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김 박사. ‘한 오백 년’ 그 노래 알지? 그 노래 들으면서 이상한 것 없었어? ‘한 오백 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그러잖아? 그거 좀 이상하지 않아? 아니, 사람이 살아야 기껏해야 백 년인데, 왜 그 노래는 매번 오백 년이나 살자고 그러냐고? 이상하면 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녀?”
그렇다. 도대체 궁금한 게 있어야 생각도 하고, 자료도 찾아보고 하는 거다. ‘생각하다’의 동사가 명사가 된 것에는 현재형에서 온 thinking, 과거형에서 온 thought가 있다.
“흔히 우리가 사상이라고 하는 것 말이야. 그게 다 과거형 thought야. 은행에 맡겨 둔 예금통장 같은 거지. 생각하지 않고 축적된 생각을 꺼내 쓰는 것. 이걸 사람들이 생각이라고 오해하는 거야. 그런데 thinking은 달라. 지금 여기에서 제 머리로 생각하는 거지. 예금이 아니라 벌어 쓰는 현금이야. 생선으로 치면 어물전에서 사온 고기가 아니라 그물로 잡은 펄펄 뛰는 물고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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