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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의 ‘생명예찬’② 재생과 진화의 생물적 본질 - 나를 깨트려다오, 위대한 바람이여! 

당대에 영세불변의 사회를 구축하겠다는 것은 ‘치명적 오만’… 새로운 세대가 활동할 무대 비워줘야 재생은 이뤄진다 

죽음이 두려운 사람에게 과학은 손을 내밀지 않는다. 몸으로부터 독립된 넋은 없다고 단언한다. 인류는 죽음과, 그것에 맞닿은 생식을 통해 영속한다. 과학이 말하는 죽음의 진리는 그래서 준엄하면서도 낙관적이다
산책길 따라 말라버린 풀 줄기가 겨울 바람에 떤다. 아직 꿋꿋하고 유연해서, 비탈을 타고 오르는 북서풍을 견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감탄하는 눈길로 흔들리는 풀 줄기를 새삼스럽게 살핀다. 이 우주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당연히 몸이 튼튼해야 한다. 그래서 생명이 빠져나가도, 말라버린 몸은 한동안 꿋꿋이 버티는 것이다. 산비탈엔 열 몇 해 전 모진 바람에 쓰러진 아카시아나무 둥치들이 아직 옛 모습을 지니고 누웠다. 누르스름 한 이끼를 옷으로 덮고 마른 덩굴을 허리띠로 두른 모습이 의젓하다.

목숨이 다한 몸은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 부지런한 벌레와 세균의 도움을 받아 낡은 몸은 차츰 분해되어 흙을 기름지게 한다. 덕분에 보다 많은 후손이 자란다. 지금 지구를 덮은 거대하고 다양한 생태계는 짧은 세월에 생긴 것이 아니다. 짧은 목숨을 지닌 우리로선 상상하기도 힘든 세월에 꾸준히 자라난 것이다.

비록 소멸의 긴 여정에 올랐어도, 마른 풀 줄기는 정말로 죽은 것이 아니다. 작년에 날리던 홀씨를 기억하는가, 풀은 묻는다. 봄이 오면, 씨는 싹터서 자라나리라. 저 풀은 자신이 남긴 씨를 통해 목숨을 이으리라. 생명체는 그런 재생(regeneration)을 통해서 목숨을 잇는다. 이 산비탈을 덮은 초목은 자신의 궁극적 야망을 이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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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호 (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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