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지진을 예보하는 민감성 어류 ‘메기’ 

갑자기 날뛰거나 튀어 나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지진 발생… 서양 사람들은 메기가 고양이 닮았다고 ‘catfish’라 불러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메기는 길게는 40년 남짓 사는 장수 어종이다.
물에 빠지거나 비를 맞아 흠뻑 젖음을 빗대어 ‘메기를 잡았다’하고, 그 메기는 입이 커서 대구어(大口魚)라고 하며, 그래서 입이 아주 큰 사람을 ‘메기주둥이 같다’고 한다. 그리고 “메기가 눈이 작아도 제 먹을 것은 다 알아본다”고, 이는 아무리 미련하고 무식한 사람도 이해관계는 다 알아보고 제 살길은 마련하는 남다른 재주가 있음을 뜻한다.

메기(Silurus asotus)는 대형 담수어(淡水魚, freshwater fish)로 메깃과에 들고, 육식성이면서 야행성이다. 또 머리가 크고, 가슴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에 칼날 같은 센 가시(sting) 끝에 독선(毒腺)이 있어서 찔리면 무척 쓰리고 아리다. 순해 보이는 메기도 독한 가시를 숨기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피라미나 갈겨니처럼 몸이 납작하고 비늘이 은빛을 내는 놈들은 모두 주행성이고, 뱀장어나 메기등과 같이 몸통이 둥그스름하고 색깔이 어둡고 흐린 것은 죄다 야행성이며, 후자는 하나같이 육식성이라 비림이 덜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중국·러시아·일본·대만 등 동아시아에 주로 산다.

그런데 왜 피라미나 갈겨니 따위가 가끔 배 바닥을 휙휙 뒤집어 번쩍번쩍 번득거리는 것일까? 비늘에 있는 흰색의 구아닌 결정(guanine crystal)이 햇빛을 반사시켜 거울처럼 금속광택(metallic sheen)을 내는 것인데, 이는 수면 가까이에 있을 때 포식자로부터 몸을 숨기려는 일종의 위장(僞裝)행위라고 한다. 고작 이 정도 알려진 것이 그 까닭의 전부라고 하는데, 이나마 강원대 어류연구센터의 박승철 박사가 어렵게 찾아내어 알려주었다.

실제로 어릴 적 필자의 집이 지리산 아래 첫 동네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낙동강 최상류의 덕천강(德川江) 한 자락을 끼고 살아 강에서 노상 놀았고, 메기도 늘 많이 잡았다. 팔뚝만한 놈을 잡는 날에는 ‘요놈을 어머니 고아 드려야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지. 핏기 하나 없는 우리 어머니의 몸보신엔 그놈들이 제일이렷다. 푹 고아 살이 흐물흐물해지면 뼈를 추려내며, 젖빛 희뿌연 국물은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오늘따라 후루룩후루룩 메기 곰국을 마시던 퀭한 눈매를 하신 어머님 상(像)이 어른거린다. 부디 어버이 살았을 적에 섬기기 다하여라. 전생(前生)은 금생(今生)에서 받는 것을 보면 알고, 내생(來生)은 지금 하는 것을 보면 안다고 했다. 적선(積善)하고 효도하라. 세상 모든 곳에 신(神)을 다 보낼 수 없어 어머니를 보냈다고 한다.

메기(Amur catfish)는 몸이 길고, 머리는 위아래로 눌려져(종편, 縱扁) 넓적하지만 몸의 뒤쪽은 좌우로 눌려져(측편, 側扁) 얄팍하다. 또 아래턱이 위턱보다 좀 길어 주둥이 끝이 위를 향하여 벌어지고, 육식을 하는지라 이빨이 예리하다. 몸빛은 등 쪽과 옆구리는 암갈색 또는 황갈색이고, 구름 모양의 얼룩얼룩한 무늬(반문, 斑紋)가 있으며, 몸길이는 25∼30㎝가 보통이지만 100㎝를 넘는 놈도 있다. 또한 오염에 민감하지 않아 우리나라 전 지역의 강에 두루 분포한다.

암놈 가슴팍을 돌돌 말아 산란 유도

이들은 입가에 양반다운 하얗고 긴 수염 두 쌍을 달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메기가 고양이를 닮았다고 ‘catfish’라 부르는데, 고양이수염을 닮은 입수염(barbel)이 있으며, 콧구멍 옆에 달린 수염은 길어서 가슴지느러미까지 닿는다. 아무튼 커다란 머리에 넓적한 입, 아주 작은 눈에다 기다랗고 긴 흰 수염이 우리가 봐도 괭이를 닮았다. 고양이수염이 그렇듯이 메기도 쉼 없이 촉각세포가 많이 분포한 수염을 절레절레 흔들어 슬금슬금 먹잇감을 찾거나 방해물을 알아낸다. 수염(鬚髥)이 멋으로 있는 게 아니로군.

또 두개골(頭蓋骨)이 매우 크고 작은 부레(swim bladder) 탓에 둥둥 뜨지 못 하고 늘 바닥을 벌벌 긴다. 그리고 메기는 비늘(scale)이 없다. 살갗을 보호하는 비늘이 없는 어류는 모두 다 겉껍질에서 짙은 진액을 쏟아내어 피부를 보호하는데 미꾸라지, 뱀장어도 그렇다.

메기는 낮에는 바위 밑이나 돌 틈에 숨어 꼼짝 않다가 으슥한 야밤이면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와 작은 고기나 새우, 다슬기들을 을러대며 잡아먹는다. 그렇다, 물고기는 잠을 자도 눈을 감지 않는다. 땅 땅 땅! 고즈넉한 산사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목탁(木鐸) 소리! 그것은 물고기를 본뜬 목어(木魚)가 아니던가. 몸통이 큰 복어를 닮았다고 할까. 또 기독교의 상징이 물고기인 점과 어쩌면 닮았다 하겠다. 결국 종교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니 불교와 기독교는 불이(不二)의 관계인 것이다. 엉뚱한 소리 같지만 물고기는 물에 살아 자나 깨나 몸을 씻어대니 얼마나 심신이 정결한가. 물고기는 세례(洗禮)가 필요 없다.

무엇보다 메기는 지진(地震)을 예보하는 어류가 아니던가. 수조에 키우던 메기가 갑자기 날뛰거나 튀어나가는 등의 돌발적인 발작행동을 하는 날에는 얼마 후에는 깔축없이 지진이 일어난다. 지전류(地電流)의 변화에 아주 민감한 동물이며, 들쥐·거머리 따위 여러 동물도 그런 본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맹추라 그런 능력이 통 없는 우둔한 동물이다.

메기의 산란철은 5~7월로 마음에 드는 짝이 정해졌다 싶으면 수놈은 야멸치게 달려들어, 암놈의 가슴팍을 온 몸으로 죽일 듯이 돌돌 말아 죄어 암놈의 산란을 자극한다. 암컷은 짙은 초록색의 알을 물풀이나 자갈에 붙이니 그것들은 8~10일 후에 부화하며, 4년 정도 자라면 몸길이가 60㎝에 이르고, 길게는 40년 남짓 사는 수도 있다 하니 꽤나 장수하는 물고기다.

누가 뭐라 해도 메기는 곰국·튀김·구이·훈제 등의 요리로 쓰지만 그래도 매운탕이 으뜸이고, 육질이 희뿌연 것이 살집 깊고 부들부들하여 소화가 잘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요새 먹는 메기탕은 터줏고기인 토종(土種)이 아니고, 십중팔구 식용으로 도입한, 입가에 수염이 3쌍 달린 ‘찬넬메기(찬넬동자개, channel catfish)’다.

찬넬동자개는 등치도 꽤나 크고, 낫자라 우리나라에서도 가두리 양식장에서 사료를 먹여 길러 왔는데, 그 일부가 그물을 빠져나가 호수나 큰 강에 야생으로 살고 있다 한다. 강이라는 자연에 이미 동화하고, 적응하였다는 말인데, 그래서 이제는 유입종(流入種)이라거나 외래종(外來種)이란 말은 도통 어색하게 되고 말았다. 녀석들이 무혈입성(無血入城)하여 이젠 당당히 ‘우리물고기’가 된 것이다. ‘어머니, 대자연(mother, the great nature)’께서 그들을 받아 들였으니 우리가 뭐라 하겠는가. 지금 우리 주변의 동식물치고 본래부터 우리 땅에서 살아왔던 고유종(固有種)은 고작 10~2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암튼 많은 외국 여인이 이 땅에 와 아들 딸 낳고 사는 것도 이들 물고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504호 (2015.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