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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표류하는 한국 조선산업의 미래 

최악의 터널 진입, 출구 전망은 청신호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기술력과 경쟁력 세계 1위 한국 조선의 침몰?... 컨테이너선·유조선·LNG선·해양플랜트 등 포트폴리오 측면에선 부동의 월드 베스트

▎대우조선해양이 2분기 영업적자 3조318억원이라는 충격적인 실적을 발표했다. 해양플랜트 사업 부실이 주요 원인이다. 사진은 서울 중구 다동의 대우조선해양 본사.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오른다. 세계 3대 조선업체 중 하나인 대우조선해양 얘기다. 7월 중순 대우조선해양이 최근 3년간 해양 플랜트 부문에서 2조원대의 손실을 숨겨온 사실이 드러났다. 실제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은 7월 30일 ‘매출 1조6564억원, 영업적자 3조318억원’이란 2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보다 2배 가량 많은 적자도 놀랍지만 분기 적자규모가 3조원이 넘어선 건 더 충격적이었다. 당연히 국내 조선업계 최초의 일이다. 대우조선해양이 1조2천억원(연간)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보고한 게 불과 5년 전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충격


▎※자료:각 회사
이 주인 없는 회사는 탓할 사람도 없다. 대우그룹의 부도 이후 워크아웃을 거친 대우조선해양의 현 최대주주는 산업은행이다. 산은이 여러 차례 매각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잘 안됐다. 오히려 부실 계열사만 떠안았다. 산은이 골치거리로 여기던 많은 기업이 대우조선해양그룹 테두리로 들어왔다. 경영 여건도 엉망이었다. 사장은 낙하산이었고, 산업은행 출신이 요직을 점령했다. 독립경영은 꿈도 못 꿀 분위기였다. 그래도 실적이 좋을 땐 몸값이 괜찮았다. 2008년 산은이 한화그룹에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려 했을 때 인수 가격은 6조원 이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실적도 주가도 해저를 뚫을 기세다. 현재 산은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의 지분(31.5%) 가치는 4100억원 정도다. 4년 전과 비교하면 7분의1 수준이다.

이렇게 헐값이지만 팔겠다고 해도 살 기업이 있을지 의문이다. 1분기 대우조선해양의 부채비율은 373.5%다. 그러나 2분기 천문학적 손실이 회계에 반영되면 부채비율이 600~700%로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성장성이라도 있으면 안고 가겠는데 전망도 어둡다. 한국신용평가는 7월 31일 대우조선해양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내렸다. 15일 ‘A’에서 ‘A-’로 낮춘 데 이어 보름 만에 추가 강등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우조선해양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대우조선해양보다는 조금 낫지만 삼성중공업 실적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은 7월 29일 “2분기 매출 1조4395억 원, 영업손실 1조5481억 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영업손실보다 더 뼈아픈 건 매출 감소였다.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44.8%가 줄었다. 3·4분기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나 부진 탈출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업계 1위 현대중공업은 그나마 나은 1710억 원의 영업손실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영업손실이 가장 적은 것은 대규모 손실을 지난해 실적에 이미 반영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 역대 최대 규모인 3조2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다 사실상 글로벌 1위 자리에서 내려온 한국 조선업계가 2년 전부터 최악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는데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게 더 큰 문제다. 한국이 배로 돈을 벌던 시대가 저물어간다는 신호다.

증기기관을 이용한 기차가 세상에 등장한 건 200년, 가솔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가 등장한 건 130년, 비행기가 사람을 태우고 하늘을 날기 시작한 건 불과 100년 전이다. 그 전까지 인류는 주로 걸었다. 좀 더 먼 곳으로 이동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면서 마차가 개발됐다. 그러나 말이든 소든 생물체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한계가 있었다. 마차보다 더 멀리,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있었으니 바로 배(船)다. 기록에 의하면 인류는 약 4천년 전부터 배를 이용했다. 처음엔 통나무 가운데를 파내 물에 동동 띄우는 수준이었지만 이내 노 젓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러나 이 역시 사람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니 한계가 있었다.

배의 위상이 확 달라진 건 바람(돛)을 이용하게 되면서다. 더 큰 배를 만들 수 있게 됐고, 더 멀리 더 많은 짐을 싣고 동일 노선을 오가는 것이 가능해졌다. 사실상 유일한 운송 수단이었으니 기차와 자동차, 비행기 등이 등장하기 전까지 배는 힘이었고, 돈이었고, 권력이었다. 배를 통해 물건을 사고 팔면서, 지구 곳곳에 흩어져 살던 인류가 만나기 시작했다. 무역은 국가 간 교류의 출발점이었고, 피가 섞이고, 국경이 허물어진 계기였다. 1492년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고, 1522년 마젤란 일행은 사상 첫 세계일주에 성공했다. 배가 무기로 쓰이기 시작하자 세계 전쟁사도 확 바뀌었다. 각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를 통해 네덜란드·스페인처럼 바다를 점령한 나라가 속속 등장했고, 이들은 한동안 역사를 좌지우지했다. 만약 배가 없었다면 동·서양의 만남은 훨씬 늦어졌을 것이고, 세계 지도 또한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해방 이후 50년 만에 세계 1위 올라선 한국 조선


▎광복 이후 일본인이 운영한 조선소를 인수하며 시작된 한국의 조선업은 불과 50년 만에 세계 1위로 도약했다. 사진은 대형 조선소 건설이 본격화된 1970년대 울산의 한 조선소 전경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우리나라에게도 배는 매우 중요했다. 삼한시대부터 배로 중국·일본과 왕래했고, 삼국시대엔 본격적인 교역이 시작됐다. 고려시대엔 ‘해상 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바다 무역이 번성했다. 수백 척의 상선이 중국과 일본을 오갔다. 군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 즈음인데 원나라와 연합해 일본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조선시대엔 대외 활동을 금지한 해금정책 탓에 상선의 활동이 위축됐지만 군선 건조는 계속됐다. 거북선·판옥선 등 조선만의 독창적인 군선이 만들어졌고, 상시 수군 체제를 갖췄다. 임진왜란 등 외세의 침략에 대응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이 조선업을 독점하면서 역사가 끊길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핏속에 흐르는 장인의 DNA는 쉬 사라지지 않았다. 배로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배를 만들어 팔거나 배로 뭔가를 운반해주거나. 우리의 강점은 전자였다. 가장 싸고, 빠르게 배를 만드는 능력을 보여주자 전 세계의 돈이 한국으로 몰렸다. 해방과 함께 눈치 빠른 사업가들은 일본이 운영하던 부산·인천·목포·충무 등 주요 항구의 조선소를 인수해 자체적인 사업화를 시작했다. 곧 6·25 전쟁이 터지면서 많은 생산 시설이 파괴돼 위기에 처했지만 이는 동시에 기회였다. 군수 물자와 원조 물자가 폭증하면서 선박 수요도 급증했고, 수리 요청이 늘면서 수리 주문도 폭주했다. 일거리가 넘쳐나니 너도나도 조선소를 지었다. 해방 당시 56개에 불과했던 조선업체는 1959년 198개로 크게 늘었다. 1960년대 목선 건조에서 강선 건조로 전환한 조선업계는 1967년 베트남에 첫 수출(바지선 30척)에 성공했다. 확실한 터닝포인트는 1970년대였다. 지금의 조선 3사 체제가 갖춰진 것이 바로 이때였는데 1973년 현대중공업이 완공됐고, 1975년엔 현대미포조선이 조업을 시작했다. 1978년과 79년엔 대우중공업과 삼성중공업(구 고려조선)이 문을 열었다. 초대형 조선소의 등장으로 우리나라 선박 건조량은 1970년 3만9천GT에서 1979년 52만5천GT로 크게 늘었다.

1980~90년대 고속 성장을 이어간 조선업은 1993년 사상 처음으로 세계 1위 일본을 앞질렀다(수주량 기준). 금방 1위를 내줬지만 1999년 원화 약세에 힘입어 다시 1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2000년부터는 수주·건조·수주잔량 3대 지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35~40%의 점유율로 시장을 선도했다. 꿈 같은 10년을 보냈지만 중국의 추격은 매서웠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중국 조선업계는 2000년대 중반부터 빠르게 한국과의 격차를 줄여나갔고, 2012년 이후 한국을 추월했다. 2011년 43.9%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던 한국의 세계 시장점유율도 20%대로 급락해 회복이 어려운 상태다. 수출량 역시 2011년 566억 달러로 정점에 이르렀다가 지난해 399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1990년대 이전까지 일본, 2000년대 한국, 2010년대 중국으로 주도권이 옮겨가는 형국이다.

우리가 배 만드는 기술로 세계를 점령했던 2000년대 배를 움직여 세계를 점령한 나라가 있었다. 바로 그리스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확고한 1위로 올라섰던 2004년, 그리스는 전 세계 선박의 9.6%를 보유하고 총 재화 중량톤수(DWT, 항해에 필요한 연료나 장비 등을 제외한 적재화물의 중량)의 18.5%를 점유한 독보적인 1위에 올라 있었다. 2004년 한해 동안 그리스는 배를 구입하는 데 19억 6100만 유로를 썼고, 해운업으로 약 7배인 134억 유로를 벌어들였다. 열심히 배를 만든 우리나라보다 그 배를 이용한 그리스가 더 쉽게 돈을 벌었다는 의미다.

일부 강대국 중심으로 재편된 근대 유럽 경제 질서 속에서 소국인 그리스가 해운 권력을 장악한 건 매우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이 남기고 떠난 조선소를 인수해 산업을 키웠듯 그리스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 노후 선박을 꾸준히 사들여 선단을 구축했다. 지리적 위치를 활용해 그리스가 세계 최대 중고 선박 거래지로 부상한 것도 한몫했다. 배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와 가장 많이 타는 나라였으니 우리나라와의 관계도 돈독했다. 지금도 그리스 전체 선박 수입량의 68%를 담당하는 게 한국 조선업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두 나라의 희비가 엇갈린다. 한국의 조선은 부진의 늪을 허덕이는 반면 그리스의 해운은 여전히 막강 파워를 자랑하는 것이다. 2014년 그리스는 글로벌 해운시장 1위를 재탈환했다. 그리스의 DWT는 2억9173만t으로 일본(2억4264만t)과 중국(1억9060만t)을 다시 앞질렀다. 2006년 이후 일본에 선두를 내줬던 총 수송량(GT) 1위도 되찾았다. 지난해 기준으로 그리스 선박은 전 세계 화물 운송의 16%를 담당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중에서 그리스 GDP가 차지하는 비중이 0.4%밖에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다.

‘황금밭’이라던 해양플랜트 아직은 ‘맹물’


▎올해 1월 8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현존 세계 최대 1만9천224TEU 급 컨테이너선인 ‘MSC 오스카호’의 명명식.
그리스 해운업계에도 위기는 있었다. 가장 잘나가던 시점에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고, 회복할 무렵엔 유럽 재정위기가 찾아왔다. 힘든 시기였음에도 그리스 선박업체들은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 점유율을 빼앗기면 끝이라는 절박함이 작용했을 터다. 오히려 발주량을 늘렸다. 그렉시트(Grexit,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가 확산된 올해 3~4월에도 그리스 선주들은 선박 수주에 총 17억 달러를 투자했다. 부도 위기에 빠진 자국 경제를 지탱하는 마지막 버팀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조선 3사 또한 나름 변화의 몸부림을 쳤다. 다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이다. 2000년대 중반 중국의 거센 추격이 시작되면서 조선업계의 고민이 깊어졌다. 가격 경쟁만으론 중국을 이길 방법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부각된 것이 바로 고부가가치 선박과 해양플랜트다. 대형 컨테이너선이나 LNG(액화천연가스)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은 벌크선이나 일반 상선에 비해 이익률이 높다. 수주만 하면 남는 장사인데 문제는 수요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해양플랜트였다. 해양플랜트는 바다에 매장된 석유·가스 등 천연자원을 시추, 생산하는 설비를 말한다. 말 그대로 바다에 공장을 짓는 사업이다. 유전의 위치나 상태에 따라 설치 방법이 다양한데 크게는 고정식과 부유식으로 나뉜다. 심해용 부유식 해양플랜트 중에서 선박 모양인 드릴십(Drill Ship, 선박 모양)이나 유조선 모양인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 등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육지도 아니고 수심 수백 미터의 바다 한가운데 쇠말뚝을 박고 기름을 뽑아내는 설비인 만큼 어떤 종류든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다. 국내 조선 3사가 전 세계 1위를 달리는 분야다. 높은 수준의 기술이 요구되는 만큼 돈이 많이 남는다. 아니다.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불행히도 아니었다.

조선 3사의 해양플랜트 수주 경쟁에 불이 붙은 건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쯤이다. 유럽 재정위기 영향으로 상선 수주가 급감한 탓이다. 2010년 각 20억~40억 달러 수준이던 조선 3사의 해양플랜트 수주액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각 80억~120억 달러 규모로 크게 증가했다. 고유가 흐름 속에 해양플랜트 발주 물량이 크게 늘어난 시점이다. 현대중공업은 그나마 조선 비중이 높았지만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전체 수주액의 90%가 해양플랜트였을 정도로 전력을 쏟았다. 그러나 현장은 생각보다 험했고, 기술은 부족했다. 친구 따라 거름지고 장에 간 대가는 불과 2~3년 뒤 대규모 적자로 나타났다.

삼성중공업의 ‘에지나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나이지리아 서쪽 130㎞ 해상에 FPSO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2013년 6월 삼성중공업은 30억 달러(약 3조5천억원)에 이 사업을 따냈다고 발표했다. 사실 이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는 현대중공업이었다. 발주처인 토탈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FPSO를 건설한 경험이 있는 현대중공업을 선호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수주전의 승자는 삼성중공업이 됐다. 당연히 업계에선 ‘가격 후려치기’란 비판이 나왔다. 그렇게라도 사업을 땄을 땐 뭔가 계획이 있었을 텐데 결론만 놓고 보면 이 사업은 실패했다. 수주금액의 5분의 1이 이미 날아갔기 때문이다.

설계·기자재 해외업체 의존이 문제


▎현대중공업이 만든 원통형 골리앗 FPSO.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로 세계 최대의 규모를 갖췄다.
삼성중공업은 에지나 프로젝트 지연에 따라 손실을 지난 상반기에 반영했다. 1분기에 4천억원, 2분기에 3천억원이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공사는 진행도 못했다. 상부 구조물의 절반을 나이지리아에서 제작하려 했지만 현지 사정으로 지연되고 있다. 이 와중에 나이지리아 연방법원의 공사 중지 명령까지 나왔다. 건조 계약조건이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제일 큰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으니 다른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친다. 상반기에 반영한 손실로 부실을 털었다는 게 삼성중공업의 입장이지만 공사는 아직 많이 남았다. 앞으로 또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 삼성중공업뿐만 아니라 조선 3사가 진행 중인 대부분의 해양플랜트 프로젝트가 현재 이런 상황이다.

되짚어보면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상선 수주 감소에 따른 실적 압박에 시달리자 너나 할 것 없이 해양플랜트로 몰려갔다. 수익보다는 사업 수주에 중점을 뒀고, 우리 기업끼리 저가 수주 경쟁을 펼쳤다. 더 큰 문제는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도 정확한 가치를 몰랐다는 점이다. 수십억 달러의 공사를 진행하면서 얼마에 사업을 따내, 얼마를 쓰고, 얼마를 남길 건지 계산이 서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럴 만했다. 해양 플랜트를 만드는 기술은 있어도 설계 기술은 없기 때문이다. 일반 상선은 조선 3사가 자체 설계 능력을 갖췄고, 기자재도 거의 국산화돼 있다. 그러나 해양플랜트는 기초설계를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 엔지니어링업체에 맡긴다. 설계를 못하는데 원가 분석이 제대로 될 리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핵심 기자재 역시 해외 전문 업체에서 사오는데 이것저것 다 모아 최종 조립만 담당하는 식”이라며 “제 각각 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딱히 남는 게 없는 장사”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계약 방식은 너무 위험했다. 해양플랜트 수주 계약은 대부분 ‘턴키(Turn-key) 방식’으로 이뤄진다. 턴키는 총액을 정한 뒤 수주를 따낸 사업자가 해당 금액 안에서 설계와 구매·시공을 전부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사업 진행에 별 무리가 없으면 이익을 크게 남길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 부담은 발주처가 아닌 사업자가 전부 떠안아야 한다. 동시에 수주할 때 과당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업 금액이 수억 달러에 달하니 5~10% 할인해서라도 사업을 따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깎은 만큼 나중에 감당해야 할 부담은 더욱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삼성중공업이 ‘코스트 플러스 피(Cost plus fee)’ 방식으로 해양플랜트 수주 계약을 체결한 건 매우 고무적이다. 이 경우 발주처가 기초 설계와 구매를 책임진다. 이익률은 떨어지겠지만 애초에 이런 방식으로 천천히 영역을 넓혀갔어야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렇게 위험한 사업을 진행했는데 어디서도 위기의 신호음은 울리지 않았다. 조선 3사는 모두 상장사지만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그 누구도 부실의 가능성을 제기하지 않았다. 2013년 8월 7일부터 올해 8월 7일까지 2년 사이 현대중공업 주가는 54.5% 하락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주가도 같은 기간 67.1%, 75.8% 떨어졌다. 이 기간 증권사의 투자 의견은 ‘매수’ 일색이었다. 2분기 대규모 부실이 확정된 이후에도 ‘중립’이나 ‘매도’ 의견을 내는 증권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럴 만하다. 애널리스트 보고서엔 현장이 없다. 해당 기업이 전해주는 숫자를 가지고 회계 놀음만 하니 애초 전해준 숫자가 틀리면 대응할 방법이 없다. 심지어 애널리스트 중엔 각 조선사의 작업 현장을 오기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업계 사정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관리 책임이 있는 산업통상자원부나 금융감독원도 제대로 부실을 검증하지 못했다”며 “언론 역시 업체들이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마다 ‘세계 최대’,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기 바빴다”고 지적했다. 그 사이 피해는 애꿎은 서민에게 돌아갔다. 주주의 피해는 물론이고, 조선 3사의 종목형 ELS(주가연계증권)나 회사채를 산 투자자도 큰 손실을 입었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번 부실이 드러나기 전 채권을 발행하면서 대규모 적자 위험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회사채 발행 업무를 대행하는 증권사에도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고의로 부실을 은폐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관리 못한 산업은행, 결국 혈세 투입?


▎조선업은 막대한 시설 자금이 필요한 기간산업이다. 한국 조선3사가 축적한 기술력과 노하우는 아직 확고한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다고 조선업계의 붕괴를 논할 시점은 아니다. 조선업은 막대한 시설 자금이 필요한 기간산업이다. 시장의 진입 자체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이런 산업의 경우 기존 사업자가 확실한 경쟁 우위를 점한다. 한국 조선 3사가 수많은 역경을 뚫고 세계 1위로 성장하는 동안 축적해온 기술력과 경쟁력은 엄청난 자산이다. 단기적으로 어려움으로 겪고 있지만 얼마든지 이겨낼 저력이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키를 돌린 것도 방향은 옳았다. 글로벌 조선 시장의 선종별 수주 잔량(2013년 기준)을 비교해보면 한국의 강점이 뚜렷하게 보인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과 중국은 저가인 벌크선과 탱커 비중이 70%에 달하지만 한국은 40% 정도에 나머지는 컨테이너선·유조선·LNG선·해양플랜트”이라며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한국이 훨씬 우월하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화근’이나 해양플랜트는 언제든 ‘축포’가 될 잠재력을 지녔다. 경험 부족과 변동성 탓에 비용이 늘고, 손실을 입고 있지만 이 부작용 역시 한국이 가장 먼저 경험하고 있다.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전 세계 상선 발주를 휩쓸면서도 해양플랜트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그만큼 리스크가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해양플랜트의 핵심 용도는 석유자원 개발이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 침체로 에너지 수요가 감소하고, 세일가스 생산량 증가로 유가 하락이 이어지면서 대형 석유 메이저들은 대형 개발 프로젝트를 축소 또는 유보하고 있다. 신규 수주가 계속돼야 원활한 자금 회전이 가능한 조선업체들로서는 어려운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유가가 상승곡선을 그리면 결국 해양플랜트 발주량이 늘어난다. 이 경우 발주회사(석유 메이저) 입장에선 경험이 많은 업체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기술력을 갖춘 한국 조선 3사의 몸값이 크게 뛸 수 있다는 얘기다. 수익성 악화의 근본적 원인인 ‘설계 능력 부재’도 조선 3사 모두 연구개발(R&D)을 진행 중인만큼 조만간 답을 찾을 전망이다.

그러려면 일단 이 위기를 넘겨야 한다. 당장 대우조선해양은 긴급 수혈이 불가피하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정상화 방안의 일환으로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검토 중이다. 유동성 위기를 막고, 부채비율도 낮춰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돕는 건 상관없는데 여기엔 혈세가 걸려 있다. 산은은 손실을 보전할 수 없을 때 정부가 부족액을 보전해주도록 돼 있는 손실보전 공공기관이다. 부실기업을 도와주다 이들의 부실이 누적되면 결국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은 자구책을 내놨다. 사람을 줄이고, 부동산을 내다 팔겠다는 내용이다. 어떤 형태로든 고강도 구조개혁이 필요한 상황인데 여기서 좀 더 어긋나면 대우조선해양은 다시 한 번 워크아웃의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대우조선해양보다 더 위험하다’는 설에 휩싸인 삼성중공업이나, 사상 첫 2년 연속 적자가 확실한 현대중공업도 처지는 마찬가지다. 한국 조선업계가 최악의 터널에 진입한 것만 확실해 보인다. 저 멀리 희미한 빛은 보인다. 결국 출구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201509호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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