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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패트럴 - 시립미술관 ‘문화공장오산’의 실험 

젊은 도시의 예술감성을 깨우다 

경기도 중소도시의 유일한 시립미술관 ‘도시체험 미술’로 인기몰이…개관 1년 만에 6만 명 방문해 새로운 지역 명물로 자리매김해

▎2년 전 개관한 문화공장오산이 체험형 미술교육과 전시회로 미술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경기 남부의 작은 도시 오산시에는 아주 ‘특별한’ 공장이 있다. 이곳에는 여느 공장과는 달리 굴뚝이나 기계 소리가 없다. 그런데도 늘 새로운 ‘제품’이 생산된다. 이곳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은 바로 ‘예술’이다. 경기도의 여러 도시 가운데 유일한 시립미술관인 ‘문화공장오산’을 말한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문화가 21만 인구의 중소도시 오산의 가치를 높이는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화공장오산이 문을 연 것은 2012년 9월. 미술관은 일자리나 수익 창출과는 거리가 먼 사업으로 꼽힌다. 꾸준히 예산을 들여야 하는데다, 아무리 돈을 많이 써도 생색이 잘 나지 않는 사업이기도 하다. 더구나 오산시는 1년에 쓸 수 있는 가용예산이 1천억 원 정도에 불과한 ‘영세 도시’인 터라 76억원짜리 미술관의 건립 구상은 애당초 무리라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미술관의 건립이 결정됐고, 미술관이 들어설 장소는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된 오산천 인근으로 결정했다. 오산시로서는 미술관 건립이 작지 않은 모험이었지만 개관과 함께 긍정적인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문화공장오산은 4월 말까지 봄기획전 ‘뜻밖의 풍경’ 전시회를 연다.
미술관 문턱 낮춰 젊은이들 발길 이끌어


▎문화공장오산의 히트상품인 체험형 미술교육 프로그램 ‘못 말리는 놀이터’ 시리즈는 미술관의 문턱을 크게 낮췄다.
가장 먼저 호응한 것은 이 도시의 젊은 엄마들이었다. 오산시는 전체 주민(20만6천여 명)의 평균 연령이 32.1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라는 이색 수식을 달고 있다. 출산율도 높아 경기도 화성시에 이어 전국 2위다. 문화공장오산의 테마는 이런 오산의 특색에 맞게 꾸려졌다. 관람용 작품을 내거는 전시회보다 체험형 미술교육에 방점을 찍었다.

4층으로 이뤄진 문화공장오산 1층은 체험교육실로 꾸몄다. 폐차를 갖다 놓고 아이들이 이곳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콩알을 이용한 놀이공간을 만드는 등 놀이와 미술교육을 병행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못 말리는 놀이터’ 시리즈로 시작한 체험전이 큰 인기를 끌면서 1년여 만에 6회째 체험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새 프로그램이 선보일 때마다 오산뿐만 아니라 인근 도시인 화성·평택에서까지 유치원·초등학교의 단체관람이 이어졌다. 당초 미술관에서 세운 전략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관람용 전시회도 오산이란 지역을 주제로 삼아 시민의 호기심과 관심을 이끌어냈다. 작가들이 1년 동안 오산시 곳곳을 누비며 담은 사진과 영상으로 전시회를 열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2012년 말에는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많은 시민이 어린 자녀들과 함께 미술관을 찾아와 지난 역사를 되새겼다. 작가들이 출품한 미완의 작품을 관람객이 함께 완성해가는 형식으로 진행한 ‘오산작업장’은 새로운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들이 놀이미술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어른들은 다른 층에서 열리고 있는 다양한 기획 전시회를 돌아볼 수 있다. 높게만 여겼던 미술관의 문턱이 이웃집처럼 낮아졌다. 장보러 나왔다가 잠시 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관람하거나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오는 길에 산책을 겸해 이곳에 들르는 식이다. 3월부터 미술관 바로 옆에 있는 문화예술회관에서 독립영화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는데 21편의 독립영화를 편당 3천 원에 관람할 수 있다. 관람객에게는 커피와 샌드위치 등을 무료 제공하고 감독과 대화 시간도 마련돼 있다. 지역사회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문화예술 체험기회다.

전시할 작품을 만들려고 오산을 찾았다가 아예 이곳에 정착한 이들도 있다. 4월 27일까지 열리는 봄 기획전 ‘뜻밖의 풍경’에 출품한 이성실(55) 화가도 그중 한 명이다. 홍익대와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오랜 외국 생활을 접고 지난해부터 문화공장오산의 창작스튜디오에서 작품활동을 한다.

이번 기획전에서 그는 수묵화와 추상화 기법을 섞어 오산의 풍경을 담아낸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는 “도시인 듯 도시가 아니고 시골인 듯 시골이 아닌 아담한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았다”며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수십 년 동안 생활하면서 얻지 못한 안식을 얻었다”고 말했다. 문화공장오산의 창작스튜디오에는 현재 3명의 작가가 이 작가처럼 상주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주변 상권도 살아나 지역주민도 ‘희색’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민들의 발길을 미술관으로 이끌면서 이 지역의 상권도 기지개를 켠다고 한다. 10여 년 전 이곳에 있던 대형 할인점이 문을 닫으면서 상권이 쇠퇴했던 곳인데, 문화공장오산이 들어선 뒤로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늘어나고 국내·외 미술 관계자들의 출입이 잦아지면서 지역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작가들이 나서서 주변 가게의 간판을 직접 디자인해주기도 하면서 주민과 거리감도 좁혀간다. 현재까지 문화공장오산을 다녀간 관람객 수는 6만 명을 넘어섰다. 1년여 만에 도시 인구의 30%에 가까운 사람이 이곳 미술관을 찾은 것이다.

미술관의 흥행에 힘입어 오산문화재단은 올해 경기문화재단 등 외부 기관으로부터 14개 사업에 6억 원가량의 사업비를 지원받는 행운도 얻었다. 베네수엘라의 취약계층 아동 오케스트라 교육 프로그램인 엘시스테마(El sistema)를 벤치마킹한 ‘2014 꿈의 오케스트라’ 운영, 이주여성과 한국인 여성들이 함께 동아리를 이뤄 공연을 꾸미는 ‘무지개다리 사업’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오산문화재단 강창일 대표이사는 “오산에는 젊은 세대가 많아 다른 지역보다 문화적 욕구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지역 문화를 바꾸고 도시를 활성화하는 사회적 역할을 다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산시의 새로운 문화체험 실험들이 벌써 결실을 맺어간다.

201405호 (201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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