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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인문학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엮음 휴먼큐브 | 1만9800원

세계 최고의 지성에게 배우는 인문 정신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라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Lemonde)>의 창간 이념은 언론이 지향해야 할 바를 가장 정확하게 정의한 문장으로 꼽힌다. <르몽드>의 자매지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르디플로’란 애칭으로 불린다)는 바로 그런 르몽드 정신에 충실하면서, 특히 국제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담론을 제시하는 권위지로 꼽힌다. 세계 51개 언어로 동시 발행되는 르디플로는 노암 촘스키, 에릭 홉스봄,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등 세계적 석학의 기고를 통해 다양한 의제를 깊이 있게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르몽드 인문학’은 그 결정체다. 지난 6년간 연재한 석학 30명의 기고문 40 편을 한데 모았다. 르디플로가 지향하는 인문학 정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필자들은 자본주의와 국가주의를 향해 ‘미제국주의’ ‘서구의 탐욕’ 등 거침없는 독설을 토해낸다. ‘르몽드 인문학’은 리더십 강좌나 상식 사전 같은‘스펙 쌓기용’ 교양서적이 아니다. 기업이 원하는 ‘주문형 인재’를 양성하는게 목적이 돼버린 대학을 점령한 ‘CEO 인문학’, ‘백화점 인문학’ 들이 철저히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르몽드 인문학>의 시선은 지구 반대편에 다다르고, 생각은 지구의 중심을 향해 깊이 내리꽂는다. 자본의 위기와 모순을 극복할 대안을 찾는 건 석학들만이 아닌,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풀어야 할 과제다. 주제가 묵직하지만 ‘글로벌 인재’를 지향하는 이들에겐 필독서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 이덕일 지음 | 만권당 1만8000원

식민시대에 머문 사학계를 향한 본격 비판

일제 강점기, 두 사람의 역사학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이고,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이고, 다른 한 사람은 “국사학계의 태두이자 최초의 근대적 역사학자”이다.

전자는 뤼순 감옥에서 쓸쓸히 옥사한 단재 신채호 선생에 대해 지난 정권기 한국사 관련 사업단장을 맡았던 학자가 내린 평가다. 후자는 이완용의 조카이자 대표적 친일사학자인 이병도에 대한 주류 역사학자들의 평가다. 해방 69년을 맞이한 오늘날까지 식민시대에 머물러 있는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 민족의 시선이 아니라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식민사관에 대해 역사학자 이덕일이 반기를 들었다. 이덕일은 한가람 역사연구소 소장으로 그동안 새로운 역사관으로 무장한 50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지은이는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독립운동가의 사관과 조선총독부의 사관을 비교하고, 사육신을 바꿔치기 하려 한 사건 등 일제와 식민사학자들이 그동안 벌여온 역사 왜곡 시도들을 폭로한다.

그리고 일제의 ‘한국사 축소, 왜곡’ 전략이 성공을 거둬 현재까지 주류 역사관으로 포장된 식민사관 옹호론자들에게 공개적인 토론을 제안한다. 그동안 식민사관에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에게 ‘재야’ 꼬리표를 붙여 외면하는 주류 식민 사학자들의 비열한 작태와 역사학계의 실상을 마주하는 순간, 식민사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총성 없는 독립전쟁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유리감옥

부제는 ‘생각을 통제하는 거대한 힘’이다. 저자는 자동화의 역설을 경고한다. 편리함 뒤에 숨겨진 통제와 인간이 배제된 사회의 위험성을 말이다. ‘도구가 주는 즐거움을 누리던 인간은 오늘날 세상의 주인인가,노예인가?’라는 저자의 질문 앞에 서면,<1984>에서 ‘빅브라더’를 통해 통제된 미래를 그린 조지 오웰의 섬뜩한 예언이 이미 실현됐음을 깨닫게 된다. 잠시라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으면 불안해하는 현대인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니콜라스 카 지음 | 이진원 옮김 | 한국경제신문 | 1만6000원


파체

수원 화성과 조선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사랑과 음모, 정치와 종교 등 시대를 관통한 거의 모든 가치를 담았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성인 수원 화성에 깃든 정조의 애민정신과 각종 시설물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이 흥미롭다. ‘눈물을 거두다’란 뜻의 한자어 파체(破涕)와 ‘평화’를 뜻하는 라틴어 파체(Pace)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간결한 필체로 풀어내는 이야기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이규진 지음 | 책밭 | 1만4000원


옛길의 유혹, 역사를 탐하다

신문사 편집기자에서 여행작가로 전향한 저자가 옛길에 얽힌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강원도 원주의 싸리재에는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길에 오른 단종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가 녹아 있다’는 동양학자 조용헌의 추천사처럼 책 속에는 1만리 길과 함께 1만 권의 책만큼 많은 역사가 펼쳐진다. 독서와 산책하기 좋은 가을날, 서재 한켠을 장식하기보다 여행자의 배낭 속이 더 어울리는 책이다.

박정원 지음 | 내안에뜰 | 1만5000원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가 <도쿄 기담집> 이후 9년 만에 단편집을 내놨다. 일본에서 예약판매로만 3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려 화제를 모았다. 이 책 역시 하루키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상실’을 모티프로 삼았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여자를 떠나 보낸 남자들, 혹은 떠나보내려 하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남녀의 깊은 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만3800원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

제목 대로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육두문자가 난무한다. 분명 욕인데 충청도 사투리와 뒤섞여 은근한 웃음을 준다. 소설은 아닌데 단락마다 펼쳐지는 에피소드가 자못 흥미롭고, 산문집인데도 리듬감 있는 문장이 시처럼 감칠맛이 난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보령 촌년’ 저자가 ‘엄니’의 구수한 욕이섞인 어록들을 일기처럼 정리했다. 아옹다옹하며 삶의 고개를 넘어가는 모녀의 생활기를 읽다 보면 억척스럽게 자식을 키워낸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절로 떠오른다.

박경희 지음 | 서랍의날씨 | 1만2000원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

25년째 중앙일보 기자로 살며 10년 가까이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온 저자가 2010~2011년에 연재했던 칼럼 ‘미래세대를 위한 세상사 편력’을 다듬어 출간했다. ‘막막한 청춘의 바다 앞에 선 그대에게’란 부제처럼 다양한 우화와 일화들을 통해 인생에 참으로 필요한 ‘정신승리’의 길을 제시한다. 작은 주제들을 짧은 강의 형식의 글로 풀어내 가볍게 읽으며 명상으로 마음을 다잡기에 좋을 듯하다.

이훈범 지음 | 올림 | 1만5000원


일본 내면 풍경

1590년 조선통신사 김성일 부사는 일본에 다녀온 뒤 ‘일본은 없다’고 말한다. 2년뒤 조선은 무방비 상태로 임진왜란에 휩쓸린다. 일본을 모르거나, 외면하고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견하기 힘들다. ‘굵고짧게’ 사는 한국, ‘가늘고 길게’ 연명하는 일본. 저자는 일본의 강점이 여기에 있다고 단언한다. 20년간 일본을 연구해온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일본의 내면을 낱낱이 파헤쳤다.

유민호 지음 | 살림 | 1만5000원


공허한 십자가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다. 20년 전 딸이 살해되는 아픔을 겪은 주인공이 별거 중인 아내마저 살해됐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살해범은 ‘우발적’이란 자백으로 사형을 면하고, 주인공의 상처는 깊어진다. 사형제도와 속죄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저자의 백미인 논리적 추리 과정이 인상 깊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1만3800원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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