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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혐혼 신드롬’ 동병상련의 한일 양국 

“배우자·자식·주택융자금, 3대 불량채권은 No!” 

김경철 일본 코단샤(講談社) 뉴스잡지 부문 서울통신원
결혼은 코스파(costperformance, 비용대비 효율)가 최악인 제도로 인식… 결혼 기피로 양국 모두 복구 불가능한 인구문제에 봉착할 수도

▎1. 일본 교토에 있는 한 고대 성지의 회랑을 걷고 있는 노부부의 뒷모습. 노년기의 고단한 삶에도 불구, 이들 세대에서 지금과 같은 결혼 기피현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 2. 2011년 8월 일본의 한 남성이 도보로 7100㎞를 이동해 구글맵 경로 기능으로 ‘MARRY ME’를 새겨 청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큰 화제가 됐다. / 3. 결혼을 1주일 앞둔 커플들의 이야기인 로맨틱코미디 <결혼전야>의 한 장면. 한·일 두 나라 젊은이들은 결혼 기피라는 동병상련을 겪고 있다.
생애 미혼율은 인구통계학 상으로 만 50세까지 한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을 일컫는다. 5년마다 치러지는 일본의 국세조사(2010년) 결과를 보면 일본 국민의 생애 미혼율은 남성이 20.1%, 여성이 10.6%다. 5년 전 시점에서 보더라도 남성은 10명 중 2명, 여성은 10명 중 1명이 평생 결혼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더구나 현재의 추이대로라면 2030년에는 남성 인구의 3명 중 1명, 여성의 4명 중 1명이 평생 결혼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충격적인 전망도 있다.

장기 불황의 여파와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미혼·비혼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부정적인 연애관·결혼관이 일본 사회의 화제가 되고 있다.

도쿄에 거주하는 27세 남성 A씨는 명문 사립대를 졸업한 후 유명출판사의 편집부에서 근무한다. 연봉 400만 엔에 신장 180㎝, 명문대 졸업의 브랜드를 갖췄다. 일본 여성들이 원하는 3고(고학력, 고연봉, 고신장)의 조건을 두루 갖춘 탓에 주위의 여성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식사나 영화를 함께하자는 노골적인 접근을 해오는 여성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여성들의 거듭되는 관심 표명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눈길을 준 적이 없다.

“결혼이나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연애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이나 돈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고, 또 여자 친구와 뭐든 같이 하고 함께 다녀야 한다는 것이 마치 자기만의 세계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휴일에는 주로 동성친구들과 어울립니다. 뭘 하든 비용은 각자 지불하고 싫은 것은 거절해도 되니까 마음 편하고 거추장스럽지 않아서 좋습니다.”

일본에서는 젊은 남성의 생활패턴을 지칭하는 말로서 ‘절식남’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 과거 유행하던 ‘초식남’이 여성이나 연애에 소극적인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면, ‘절식남’은 여성이나 연애에 아예 관심 자체가 없는 남성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절식남은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시하며, 취미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주로 남성들끼리만 어울리며 여행도 남성들끼리 다닌다.

일본 30대 남성 25%가 성경험이 없어

일본가족계획협회가 실시한 ‘남녀의 생활과 의식에 관한 조사’를 보면 2014년을 기준으로 성경험이 있는 사람이 과반수를 넘어서는 연령이 남성의 경우, 29세로 조사됐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30대 남성의 25% 정도가 성경험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절식남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고용불안 등의 경제적인 문제로 남성들이 연애에 대해 위축된 점을 우선 꼽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SNS 등에 의존하는 젊은 층이 현실세계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또한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달로 어디서나 손쉽게 다양한 시청각 콘텐트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연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기 때문인 것으로도 분석된다.

도쿄의 고급맨션에 거주하는 구와노 씨는 40세의 독신남성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성공한 건축가로 사회적 명성과 경제적인 여유도 있다. 살아생전 손주를 한번 안아보고 싶다는 모친의 간곡한 부탁에도 구와노 씨는 “결혼이란 아내, 자식, 주택융자금의 3대 불량채권을 부담하게 하는 백해무익한 제도”라며 독신을 고집한다. 요리와 청소 등의 집안일도 스스로 완벽하게 처리하며 퇴근 후에 클래식음악을 들으면서 보드게임이나 프라모델(플라스틱 모델의 일본식 줄임 말)을 만드는 데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하루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여긴다.

2006년 일본에서 크게 히트한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의 주인공 구와노 씨는 현재 일본에서 급증하는 ‘혐혼(嫌婚)파’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혐혼파’란 용어는 여류시인이자 사회학자인 미나시다 씨가 처음 사용한 후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도시에 거주하며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어 경제적으로 빈곤하지 않은 계층으로, 일반적으로 가정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을 일컫는다.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2010년 조사에 따르면 혐혼파의 비율은 남성이 9.4%, 여성이 6.8%로 나타나서 1982년 조사가 실시된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 주간지 에서 올 6월 도쿄에 거주하는 20~40대의 독신남녀 622명을 대상으로 한 결혼에 대한 의식조사 결과, ‘혐혼파’가 독신을 고집하는 이유는 ‘결혼 생활보다 취미를 우선하고 싶다’가 34%로 가장 높았다. 이어서 ‘현재의 결혼 제도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 ‘일을 우선하고 싶다’ 등이 2, 3위를 차지했다.

2000년대 초에 일본에서 유행하던 ‘콘카츠(婚活, 결혼 활동)’란 말이 있다. 이성과의 만남의 자리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바쁜 일본의 젊은이들이 결혼 정보회사나 맞선 이벤트 등을 통해 상대를 찾아 결혼하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결혼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도, 경비를 지불하는 것도 “결혼은 코스파(costperformance, 비용대비 효율)가 나쁘다”다는 말로 일축해버린다. 그만큼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가 일본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연애상담 전문가인 하츄 씨는 “노력한 만큼 반드시 성과를 얻는다는 보장이 없는 결혼이나 연애보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드러나는 일이나 취미를 택하는 일본인들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 젊은이들의 성과주의적 가치관이 연애와 결혼을 멀리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이미지 컨설턴트인 사와구치 다마코 씨는 “최근 네 커플 중 한 커플은 속도위반으로 결혼했다는 통계가 있다”면서 “그만큼 결혼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동기부여가 필요한 사회가 돼버렸다”고 ‘비혼 만연의 사회’를 분석한다. 과거처럼 모두가 때가 되면 결혼하던 시대가 아니라 결혼이 선택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자의든 타의든 결혼하지 않는 일본인이 차츰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부모님 집에서 살면서 연애만 하자?


▎지난 2월 일본 벳부에서 열린 ‘한·일 대학생 단편영화 교류 프로젝트’ 때의 영화촬영 장면. 경제적 문제로 연애와 결혼을 망설이는 양국 젊은이들의 고뇌를 공유하는 계기가 됐다.
독신자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을 타깃으로 하는 신종 비즈니스도 속속 등장한다. 편의점 체인인 ‘세븐일레븐’은 가사 서비스 전문업체와 제휴해 독신자 가정을 대상으로 청소와 세탁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도쿄와 가나가와 현에서 시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인테리어 전문업체인 ‘무인양품(無印用品)’은 작년부터 스몰 사이즈의 키친 용품 판매를 시작했다. 오븐이나 전기밥솥, 전기 포트, 믹서기 등을 1인용의 콤팩트한 사이즈로 제작해 출시한 것이다. 외식업계에서는 혼자 식사하는 손님에게 봉제 인형을 ‘합석’시키는 독특한 서비스가 예상외로 큰 인기를 끌었다. 4인 구성원이 표준으로 생각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1인 세대 역시 일본 사회의 보편적인 가정으로 진입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건수는 30만5500건으로 전년 대비 5.4% 감소했다. 인구 1천 명 당 혼인건수는 6건에 불과, 조사를 시작한 197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25∼39세의 미혼율을 살펴보면 2010년을 기준으로 여성의 미혼율은 35.5%, 남성의 미혼율은 52.8%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29세의 김영민 씨는 3년째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쓸쓸한 추석을 보내고 있다. 부모님이 계신 천안으로 내려가고 싶지만 대학 졸업 후 3년째 취업을 못한 터라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되도록 피하고 싶다. 평소보다 시급이 훨씬 높은 연휴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계산도 작용했다. 명문대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나 대기업 공채에 번번이 떨어져 올해부터는 방향을 틀어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 낮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밤에는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한다. 밤잠을 아껴가며 일해도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한 달에 50만원 남짓. 방세를 지불하고 나면 20만원도 안 되는 생활비로 살아야 한다. 결혼은 그에게 꿈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다고 해도 당장은 연애나 결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학자금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살 곳도 마련해야 하고…. 솔직히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질 자신이 없습니다.”

일산에 거주하는 33세의 최형준 씨는 IT업체에 근무하는 독신남성. 연봉은 3천만원이 좀 안 되지만 부모님과 함께 사는 덕분에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다. 2년째 교제 중인 여자 친구는 그의 프러포즈를 기다리는 눈치지만 형준 씨에게는 결혼이 부담스럽다. “주위 친구들을 보면 아파트 전세금과 결혼비용 등을 포함해서 적어도 2억원은 넘게 들더군요. 모아놓은 돈은 얼마 없는데 부모님께 손 벌릴 형편도 못됩니다. 주택마련 대출도 저 같은 미혼은 받기 힘들어서, 여자 친구에게 차라리 각자 부모님 집에서 살면서 연애만 하자고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4년에 조사한 미혼남녀의 결혼하지 않는 이유에 따르면, 남자의 경우는 결혼비용 부족(21.3%), 소득부족(19.2%), 실업과 고용불안정(17.3%) 등 경제적인 이유가 무려 57.3%를 차지했다. 반면 여성은 마땅한 사람을 못 만난 것이 24.4%, 결혼비용 부족 등의 경제적인 이유가 24%로 비슷했으며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고민이 17.8%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젊은 세대의 미혼율이 높아지는 것은 취업난 등 경제적 이유와 직결된다고 지적한다. 정규직 취업이 갈수록 힘든 상황에서 연애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데다 막상 결혼을 결심해도 집이나 혼수 등 결혼준비를 하면서 다시 한 번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각종 복지 정책도 이들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의 대부분이 미혼보다는 결혼한 기혼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주택 등 주거 복지사업의 경우 혼인기간이나 부양가족 수 등을 중시하는 가점제가 대부분이다. 젊은 세대를 지원하기 위한 각종 공제나 수당도 역시 기혼자의 출산 장려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성장동력 확보로 보는 접근이 필요


▎지난 2월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에서는 북극곰을 닮은 간병 보조 로봇이 개발돼 화제가 됐다.
서울시의 정책개발 연구시설인 서울연구원 박은철 연구위원은 서울시 노숙인의 실태와 정책과제를 제시하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2000년대 초와는 달리 최근 20, 30대 노숙인이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노숙인의 3분의 2가 장기간 독신으로 산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삶을 지탱해줄 가족만 있었더라도 노숙인이 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기혼자를 위한 정책으로 젊은이들의 결혼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정부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정부가 연애와 결혼을 하지 않는 청년들을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노인에게 집중된 복지예산을 젊은층에 재분배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며 복지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외면받고 있는 젊은층에 대한 대책 마련을 제안했다.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청년층에 생활임금제의 도입과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해 “가정을 꾸릴 최소한의 경제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층의 상당수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나아지리란 기대가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주택 문제, 소득구조 개선, 노동시장 안정화 등 근본적 문제들이 호전된다는 판단이 들어야 한다”면서 “결혼하지 않는 젊은층에 대한 지원을 성장동력 확보로 보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시스템이 여성들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점도 결혼에 대한 저항감을 키운다. 지난 7월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독신여성들 사이에서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는 의식인 ‘비혼식’이 성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현상은 여성에게 육아와 살림, 시부모 부양 등 전통적인 역할을 계속 수행해주길 바라는 남성의 기대와 자신의 꿈과 일에 몰두하려는 여성의 의식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또 이 잡지는 한국이 저 출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성들이 1960년대식 현모양처의 여성관에서 탈피하는 것이 정부의 어떤 출산장려 정책보다 시급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2014년 기준으로 10가구 중 4가구가 맞벌이부부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기혼 여성은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담하는 이중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분담에 대해 ‘여성이 전적으로 분담한다’와 ‘여성이 주로 분담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77% 정도로 나타났다. 출산과 육아 등의 문제로 결혼 후 직장을 포기하는 이른바 ‘경력단절’ 여성도 5명의 1명꼴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여대생의 47%가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는 남학생들에 비해 15%나 높은 수치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김미연 주임은 “결혼하지 않는 여성을 단순히 개인의 취향으로 치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일하는 여성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사회와 기업이 결혼친화적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약회사 차장으로 근무하는 이지애(가명·38) 씨는 지난해 말 350만원을 들여 결혼정보업체의 로얄 회원으로 등록했지만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커플매니저가 추천해주는 사람은 6~7세 연상의 ‘아저씨 냄새 물씬 풍기는’ 남성들이다. 가끔 40대 초반의 남성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어김없이 이씨가 퇴짜를 맞았다. 175㎝의 큰 키와 나이가 부담스럽다는 반응들이다. “커플매니저는 눈을 낮추라고 하지만 아무리 눈을 낮춰도 적당한 사람을 만나기 힘드네요. 결혼 못한 여자라고 낙인 찍는 주위의 눈 때문에 주눅도 들고요. 차라리 결혼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이민이라도 가고 싶어요.”

골드미스 전성시대는 끝났다?


▎40세에 결혼, 지난 6월 43세에 출산한 강소영 씨와 아이. 결혼 기피는 저출산으로 이어져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다.
36∼45세 사이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구매력이 강한 독신여성을 가리켜 흔히 골드미스라고 한다. 화려한 스펙과 고 학력으로 무장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이다. 자칫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여 결혼을 기피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지만, 오히려 결혼하고 싶어도 조건이나 나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커플매니저는 우리나라 남성들의 경우, 여성에 대한 조건으로 외모나 나이를 중시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성공한 여성들의 경제력, 고학력이 전통적인 결혼관을 가진 남성들에게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충고한다. 특히 고연령, 고학력, 고신장은 남성들이 결혼상대로 기피하는 일명 ‘3고 여성’이다. 3고 여성이 결혼에 성공하려면 먼저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 김미연 주임의 분석과 조언이다.

“골드미스의 경우, 결혼 전에 누리던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결혼 후에도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고 그 때문에 경제력 등의 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결혼은 조건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얼마 전부터 국내 결혼시장에서 사각지대로 내몰린 많은 골드미스가 엘리트 외국남성을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일본계 금융사에 근무하는 류민경(가명·40) 씨는 인터넷의 한 국제 동호회를 통해 두 살 연하의 일본 남성 A씨를 알게 되었다. 매일같이 SNS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고 한 달에 한번 꼴로 일본으로 날아가 데이트를 즐기는 사이에, 한국 남성과는 달리 여성을 배려하고 말이 잘 통하는 그에게 점점 빠져들었다. 류씨가 A씨의 프러포즈를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 날, 난데없이 A씨의 부인이라는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의 남편을 유혹했다며 회사로 메일을 보내겠다는 협박에 당황한 류씨는 고민 끝에 직장을 그만둘 것을 결심하게 됐다.

결혼정보 회사의 한 웨딩 컨설턴트는 “최근 탕웨이-김태용 감독 커플 등 유명인들의 국제결혼이 주목을 끌면서 한국인의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이 적극적으로 변화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달콤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이 전문가의 조언이다. 외국인의 경우는 한국에서처럼 신원파악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 사기 등의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 또 막상 결혼한 후에는 가치관과 소통의 문제로 갈등을 빚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컨설턴트는 국제결혼에 대한 신중한 자세를 주문하는 한편, 여성의 학력이나 스펙이 남성보다 좋은 것이 오히려 결혼에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개선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결혼을 꺼려하는 풍조는 필연적으로 인구문제로 이어진다. 일본의 국립사회보장인구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일본의 출산율은 1.42명이다. 그 내용을 보면 기혼여성은 1970년대부터 평균 2%대(2명)의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가임여성 인구의 감소와 독신 여성의 증가에 따라 전체적인 출산율이 계속 저하되고 있다.

일본의 총인구는 2008년 1억2808만 명을 정점으로 2014년은 1억2704만 명으로 집계됐다. 출산율을 감안한 인구추이를 보면 2050년에는 1억 명을 밑도는 9708만 명, 2060년에는 8674만 명으로 전망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생산가능 인구(15∼64세)의 감소가 1990년대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현재 1%대인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2020년부터 마이너스 시대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본정부는 2025년까지 출산율을 1.8%로 끌어올려 2050년에 1억 명을 유지한다는 인구정책의 기본방침을 정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결혼 두려워하는 사회에 재앙 닥친다

우리나라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2014년 평균 출산율이 1.21%로 OECD(경제협력기구) 국가 중 가장 낮다. 급속한 속도로 일본의 인구 구조를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올해 8월 31일 기준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약 5147만 명. 통계청의 인구추계를 보면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2030년부터 전체 인구의 감소가 시작된다. 옥스퍼드 인구문제 연구소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2305년에는 한국의 인구가 5만 명으로 감소해 지구상에서 사라질 첫 번째 국가가 될 것이라는 극단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많은 경제전문가는 인구감소(더 정확히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미래사회의 재앙을 경고한다. 인구의 감소는 시장을 축소시키고 생산성을 하락시킨다. 낮은 성장률은 해외자본의 유입이 어려운 사회를 만들고, 이것이 다시 성장률 저하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국가경쟁력은 날로 떨어진다. 생산인구의 노인부양부담의 증가는 기존의 연금제도를 무너뜨리고 나라의 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간다. 정부는 늘어가는 복지예산과 세수부족으로 인해 야기되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세금을 높여가고 젊은층의 부담은 날로 가중된다. 고령의 유권자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정치가들은 노골적으로 노인세대를 위한 정책에 집중하게 되면서 노인을 위한 세제감면, 노인을 위한 복지 등이 우선시되고 이에 대한 재정부담 역시 고스란히 젊은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의무와 혜택의 불균형으로 인해 세대간 갈등은 더욱 증폭된다. 성장일변도 정책을 유지하던 사회인프라도 인구감소로 인해 잉여시설로 전락한다. 농어촌에는 빈집이 즐비하고 도심 곳곳의 공공시설이 유령화되어 가며 어느덧 나라 전체가 공동화되어 간다….

우리나라가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들고 5년 단위로 ‘저출산·고령사회 5개년 기본계획’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10년 동안 퍼부은 예산만 81조원에 달했지만 출산율은 9년 동안 0.03%를 끌어올리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그동안의 저출산 대책이 복지부에만 맡겨져 종합적, 다각적인 대책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일본처럼 저출산문제 담당부처(장관)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한편에서는 비혼·만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도 있다. 결혼하지 않는다면 무상보육이나 출산장려에 아무리 예산을 쏟아부어도 출산율을 높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 역시 이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올해 안으로 발표될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에서는 만혼과 비혼 문제가 저출산의 중요한 원인이라 보고 청년들의 결혼 장애요인인 주거 부담, 고용,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담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한일 양국은 지난 수천 년간 인류 공동체를 지탱해온 결혼제도의 붕괴 위기를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겪고 있다. 한일 양국의 상호이해와 진실한 협력은 이 위기의 극복과정에서 공감 어린 토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 김경철 일본 코단샤(講談社) 뉴스잡지 부문 서울통신원

201511호 (201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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