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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기의 한시로 읽는 역사 | 뜻밖의 사랑이 새로운 길을 만든다 

“때가 와 좋은 배필을 만났으니 하늘이 혼인을 맺어줬다.” 

김풍기 강원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전북 남원에 있는 광한루는 소설 <춘향전>에서 이몽룡과 성춘향이 처음 만난 장소로 유명하다. 조선 세종때 황희가 유배 중 지은 광통루가 훗날 중건된 누각이 광한루다. 남원시는 이곳에서 매년 칠월칠석(七月七夕) ‘사랑이벤트’를 진행한다.



세상에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많은 책을 읽고 훌륭한 스승님에게 배우면서 평생을 살아가면 우리의 앎이 증가하는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공부하라고 하셨고, 집안 어른들 역시 공부를 강조하셨다. 내가 자란 곳이 산골이었지만 공부 이야기는 늘 내 주변을 떠돌곤 했다. 물론 요즘처럼 과외와 학원을 돌리거나 밤늦도록 자율학습을 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밖으로 떠돌라치면 언제나 어른들은 웃으면서 공부는 언제 하느냐며 한마디 하시는 걸 잊지 않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나는 세상의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10대는 물론 20대까지도 내 인생은 공부와 떨어진 적이 없었다. 물론 지금은 공부를 업으로 삼았으니 주변 사람들의 평균적 삶보다 훨씬 공부에 가깝게 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20대까지도 내 삶은 공부에 매여 있었고, 그런 것들이 내 마음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학원에서 석사논문을 쓸 무렵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본 자료를 읽고 필요한 내용을 정리한 뒤 논문 집필에 들어갔는데,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어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매일 도서관에 나가 시간을 보냈지만 논문 집필에 투입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논문 초고를 제출해야 하는 기한은 다가오고 진도는 나가지 않으니 지도교수를 뵐 면목이 없었다. ‘왜 나는 무수히 언론을 장식하는 교통사고도 당하지 않는 것일까’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기전체(紀傳體) 사서의 효시인 <사기>. 사기에는 중국 전설의 왕조부터 한 무제에 이르기까지 3천 년 역사가 기록돼 있다.
나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논문 제출기한을 피할 수 있는 적당한 이유가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시간은 흘러 논문은 이러구러 완성이 됐고 무사히 졸업은 했다. 그러면서 내가 가지게 된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도대체 나는 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 공부는 세상을 훨씬 더 많이 알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사랑의 행로가 인생을 수놓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는 노랫말이 있다. 예전에는 그저 그런 유행가 가사로 흘려 들었는데, 어느 날 그 내용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하더라도 잠시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

예지능력을 키우는 공부를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필부들에게 그런 능력은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나의 미래만 그렇겠는가.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사물과 사건으로 가득 차 있다. 그저 알고 있는 것이라고 추정만 할 뿐, 정확한 지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식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는 것은 남녀간의 사랑 문제를 거론하려는 의도에서다.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는 것부터 기묘한 인연이다. 어떻게 그들이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만난 것이며, 어떻게 사랑을 싹 틔워서 키워나간 것일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인간의 이성적 논리로는 도저히 해명할 수 없는 신기한 일로 가득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달콤한 밀어를 속삭이지만, 그 사랑이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니 마찬가지 이유로 그 사랑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사랑을 나누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오가는 마음조차도 모른다는 것이다. 오늘 사랑 가득한 눈길을 보내다가도 다음날 살벌하게 싸우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당사자들조차도 다음날의 싸움을 예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원한 사랑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되, 아무리 아름답고 영원할 것 같은 사랑도 육신의 죽음과 함께 끝난다는 것이다. 금생(今生)에서의 인연이 흩어지면서 사랑은 하나의 전설이 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그것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빛나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의 사랑은 수많은 사연을 품고 인간의 온갖 감정을 담으면서 만들어진다. 사랑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모를 수밖에 없다. 만약 사랑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할 수 있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문인과 현인들에 의해 사랑이 하나의 화두처럼 반복돼 다뤄질 수 없었으리라.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흥미로운 화젯거리를 제공해왔다. 우리나라만 해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여러 편 떠오른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 문화 속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사마상여(司馬相如, B.C.179~B.C.117)와 탁문군(卓文君)이 아닐까 싶다. 그 유명세에 걸맞게 조선 지식인들의 글 속에 자주 등장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기술한 기록은 역시 사마천의 <사기(史記)> ‘사마상여열전’일 것이다. 이 문헌에는 사마상여가 탁문군과 어떻게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됐는지, 그 사랑을 어떻게 얻었는지 기록돼 있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늘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낭만적인 눈길로 읽었지만, 어떤 사람은 사마상여의 불순한 의도가 작용했다고 생각했다. 어떤 쪽이든 두 사람의 사랑은 지식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천고에 좋은 글감이 됐다.


▎한국에 이몽룡과 성춘향, 중국에 사마상여와 탁문군이 있다면 서양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 체피렐리 감독이 1968년에 만든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더 이상 불행한 삶 살지 말기를…”

우리 누이 진실되고 말쑥하니 (吾妹眞且淑, 오매진차숙)/ 재주와 행실은 진실로 비길 데 없다. (才行固無倫, 재행고무륜)/ 아리따운 얼굴에 기구한 운명 (薄命紅顔勝, 박명홍안승)/ 비단 장막의 봄날 밤을 혼자 지냈지. (孤眠錦幕春, 고면금막춘)/ 때가 와 좋은 배필을 만났으니 (時來逢好匹, 시래봉호필)/ 하늘이 혼인을 맺어줬다. (天與結親姻, 천여결친인)/ 문군의 사랑을 잃지 말고 (莫失文君寵, 막실문군총)/ 끝내 그릇 씻는 분 모시려무나. (終幸滌器人, 종행척기인) - 이응희 ‘유종숙의 얼녀가 다시 좋은 배필을 얻었기에(柳從叔孽女得良匹再)’, <옥담사집(玉潭私集)>

이 시는 조선 중기 문인 이응희(李應禧, 1579~1651)의 작품이다. 그는 종실의 후손으로, 조상의 유언에 따라 벼슬길에 나아가기를 그만둔 처사였다. 재행이 뛰어났고 덕망이 높아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경기도 과천 쪽에 은거해 향로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세월을 보냈다. 상당히 많은 글이 있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되고 현재 남아 있는 글은 그의 <옥담사집> 등에 수습돼 전한다. 위의 작품 역시 여기에

수록돼 있다.

작품 내용은 아주 쉬워서, 읽기만 해도 어떤 상황인지 금세 파악될 정도다. 유씨 성을 가진 종숙(從叔)이 첩실에게서 얻은 딸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어디론가 시집을 갔다가 과부가 됐고, 다시 배필을 만나 재가하게 됐다.

이응희는 종숙의 얼녀가 재가하는 남편과 해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써서 축하의 말을 건넨 것이다. 참되고 현숙하며, 재주와 행실이 아름다운데다 어여쁘기까지 한 여인이 남편을 잃고 과부가 돼 쓸쓸히 지내다가 이제야 재가를 해서 남편을 맞게 됐다. 더 이상 불행한 삶을 살아가지 말고 오직 행복한 인연을 이어가라는 소망을 노래한다. 그 과정에서 이응희는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고사를 작품 전체에 배치하고 있다. 도대체 두 사람은 어떤 사랑을 했던 것일까?

사마상여는 중국 문학사에서 사부(辭賦) 문학을 대표하는 전한(前漢) 시기의 걸출한 문인이다. 사마천이 <사기열전>에서 기록한 바에 따르면 지금의 사천성 성도(成都) 출신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고 칼싸움을 좋아했다. 이 당시 문사들이 검술을 함께 연마하면서 호쾌함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지역 문사들 사이에 검을 차고 다니는 풍습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지역과 관련이 있는 이태백 역시 젊은 시절 칼을 차고 다니다가 결투도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사마상여가 어렸을 때부터 검술을 좋아했다는 기록 역시 그의 성격이 상당히 호방했었음을 알려준다. 게다가 조(趙)나라가 가지고 있던 화씨벽(和氏璧)을 진(秦)나라가 빼앗으려 할 때 그것을 온전히 지켜내 ‘완벽(完璧)’이라는 고사를 만든 주인공인 인상여(藺相如)를 흠모해 자신의 이름을 사마‘상여’라고 지었다는 기록을 통해서도 그의 성품이 호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효경제(孝景帝)를 거쳐서 양효왕(梁孝王)을 섬기다가 왕의 죽음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다. 집안은 가난했지만 먹고살 일이 별로 없었던 사마상여는 어느 날 인근 임공(臨邛)의 현령이었던 왕길(王吉)의 요청으로 그곳에서 지내게 된다. 왕길은 늘 사마상여에게 최고의 존경심을 담아 공손하게 대했고, 사람들도 자연히 사마상여를 공손하게 대하게 됐다.

임공에는 부호가 많았는데, 그중에 탁왕손(卓王孫)과 정정(程鄭)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지금 현령이 귀빈을 모시고 있다 하니, 우리가 잔치를 열어 그분을 초대합시다”라고 했다. 그들은 사마상여와 현령을 포함해 임공의 명사들을 초대해 잔치를 열었다. 사마상여는 병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왕길의 정중한 요청 때문에 잔치 자리에 나갔다.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자 왕길은 사마상여에게 거문고 연주를 부탁한다. 간청에 못 이긴 그는 두 곡을 연주했고, 사람들은 그의 솜씨에 감탄한다.

탁왕손에게는 탁문군이라고 하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막 과부가 돼 집으로 돌아와 지내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했던 그녀는 사마상여의 연주를 듣고 한눈에 반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나서 눈이 맞았고, 잔치가 끝나자 사마상여는 편지를 보내서 탁문군을 불러냈다. 마음이 맞은 두 사람은 성도로 야반도주했다. 이 사실을 안 탁왕손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딸이라서 죽이지는 않겠지만, 대신 한푼도 주지 않겠다”고 했다.

장애물을 넘어설 때 느끼는 희열

워낙 가난했던 사마상여였던지라, 성도로 사랑의 도피를 했지만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탁문군 역시 가난한 생활에 익숙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사마상여에게 임공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형제들에게 돈이라도 빌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은 임공으로 돌아가서 자신들이 타고 다니던 말과 수레를 모두 팔아서 술집 한 채를 산 뒤 거기서 술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탁문군은 술을 만드는 화로 옆에 앉아 술을 팔았고, 사마상여 자신은 천민들이나 입는 쇠코잠방이를 입고 하인들과 함께 허드렛일을 하기도 하고 설거지를 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탁왕손은 난감해졌다. 어쨌든 자신의 딸이 아닌가. 임공에서 이름난 부호의 딸이 술장사를 하는 것이 탁왕손으로서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탁문군과 사마상여에게 노복 100명, 돈 100만과 수많은 패물을 줬다. 그들은 이것을 가지고 성도로 돌아가서 토지를 사서 부자가 됐다.

사마천은 사마상여의 이후 행적을 길게 서술했지만, 뒷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우리의 관심사는 두 사람의 애정이기 때문이다. 후세 문인들은 이들의 애정행각에 대해서 서로 엇갈린 평가를 내린다. 순수한 사랑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마상여의 불순한 의도가 깔린 사건으로 보기도 한다.

당장 사마천만 하더라도 사마상여가 부호의 딸을 꾀어내려고 왕길과 짜고 벌인 사건으로 서술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사마상여가 과연 돈을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고 몰아붙일 수 있을까?

훗날 사마상여가 무릉(茂陵) 땅의 여자를 첩으로 맞으려 하자 탁문군이 <백두음(白頭吟)>이라는 작품을 지어서 헤어지자는 뜻을 전한다. 그러자 사마상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마음을 돌려 탁문군에게 돌아왔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 일화는 사마천의 기록에는 없고,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실려 전한다.

적어도 사마천은 사마상여가 탁문군의 배경이나 다른 조건 때문에 유혹을 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내가 보기에도 두 사람이 야반도주를 했을 때는 분명 사랑의 진정성이 내재해 있었을 것이다.

이응희는 사마상여와 탁문군이 술을 팔며 천한 일을 하고 살았을지언정 두 사람 사이는 행복했으리라는 마음으로 그 일화를 인용했다. ‘그릇 씻는 분’이란 바로 사마상여를 지칭한다. 재주 있고 풍채도 좋으며 사랑을 위해 과단성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맞아서 평생을 함께 늙어가는 것이야말로 종숙의 얼녀를 위해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축복의 말일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의 삶은 늘 우연과 놀람, 뜻밖의 일로 가득하다. 예측할 수 있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 앞에는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는가. 그 장애물 때문에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힘들어하며 때로는 번민하기 한다. 그러나 장애물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서는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장애를 극복하고 그것을 넘어섰을 때 느끼는 뜻밖의 희열을 맛보기도 한다.

장애야말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교직(交織)하는 가장 빼어난 베틀인 셈이다. 그 베틀을 통해서 비단처럼 아름다운 인간의 마음이 펼쳐지고,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위대함은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인생의 곡절을 멋지게 넘어서는 사랑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201408호 (201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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