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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 ‘자초한 멸망’의 책임자는 누구? 

일본 육군대학 출신 참모들이 경영한 군국 일본의 초상… 그 어처구니 없는 광기에 대한 신랄한 조롱과 비판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메이지 유신에서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일본역사는 다이내믹하다. 그 ‘악마적 역동성’에는 강렬한 에너지가 내재해 있고, 그 에너지의 중심에 다양한 군상이 존재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천왕, 군부의 지도자,군부에 조력한 정치인 집단이 떠오른다. 한 단계 더 압축해 군국(軍國) 일본의 ‘코어 그룹’을 상정한다면? 그 세력은 바로 ‘대본영 참모’세력이다.


[대본영의 참모들] 위톈런 지음·박윤식 옮김 나남 | 2만2000원
일본인들은 늘 자기만이 옳다고 하는 사람, 기고만장해서 상사를 능욕하고 그러면서 계속 실수와 패착을 거듭하는 사람을 가리켜 ‘대본영 참모’라 부른다. 비슷한 표현으로 ‘관동군’이란 말도 있다.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일 전면전으로 치닫게 한 관동군의 통제받지 않는 무한질주의 속성을 일컬음이다.

‘대본영 참모’, ‘관동군’이란 말은 우리말로 ‘꼴통’이란 뉘앙스를 갖는 표현으로 일본 사회에 아직도 두루 쓰인다. 전쟁시기 관동군은 일단 일을 저지르고 나서 내각과 정치권,궁극적으로 천황의 추인을 받는 행태를 반복했다. 바로 이 관동군을 후원한 핵심세력이 바로 ‘대본영 참모’들이었다.

그렇다면 이 ‘대본영 참모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는가? 일본통 중국인 저자 위톈런은 전쟁을 일으키고, 지휘했으며, 패전을 자초한 이른바 ‘황군의 엘리트’로서의 ‘대본영 참모’의 초상을 치밀하게 복원한다.

일본이 근현대사에서 수행한 전쟁의 책임론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결국 일본 군부야말로 전쟁을 기획하고 도발했으며, 그 전쟁을 수행한 장본인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 군부 내 최고 핵심을 이루는 집단, 즉 육군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참모들의 행태가 전쟁 책임규명의 가장 중요한 단서라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일본군의 참모는 일종의 자격이었고, 일본 육군 중에서 육군대학 졸업생만이 참모가 될 수 있었다. 1882년 창립된 일본 육군대학은 1945년 마지막 60기 120명을 배출하기까지 60여 년간 졸업생이 3천여 명에 불과했다. 매년 평균 50명 정도만이 참모가 될 수 있었던 셈이다.

대본영 참모 출신의 상징적인 인물이 도조 히데키다. 1941년 10월 일본 총리에 취임한 그는 내무대신, 육군대신, 참모총장을 겸임하는 최고의 권력자, 최악의 전쟁책임자가된다. 도조를 뒷받침했던 군부의 거대한 세력의 뿌리가 바로 ‘대본영 참모’들이었다.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일본군부의 ‘전략적 지리멸렬’은 대본영 참모의 맹목과 광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덕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그들은 그릇된 길을 걸었다.

일본의 근현대 전쟁사는 패망을 향해 질주했던 ‘악의 오디세이’다. 조선에서 중국, 인도차이나와 미얀마, 필리핀을 거쳐 적도를 넘어 인도네시아와 뉴기니까지 전선을 확장했다. 그 어처구니 없는 광기에 대한 비아냥에 가까운 비판이 통렬하다. 끝까지 정독한 독자들은 이해하게 된다.

일본군부의 운명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그들이 간 길은 말리고 싶어도 말릴 수 없는 ‘자초한 멸망’이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 번역돼 국내에 출간된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의 평전을 더불어 읽어보는 것도 좋다. 기전체와 편년체로 일본제국 패망사를 일별하는 방법이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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