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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포커스] 종전(終戰) 70주년과 아베 총리의 오판 - 디플레 수렁 일본경제가 아베의 가장 큰 적(敵) 

종군위안부 한국에 배상하면 중국 측 배상 요구 빗발칠 것 우려… ‘무라야마 담화’ 무력화하는 ‘8·15 아베 담화’ 구상 우익 이론가들 검토 중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부편집장
아베의 꿈은 자못 거대하다. 20세기 동아시아의 일본 패권을 21세기까지 연장하려는 야망이다. 거대한 국가부채, 노령화 저출산으로 휘청거리는 일본 경제는 아베의 야망을 뒷받침하기 힘겹다. 이미 구조적으로 실패를 잉태하고 있는 아베의 동북아 패권 발상. 그는 왜 슬픈 날갯짓을 계속하는가?

▎2014년 10월 베이징에서 열린 APEC 총회에서 시진핑 주석(오른쪽)이 아베 총리의 손을 잡은 채 취재진을 향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 3월 1일. 한국에서는 광복절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3·1절이지만 일본에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요일이었다. 이날 오후 장대 같은 비를 뚫고 한 모임에 참석한 나는 예전에 알고 지냈던 아베 신조(安倍 晋三) 총리의 측근과 우연히 조우했다. 내가 “괜찮으시면 끝나고 식사라도 하시죠”라고 권유하자 그는 “한국 요리만 아니라면 좋네”라고 대답했다.

그는 특별히 그날이 3·1절이라서 한국요리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식사 후의 대화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3·1절에 대해 전혀 몰랐다. 아마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이상하게 아베 총리 측근 중에서는 매콤한 한국요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유일한 예외는 아베 총리 본인과 그 부인인 아키에(昭O) 씨다. 아베 총리 부부는 비공식적으로 외식하는 날은 거의 대부분 한국식당을 찾는다. 총리는 야키니쿠 불고기를 특히 좋아하고 부인은 김치와 막걸리를 무척 좋아한다.

이야기가 잠깐 다른 길로 빠져버렸는데 원점으로 돌아오면 결국 3·1절 날 저녁 나는 아베 총리 측근과 초밥을 즐기면서 정치담화를 나누었다. 이때에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넌지시 물어보았다.

“오늘은 한국에서는 3·1절이라고 하는 중요한 기념일입니다. 1919년의 3월 1일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 대규모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을 기념하는 공휴일입니다. 원래는 2월 8일에 도쿄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궐기해서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는데 당시의 대회장이었던 간다진보초(神田神保町)의 한국YMCA에는 아직도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는 생선회를 한 조각 집어먹으며 무심하게 “아아 그렇군”이라며 맞장구를 치며 듣고 있었다. 계속해서 나는 그의 잔에 정종을 따르면서 핵심질문을 했다.

“그 3·1절 기념일인 오늘 서울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기념식 전 연설에서 또다시 종군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며 일본을 비난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2년간 일관되게 종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사항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머지않아 6월에는 일한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게 되고, 8월에는 종전 70주년을 맞이합니다. 아베 정권으로서는 한국 측이 최우선 과제로 삼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갈 생각일까요?” 생선회를 집던 그의 젓가락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가만히 나를 응시한 후 목소리를 낮추어서 말했다.

“4월부터 시작되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편성된 올해 예산은 16억500만 엔이다. 그에 비해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드는 예산은 얼마 정도라고 생각하나? 위안부 한 사람에 대한 보상액수를 500만 엔으로 친다면 50명에게 교부해도 2억5000만 엔에 지나지 않는다. 납치문제 대책을 위한 1년 예산의 6분의1 이하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럼 왜 그렇게 간단한 일을 아베 정권은 할 수 없는 것일까? 아베 정권은 원칙상 1965년의 일한 국교정상화로 ‘모든 배상문제는 끝났다’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확실히 배상문제라고 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예를 살펴보아도 가해국이 피해국의 요구에 타협해 가다 보면 끝없이 요구를 들어주게 되어버린다. 그러나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보자면 아베 정권이 정말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한국측이 끝없이 보상을 요구해오는 것이 아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박근혜 정권을 신뢰하고 있다. 사실 우리들이 정말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나는 다소 멍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것은 국제관계상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 한국 측은 한·일관계를 순수한 쌍방관계로서 인식하고 있는 반면 일본 측은 일·한관계를 생각할 때에 항상 ‘중국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라는 것을 예측하면서 진행시키고 있다. 그런데 아베 정권이 한국의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새롭게 총 2억5천만 엔의 보상을 지불한다고 해보자.

위안부 문제 일본 정부 속사정은 중국?


▎일본인 목사 노무라 모토유키가 2012년 2월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비에서 종군위안부 사건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울밑에 선 봉선화’를 플루트로 연주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중국 측을 의식해 한국 정부의 배상 요구를 애써 외면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면 그 즉시 중국에서 몇 백 몇 천 명의 자칭 종군위안부들이 입후보할 것이 뻔하다. 물론 한국과는 달리 중국의 경우는 단지 돈을 원하는 가짜 종군위안부들일 것이다. 그러면 중국 정부는 이때다 싶어 거국적으로 중국인 종군위안부 문제를 온 세계에 이슈화하기 위해 선전하기 시작할 것이 확실하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난징(南京) 대학살 피해자가 30만 명 이상이라고 주장하며 작년 말에는 대대적인 행사를 거행하면서 난징에서 일본을 비판하는 연설을 퍼부은 지도자다. 우리 일본은 그러한 시진핑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때문에 종군위안부 문제를 한국과 안이하게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납득이 될 듯 말 듯한 대답이었지만 어쨌든 일본이 일·한관계를 생각할 때 항상 한·일·중의 관계를 의식한다는 것은 이해가 갔다. 2천 년 가까운 일본 외교사를 뒤돌아보면 일· 한관계에는 반드시 중국이 억지로 끼어들고 또 중·일관계에는 반드시 한반도가 억지로 포함되어 왔기 때문이다. 고대사에서는 서기 663년에 일·한의 다툼을 발단으로 일본과 중국이 최초의 대규모해전을 치렀다. 근대사에서는 동학당의 난을 둘러싼 일·한의 옥신각신으로 1894년 청일전쟁이 시작되었다.

2015년은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해다. 과거 2년간 동아시아에 일어난 일을 총괄하면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대립을 가장 핵심적인 사안으로 볼 수 있다. 일본으로서는 19세기 후반의 메이지 유신과 함께 동아시아의 패권은 중국에서부터 일본으로 옮겨졌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20세기 전반에는 군사력으로 동아시아를 지배했고 20세기 후반에는 경제력으로 동아시아를 지배했다.

그런데 거품경제의 붕괴 뒤 ‘잃어버린 20년’의 시기에 일본은 크게 후퇴해버렸다. 그 틈을 비집고 이웃나라인 중국이 크게 부상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2012년 말에 발족한 아베 정권은 중국을 따돌리고 일본의 과거 영광을 되찾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년 말에 치러진 총선거의 캐치프레이즈도 “일본을 되찾는다”로 한 것이다.

그 때문에 아베 총리로서는 2015년이라고 하는 해를 ‘일본 부활의 해’로 남기고 싶다. 바꿔 말하면 “종전 이후 70년의 긴 세월이 지난 지금 일본은 이미 패전국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한편 중국의 시진핑 정권은 정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외치는 역사관이라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중국은 고대부터 세계 최대의 문명대국이었다. 그러나 1840년의 아편전쟁에서 영국과 미국에 패전하면서 굴욕적인 100년이 시작되었다. 또한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지면서 아시아의 패권이 처음으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1949년에 마오쩌둥 주석이 이끄는 중국 인민이 일본군을 내몰고 새로운 중국을 건국했다. 21세기에 들어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최대의 기회를 맞이했다. 중국공산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일본을 완전히 밀어내고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을 잡는다. 그리고 새로운 중국의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미국을 앞질러 다시 한 번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두 개의 100년’이라는 목표로 정한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왜 분노하나?

이를 위해 중국도 또한 2015년을 ‘항일전쟁과 반파시즘 승리의 70년’의 해로 최대한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작년부터 9월 3일로 정해진 ‘항일전쟁승리기념일’에는 베이징에서 역사 상 최대 규모의 군사퍼레이드를 거행할 예정이다.

객관적인 경제통계로 말한다면 중국이 일본보다 우월하다. 경제력 지표인 GDP는 중국이 일본에 2.2배까지 차이를 벌리고 있다. 또 군사비 지출은 중국이 일본에 비해 3.5배나 높다. 즉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중국이 일본을 앞지르고 있으며 미래에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군림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베 정권으로서는 이대로 중국에게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모든 아베정권 정책의 근간이다. 이런 사정을 전제로 올 8월 15일의 종전기념일에 아베 총리가 발표하려는 ‘아베 담화’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에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제국의 여러분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의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이 문장은 일본이 패전 50주년을 맞은 1995년 8월 15일 당시 무라야마 토미이치(村山富市) 총리(사회당 당수)가 발표한 소위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부분이다. 일본은 1955년 이후 우파인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계속되었지만 1994년 여름부터 1996년 연초까지 일시적으로 자민당 이외의 좌파가 정권을 잡았다. 그 당시 총리를 역임한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일본의 지미 카터’로 불리며 평화주의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일본에서는 최고 권력자인 총리를 지낸 정치인에게는 은퇴 후에도 평생 기사가 딸린 전용차와 개인경호원이 주어진다. 그러나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 혜택을 거부한 유일한 총리경험자다. 그리고 1996년 1월에 총리직을 사임하면서 일체의 권력을 포기하고 도쿄를 떠나 고향인 규슈(九州) 오이타현(大分縣)에서 은거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청경우독(晴耕雨讀: 맑은 날에는 밭을 갈고 비 오는 날에는 글을 읽음)의 전원생활을 영위해 그의 동정은 뉴스에도 거의 나오지 않게 되었다. 필자의 부친 쪽 고향이 마침 오이타현이라서 몇 년 전 본가에 귀향했을 때 오이타현 지방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백부에게 들은 무라야마 전 총리의 근황은 “매일 아침 근처 어린이들과 같이 강변에서 체조하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유유자적한 은거생활을 보내온 무라야마 전 총리가 최근 갑자기 바빠졌다. 현재의 아베 신조 정권이 전후 70주년이 되는 올해 8월15일에 새로운 ‘아베 담화’를 발표하고 이 새로운 담화를 가지고 20년 전의 ‘무라야마 담화’를 매장시켜버릴 가능성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올 3월 3일에 91세 생일을 맞이한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일본 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TV나 신문의 인터뷰에 적극 응하며 아베정권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를 발신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무라야마 전 총리의 최근 인터뷰 내용이다.

“무라야마 담화는 나 혼자서 정한 것이 아니라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O) 당시 자민당 총재와 상의해서 정한 것이다. 하시모토 씨는 내가 초고에 쓴 ‘종전 50주년’이라는 표기를 ‘패전 50주년’으로 바꾸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일본이 일으킨 과거의 전쟁과실이 전해지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듯 자민당의 뜻까지 수렴해 만들어진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최근 들어서 바꾸려고 하는 움직임을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를 대신해서 어떤 ‘담화’를 오는 8월 15일에 발표하려는 것인가? 첫머리에 등장했던 아베 총리의 측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베 담화는 3개의 부분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첫째는 과거의 전쟁책임, 둘째는 전후 70년 일본의 평화발걸음, 그리고 셋째는 앞으로의 일본의 역할이다. 20년 전의 ‘무라야마 담화’는 첫째 과거 전쟁책임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것은 소위 ‘자학사관’이라고 하는 것으로 아베 정권으로서는 절대로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현재·미래를 가능하다면 1대 2대 3 정도의 비율로 나누고 될 수 있는 한 미래지향적인 ‘아베 담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극우학자 기타오카 신이치가 아베 담화 주도


▎아베노믹스를 2인3각 체제로 이끌어온 아베 신조 총리(왼쪽)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두 사람의 밀월 관계는 재정 정책에 대한 시각차와 일본 국채 신용등급 하락을 계기로 금이 갔다.
아베 총리는 ‘아베 담화’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지난 2월 25일에 ‘아베 담화를 검토하는 21세기구상 간담회’를 발족시켰다. 간담회장인 니시무로 다이조(西室泰三·80) 닛폰유세이(日本郵政) 사장 이하 16명의 지식인을 선발하고 이 16명이 올여름을 목표로 내용을 상의하고 아베 총리에게 ‘제언서’를 건네는 것이 이 모임의 목적이다. 이 새로운 간담회에 대해 앞서 언급한 아베 총리의 측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올해 80세를 맞이하는 니시무로(西室) 회장은 단지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고 간담회를 좌우하는 인물은 회장 대리를 맡고 있는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67) 국제대학 학장이다. 실제로 ‘아베 담화’는 아베 총리와 기타오카 학장 둘이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아베 총리는 기타오카 씨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있으며 이 두 사람의 국가관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즉 21세기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책임지고 이끌어가야 하는 나라는 일본으로 20세기와 마찬가지로 미래에도 일본이 아시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중국이 아니고 일본이 중심이 되는 아시아를 재구축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아베 총리가 말하는 ‘미래지향’의 사관과 완전 일치하고 있는 대목이다.”

기타오카 신이치는 2월 7일 자민당 본부의 강연에 초대되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아베 담화는 정치외교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1945년 이후의 역사나 미래에 대해서도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동안의 편언척구(片言隻句: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말)를 가지고 어떤 말의 사죄 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역사문제를 핑계로 일본의 안전보장 정책에 대하여 억지를 부리는 나라가 한국·중국·북한이다. 그러나 사죄라고 하는 말이 담화의 주가 되는 것은 이상한 이야기다. 더 사죄해라, 더 사죄하라고 너무 지나치게 요구하면 일본 내 반한·반중 의식을 자극하고 도리어 화해를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아베 담화’와 더불어 아베 총리가 최근 주력하고 있는 것이 새로운 안전보장법제의 정비다. 이것 역시 참된 목적은 급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대항책이다. 안전보장법제의 정비는 세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다. 이를 위해 무력공격 사태법이나 자위대법 등을 개정해간다. 둘째는 후방지원과 국제협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항구법을 제정한다. 또 주변사태법과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을 개정한다. 셋째는 그레이 존(gray zone)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법률로 판별되지 않는 케이스에 대한 대처다. 이를 위해 자위대법을 개정한다. 이 세 개의 기둥을 6월 회기말을 맞는 정기국회를 연장하여 8월 15일의 ‘아베 담화’ 발표날까지 법적으로 정비하려는 것이다.

이들 법제 정비의 지향점은 자위대를 ‘전쟁을 할 수 없는 군대’에서 ‘전쟁이 가능한 군대’로 바꾼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일본 국민 중에서는 반대의견도 많다. 지금까지 70년간 계속되었던 평화국가의 길이 끝나고 일본이 다시 위험한 길로 나아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아베 정권은 자위대에 의한 무력행사가 가능한 몇 가지의 경우를 법으로 정해 자위대의 무력행사를 제한하겠다고 한다. 첫째 일본 혹은 일본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나라가 공격당해 일본의 존립이 위태로워졌을 경우, 둘째 무력행사 말고는 적당한 방법이 없을 경우, 마지막으로 최소한의 무력행사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전보장법제 둘러싼 논란 가속


▎도쿄 한 증권회사의 시세판 앞에 서 있는 일본의 노인. 저출산과 고령화는 일본 경제의 정체를 부르며 아베 총리의 야심에 찬물을 끼얹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국회에서는 연일 이 안전보장법제를 둘러싸고 여야 간 심한 논쟁이 계속된다. 예를 들면 최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민주당 최고의 논객인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간사장이 아베 총리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었다.

에다노: “만일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되었을 경우 자위대를 파견해서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 세 가지 조건에 맞는 것인가?”

아베: “일본에서 사용되는 석유의 8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서 일본에 수송되고 있으므로 당연히 첫째 조건인 ‘일본의 존립이 위태로워졌을 경우’에 포함된다.”

에다노: “중동에서 수입되는 석유부족이 일어난다고 일본이 멸망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아베 정권이 제멋대로 확대 해석한 것이다.”

아베: “석유수입이 돌연 차단되면 일본은 패닉상태가 되지 않는가?”

현재 이러한 논쟁이 국회에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에서 이런 유의 논쟁이 시작된 것은 1992년부터다. 당시 필자는 국회 안의 기자석에 앉아서 끝없이 계속되는 여야 간의 논쟁을 듣고 있었지만 결국 국제평화협력법이 성립되고 자위대원이 캄보디아에 PKO부대로 파견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정권 하인 2003년 이라크전쟁이 일어나자 엇비슷한 논쟁 끝에 이라크 ‘인도부흥지원특별조치법’을 성립시켜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했다. 즉 이번에도 얼마간 야당의 저항이 있겠지만 아베 정권과 거대 여당이 관련 법안을 모두 통과시킬 것이다. 단 한 가지 아베 정권의 폭주를 멈추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의 의향이다. 이 점에 대해서 앞서 등장한 아베 총리의 측근은 다음과 같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베 총리는 4월 말이나 5월 초순에 방미를 예정하고 있다. 그때 ‘아베 담화’와 안전보장법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승인을 얻을 생각이다. 현재의 오바마 정권은 쿠바와의 국교정상화, 우크라이나 위기, ‘이슬람 국가’의 부상, 중동평화의 악화, 그리스경제 파탄 등 많은 외교적 과제를 안고 있어 동아시아까지 손길이 미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아베 총리의 주장은 ‘중국과 전쟁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모두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폭주하는 아베 정권이지만 필자는 왠지 결국 ‘아베 총리의 꿈’은 좌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외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본 자신의 문제다. 출생률 감소와 인구고령화에 헐떡이는 일본이 과연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다시 부상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다. 먼저 정치적인 문제로 보면 지금의 아베 정권은 이미 빨간 불이 켜진 상태다. 최근 국회에서 금권문제를 추궁받아 횡설수설하고 있는 각료가 무려 7명이나 된다. 지금의 아베 정권은 정치적으로 만신창이 상태로 다시 한 번 아시아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이다.

더 어려운 것은 경제 문제다. 일본은 그리스와 같은 재정 파탄 국가로의 길을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일본이 지고 있는 ‘국채’는 2014년 말 시점으로 1030조 엔에 이른다. 이것은 일본 GDP의 2.3배에 이르고,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포함시킨 일본국민 1인당 811만 엔이나 되는 채무를 안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일관되게 “2020년까지 재정수지를 흑자화한다”라고 선언하고 있지만 이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아베 정권이 2월 2일 국회에 제출한 2015년 예산안(2015년 4월∼2016년 3월)은 96조420억 엔으로 신규 국채발행 액수는 무려 36조630억 엔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아베노믹스의 최대 지원자였던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도 결국 울화통을 터뜨렸다. 2월 2일 총리관저에서 열린 경제재정자문회의 석상에서 눈앞에 앉아 있는 아베 총리에게 통렬한 비판을 끼얹은 것이다.

“재정에 대한 신용이 저하되고 있어 국채의 금리가 급등하는 리스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미바젤은행 감독위원회(주요국의 금융당국에서 만드는 상호 감시 체제)에서 ‘손실이 나지 않는 안전자산’으로 여겨져오던 일본국채를 ‘손실 우려가 있는 리스크 자산’으로 다뤄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리스크 자산으로 인정되면 일본의 은행들은 국채를 매각해버릴 것입니다.”

구로다 총재는 일본국채의 위기가 오고 있다는 점을 담담하게 경고한 것이다. 그러나 구로다의 이 발언은 아베 총리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 후에 공표된 ‘자문회의 의사요지’에서 완전히 삭제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자신에게 불리한 발언을 지워 없앨 수는 있어도 나라가 빌린 돈을 지워 없앨 수는 없다.

최근 일본경제에 좋은 소식이라면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춘절에 방일한 50만 명이나 되는 ‘요우커’, 즉 중국인 관광객이 불과 일주일 동안 1200억 엔이나 소비를 해준 것이다. 도쿄 최고의 땅값을 자랑하는 긴자거리는 쇼핑 가방을 양손에 든 중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차서 마치 베이징의 왕푸징이나 상하이의 난징동루처럼 되어버렸다.

공교롭게도 아베 총리가 적대시하는 중국이 부진하기만한 아베노믹스 최대의 구세주가 되어준 셈이다. 일본에는 “손님은 신이다”라는 표현이 있지만 진정으로 일본 국내의 관광 관련업자가 중국에 감사한 일주일이었다.

오바마는 중국과 전쟁하는 일본에 반대


▎2013년 8월 요코하마항에서 열린 일본 해상자위대 사상 최대 규모의 호위함인 ‘이즈모’의 진수식. 일본 정부가 안고 있는 막대한 부채로 향후 국방예산의 증액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셋째는 군사적 문제다. 과연 아베 총리의 계획들은 잘 추진되고 있는 것일까? 최근 두 명의 전문가를 만나서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지만 두 사람 모두 그 성공 가능성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다. 먼저, 전 외무성 간부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일미동맹에서 미국이 일본에 바라는 것은 ‘중국군이나 북한군에 대항할 수 있는 자위대’였다. 그러나 지금의 오바마 정권은 중국을 적국이라 생각지 않고 있으며 때문에 오히려 ‘중국과 절대로 전쟁하지 않는 자위대’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오바마 대통령의 의향을 반영하여 2월 7일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이 취임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일·미동맹의 변질’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다음은 자위대 중견간부의 이야기다.

“현재의 자위대 내부에서는 아베 정권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퍼진다. 현재 25만 자위대원의 대부분은 자위대가 ‘전쟁하지 않는 군대’이기 때문에 지원 입대한 청년들이다. 자위대에 입대하면 특수차부터 항공기까지 모든 운전면허증이 교부되고 저렴한 기숙사에 살 수 있으며 최고의 복리후생을 향유할 수 있다. 그것이 아베 정권으로 인해 ‘전쟁하는 군대’로 변하게 되면 아마 많은 자위대원이 제대해버릴 것이다. 자위대원에 지원하는 젊은이도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자위대원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징병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이 징병제를 바라고 있지 않은데 과연 법 개정이 가능할까?”

이런 이유 등으로 아베 총리가 품은 꿈을 실현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오히려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고 하는 편이 현실적인 것이 아닐까. 일본은 지난 70년처럼 변함없이 평화로운 국가로 살아가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이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부편집장

201504호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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