고 가만히 여름잠(하면·夏眠)을 자기에 체중이 줄고 맛도 형편없이 떨어진다.

이들은 서로 호르몬으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하며, 자웅이체로 생식 시기에는 암수가 거리낌없이 마구 난자와 정자를 뿜어 체외수정을 한다. 수정란은 곧바로 1㎜ 크기의 유생(larva)인 아우리쿨라리아(auricularia)로 변태한 다음 2단계로 돌리올라리아(doliolaria), 3단계로 펜타쿨라리아(pentacularia)라는 유생단계를 거치면서라 성체가 된다.

생후 3~5년이면 15~30㎝ 정도 자라는데, 근래 와서 이들 유생(幼生)을 채취하여 상업적으로 가두리 양식을 하는데 중국·호주·인도네시아·베트남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많은 해삼 중에서 60여 종만 식용으로 거래되는데, 더운 필리핀·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것은 핫길, 호주·뉴질랜드 양식 해삼은 중치, 일본 관서지방이나 한국산은 윗길로 친다고 한다.

해삼은 외부에서 심한 자극을 받으면 장(腸)을 끊어 항문 밖으로 가차 없이 쏟아버리는 자해(自害)를 서슴지 않는데, 인간 나부랭이들의 자해공갈과는 해삼 자해의 속셈은 다르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싶으면 맹낭(盲囊)을 터뜨려 끈적끈적하고 하얀, 가느다란 실오라기 같은 점성의 세관(細管)뭉치를 잔뜩 쏟아내어 공격자를 옭아매는 것은 물론이고, 독성분인 홀로수린(holothurin)을 분비해 상대방을 혼내준다. 네놈들이 나를 해치려 들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이렇게 해삼에게 한번 호되게 당한 물고기는 몹시 질려 다시는 얼씬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해삼을 일부러 토막 내어도 또한 몽땅 속 빼주고도 새록새록 거듭 재생한다니 모질고 질긴 생명력을 지녔다고 하겠다. 어쨌거나 횟집 수조 속의 해삼을 맨손으로 움켜쥐어 보려거든 해삼 값을 물어줄 각오를 해야 한다. 심하면 도마뱀이 꼬리를 던져주듯이 해삼이 대놓고 제 몸의 일부를 몽땅 잘라버리기도 하니 이를 자절(自切·autotomy)이라 한다.

마른 짚에 맥을 못추는 이유

해삼은 보통 10~30㎝(가장 큰 것은 1m임)이지만 아주 작은 것은 3㎜인 것도 있다. 해삼은 항문 안쪽, 총배설강(總排泄腔) 양편에 붙어있는 나뭇가지(작은 관) 닮은 돌기들이 모인 호흡수(呼吸樹)라는 특이한 호흡기관으로 숨쉬기를 한다. 그런데 몸은 옆으로 펑퍼짐하고 몸길이 20㎝나 되는 ‘숨이고기(pearlfish)’라는 별난 바닷물고기가 심해에 사는 아주 큰 해삼 항문을 들락거린다. 놈들이 먹이를 찾으려 나섰다가 큰 놈들을 만나는 날에서는 ‘다리야 날 살려라’ 하고 걸핏하면 해삼 몸 속으로 쪼르르 달려들어 숨어버리니 포식자는 닭 쫓던 개처럼 멀뚱멀뚱 쳐다보다 무연(憮然)히 발길을 돌린다.

이렇게 숨이고기 놈들이 나들이하면서 산소를 한껏 품은 신선한 물을 연신 끌어들여 총배설강에 있는 호흡수에 제공하고, 포식자로부터 공격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동물은 누이좋고 매부 좋은 공생(상생)관계다. 이 물고기 말고도 환형동물의 갯지렁이 무리나 게들도 해삼 안에 붙박이로 살면서 이런 주고받기 관계를 이어간다.

해삼은 세계적으로 1250여 종이 있는데 특히 아시아·태평양에 많고, 우리나라에는 해삼(Apostichopus japonicus)을 비롯하여 14종이 알려져 있다. 색깔에 따라 홍(紅)·흑(黑)·청(靑)해삼으로 나뉘며 살갗의 색은 그들이 좋아하는 먹이와 서식처에 따라 결정되는데, 예컨대 김, 우뭇가사리 같은 홍조류(紅藻類)를 먹는 것은 체색이 붉다.

그리고 생(生)해삼을 찌고 말리면 건(乾)해삼이 되는데, 수분이 빠지면서 원래의 10∼30% 크기로 쪼그라들지만 건해삼을 물에 불리면 수분을 다시 머금어 몸체가 본래 크기로 커진다. 그리고 알다시피 살아 있는 해삼은 마른 짚에는 맥을 못 추는데 지푸라기에 많이 묻어있는 고초균(枯草菌·Bacillus spp)이 해삼을 흐물흐물 홀랑 통째로 녹여버리기 때문이다.

해삼을 먹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아서 지중해 연안의 몇몇 나라와 한국·동남아·중국·일본 정도이며, 나머지 나라는 대부분 그 비싸고 맛있는 해삼을 얼토당토않게 비료로 사용한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 전 세계 해삼의 90% 이상이 중국에서 소비될 정도로 중국은 해삼 소비의 종주국이라 할만 하다. 청나라 때에도 엄청난 양의 해삼이 소비돼 일본의 에도막부는 17세기부터 해삼을 대청 수출품으로 삼았을 정도다.

해삼탕·해삼백숙·해삼알찌개 등 중국요리만도 20가지가 넘으며, 중국인들은 남삼여포(男蔘女鮑)라 하여 남자에겐 해삼(海蔘)이, 여자에겐 전복(鮑)이 몸에 좋다고 믿는다. 또한 해삼과 인삼은 찰떡궁합이라서 두 삼을 함께 넣어 만든 양삼탕(兩蔘湯)이라는 것도 있다.

우리가 해삼을 회·볶음·찜·탕 등으로 먹는다면 일본 사람들은 해삼 내장으로 담근 발효된 젓갈인 고노와타(このわた·海鼠腸)를 즐겨 먹는다. 오늘따라 혈(血)을 길러주고, 신(腎)의 정기(精氣)를 보익(補益)하며, 정혈(精血)에 좋다는, 피와 살이 되는 해삼탕이 먹고 싶다.

201403호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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