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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일본 골프계 평정한 ‘보미짱’ 이보미 

“아빠, 보셨나요? 저 7승 먹었어요” 

나고야=양준호 서울경제신문 기자
2015 시즌 2억3천만 엔 상금, 일본 남녀골프투어 역대 신기록 경신… 새해에는 LPGA 메이저 대회에도 도전, 리우올림픽 대표선수 선발 꿈꾸기도

▎이보미는 2015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7승과 함께 상금 2억3천만 엔(약 22억6천만원)을 수확, 일본남녀골프투어 역사상 최고 상금 신기록을 세웠다. / 사진·양준호
12월 6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의 미요시CC. 이보미(27)와 유럽 투어 소속 해나 버크의 싱글 매치플레이 경기에는 수백 명의 일본인 갤러리가 몰려들어, 한국선수 이보미를 응원하는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다.

이날 마무리된 ‘더퀸즈’는 일본 선수들도 대거 출전하는 4개 투어 대항전이지만 이보미가 가는 곳엔 항상 일본 팬들이 몰렸다. 일본 선수가 경기하는 조만큼이나 이보미에 대한 응원 열기는 뜨거웠다. 홀 간 이동 때는 손뼉이라도 한 번 마주쳐보기 위해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보미가 져야 일본이 우승에 더 가까워지는 상황인데도 그랬다. 이보미는 “국가 대항전 성격의 대회라 나를 응원할 일본 팬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많은 분이 찾아줘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일본 스포츠계는 지금 ‘보미짱’ 이보미에게 푹 빠져 있다. 얼마 전 일본 <아사히신문>이 ‘한국 사람 하면 누가 떠오르느냐’는 선호도 조사를 했는데 운동선수 중에서는 이보미가 1위였다.

이보미는 2015년 시즌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상금 2억3천만 엔(약 22억6천만원)을 획득해 일본남녀투어를 통틀어 상금 신기록을 수립했다. 시즌 종료까지 2개 대회를 남겨둔 11월 15일 JLPGA 투어 사상 최초로 한 시즌 상금 2억 엔을 돌파하며 상금왕을 확정하더니 그 다음 주에는 시즌 7승으로 일본남자프로골프투어(JGTO)의 상금 기록인 2억1793만 엔(2001년 이자와 도시미쓰)마저 넘어섰다. 일본 내에서 이보미는 골프잡지 표지모델은 물론 TV 예능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하는 전국구 스타다.

한국 선수들은 2015년 한 해 JLPGA 투어 37개 대회에서 17승을 쓸어 담았다. 역대 최다다. 상금랭킹 1~5위 가운데 1위와 3~5위 등 4명이 한국 선수다. 메이저 대회에서도 외국 선수들에게 밀려 지난해부터 6개 대회 연속 우승 좌절이라는 쓴맛을 본 일본 골프계는 낭패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보미에게만은 축하와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보미짱 열풍’의 주인공 이보미가 나고야에서 <월간중앙>과 만났다. 이보미는 “많은 분이 나를 응원하고 격려해주니 팬들을 생각하면 기분도 좋아진다”며 “2016년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회에도 조금씩 나가 더 멋진 시즌을 만들어보려 한다”고 말했다.

“최고의 순간, 아빠도 같이 있었더라면…”


▎12월 7일 서울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2015 KLPGA 대상 시상식에서 해외특별상을 수상한 이보미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더 이룰 것이 없어 보일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시즌을 보냈다. 기분이 어떤가?

“일본에 진출한 뒤 ‘이 정도면 됐겠지’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잘해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마음이 골프에만 매달리게 하는 힘인 것 같다.”

상금이 화제다. 2억3천만 엔이란 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같다.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금 관련 기록은 기쁘지만 돈만 보고 골프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운동신경도 좋은 편이 아닌 제가 유일하게 잘하는 운동이 골프다. 지금도 꽤 잘하고 있지만 더 잘하고 싶어서 계속 하는 것이다. 매번 대회를 통해 부족함을 깨닫게 되는 것도 감사하고…. 6월 어스 먼다민컵에서는 2라운드까지 10위권 밖에 있다가 마지막에 우승까지 올라가 일본 통산 10승을 채웠다. 그 대회를 통해 욕심을 버리는 법을 배웠다.”

지난해에 비해 기술적인 면에서는 어떤 부분이 좋아졌다고 느끼나?

“리듬이다. ‘벙커에 빠지면 안 되는데…’, ‘해저드로 가면 어쩌지?’라는 생각들을 많이 버린 시즌이었다. 어떤 클럽을 선택하느냐와 볼을 보낼 목표지점만 생각하고 일정하게 경기한다. 그렇게 일정한 리듬으로 경기하니 실수를 했을 때 후회도 적은 편이다.”

경기에서의 리듬뿐 아니라 티오프 전에도 리듬을 중시한다고 들었다. 정확히 티오프 55분 전에 연습을 시작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맞다. 딱 55분 전에 연습 그린에 올라가 연습을 한다. 롱 퍼트-어프로치 샷-쇼트 퍼트 순으로 연습하는데 이런 노하우는 캐디인 시미즈 시게노리(41) 씨가 가르쳐준 것이다.”

시미즈는 3년째 이보미의 캐디로 일하고 있다. 시미즈가 본 이보미의 성공 비결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다시 언급하려 한다.

상금왕이 되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서 기쁘겠다.

“상금왕을 확정한 순간 코치님이 안아주셨는데 아빠가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빠가 하늘에서 많이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낸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데 대해 마음이 많이 아프고 그립다.”

이보미에게 아버지 이석주 씨는 그의 전부라고 할 만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보미에게 골프를 소개했다. 전기공사 사업을 하던 시절이었다. 하루 두 번씩 미시령을 넘어 속초 연습장까지 데려다주고 데리고 왔다. 이후로는 딸의 코치·캐디·매니저 역할을 도맡아 했다. 그랬던 아버지는 2014년 9월 췌장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56세였다. 상금랭킹 선두를 달리던 이보미는 좀처럼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막판 주춤하며 상금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보미는 당시 “아빠가 계셨더라면 힘을 낼 수 있었을 텐데 뒷심이 부족했다”고 말해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투병 중인 아버지에게 상금왕 타이틀을 바치겠다던 이보미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하지만 바로 이듬해 먼 곳에서 지켜보는 아버지에게 기어이 상금왕의 영광을 돌렸다. 이보미는 이번 시즌에는 LPGA 투어 몇 개 대회에 초청선수로 나갈 수도 있었지만 JLPGA 투어에 전념한다는 하나의 목표에만 집중했다.

“손톱 장식하고 머리 염색하는 데 쓰는 돈이 전부”


▎2009년 8월 23일 제주 더클래식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Nefs Masterpiece’ 최종일 경기에서 이보미가 우승 후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 사진·뉴시스
시즌 초반에는 4개 대회 연속 준우승하는 등 운이 따르지 않았는데.

“우승이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계속했지만 당시에는 여러가지로 고민이 많았다. 일본어도 많이 부족했고 인터뷰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우승하게 되면 받을 스포트라이트가 오히려 걱정이 됐다. 그런 걱정들로 우승을 놓치다 보니까 나중에는 괜한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 차리게 되더라. 후원사 사장님도 눈치 보지 말라며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진심을 다해 말씀해주시니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다는 게 일말의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

“이렇게 올 시즌 잘했어도 역시 메이저 대회의 우승이 없는 것은 아쉽다. 그래도 메이저 4개 대회 모두 톱10에는 들었다. 또 그중 세 번은 톱 5에 들었기 때문에 좋지 않은 성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1년 동안 꾸준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반기에는 메이저는 아니지만 상금이 큰 두 대회에서 우승했고 또 기록들이 점점 좋아졌던 것 같다.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어 아쉽지만 그 덕분에 또 다른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은가.”(웃음)

일본 투어는 상금만큼이나 부상도 두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웬만한 대회에는 자동차가 걸려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상이 있다면?

“제과회사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우승해 1년 먹을 과자와 음료를 조카들과 지인들에게 돌렸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웃음) 렌터카 회사의 후원을 받고 있어 특별히 자동차는 필요하지 않다. 운전면허도 없어서 차는 받자마자 팔았다.”

돈 얘기를 계속해서 미안하지만 많은 상금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도 궁금하다.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투자를 하나?

“(개인적으로는) 잘 안 쓰는 편이다. 평소에는 쉬는 날 손톱 장식하고 머리 염색하는 데 쓰는 게 거의 전부다. 대신 위로 언니 하나, 아래로 여동생 둘이 있는데 네일숍과 미용실을 마련해주는 데 제법 많은 돈을 투자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가족에게 쓰는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오히려 행복하다. 저를 골프선수로 키우기 위해 온 가족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두 수원 광교신도시에 사는데 한 번씩 한국에 들어와 조카들을 보고 언니·동생들이랑 수다를 떨면 그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웃음)

강원 인제 출신인 이보미는 운동을 위해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혼자서 수원으로 올라와 생활했다. 한창 감성이 여린 시절에 객지생활을 했던 탓인지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단다. 이보미는 2013년 7월에는 수원 영통구에 990㎡(약 300평) 규모의 ‘이보미스크린골프연습장’도 차렸다. 개장 당시 40억원가량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의 노후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20승 채우고 서른둘 나이쯤 은퇴 계획”


▎2015년 3월 7일 일본 오키나와현 난조시에 위치한 류큐 골프클럽에서 열린 2015 JLPGA투어 개막전 ‘다이킨 오키드 골프 레이디스 토너먼트’ 2R 경기에 이보미가 드라이버 티샷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올 시즌 이미 많은 것을 이뤘다. 새해의 목표는 어떻게 세웠나?

“새해에는 올림픽이 열리는 해 아닌가. 당연히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현재 세계 랭킹이 16위인데 내년에는 LPGA 투어 대회에도 나가면서 부지런히 랭킹을 끌어올리려 한다.”

내년 8월에 열리는 리우올림픽에서는 골프 경기를 볼 수 있다. 골프는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종목에 재진입했는데, 단체전은 없고 일반 대회처럼 72홀 스트로크 플레이로 남녀 개인전이 열리게 된다. 국가별 출전 선수는 최대 4명. ‘국가대표 선발전이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한국 양궁처럼 한국 여자골프 대표 팀에 발탁되는 것도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 보인다.

현재 세계랭킹으로 봐서는 이보미가 올림픽에 출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보다 세계랭킹이 높은 한국 선수가 7명이나 있기 때문이다. 박인비(2위), 유소연(5위), 김세영(7위), 양희영(8위), 전인지(9위), 김효주(10위), 장하나(14위)가 그들이다. 하지만 올림픽 출전은 대회 한 달 전쯤인 7월까지의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보미 측 관계자는 “시즌 초반 LPGA 투어 대회 두세 개 출전을 생각 중이고 메이저 대회 출전은 이후 ANA 인스퍼레이션과 US 여자오픈에 나갈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투어가 잘 맞는다고 봐야 하나?

“골프 하기 정말 좋은 환경이 갖춰져 있고 팬들은 외국인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대해준다.”

4개 투어 대항전 더퀸즈에서 일본에 져 준우승을 하긴 했지만 대회기간 중 내내 갤러리들을 몰고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제가 주장으로서 부족했던 거 같다. 자만했다. 한일 대항전으로 열렸던 지난해까지 일본 선수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한국팀을 보고 팀워크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 같았다. 선수들끼리 밥도 같이 먹고 연습도 함께 하면서 팀워크를 다지려고 하더라. 제가 하루라도 더 빨리 대회장에 와서 우리 팀 선수들과 친해졌어야 했다. 일본 선수들은 JLPGA 투어에서의 부진을 설욕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일본 팬들의 응원은 사실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국가대항전 성격의 대회라 저를 응원하는 일본 팬은 한 명도 없을 줄 알았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은퇴도 일본에서 할 계획인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JLPGA 투어 통산 20승을 채우고 한국 나이로 서른둘쯤에 은퇴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세계 주요 투어에서 20승을 거두면 KLPGA 투어 영구 시드(평생 출전권)가 주어진다. 구옥희(2013년 작고)·박세리·신지애·전미정·안선주까지 5명만 얻은 영예로운 권리다. 영구 시드를 획득하면 KLPGA 투어 어떤 대회든 자유롭게 출전할 수 있다. 전설에 대한 예우인 셈이다. 이보미는 5승만 더 보태면 한국여자골프의 전설이 된다.

일본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글쎄, 국내 투어에서 열심히 잘 뛰고 있을 것이다.”

이보미는 2010시즌 세 차례 우승에 상금랭킹 1위(5억5700만원) 등 4관왕으로 KLPGA 투어를 평정한 뒤 2011년 일본으로 넘어갔다.

“‘좋은 성적 내줘 행복하다’는 말에 감동 백배”

자신의 어떤 매력이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고 생각하나?

“잘 웃는 것 말고는 또 뭐가 있을까…. 모르겠다. 눈이 마주칠 때 미소를 잃지 않으려 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다.”(웃음)

이보미는 국내 무대 시절부터 ‘스마일 캔디’로 통했다. 일본에는 이보미처럼 팬들을 살갑게 챙기는 선수가 없었다고 한다.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은 “이보미는 ‘스마일 캔디’라는 별명처럼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다. 미소를 잃지 않고 갤러리 성원에 반드시 손을 들어 부응하는 모습이 공감을 부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귀여운 얼굴과 158㎝의 크지 않은 체구로 어마어마한 성적을 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고야에 사는 한 여성팬은 “일본어가 아직은 약간 서툰 편인데 그래도 반드시 일본어로 인터뷰하려는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며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나올 정도고 골프잡지도 이보미 관련 내용이 실리면 더 잘 팔린다”고 말했다.

팬클럽 회장도 취재대상이 될 정도로 이보미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일본의 한 방송사는 더퀸즈 대회 기간 중 이보미 팬클럽 회장인 아베 다카시 씨를 따라다니며 밀착 취재했다. 언어뿐 아니라 일본인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인기 비결이다. 11월 22일 후쿠시마현에서 끝난 JLPGA 투어 대회에서 우승, 시즌 7승을 기록한 이보미는 상금 중 1억원과 각종 우승 부상을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자 돕기에 쓰기로 해 일본인들을 감동시켰다.

팬들과 함께하는 송년회도 연다고 들었다.

“매년 시즌 뒤 팬들을 모시는 식사자리를 만든다. 낯선 무대임에도 편안하게 골프 할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분들이다. 오히려 제게 ‘좋은 성적을 내줘서 행복하다’는 말을 해주시는데 정말 감동일 수밖에 없다.”

이보미는 각종 시상식과 후원사 행사 등으로 가장 바쁜 12월을 보내면서 팬들과의 만남도 빼놓지 않았다. 국내 팬들을 위해 한국에서 별도로 모임을 갖기도 했다. 이보미의 팬대상 송년회는 신청자만 1천 명이 훌쩍 넘어 선착순으로 뽑아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단다.

지난 10월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하는 ‘이보미 초청 골프대회’가 강원 평창에서 열렸는데 신청을 받자마자 120명을 바로 채웠다고 한다. 2박3일에 최대 150만원인 만만찮은 참가비에도 일본 팬들은 이보미의 고향에서 이보미를 만난다는 데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 나고야=양준호 서울경제신문 기자

[박스기사] “몰입, 또 몰입”


▎이보미의 캐디 시미즈 시게노리(왼쪽)가 경기 중 이보미와 코스공략을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사진제공·르꼬끄골프
11승 합작한 캐디 시미즈가 시게노리가 본 이보미의 성공 비결

이보미는 상금왕뿐 아니라 다승왕, 최우수선수(MVP) 격인 메르세데스 포인트 1위(769.5점), 최소타수상(70.19타) 등 각종 부문의 톱(Top) 자리를 휩쓸었다. JLPGA 투어 홈페이지 내의 각 부문 성적을 보여주는 카테고리는 이보미의 얼굴들로 도배돼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여자프로골프의 아이콘 미야자토 아이의 전성기 시절인 2003~2005년과 이보미의 현재를 비교하며 역대 최고 스타 중 한 명으로 이보미를 치켜세우고 있다. 이보미 캐디인 시미즈 시게노리에게 이보미의 성공 비결을 물어봤다.

다른 유명 선수의 캐디도 맡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다니구치 토오루와 우에다 모모코 등의 캐디로 일했다. 2007년 토오루의 캐디를 맡는 한편 남자 대회가 없는 주에는 우에다의 백을 멨는데 두 선수 모두 그해 상금왕이 됐다.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보미 캐디로 일하면서는 그와 몇 승을 합작한 건가?

“2013년부터니까 11승을 옆에서 지켜봤다. 올해는 일본 투어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그 옆에 있을 수 있어서 영광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보미의 성공을 “‘팀 이보미’의 승리”라고 평가한다. 캐디와 코치·트레이너·용품업체 직원 등이 팀 이보미의 구성원이다. 팀 이보미의 체계적인 지원과 이들의 조언을 절대적으로 믿고 그대로 플레이에 옮기는 이보미의 성실함이 일본프로골프 사상 한 시즌 최다 상금 신기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보미와 3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캐디 시미즈는 팀 이보미의 핵심이다. 이보미가 가는 곳엔 늘 그가 있다. 시즌 전 미국 전지훈련에도 동행했다. ‘여왕의 남자’인 셈이다. 그는 캐디로 처음 나선 지 20년째인 올해 두 권의 책을 쓰기도 했다. 그중 하나의 제목은 <프로골퍼도 모르는 우승청부사 캐디의 비밀메모>다.

이보미는 어떤 점이 좋아진 건가?

“일단 드라이버 샷이 안정을 찾았다. 지난 시즌까지는 종종 왼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샷이 나와 어려움을 겪었는데 올해는 그게 없어졌다. 퍼트도 훨씬 과감해졌다. 들어간다는 자신감에 찬 상태로 퍼트한다는 얘기다.”

낮게 날아가다 훅이 나는 실수가 종종 있었던 이보미는 드라이버 로프트를 10.5도로 높이고 부드러운 샤프트로 교체하면서 왼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훅을 바로잡았다. 왼쪽 러프에 빠지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자 스코어도 줄었다. 정교해진 퍼트는 동료들이 인정할 정도다.

일본이 이보미의 경쟁선수로 꼽는 나리타 미스즈(일본)는 “올 시즌 이보미의 버디 퍼트는 홀 앞에서 멈춘 적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퍼트는 들어가지 않더라도 짧은 것보다는 긴 게 나은 법. 이보미한테서는 짧게 치는 실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4~5m 퍼트 성공률이 부쩍 높아졌다는 게 시미즈의 설명이다. 어드레스 뒤 스트로크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던 버릇을 버리고 한 번 마음을 정한 이상 확신을 갖고 바로 치는 방식을 몸에 익혔다.

일본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성적이 부진한데 이보미한테서 배워야 할 점도 있다고 생각하나?

“한 번 연습을 하더라도 완전히 몰입해서 하는 게 이보미의 강점이다. 성실하게, 집중적으로. 일본도 힘을 내야 할 것 같다.”

이보미는 완전한 몰입을 위해 경기 직전 연습그린에 들어서는 시간까지 스스로 정해놓고 어기는 법이 없다. 이보미는 매 대회 티오프 55분 전을 정확히 맞춰 연습그린에 등장, 롱 퍼트-어프로치 샷-쇼트 퍼트 순으로 연습한다. 이런 루틴은 시미즈가 권유했다고 한다.

경기 중 이보미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가?

“이보미는 샷 전에 조금이라도 불안한 마음이 있으면 실수가 나오는 편이다. 그래서 샷 직전까지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눈다. 재미있는 건 이보미가 일본어가 많이 서툴렀던 데뷔 초부터 일본어만 썼다는 것이다. 벽에 부닥치면 몸짓이나 그림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항상 ‘괜찮아요’라는 저의 한국어로 끝난다.”

완벽주의자인 이보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샷이 나오거나 60대 타수를 치지 못하면 자책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버릇을 버리게 된 게 올 시즌 성공의 가장 큰 비결이기도 하다. 시미즈의 ‘괜찮아요’라는 한마디에 이보미는 실수를 잊고 앞에 닥친 홀만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일본인으로서 한국 선수의 캐디를 맡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나.

“한국 선수와 호흡을 맞춘다는 데 대해 전혀 불편한 시선을 느끼지 못한다. 이보미는 일본 사람들도 좋아하는 선수 아닌가. 이보미는 정말 많이 웃는다. 옆에서 보면 정말 팬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미소는 만국공통어이지 않나. 많은 일본 팬이 이보미를 좋아하고 응원한다. 이보미가 ‘이제 필요 없어요’라고 할 때까지 캐디로 함께 일하고 싶다.”

201601호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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