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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기의 한시로 읽는 역사 | 돈으로 사는 벼슬, 나라를 좀먹다 

이곡의 ‘서저(西邸)’를 통해 돌아보는 관직을 사고파는 세태… 상식이 비정상, 비정상이 상식이 되는 정치권의 관행은 오늘도 계속된다 


고려 무신 집권기에는 매관매직이 성행했고 그만큼 백성의 생활은 궁핍했다. 2012년 MBC 드라마 <무신>에서 천민 출신으로 최고 권력자에 오른 김준(김주혁 분)의 맞수로 열연했던 최양백(박상민 분)이 백성들의 공역(工役)을 감시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 임용을 위한 청문회를 보노라면 슬며시 분노와 함께 절망 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더러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주 있다.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사소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의 잘못을 보면 정말 모르고 저런 짓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강하게 일어난다. 어쩌다 속도위반으로 교통범칙금을 낸 것도 민망한 일인데 그들에게는 그 정도는 하찮은 일이다. 돈을 벌기 위해 남의 이름으로 토지를 매입하거나 주소를 거짓으로 옮긴 것은 예사로운 일이고, 알량한 권력으로 힘없는 사람들을 핍박한 일도 부지기수다.

표절을 일삼고도 멀쩡한 얼굴로 관행이었다는 둥 제자들의 도움을 받았을 뿐 표절은 아니라는 둥 별 해괴한 소리를 다 쏟아낸다. 그런 변명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온갖 더러운 일은 손가락으로 다 꼽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상식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이 상식이 되는 사회가 있다면 아마도 정치권이 가장 유력한 곳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더욱더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느 시대에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욕망은 끝이 없었고, 그 욕망을 실현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았다. 욕망 위에 세워진 권력은 늘 민중의 피와 땀을 기반으로 형성됐으며, 그들을 억압함으로써 자신들의 욕망과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했다.

이따금 민중이 반란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역사적으로 그러한 일이 자주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역사서에서 읽는 민중의 반란은 엄청난 역사적 시간을 감안하면 몇 번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성공한 경우도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민중의 반란이 덧없는 열정에 불과한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의 열정과 죽음을 불사한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추악한 욕망을 뒤로 숨기거나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기도 했고 민중을 위한 정책을 통해 이익을 나누려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과 욕망을 함께 공유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에게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도 여전히 언론에서는 주기적으로 낙하산인사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곤 한다. 권력을 잡고 나면 자기 주변의 인물들에게 공로를 치하하면서 약간의 배려를 하는 것이 바로 낙하산인사다.

무엇에 대한 공로인가. 그건 철저히 자신이 권력을잡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 기여한 공로다. 그건 신의(信義)도 아니고 의리도 아니다. 그냥 추악한 권력내부에서 일어나는 더러운 거래에 불과하다. 그것을 신의나 의리와 같은 도덕적 덕목으로 포장하고 싶을지언정 속내는 결코 도덕적이지 않다.

사정이 이러하니 청문회에서 뻔뻔한 얼굴로, 마치 자신과는 전혀 관계 없다는 듯이, 심지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변명하는 그들을 보면서 내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이 분노와 절망은 도대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망연하기만 하다.


이곡은 ‘서저(西邸)’를 비롯해 권력자들을 비판하는 시문을 여러 편 남겼다. 고려사에는 “이곡이 어려서부터 남달랐으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쓰여 있다.

매관매직 성한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어느 시절이나 뒷거래는 있었다. 사실 뒷거래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뒷거래라는 말을 하는 순간 뭔가 음습하고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남에게 보이기 꺼려지는 거래는 많은 경우 불법이거나 비공식적인 경로로, 원하는 바를 서로 이루려는 목적에서 행해진다.

그들은 늘 비밀을 지키기를 원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 그 거래는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자신을 위협하는 비수로 돌아오기 일쑤다.

돈을 주거나 어떤 대가를 치르고 나서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잡으려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 대부분이 그 직위에 걸맞은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조선 말기에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가문은 늘 문전이 북새통을 이뤘다. 어찌어찌 해서 약간의 줄만 대면 작은 관직이나마 얻을 수 있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마련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돈을 준비해서 경향 각지의 인사가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겨우 문객 노릇을 하면서 이제나저제나 권력자를 만나 슬며시 재물과 귀한 물건을 바치면서 청탁하려는 사람들은 그 집 하인들에게까지 괄시를 받으며 행랑채 한켠에 자리를 잡고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자신이 가져온 돈을 사기당하기도 하고 돈을 바친 뒤에 원하던 벼슬을 얻지 못하고 쫓겨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런 일이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것도 한심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렇게라도 벼슬을 하려는 인간들의 능력은 더 한심했을것이다. 돈을 받고 어쩌다 시골에 고을살이를 간다해도 얼마 뒤에는 다시 돈을 바친 사람에게 밀려서 벼슬자리에서도 쫓겨나기 일쑤였다.

고을살이를 언제까지 할지 알 수 없으니, 그 자리에서 밀려나기 전에 자신이 바친 재물을 최대한 벌충해야 할 뿐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남겨야 벼슬을 산 보람이 있었다. 그들이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바로 백성을 괴롭혀서 빨리 투자금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고을의 상황에 대해 파악할 필요도 없었고 백성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이런짓이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데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닌가. 이런 인사들에게 무슨 능력을 바랄 것이며, 백성을 위한 목민관이 되기를 바랄 것인가.

역사를 보면 매관매직이 성행하는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무신들의 반란 이후 고려는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걷는다. 설상가상이라고 거기에 더해 몽고의 거센 침략을 받아 온 나라는 철저히 파괴됐다. 왕을 비롯한 지배층은 강화도로 피난을 간 뒤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결국 몽고에 항복한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해서 완전히 그 지배 아래 있었다. 하급 관료들은 권신들이나 왕에게 줄을 대려 하고, 권신들은 원나라 권신들에게 줄을 대려 했다. 그러는 사이에 백성의 삶은 나날이 황폐해갔고 나라는 점점 기울었다. 그런 상황에서 고려를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자격미달 관리

고려 말의 관료이자 문인인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이 쓴 ‘서쪽 저택(西邸)’이란 시에 그러한 상황이 표현돼 있다.

賣與公侯及爾奴(매여공후급이노) 종놈들에게도 높은 벼슬 팔아먹으니/ 無錢此日盡窮途(무전차일진궁도) 이즈음 돈 없는 게 가장 궁한 삶./ 可憐貧者尤爲害(가련빈자우위해) 가련하구나 가난한 자 더욱 손해라/ 始到官來得倍輸(시도관래득배수) 관리돼 오자마자 두 배나 더 바쳤다지.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8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 후 인사하고 있다.(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 없음)
이 시는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절을 살았던 이곡의 작품이다. 이곡은 고려 말 삼은(三隱)으로 불리던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부친으로 원나라에서 시행하는 과거에 급제했으며, 후에 고려로 돌아와 정당문학(政堂文學)이라는 고위 관직을 지냈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한국문학사에서는 <죽부인전(竹夫人傳)>이라고 하는 가전문학을 남긴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귀국 후 관료로 근무하던 중에 백성의 삶이 피폐해진 것을 보면서 시대를 걱정하고 권력자들을 비판하는 시문을 다수 남기기도 했다.

태평성대라 하더라도 일반 백성의 살림살이가 힘들었을 텐데, 전란의 뒤끝이요 불안정한 정치 아래에 살아가는 백성들이야 오죽했을까. 그런 현실을 만든 가장 핵심적인 사람들은 바로 관리들이다.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정작 관리로서 본분을 잊어버린 인간들, 그들이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주범들이다.

관리들이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서 관직을 팔아먹는 세태를 노래하고 있는데, 이는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관직에 진출하면 안 되는 함량미달의 인물들에게 벼슬을 주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후한(後漢) 영제(靈帝) 때의 일이다. 대중없는 정치로 국정은 혼란에 빠지고 백성들은 아우성을 치는데, 영제는 오직 환락과 자신의 안일만을 걱정할 뿐이었다. 국고가 모두 탕진돼 더 이상 쓸 돈이 없자 황제는 드디어 관직 장사를 시작했다. 2천 석의 봉록을 받는 벼슬이면 2천만 전, 3천 석 벼슬이면 3천만 전을 받았다.

돈을 받는 황제도 좀 꺼림직했던지 덕망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면 반으로 할인해주기도 했다. 지방의 수령 자리는 고을의 빈부에 따라 가격의 차이를 뒀고, 가난한 선비의 경우에는 먼저 부임한 후 나중에 두배로 납부토록 외상으로도 매매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황제의 뜨락은 장사치들로 북적거렸다. 이처럼 추악하고 더러운 매관매직을 하던 현장이 바로 ‘서쪽 뜰에 있던 저택’이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또 있다. 진(晉) 무제(武帝)때의 일이다. 당시 청렴하기로 이름났던 유의(劉毅)라는 관리가 있었다. 어지러운 시대여서 황제는 자주 바뀌었고 나라의 건국과 멸망이 수시로 나타나던 때였다. 그만큼 자신의 의지와 신념으로 세상을 살아가 기가 어려웠고 더욱이 벼슬을 하기는 더욱 힘들었다. 당시 무제는 유의의 강직함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관직을 내리고 궁중으로 들어오게 했던 것이다.

하루는 황제가 남교(南郊)에서 예를 행한 뒤 유의에게 묻는다. “그대는 짐을 한나라의 어떤 황제에게 비교할 수 있겠소?” 그러자 유의는 한나라 환제(桓帝)와 영제와 비슷하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황제는 “내가 비록 옛 사람보다 못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자신을 잘 이겨내고 정치에 전념을 하고 있는데다가 천하를 하나로 통일했소. 나를 환제와 영제 수준으로 평가한다면 너무 심한 일이 아니겠소?” 하고 말한다.

그러자 유의는 이렇게 대답한다. “환제와 영제는 관직을 팔아서 돈이 들어오면 국고로 넣었지만, 폐하께서는 관직을 팔아서 돈이 들어오면 폐하 개인의 주머니 속으로 넣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환제 및 영제와 폐하는 거의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 말에 황제는 웃으면서, “환제와 영제 시절에는 그대와 같은 말을 듣지 못했는데, 지금 나는 강직한 신하가 있소이다. 그러니 그들과 나는 다르지요” 하고 말했다고 한다.[<진서(晉書)> 유의전(劉毅傳)에 나오는 일화다.] 이런 일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환제와 영제 때의 매관매직은 역사에서도 유명한 일이었다.

솥의 발이 부러지면 그 안의 죽이 쏟아진다

어떻든 이곡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보면서 후한의 환제와 영제 시절 매관매직을 위해 뒷돈을 받아들이던 서쪽 저택 즉 ‘서저’를 떠올렸다. 그냥 권력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매관매직을 행하는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돈을 내기만 하면 종에게도 벼슬을 주는 세상, 이게 어찌 정상적인 사회란 말인가. 게다가 그들은 관리로 부임하자마자 자신이 그 자리에서 잘리지 않으려고 두 배나 더 많은 돈을 바쳐야 했고, 그 때문에 백성은 더 큰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절족복속(折足覆餗)’이라는 말이 있다. 솥을 지탱하는 발이 부러지면 그 안에 들어 있던 죽이 쏟아진다는 말이다. 솥발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음식물이 많이 들어있으면 발이 부러지게 되고, 결국은 그 속에 들어있던 음식물을 못 먹게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주로 소인(小人)이 자기 능력에 버거운 직분을 맡게 되면 종국에는 나라를 뒤집어엎게 된다는 의미로 쓰이곤 한다.

수령 된 자들이 이 모양이니, 제대로 고을을 다스릴 리 만무하다. 이익 챙길 궁리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니 자신의 능력에 터무니없이 버거운 벼슬이 얹혀진 셈이다. 허약한 다릿발 솥에 많은 양의 음식을 담으면 다릿발이 부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령이 허약하면 백성을 돌보는 무거운 임무를 어찌 담당하랴. 백성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수령이 어찌 수령일 수 있단 말인가.

매관매직이 어찌 옛날 책에서만 나오는 일이랴. 어느 시대나 인간의 욕망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면 늘 매관매직이 성행했다. 관직이란 늘 그 권력만큼의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 이익을 개인적으로 챙기는 사람이라면 매관매직이 아니라 그보다 더 한 일도 할 것이다.

우리는 요즘도 매관매직에 준하는 더러운 짓을 접하곤 한다. 선생이 되려고 뒷돈을 제공하고, 사업을 원활하게 해서 이익을 내려고 관련 공무원들에게 뒷돈을 주며, 자신의 범죄 사실을 덮으려고 몰래 돈을 뿌리고, 조금이라도 더 큰 권력을 누리려고 뒷돈을 준다.

꼭 돈을 제공하고 관직을 얻어야만 매관매직이라 할 수 없다. 권력자 주변에서 온갖 일들을 다 해주고 그 대가로 작은 관직을 얻었다면 그 역시 매관매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언론에 심심찮게 거론되는 낙하산 인사 역시 넓은 범위에서 볼 때 당연히 매관매직에 속한다. 이런 일들이 겉으로는 대의명분을 걸고 법의 범위 안에서 행해지는 것처럼 포장되지만, 주변 사람들이 혹은 이 나라 국민들이 모두 눈이 먼 것이 아니라면 정확하게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자기 재능에 넘치는 벼슬을 하려고 욕심을 내면, 재능과 직책 사이의 거리를 돈으로 메우기 마련이다. 세상에 돈이 개입하고도 순조롭게 일이 처리되는 법은 없다.

평범한 국민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정치자금 문제로 시끄러운 이즈음, 나는 내 능력에 맞는 자리에 앉았는가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나라가 기우뚱해지는 법이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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