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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대학구조개혁 ‘대혼란’ 

“우리가 부총리에게 속았다” 

김기중 서울신문 기자
관련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교육부 정책도 갈팡질팡… 내년 총선 의식한 교육부 장관의 여론 달래기용 발언에 대학 당국은 ‘부글부글’

▎올 4월 전국 4년제 163개 대학을 상대로 한 대학구조개혁 면접평가가 실시됐다. 대학 관계자들을 위해 마련된 대기실 의자에 각 대학의 이름표가 붙어 있다.
“A, B, C 등급을 받은 상위 대학들은 스스로 달려나가면 된다. 교육부는 앞에서 얼쩡거리기보다 옆이나 뒤에서 지원하고 돕겠다. D, E 등급의 하위 대학들에는 과감한 컨설팅과 투자를 통해 지원책을 찾아내겠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6월 25일 경주에서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하계 대학총장 세미나에서 한 약속이다. 대학구조개혁 평가 결과 발표를 두어 달 앞둔 시점이었다. 그는 “대학 평가의 포인트는 ‘정확한 진단’에 있다”고 강조했다. “평가 기준에 문제가 있다면 교육부는 고집하지 않고 꾸준히 개선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겠다”고도 약속했다. 황 부총리의 이야기를 들은 총장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전남 지역의 한 사립대 총장은 “그동안 교육부가 강제적으로 대학 입학정원을 줄이겠다고 해 걱정을 많이 했다”며 “오늘 부총리의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8월 31일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발표에 대학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2022년까지 16만 명의 입학정원 감축을 목표로 한 대학 구조개혁은 이렇게 황 부총리의 ‘배신’으로 시작됐다. 앞서 교육부가 2014년 12월에 발표한 ‘2015년 대학구조개혁 평가 기본계획’은 ‘D, E 등급은 재정지원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등급에 따라 국가장학금, 학자금 대출과 연계하겠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문구만 보면 과거 이명박 정권의 대학구조 개혁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대학의 우려는 컸다. 황 부총리는 이런 대학들에 거듭 “대학구조개혁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고, 교육부는 그저 돕는 역할을 하겠다”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대학구조개혁 평가는 대학들의 예상보다 훨씬 강도가 높았다.

교수들 간 이전투구 유발하는 정원감축


▎10월 8일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재춘 차관.
교육부의 이번 평가는 일반대 163개교, 전문대 135개교 등 모두 298개교를 대상으로 A~E까지 다섯 등급을 부여하는 게 골자다. 낙제점인 D, E 등급을 받은 대학은 4년제 일반대학 32개교, 전문대학 34개교로 모두 66개교다. 이는 평가 대상의 22%에 해당한다.

교육부는 발표 당일 낙제점을 받은 대학 명단을 언론에 공개했다. 황 부총리가 ‘컨설팅과 투자’를 약속했던 것과 달리 하위 대학들은 명단 공개에 따라 ‘부실대학’이라는 ‘주홍 글씨’를 받았다. 대학은 등급에 따라 ▷정원감축 ▷재정지원사업 참여 제한 ▷국가장학금 제한 ▷학자금 대출 제한 등의 제재를 받는다.

무엇보다 대학을 떨게 한 것은 강력한 정원감축 정책이다. 교육부는 정원감축에 대해 “평가 등급에 따라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율’로 보기 어렵다. 평가 결과에 따라 대학들은 우선 내년까지 5438명의 정원을 줄여야 한다. 2014년 시작된 정원 감축과 합하면 모두 4만7천 명 규모다.

가장 높은 등급인 A등급은 일반대 163개교 중 34개교가 지정됐다. A등급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은 적게는 3%에서 많게는 15%까지 정원을 줄여야 한다. 예컨대 신입생 정원규모가 1천 명인 대학이 D, E 등급을 받았다면 각각 100명, 150명을 줄여야 하는 셈이다. 일반적인 학과 신입생 정원이 30~50명 정도임을 고려하면 적어도 2~5개 학과를 폐지해야 하는 셈이다.

현재 대학들의 수입 가운데 60%쯤이 학생 등록금으로 채워진다. 대학은 그동안 등록금으로 대학을 경영하고 적립금도 쌓아왔다. 사립대의 경우 외국보다 재단이 내는 돈이 적고 자체 수입도 미미하다. 발전기금은 일부 대학에만 몰린다. 이런 상황에서 10~15% 정원감축은 재정 사정이 안 좋은 대학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자율로 줄이라 했지만, 사실상 대학 내에서는 교수들 간에 이전투구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위 등급의 대학들은 정원감축과 함께 교육부의 각종 재정지원사업에서도 제외된다. 학생들이 가정형편에 따라 받는 국가장학금도 받지 못한다. 2012년 1조7500억원으로 시작한 국가장학금은 꾸준히 증가해 올해 3조9천억원에 이른다. 장학금도 줄어들고 학자금 대출규제까지 받는다면 학생들 입장에선 해당 대학을 꺼리기 마련이다.

평가 결과 수도권대학들보다 지방대학의 타격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지난해 초 지방대와 수도권 대학을 함께 평가하는 방법을 발표할 때부터 지방대가 불리할 것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교육부는 이번 평가에 따른 정원감축(5439명)에서 수도권 대학이 50% 이상(4년제 51.4%, 전문대 59.6%)을 차지해 수도권과 지방 간 정원감축 격차가 완화됐다고 평가했다.

이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교육부는 지난해 4월 대학특성화사업을 신청받을 때 ‘대학의 자발적 정원감축비율’에 따라 가산점을 주겠다’고 했다. 이때 지방대학들은 수도권(0~5%)보다 훨씬 큰 폭인 7~10%의 감축계획을 내놨다. 대학구조개혁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지방대 학생들이 가뜩이나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는 지금 상황에서 학생들의 지방대 기피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남아 있는 학생들 역시 간접적인 피해가 불가피하다. 박대림 교육부 대학평가과장은 “국가장학금 지급 제한, 학자금 대출 제한 등의 조치는 신·편입생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재학생에게는 피해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학생들의 생각은 다르다. 동국대·단국대 등의 학생들로 구성된 ‘모두의 대학’의 최장훈 집행팀장(동국대 대학원생)은 “신·편입생이 들어오지 않고 재정 지원이 끊기면 사실상 대학 재단이 재학생들에 대한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등급보다 더 높은 점수 받은 D+대학의 울분


▎교육부의 2015년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낙제점인 D, E 등급을 받은 대학이 66개교에 이른다.
평가 결과를 떠나 이번 평가가 공정성과 신뢰성을 잃었다는 지적도 여럿 나왔다. 특히 하위권 대학 가운데 10% 정도를 상위권으로 승급시킨다는 교육부의 약속 파기가 가장 큰 논란이다.

교육부의 지난해 12월 ‘대학구조개혁 평가 기본계획’을 보면 4년제 대학은 1단계 평가에서 하위권(D, E등급)이 되면 2단계 평가를 실시하게 돼 있다. 2단계 평가 결과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대학은 10% 이내에서 상위권(A∼C등급)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지난 4~6월 1단계 평가릍 거쳐 상위권과 하위권을 구분했다. 7월에는 하위그룹만을 대상으로 2단계 평가를 시행했다. 하위 그룹 통보를 받은 4년제 대학은 모두 37개교였다. 이 대학들은 방학도 잊고 두 달 동안 2단계 평가 준비에 매달렸다. 8월쯤 2단계 평가 결과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대학가에는 등급이 올라갈 것이라는 대학들의 명단이 공공연히 돌았다.

하지만 최종결과에서는 상향조정된 대학은 한 곳도 없었다. 대신 재정지원사업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D등급 대학이 D+ 대학과 D- 대학으로 나뉘었다. ‘총점 ‘80점 이상’ 대학이 바로 D+ 대학들이다. 이들에 한해 기존사업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도록 예외를 뒀다.

기본계획에는 전혀 없는 내용이었다. 교육부는 이와 관련 “2단계 평가를 해보니 하위권 대학 가운데 80점 이상을 받은 대학들이 촘촘히 밀집해 있어 일부 대학만 올려주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D+ 등급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위권 대학 가운데 2단계 평가를 걸쳐 10% 정도를 상향시킨다는 약속에 대해서는 “상향 조정이 가능하다고 했을 뿐”이라며 말을 바꿨다.

사실 교육부는 애초 2단계 평가에서 80점 이상을 받은 대학을 C등급으로 모두 올리는 방안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윗선’에서 제지가 들어왔고, 결국 기본계획에도 없던 등급을 만들게 됐다는 이야기가 대학가의 중론이다.

D+등급의 기준이 사실상 C등급의 기준과 겹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C등급의 기준은 ‘90점 미만’이고, D+등급은 ‘80점 이상’이다. D+등급을 받았지만, 전체점수는 C등급을 받은 대학보다 높은 일도 벌어진다. 결국 1단계 평가가 사실상 모든 것을 가른 것이다. D등급을 받은 대학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D+ 등급에 그쳤다는 뜻이다. 방학도 잊고 평가 준비에 매달렸던 대학으로선 억울할 수밖에 없다.

2단계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대학 가운데에는 강원대도 있었다. 강원대가 평가 직후 ‘평가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 지방대학의 기획처장은 “교육부 관계자로부터 청와대 측에서 ‘등급을 올리지 말라’는 지침을 받아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황 부총리가 결국 약속을 어기고 청와대에 굴복한 것 아니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교육부가 평가를 모두 마친 이후 일부 대학에 대해 뒤늦게 ‘별도조치’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도 특혜 시비가 일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시작하기 전 ‘종교지도자 양성’, ‘예체능 위주’, ‘편제 미완성’ 학교들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평가 대상에서 빠질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정원 감축을 하지 않고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도 없도록 했다.

교육부가 이런 예외 조건을 뒀지만, 일부 대학은 평가에 참여했다. 교육부는 왜인지 이 대학이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캠퍼스 통합 특혜 의혹 등으로 법정에 선 중앙대가 A등급을 받은 일도 논란거리다. 박용성 전 이사장은 물론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까지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중앙대가 A등급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대학은 ‘특혜구제’ 논란도 제기


▎경희대 총학생회 소속 대학생들이 지난 1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구조개혁 평가 반대입장을 밝혔다.
이를 둘러싸고 김재춘 교육부 차관이 보인 행태 역시 뒷말이 무성하다. 김 차관은 발표 나흘 전인 8월 27일 출입기자들을 만나 사전 브리핑을 했다. 이 자리에서 기자들이 “검찰 조사까지 받은 중앙대가 A등급을 받았다는 게 사실이냐”고 묻자 “중앙대에 대해 감점을 했지만, 워낙 점수가 좋아 깎이고도 A등급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후 교육부 자문·심의기구인 대학구조개혁위원회가 중앙대의 감점·강등 조치를 요구했음에도 교육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부의 정원감축 권고가 애초 의도한 정책 효과를 얼마나 발휘할지에 대한 냉소도 흐르는 듯하다. 평가에 따른 정원감축을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여성가족부 장관인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대학구조 개혁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야권의 반대가 심하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사실 여당 의원들도 이 법안을 내켜 하지 않는다. 의원들의 경우 지역구에 있는 대학은 큰 표밭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학의 살을 잘라내는 구조개혁법안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통과를 주장하기엔 껄끄러운 게 사실이다.

당시 법안이 나올 때만 하더라도 통과를 자신했던 교육부의 모습이 우습게 됐다. 정작 대학구조개혁 평가가 시작돼도 법안 통과는 제자리걸음이라면 결국 과거 정권과 마찬가지로 재정지원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구조개혁을 강제할 수밖에 없다. 한석수 대학정책실장은 이와 관련 “관련 법안이 국회 계류 중이어서 강제적으로 대학 정원을 감축할 수가 없었다”며 “불가피하게 정부의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해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개혁하도록 하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법안이 통과하지 못하는 한 결국 재정지원사업 등을 통해 대학의 정원 감축 등을 유도해야 한다. 하지만 대학의 퇴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실제로 이명박 정권 시절 퇴출 명령을 받았던 대학들 역시 소송을 통해 대학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가 퇴출에 가까운 행정명령을 부과해도 소송에서 교육부가 패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퇴출은 관련 법이 없는 한 어렵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대학구조개혁은 어떻게 될까. 논란이 한풀 꺾인 시점인 9월 23일 황 부총리는 전체 대학들에 ‘존경하는 고등교육 가족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서한을 보냈다. ‘이번에 진행된 평가전반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앞으로 2, 3주기에 걸친 구조개혁 추진 방향에 대해서도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10월 16일까지 대학구조개혁 관련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안내문도 함께 들어 있었다. 대학구조개혁 평가자료와 평가위원, 절차 등 전반에 대한 사항과 함께 평가결과에 따른 후속조치, 앞으로 구조개혁 추진방향에 대한 의견을 교육부로 보내달라고 돼 있다. 서식과 내용, 분량 제한은 없으며 익명으로도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부는 제출된 의견을 검토해 앞으로 대학구조개혁 정책을 추진하는데 참고하겠다고 했다.

정책 난맥상에 지방대학 불만은 폭발 직전


▎수원대 종합강의동 앞 게시판에 내걸린 대학구조개혁 비판 대자보. 대학구조개혁 평가는 학내 분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학가가 이를 보는 시선은 그다지 곱지 못하다. 대학구조개혁의 추진과 그동안 교육부의 행적으로 봤을 때 교육부를 어떻게 믿느냐는 푸념이 대부분이다. “교육부의 일방적인 대학구조개혁 평가에 쏟아지는 불만을 달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지방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또다시 황 부총리에게 속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들이 의견을 내더라도 평가방법이 드라마틱하게 바뀌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국회로 가겠다’는 의사를 여러 번 밝힌 황 부총리의 대학 달래기용 제스처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 부총리가 내년 20대 총선에 출마하려면 공직선거법상 90일 전인 내년 1월 14일까지 물러나야 한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작업을 마치고, 이어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예산까지 마무리하고서 부총리가 국회로 간다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청와대는 강한 구조개혁을 요구하고, 이를 뒷받침해줄 국회는 제대로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지방대학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 수장의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다. 대학구조개혁이 탄력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면초가에 놓인 교육부가 제대로 대학구조개혁을 이끌 수 있을지 대학가의 우려도 깊어진다.

- 김기중 서울신문 기자

201511호 (201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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