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토 에세이 | 감포 앞바다 문무대왕릉의 신비 

1330년 동안 동해 지켜온 ‘해룡’… 후세 사람들의 신앙 상징으로도 자리매김 

글·사진 주기중·오상민 월간중앙 기자
한 겨울 경주 감포 앞바다는 매섭다. 강풍과 함께 2∼3m에 이르는 큰 파도가 수중릉인 문무대왕릉(사적 158호·대왕암으로 불림)에 부딪치며 하얀 포말로 부서진다. 그런데 파도가 아무리 강해도 잔잔한 물결을 유지하는 곳이 있다. 문무대왕의 수중릉으로 추정되는 바위 안쪽 공간이다. 바위가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거센 파도가 대왕암에 부딪치지만 문무왕의 수중릉이 있는 오른쪽 바위 안쪽은 잔잔한 물결을 유지한다.
문무왕은 제위 21년 만인 서기 681년 승하했다. 왕은 생전에 조서를 통해 자신이 죽으면 불교의식에 따라 화장하고 장례는 검소하고 간략하게 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신라 왕실 최초의 화장이었다.

문무왕이 누구인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들로 고구려를 평정하고 당나라를 몰아내 삼국통일을 이룬 절대군주다. 산만한 왕릉을 조성해 삼국통일의 위업을 기려도 모자랄 판에 화장이라니…! 당시 신라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문무왕은 요즘 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한 인물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문무왕은 자신의 유해를 동해에 묻어달라고 했다. 죽어 해룡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대왕암이 있는 감포 앞바다는 역사적으로 용오름이 자주 관측된 곳이라 전해진다. 문무왕은 용의 기운이 있는 이곳에서 ‘해룡’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호국풍수를 구현하려 한 것이다.

문무왕은 서거한 지 1330년이 지났지만 후세 사람들에게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대왕릉이 있는 경주 봉길리 바닷가에는 1년 내내 무속인들이 해룡으로 승화한 문무대왕과의 ‘접신’을 위해 몰려와 촛불을 밝힌다. 무속인뿐만이 아니다. 새해가 되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와 대왕암을 향해 제례를 올리며 소원을 빈다. 문무대왕릉은 액운을 쫓고 소원을 비는 기도처가 됐다. 우리 역사 속 인물 중에 죽어서 신‘ 앙’이 된 지도자가 또 있던가!

- 글·사진 주기중·오상민 월간중앙 기자




▎대왕암 주변에는 갈매기가 많다. 제를 올리는 사람들이 먹이를 주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아 문무왕 수중릉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빌고 있다.





▎무속인들이 주술 도구를 들고 용왕신과 접신을 시도하고 있다.





▎해질녘 노을빛과 오징어잡이 배의 조명이 어우러져 대왕암 주변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문무대왕 수중릉 너머로 달이 뜬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다.


201502호 (2015.0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