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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놈 가슴팍을 돌돌 말아 산란 유도이들은 입가에 양반다운 하얗고 긴 수염 두 쌍을 달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메기가 고양이를 닮았다고 ‘catfish’라 부르는데, 고양이수염을 닮은 입수염(barbel)이 있으며, 콧구멍 옆에 달린 수염은 길어서 가슴지느러미까지 닿는다. 아무튼 커다란 머리에 넓적한 입, 아주 작은 눈에다 기다랗고 긴 흰 수염이 우리가 봐도 괭이를 닮았다. 고양이수염이 그렇듯이 메기도 쉼 없이 촉각세포가 많이 분포한 수염을 절레절레 흔들어 슬금슬금 먹잇감을 찾거나 방해물을 알아낸다. 수염(鬚髥)이 멋으로 있는 게 아니로군.또 두개골(頭蓋骨)이 매우 크고 작은 부레(swim bladder) 탓에 둥둥 뜨지 못 하고 늘 바닥을 벌벌 긴다. 그리고 메기는 비늘(scale)이 없다. 살갗을 보호하는 비늘이 없는 어류는 모두 다 겉껍질에서 짙은 진액을 쏟아내어 피부를 보호하는데 미꾸라지, 뱀장어도 그렇다.메기는 낮에는 바위 밑이나 돌 틈에 숨어 꼼짝 않다가 으슥한 야밤이면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와 작은 고기나 새우, 다슬기들을 을러대며 잡아먹는다. 그렇다, 물고기는 잠을 자도 눈을 감지 않는다. 땅 땅 땅! 고즈넉한 산사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목탁(木鐸) 소리! 그것은 물고기를 본뜬 목어(木魚)가 아니던가. 몸통이 큰 복어를 닮았다고 할까. 또 기독교의 상징이 물고기인 점과 어쩌면 닮았다 하겠다. 결국 종교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니 불교와 기독교는 불이(不二)의 관계인 것이다. 엉뚱한 소리 같지만 물고기는 물에 살아 자나 깨나 몸을 씻어대니 얼마나 심신이 정결한가. 물고기는 세례(洗禮)가 필요 없다.무엇보다 메기는 지진(地震)을 예보하는 어류가 아니던가. 수조에 키우던 메기가 갑자기 날뛰거나 튀어나가는 등의 돌발적인 발작행동을 하는 날에는 얼마 후에는 깔축없이 지진이 일어난다. 지전류(地電流)의 변화에 아주 민감한 동물이며, 들쥐·거머리 따위 여러 동물도 그런 본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맹추라 그런 능력이 통 없는 우둔한 동물이다.메기의 산란철은 5~7월로 마음에 드는 짝이 정해졌다 싶으면 수놈은 야멸치게 달려들어, 암놈의 가슴팍을 온 몸으로 죽일 듯이 돌돌 말아 죄어 암놈의 산란을 자극한다. 암컷은 짙은 초록색의 알을 물풀이나 자갈에 붙이니 그것들은 8~10일 후에 부화하며, 4년 정도 자라면 몸길이가 60㎝에 이르고, 길게는 40년 남짓 사는 수도 있다 하니 꽤나 장수하는 물고기다.누가 뭐라 해도 메기는 곰국·튀김·구이·훈제 등의 요리로 쓰지만 그래도 매운탕이 으뜸이고, 육질이 희뿌연 것이 살집 깊고 부들부들하여 소화가 잘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요새 먹는 메기탕은 터줏고기인 토종(土種)이 아니고, 십중팔구 식용으로 도입한, 입가에 수염이 3쌍 달린 ‘찬넬메기(찬넬동자개, channel catfish)’다.찬넬동자개는 등치도 꽤나 크고, 낫자라 우리나라에서도 가두리 양식장에서 사료를 먹여 길러 왔는데, 그 일부가 그물을 빠져나가 호수나 큰 강에 야생으로 살고 있다 한다. 강이라는 자연에 이미 동화하고, 적응하였다는 말인데, 그래서 이제는 유입종(流入種)이라거나 외래종(外來種)이란 말은 도통 어색하게 되고 말았다. 녀석들이 무혈입성(無血入城)하여 이젠 당당히 ‘우리물고기’가 된 것이다. ‘어머니, 대자연(mother, the great nature)’께서 그들을 받아 들였으니 우리가 뭐라 하겠는가. 지금 우리 주변의 동식물치고 본래부터 우리 땅에서 살아왔던 고유종(固有種)은 고작 10~2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암튼 많은 외국 여인이 이 땅에 와 아들 딸 낳고 사는 것도 이들 물고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