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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100대 경제문화재 탐구는 근대화의 혼을 찾는 작업” 

한기홍 월간중앙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경제의 동맥경화 부르는 규제 혁파하고 한·중 FTA 최대한 활용해야… 기업의 자발적 구조조정이 최대 현안, 차이나 쇼크는 융합신산업 분야 개척으로 돌파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력업종의 글로벌 과잉공급으로 구조조정 압력이 거세졌다”고 전제하면서 “각 기업이 선제적 사업재편을 통해 부실화를 막고 경쟁력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직 가운데 국정 이해도가 가장 높다는 평을 들었던 윤상직 장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3년 가까이 그가 추진했던 산업통상자원 정책의 선과 후를 들어봤다. 재직 중 그를 둘러싼 경제환경은 매우 척박했지만, 그는 한국경제의 앞날을 희망적으로 전망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플랫폼에 한류의 매력, 거기에 첨단 IT산업의 경쟁력이 낙관론의 근거다. 그는 그 3개의 요소가 융합해 대폭발할 날의 도래를 확신한다.

윤상직(59)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 테크노크라트 중 한 명이다. 실무 경험과 학문적 토대가 단단하게 결합된 관료란 평가를 받는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지식경제비서관, 이후 지식경제부 차관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으로 임명될 때는 모두 놀랐지만, 그를 잘 아는 관료들은 “납득이 가는 인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과업에 몰두하여 완수해내는 뚝심이 대단하고, 일을 완수한 후 좀처럼 공을 다투지 않는 장점을 높이 평가받았다는 후문이다.

태어난 곳은 경북 경산이지만 초·중·고교를 모두 부산에서 다녔다. 프로야구 롯데팀을 응원한다는 것을 보면 그의 정신적 고향은 부산이라 할 수 있다. 부친은 삼성 라이온스를, 서울이 고향인 부인은 두산 베어스를 응원한다고 한다. 부산고-서울대 무역학과-고려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석사(1998년)와 박사(2007년) 학위(법학)를 받았다. 그는 박사논문 주제로 개성공단법을 택했다. 박사 논문을 쓰기 10여 년 전부터 그는 북한 경제에 관심이 많았다. 1997년 첫 유학 시절에 이미 그는 위스콘신의 한 법학 전문지에 70쪽에 달하는 ‘북한 외국인 투자법’ 관련 아티클을 게재했다. 북한이나 개도국과의 경제개발과 관련, 자신의 역량과 경험이 활용될 날이 올 것이란 자신감도 내비쳤다.

그는 대표적인 현장 중시형 장관이다. 취임 첫해인 2013년에는 휴가를 내고 밀양 송전탑 현장으로 달려갔던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뭔가 진행형 과업을 제쳐두고 편히 쉬지 못하는 체질이다. 휴일에도 산업현장을 찾아다니는 일이 잦은 편이다. 디테일에도 강하다. 상공부-산업자원부-지식경제부-산업통상자원부 등 사실상 같은 부서에서 30년 이상을 근무했다. “귀신은 속여도 윤상직은 못 속인다”는 말이 나올 법도하다. 과장급 간부 30명을 불러놓고 그들 개개인에게 “꼭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일일이 지적했다는 일화도 있다. 다른 나라 통상장관 등과 협상에 나설 때에는 특유의 ‘밀당(밀고 당기기)’으로 목표한 바를 반드시 성취해내는 근성이 있다. 그래서 현직 장관 가운데 국정 이해도가 가장 높다는 평을 들었다. 박 대통령이 개각 리스트에 윤 장관의 이름을 좀처럼 올리지 못했던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조개혁 대상이면서도, 다른 기업을 지목


▎지난 11월 4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미쉘 사팽 재정예산결산부 장관이 창업기업 교류협력 의향서에 서명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장관 재직 중 그를 둘러싼 환경은 매우 척박했다. 수출과 내수경제가 쌍끌이해주는 경제의 선순환을 그는 거의 누리지 못했다. 항상 노심초사의 국면에서 장관직을 수행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출은 내리막이었고, 세월호 사건 등으로 극심한 내수침체를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 경제의 장래에 강한 낙관론을 견지했다. 아직도 한국 제조업은 세계적인 플랫폼을 갖고 있고, 거의 모든 기술 분야에서 세계 5위 내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 근거다. 거기에 에너지 신 산업 분야의 강점, 한류 플랫폼, 첨단 IT분야의 저력을 합치면 무궁무진한 ‘융합신산업’의 개화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그는 경제의 동맥경화 현상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아직도 기업의 자발적 혁신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삼성과 롯데의 구조조정 의지에 대해선 높은 평점을 매겼다. “최고의 대기업그룹 삼성의 혁신을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기업집단이 아직도 많다”고 그는 지적했다. 구조개혁의 원론에는 찬성하는 척하면서, 막상 자신에게 닥친 개혁과제를 외면하는 기업이 존재한다고 일갈했다. 자신이 구조개혁 대상이면서도, 다른 기업을 지목하는 이기적 발상에 대해서는 분노를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가 경제의 동맥경화로 간주하고 있는 것 중엔 과도한 규제와 위선적 경제 이데올로기가 있다. 규제개혁에 대해선 사악하고 의도적인 잘못은 엄벌하되, 그 외의 것은 과감히 풀어서 경제흐름의 숨통을 풀어야 한다고 봤다. 값싼 전기를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동시에 원자력 발전을 반대하는 위선적 태도도 경제의 동맥경화를 부르는 대표적 사례로 간주했다. 대안도 제시 못하고, 50년 전으로 돌아갈 의사도 전혀 없이, 비판만 해서야 되겠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윤 장관은 <월간중앙>이 내년부터 시작하는 <근대화의 피땀 어린 100대 경제문화재 탐구>의 연중 기획 취지에 대해서도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경제의 동맥경화를 역사에 기대 극복하려 할 때, 근대화 유산에 담긴 스토리는 가장 강력한 교훈을 제시하는 콘텐트가 될 것”이라 밝혔다. 윤 장관은 경부고속도로 최초 구간, 거의 다 사라진 구로공단 건물, 제철소 고로와 조선소 도크, 초기의 전자교환기, KIST 등을 경제문화재의 사례로 꼽기도 했다. 윤 장관은 “이 사업은 산업화 시대의 유산을 자랑스럽게 간직하자는 국민 캠페인이며, 당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정책 입안자와 근로자들이 죽거나 연로해가고 있는 만큼 콘텐트 구축 사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11월 4일 오전 정부 서울청사 장관 집무실에서 2시간 30분에 걸쳐 이뤄졌다.

개각설,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 어떤 입장인가?

“코멘트하지 않겠다.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 외에 드릴 말이 없다.”

평생 임명직 공직에만 있었는데, 선출직 공인이 되어 더 큰 포부를 펼치고 싶은 꿈은 당연히 있을 법하다.

“장관직 수행하다 국회에 가보면 답답한 일들이 여럿 있다. 질문 답변 과정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적인 희망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마지막 날까지 소임을 다하겠다. 원래 곁눈질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다만 개각설이 나오면서 부처 공무원들이 좀 괴로워하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낀다.”

2년 10개월이나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신뢰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장수의 비결이랄까? 오래 재직하게 되는 배경을 무엇이라 보나?

“1982년 3월 행시 25기로 공무원이 됐다. 결코 빠르게 승진하지 못했다.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처음 공직자의 정신자세를 배웠다. ‘헌신’이라고 했다. 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 말고도 늘 마음에 두는 신조가 있다면 그것은 좌고우면하지 말자는 것이다. 곁눈질은 질색이다. 그리고 나랏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 외에 무슨 특별한 비결은 없다.”

“글로벌 수요 개선되면 수출 잠재력은 충분”


▎10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한·중·일 경제통상장관 회의’에서 만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과 하야시 모토오(왼쪽) 일본 경제산업상, 중산(鍾山) 중국 국제무역협상 대표. / 사진·중앙포토
장관 취임 후부터 지금까지 한국경제는 평탄하지 않았다. 어려운 시절의 경제장관을 지내면서 여러 가지 소회가 있을 것이다. 우리 경제 어디로 가고 있나? 비관론은 너무나 충분히 들었다. 희망적 전망을 듣고 싶다.

“원래 우리 경제는 수출과 내수가 수레를 끄는 쌍끌이 경제다. 지금도 그렇지만 수출의 대외 여건이 너무 좋지 않았다. 내수도 세월호 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중국 발 수요 둔화’란 변수도 나타났다. 자잿값이 하락하면서 신흥국의 경제 침체로 이어졌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나쁘지 않다. 수출 순위는 세계 7위에서 6위로 올라갔고, 물량도 줄지 않았다. 액수에는 급락이 있지만 물량은 플러스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비관적인 거 절대 아니다. 수출 물량 증가율은 주요국 대비 우리가 가장 높다. 예컨대 조선산업도 어렵다고 하지만 기술 경쟁력 측면에선 독보적인 1위를 하고 있다. 잠재력이 분명 있다. 부실을 털고 구조조정 해나가면 조선도 살 것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시간의 문제다. 글로벌 수요가 개선되면 수출 잠재력은 있다.”

무역 1조 달러 5년 연속 달성에 실패했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스의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제패가 무산된 것을 연상케 한다. 장관으로서 아쉬움과 실망이 컸겠다.

“향후 수출 전망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 선진국 경기회복, 환율상승 등이 긍정적 요인이다. 유가하락세, 신흥국 성장둔화 등은 부정적 요인이다. 수출 여건의 핵심변수인 유가가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어 당분간 수출의 어려움은 지속될 전망이다. 세계경제가 어렵다는 건 다 아는 얘기고,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산업계와 경제주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 혁신이란 화두에 주목했으면 한다. 하나의 경제 체제를 오래 지속할 순 없다. 스스로 혁신에 나서야 한다. 누구나 다 공감하는 얘기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각자가 자기 몫만 챙기려고 한다. 기업인 중 일부는 전 세계가 고도성장 하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만 젖어 있다. 그 사람들을 깨워야 한다. 제조업 이외의 부문에서 새로운 일자리와 성장동력을 창출해야 하는데, 힘이 분산돼 있고 자기 몫만 챙기려는 이기주의가 횡행한다. 무역 1조 달러 달성 실패가 주는 성찰의 재료라 생각한다. 수출 세계 6위를 해도 무역 1조 달러 안 되는 것을 보면 구조적인 요인도 분명 있다.”

최근 기업의 자발적 사업재편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선가?

“그렇다. 최근 석유화학·철강·조선 등 주력업종은 글로벌 과잉 공급으로 구조조정 압력이 거세진 상황이다. 기업의 선제적 사업재편이 필요하다. 그래야 부실화를 사전에 차단하고, 산업 경쟁력이 살아난다. 삼성의 행보를 잘 봐야 한다. 스스로 구조조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1위 대기업집단에서 해야 한다면 다른 기업도 같은 필요에 직면한 것이다. 그런데 내 것은 건들지 말라고 한다. 이게 될 말인가? 옛날처럼 정부가 강요 못한다. 부실기업 되기 전에 해야 하는 일이다. 안 그러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

예컨대 포스코의 경우는 어떤가? 개혁의 방향과 방식이 옳다고 보나?

“포스코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 이후 취임한 권오준 회장의 포스코 개혁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뉘앙스로도 들린다.

“만족과 불만족을 논할 계제는 아니다. 다만 지금보다 속도를 더 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방향은 맞는다고 보는 건가?

“방향은 포스코 내부 구성원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실천이 문제다.”

철강 산업이 어려운 것은 중국의 엄청난 잉여생산이 작용하고 있다고 들었다. 포스코가 개혁의 속도를 더 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기업인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포스코도 그렇다. 내가 차관 때부터 했던 이야기가 철강제품의 KS 기준을 올리라는 것이었다.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낮았으니까…. 그렇게 하려면 투자를 더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지금 와서 올리겠다고 한다. 그건 선제적인 대응을 못한 것으로 봐야 한다. 3년이 지나서야 KS 규격에 대한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다. 그게 우리 기업의 현실이다. ‘넘버원’ 삼성도 하고 있지 않나? 뭘 잘할 수 있고, 뭘 못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대기업 같으면 그 정도 혁신 역량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넘버원’ 삼성도 하고 있지 않나?”


자발적 혁신이란 각 경제주체의 자각을 통해 이뤄지는데, 결국 분발심이 필요하단 메시지로 들린다.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저성장의 늪, 결국 사람이 극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선진국 따라잡기(catch-up) 전략의 한계, 세계경제의 구조적 저성장(new normal) 등에 따라 우리 경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혁신은 왕성한 기업가정신이 그 바탕이다. 우리에겐 백사장 사진 한 장 들고 조선소를 세운 기업가정신의 전통이 있다. 노동, 교육, 공공, 금융 등 4대 구조개혁을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우리 안에 흐르는 기업가 정신 DNA를 일깨운다면, 위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중 FTA의 연내 비준과 발효를 준비하고 있다. 한·중 FTA 왜 중요한가? 한국경제를 어떻게 바꿀 건가?

“우리 경제는 대외경제 의존도가 80%다. 수출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적극적인 FTA 정책은 필수다.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2014년 FTA 발효국(39개국)에 대한 수출증가율은 7.1%로 전체 수출증가율인 2.4%를 크게 앞지른다. 우리는 중국경제 성장과정에서 중간재 수출을 통해 큰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지금 중국의 1인당 GDP가 8천 달러지만 2020년 무렵에는 1만3천 달러가 된다. 중국 GDP가 10조 달러인데 매년 6.5% 성장한다. 매년 6500억 달러 성장 볼륨은 우리나라 전체 GDP의 절반이다. 엄청난 규모라는 걸 알 수 있다. 중국의 그런 포텐셜을 활용하자는 것이 한·중 FTA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도 우리가 제일 잘 아는 국가다. 거기에 한류 때문에 굉장히 우호적인 시장이 형성됐다. FTA는 단순한 관세인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증, 통관, 전자상거래, 각종 법률과 관행을 공유하는 경제시스템의 통합이다.”

한·중 FTA는 국내 농수산업에 악재가 될 것이란 걱정이 많았다.

“한·중 FTA에 대한 가장 근거 없는 괴담이 바로 그것이다. 농어민 입장에서 결코 해로운 일이 아니다. 작년 대중국 농수산물 수입은 10% 줄고 수출은 7% 늘었다. 무궁무진한 시장을 두고 피해자의 관점에 서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농업을 성장산업으로 만들어볼 순 없나? 농민이 원하면 정부의 기존 지원도 그런 틀에 맞출 수 있다. 비생산적 지원보다 생산적 지원에 돈을 쓰자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왜 덴마크나 네덜란드가 못 되나? 엄청난 규모의 중국 농수산물 시장에서 우리는 일본보다 경쟁력이 크다. 일본은 우리보다 지리적으로 멀고, 장기간 지속될 후쿠시마 후유증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우리나라 농수산물을 낮에 배에 실으면 그 다음날 새벽이면 중국에 도착해 바로 경매시장에 넘길 수 있다. 이점을 잘 아는 우리나라 농어민들도 한·중 FTA에 큰 불만이 없다.”

한·중 FTA 비준과 발효에 국회가 협조할까?

“당연하다. 연내 발효가 될 것으로 본다. 여야를 떠난 민생문제기 때문이다. 수출 늘리고 수입도 좋은 조건으로 하자는 게 FTA 아닌가? 교역 규모 키우자는 데 반대 명분이 없다. 야당도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미세먼지, 불법조업, 식품검역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은 다 보완됐다. 미세먼지 문제는 단시간에는 해결 안 된다. 식품검역 문제도 우리가 중국에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없다. 다만 검역은 농수산단체에서 원하는 수준으로 맞췄다. 그것을 잘못됐다고 주장하면 억지다.”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TPP 가입 관련하여 정부가 미흡한 대응을 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FTA 관련 협상은 대내적 준비가 매우 중요하다. 콘센서스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미 FTA가 2012년 3월에 발효된 후 이명박 정부는 한·중·일 FTA와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협상을 통상절차법에 따라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TPP는 내가 장관 맡을 때만 해도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FTA 현안은 한중 FTA와 영연방 3국(호주· 캐나다·뉴질랜드) FTA, 한·베트남 FTA, 쌀 관세화, RCEP 등이었다. 물론 TPP도 모니터링한 건 맞다. 그러나 TPP 가입국가도 한국을 받아들이기엔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고 협상력이란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한·중 FTA와 영연방 3개국 FTA를 기반으로 나중에 TPP에 가입한다면 후발국으로 참여한다 해도 상당한 협상력을 갖게 될 것이다. TPP는 아무리 빨라도 2017년 이후에야 발효된다.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TPP 가입, 미국과 중국 눈치본 적 없다”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소기업인과의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박대통령 뒤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 사진·중앙포토
TPP는 일본의 대중국 포위작전의 일환이란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우리가 중국의 눈치를 보며 가입을 전략적으로 미룬 것 아니냐는 관측은 올바른 것인가?

“중국의 압력?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중국 측 실무자가 TPP 가입과 관련한 우리 측 입장변화 등은 사전에 알려달라고 한 적은 있다. ‘신문 보고 알게 되는 것’만은 막아달라는 부탁이었을 뿐 압력설 등은 가당치 않다. 그리고 TPP 때문에 양자 FTA를 도외시할 수 없다. 한·캐나다 FTA는 미국보다 먼저 협상이 시작되어 무려 9년 만에 타결된 것이다. 그런 상대국에 대한 외교적 배려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TPP 가입의 필요성을 제기한 언론에도 귀를 기울였지만 정부 입장에선 확고한 중심을 갖고 가야 하는 것이 FTA 협상이다.”

역으로 미국으로부터의 가입 압력을 받지는 않았나?

“지난 정부 때 실무적인 논의가 있었을 것이므로 의향 타진 정도는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판단은 우리 정부가 하는 것이다.”

미국 측의 희망이 우리에게 전달된 적이 있었나?

“의향 타진 정도는 있었다. 지난 4월 이메일로 우리의 의사를 물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국내적으로 준비가 안 돼서 우리가 ‘예스’ 사인을 보낼 수 없었다.”

각국 간 양자 FTA가 진전될수록 TPP 가입의 중요성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고 보나?

“궁극적으로는 가입하는 것이 맞다. 메가트렌드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가입은 가입이고, 가입과 관련한 협상은 다른 이야기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베트남이 한국 입장을 너무 잘 안다. 이들 국가와 맺은 양자 FTA가 협상능력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언급한대로 한·중 FTA도 굉장히 큰 협상 카드다.”

FTA가 메가트렌드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FTA는 경제 시스템 개혁이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21세기 무역규범이란 측면이다. 우리 경제를 갈라파고스와 같은 고립된 환경에 둬선 안 된다는 건 자명하다. 국내 시스템도 개혁하면서 전 세계적인 규범과의 통일을 꾀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호주의다. 나만 이득 보고 너는 손해 보라는 건 FTA가 아니다. 글로벌 경제규범의 개편과정에서 밀려나면 안 된다는 것이 FTA 메가트렌드의 큰 흐름이다.”

최근 “글로벌 공급과잉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융합신산업 등 새로운 분야로 진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이같은 전략의 배경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공급과잉, 정말 심각한 문제다. 한·중·일 3국이 특히 중복되는 분야가 많다. 최근 한·중·일 관계 장관이 모여 3개국 협의 채널을 만들기로 했다. 다들 고민이 비슷하다.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이 다 겹친다. 그래서 우리가 살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 융합신산업 개념이다. 사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지만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융합산업이다. 제조업에서도 세계적인 플랫폼을 갖고 있고 에너지 신산업 분야의 플랫폼도 강력하다. 거기에 한류가 있다. 마지막 화룡점정이 우리의 IT산업이다. 세 개의 플랫폼과 IT산업의 결합, 유목민적 특성, 속도와 창의성이란 우리 민족만의 강점도 있다. 한중 FTA가 주목되는 것도 13억의 모바일 기기가 깔린 엄청난 규모의 중국시장이 우리 융합신산업의 무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플랫폼 경제 위에서 우리가 더 활개를 칠 수 있는 방안이 과연 뭘까? 그 해답이 바로 융합산업이다.”

한국경제에 관한 희망과 낙관론,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그런데 비관적인 면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가장 걱정하나?

“각종 규제의 엄존을 가장 걱정한다.”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했는데도 바뀌지 않는 이유는 뭔가?

“공무원의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나는 늘 질책을 했다. ‘패러다임 시프트(전환)’된 걸 왜 모르나? 물론 규제가 필요한 대목도 있다. 그러나 너무 심하다. 부처별 법제를 살펴보면 각종 인증 같은 게 엄청나게 많다. 과연 인증이 안전을 담보하나? 그 모든 것을 KS로 묶으라고 했다. 뭐든 심플하게 해야 한다. 중국과는 상호인증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부처간에 ‘내 거 네 거’ 해선 안 된다. 잘하는 부서에 주라는 게 내 지론이었다. 그렇게 실천했다. 우리 부는 중복되는 규제를 전부 국토부로 넘겼다.”

필요한 규제도 있는 것 아닌가? 결국 이해관계의 대립이란 생각도 든다.

“규제가 모든 것의 솔루션이 아니란 점을 알아야 한다. 국회의 시각도 변해야 한다. 유통업 출점 규제 5년이 최근 연장됐다. 그 취지는 잘 알지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대형마트에는 대기업 제품만 팔리는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 제품과 농어민의 생산물이 팔린다. 우리나라 농수산식품 50%가 대형마트에서 유통된다. 공동체, 공동체 하면서 규제를 자꾸 키우려 하면 다 같이 망한다. 규제가 답이 아니다. 규제가 서로 엉켜서 안 풀리는 덩어리 규제라는 게 또 있다. 기본적으로 풀어주되, 의도적이고 중과실에 가까운 것은 처벌하자는 것이다. 나머지는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성숙하게 풀어야 한다.”

“샌드위치 같은 위치가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지난해 12월 23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세종청사에서 열리는 국무회의를 시작하기 앞서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과 긴급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2007년 미국 위스콘신대 유학시절 개성공단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에 개성공단처럼 개방적인 공단 5개만 있으면 통일은 저절로 이뤄질 것”이란 주장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공감한다. 한·중 FTA의 중요성이 바로 거기에 있다. 개성공단 외에도 역외 가공 지역을 추가적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310개 품목에 대해 FTA 특별관세를 적용하게 된다. 중국도 필요하면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을 협정문에 담았다.”

최근 한·중·일 정상회담 과정에서 일본과 중국의 관계 장관을 만나 회담했다. 하야시 모토오 일본 경제산업성 장관과는 양국 기업이 협력해 제3국으로 진출하는 윈윈모델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들었다.

“양국 경제계가 현재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다. 해외에서 시공할 때 일본은 기술은 있지만 코스트가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은 임금 기자재 측면에서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시공 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장점이 있다. 우리가 중국보다 비용은 비싸지만 신뢰성 측면에선 앞서간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같은 위치가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기업은 우리와 합작해서 해외 건설시장 등에 진출하는 모델을 굉장히 선호한다. 화력발전소, 원자력 발전소의 경우 우리는 경험이 매우 풍부하다. 거기에 엔지니어링의 질은 높고 임금은 일본보다는 싸다. 일본에겐 우리 기업이 최적의 파트너란 얘기다. 일본도 화력발전소를 지은 지 오래고, 미국도 원전을 지은 지 오래다. 우리는 둘 다 잘할 수 있다. 이런 내막은 일본 종합상사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 기업이 힘을 합쳐 컨소시엄으로 수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모델을 우리 기업이 적극 활용하면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경기 침체는 자원부국이나 신흥국에 대한 우리의 수출에 큰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차이나 쇼크,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기업인은 동물적인 감각이 발달했다. 중국에 진출했던 많은 우리 기업이 베트남으로 사업장을 이전했다. 중국 인건비가 굉장히 높아진 것이 동기로 작용했는데, 이것이 차이나 쇼크에 대해 완충작용 역할을 하게 된 측면이 있다. 직접적인 쇼크는 어느 정도 피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더 무서운 건 간접 쇼크다. 중국 경제성장이 다운되면서 전 세계 원자재 가격이 급락했다. 신흥국과 자원부국의 구매력이 약화되면서 우리 수출 산업이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해외 수요 부문에서 큰 충격을 받는 것인데, 이게 차이나 쇼크의 본질이다. 차이나 쇼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중국 산업이 내수 소비시장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야 한다. 중국 소비재 시장 개척이다. 그게 우리의 숙제로 떠올랐지만,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확신한다.”

“지도자와 국민, 경영인과 근로자가 함께 이룬 성과”


▎윤상직 장관은 인터뷰를 통해 “산업화 시절의 업적을 기록에 남기는 일은 여야 또는 보수와 진보를 가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제근대화의 큰 흐름 속에서 명멸했던 인물과 상징적 구조물, 문물과 제도 변천의 혁혁한 역사는 그간 단편적으로만 조명을 받았을 뿐이다. <월간중앙>은 내년 초부터 시작될 장기 특집기획을 통해 이 위대한 유산을 관통했던 시대정신을 포획해서 후대에 전할 계획이다. <근대화의 피땀 어린 100대 경제문화재 탐구> 프로젝트다. 경제 주체가 자신감을 회복하고, 국민에게 올바른 국가 경제관을 제시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국회나 정부, 언론과 경제계 등 민간 차원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장관의 견해를 듣고 싶다.

“우리 국민에 내재한 기업가정신을 되살리고, 새로운 세대에게 올바른 국가경제관을 심어주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다. 우리 경제발전사를 기록, 보존하고, 경제발전기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일이다. 그간 정부도 주요산업 별로 유물조사, 산업기술사 도서 제작, 온라인 DB 구축 등 우리의 산업발전사를 정리·보존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였다. 그러나 경제계, 언론 등 민간의 자발적인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앙일보>와 <월간중앙>이 2016년부터 약 2년간 장기 기획특집으로 우리 경제발전사를 조망하려는 작업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정부도 이와 같은 민간의 노력에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경제현대화 과정의 유산(경제문화재) 안에는 놀라운 스토리가 숨어 있다. 그 소중한 컨텐트에 대해 소상하게 증언할 수 있는 분들이 사망하거나 연로해지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더 이상 미루면 컨텐트 발굴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빨리 서둘러 그 시대 주역들의 증언을 온전히 확보해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한국 현대사의 두 흐름이다. 이 둘의 가치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한다고 생각한다. 산업화 시절 우리 국민의 위대한 업적을 기록에 남기는 것은 여야 또는 보수와 진보를 가릴 일이 아니다. 지도자와 국민, 경영인과 근로자가 함께 이룬 성과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그 위대한 여정을 보고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경제현대화를 주도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이 1960~70년대 ‘무역진흥확대회의’를 주재했던 청와대 구관이 사라진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청와대 구관도 보존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구로공단이 거의 통째로 사라진 것도 개인적으로 참 아쉽게 생각한다. 구로공단이야말로 우리 근로자가 수출입국에 헌신했던 위대한 공간이었다. 지금 약간의 건물이 남아 있다고 들었는데, 이것을 잘 보존하고 묻힌 스토리를 발굴, 취재해야 한다. 그밖에 경부고속도로 최초 구간, 포항제철소 고로와 현대 중공업 조선소 도크, IT산업의 여명이라 할 수 있는 초기의 전자교환기, KIST 등에 얽힌 이야기를 정리하고 관련 문화재를 보존해야 한다.”

- 글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201512호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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