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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4차 北핵실험 이후 청와대 비상상황 풀스토리 

개성공단 인력 억류시 군 병력 투입 시나리오도 준비했다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역대 대통령이 손 놓은 북한 비핵화에 임기 후반 올인, 개성공단 중단 결정은 첫 단추… 박 대통령, ‘끝장 승부’ 결심한 듯

▎3월 4일 계룡대에서 열린 ‘2016년 장교 합동임관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 사진·중앙포토
“개성공단 전면중단? 만약 그곳에 우리 근로자들이 머문다고 생각해보라. 우리 정부의 단호한 대응과 유엔 차원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가능했겠나? 만에 하나 북한이 우리 국민을 억류라도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2월 10일)가 단행되고 3주가량이 지난 3월 초. 박근혜 대통령의 한 참모는 “개성공단 폐쇄 조치는 정말 잘한 일”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북한 땅에 더이상 우리 국민이 체류하지 않는 상황이 정부로서는 더 없이 홀가분하다는 말이다.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에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면중단이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그에 못지 않게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도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입주 기업에는 마음이 불편한 해석이겠지만 대북정책을 입안·추진하는 당국의 입장에서 개성공단은 ‘양날의 칼’과도 같았다. 개성공단은 남북경협의 상징이자 한반도 평화의 안전판 역할을 해봤다. 또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가 북한을 손보려 할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걸림돌이 바로 개성공단이었다. 이 참모는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열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각종 대책회의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의제가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국민들의 안전 귀환 문제였다”고 전했다. 말하자면 정부의 각종 대책회의가 ‘그러면 공단에 있는 우리 국민의 안전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하다 보니 후속조치들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근로자의 안전이라는 족쇄에 얽매여서는 선택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현저히 줄어든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미사일을 쏘아 올려도, 심지어 연평도 포격과 같은 영토에 무력공격을 해오더라도 실효성 있는 대응조치를 취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는 것이다.

특정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실행에 옮기는 데 드는 시간도 적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역대 정부가 북한의 세 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무력 도발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용에 우선순위를 뒀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도 비록 취임 전의 일이긴 하지만 2013년 2월 3차 핵실험 당시의 대응 수위는 지금과 달리했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면 북한 정권이 핵을 포기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리라는 기대감에서다.

이제 한반도 정세가 급변했다.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했다. 앞서 봤듯이 개성공단이 있는 한 북한이 어떤 무모한 도발을 해오더라도 우리 정부가 취할 카드는 제한적이었다. 그런 면에서 개성공단 전면중단이 대북정책 수행의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게 이 참모의 시각이었다. 앞으로 취해질 강력한 대북정책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사라진 것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초강수도 나온다. 유엔 안보리가 비군사적 제재로는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안(2270호)을 채택한 직후인 3월 3일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 6발을 동해상으로 쏘아 올리는 무력시위에 나섰다. 박 대통령도 물러서지 않았다. 같은 날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북한 정권이 무모한 핵개발을 포기하고 북녘 동포들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폭정을 중지하도록 전 세계와 협력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며칠 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비난하며 ‘선제적 핵타격’을 입에 올렸고 미국 정부는 북한에 “도발적 수사와 행동을 중단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북한에 한국인 없어야 북한 버릇 고친다”

한반도 안팎의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에서도 이 참모는 의외로 차분했다. 그는 “개성공단 문제가 해결된 이상 우리는 북한의 어떤 협박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정해진 방향대로 나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정해진 방향을 일러 “북한의 비핵화”라고 못박았다. 김홍균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3월 10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미는 앞으로 북한과 어떤 대화를 하는 데 있어서도 비핵화가 최우선이라는 공통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 비핵화는 박근혜 정부의 남은 2년 동안의 핵심 국정기조가 될 전망이다. 이 참모는 비핵화를 향한 박 대통령의 의지는 아주 단호하며 확고하다고 밝혔다. 개성공단 중단 조치도 결과적으로 비핵화를 목표로 한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사전포석으로 이해되는 상황이다. “행여 있을 수 있는 우리 근로자 인질 사태 가능성을 확실히 제거함으로써 박 대통령이 아무런 제약 없이 정책 의지를 펼칠 토대가 마련됐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별개로 한국 정부는 독자적인 압박 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관여한 북한과 제3국의 단체와 개인 수십 명을 금융제재 대상에 추가하고, 북한을 경유한 외국 선박의 국내 입항을 180일 동안 불허하는 등 해운 제재의 수위를 더 한층 끌어올렸다. 일각에서는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는 반응도 나오지만 한국 정부의 결연한 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려 강력한 대북제재를 이끌어내는 공감대를 확산하는 효과를 노린 조치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울대 김병연 교수는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은 제제와 압박이라는 돌이키기 어려운 길에 서 있다”면서 “이 길로 달려 북한이 변화한다면 우리가 가지 못했던 더 좋은 길과 만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악 시나리오는 테이블에 오르지 않아


▎2월 11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 검문소의 개성으로 올라가는 문과 서울로 내려오는 문이 폐쇄됐다. / 사진·중앙포토
처음엔 정부도 개성공단 가동 중단조치가 불러올 여파와 역풍에 마음을 졸였을 법하다. 야권 일각에서는 남북대치 상황을 선거에 악용하려 든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 전격적인 중단 조치에 따른 추방 기업인들의 반발 등 재계의 불만도 예견되는 분위기였다. 여권 관계자들은 “그런 리스크조차 정부가 다 떠안을 각오로 임했다”고 밝히고 있다. 당장의 유불리를 떠나 장기적인 국익 차원의 결행이었다는 설명이다.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리라던 처음의 예상과 달리 과반수의 국민이 개성공단 전면중단을 지지하는 통에 정책 담당자들이 반색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모아보면 개성공단 전면중단 결정에 앞서 정부는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인력의 안전 귀환이 최우선 과제였다. 1월 6일 4차 핵실험 이후 정부는 관계기관, 기업들에 협조를 구해 개성공단 체류 인원을 조금씩 줄여나갔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부터 정부의 대응이 기민해진 것이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발표한 2월 10일은 설연휴 마지막 날로, 많을 때는 800명 이상 공단에 머물고 있던 인력이 184명으로 줄어 있었다. 대부분의 인력이 설 명절을 쇠러 빠져나온 마지막 날을 D데이로 택했다고 한다.

북한이 이들에 대한 억류 등의 강압적 조치를 취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물리적 충돌은 최대한 피해야겠지만 국민이 불법적으로 억류당하는 사태를 방관할 정부는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마지막 수단에는 우리 병력을 투입해 인력을 구출하는 방안이 포함됐었다는 전언이다. 여권 동향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개성공단 남측 인원 철수와 관련해) 최악의 상황으로까진 가지 않아 다행”이라면서 “북한이 우리 근로자들을 인질로 삼았더라면 우리 병력을 투입하는 시나리오까지 작전 테이블 위에 오를 수도 있는 손에 땀을 쥐게하는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이는 앞으로 있을 수도 있는 남·북간 물리적 충돌 상황까지도 감내하겠다는 여권 핵심부의 의지로 연결된다고 이 소식통이 말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필리핀 정부가 전격 몰수한 북한 화물선 진텅호. / 사진·중앙포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걸린 개성공단의 전면중단은 쉽게 결정된 사안이 아니었다. 국정최고 책임자의 무한 책임과 고독한 결단을 요하는 극약처방과도 같다. 그래서 국내외 많은 전문가조차 정부의 전격 발표에 혀를 내둘렀던 것이다. 역대 한국 대통령과 달리 박 대통령은 단칼에 결행함으로써 북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충격을 줬다. 이 소식통은 “12년 동안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해온 개성공단의 전면중단 결정은 국가관이 투철한 박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했다”이라고 말했다.

이는 과거처럼 국제사회가 북한을 변화시켜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북한의 변화를 강제하는 전략으로의 전환이기도 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라는 솔선수범을 통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참여를 견인하는 승부수라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을 눈앞에 두고 한국이 대북제재를 주도하는 양상과 관련해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일면 수긍하는 편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라종일 전 주일대사는 “예전의 대북 강경 제재는 미국, 중국 등 주변국 몫으로 주어지고 한국은 중간에서 조정자 역할을 자임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제 강대국들의 동참을 이끌어내자면 한국도 단호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입안에 관여했던 학계의 한인사도 “지금은 단기적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북한을 압박할 조건, 제도, 구조의 창출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특히 4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도 중요하지만 5차 핵실험을 막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미국·중국 등 주변국 설득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2004년 12월 문을 연 이래 온갖 군사·정치적 갈등과 풍파 속에서도 가동됐던 개성공단의 사실상 폐쇄는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상징한다. 분기점은 북한의 4차 핵실험(1월 6일)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월 7일)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대북정책의 전면에 나섰다. 1월 6일 NSC 회의에서는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했고, 1월 13일 대국민담화에서는 “개성공단에 추가 조치 여부는 북한에 달려 있다”고 경고했다. 또 2월 6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에는 “하루 속히 강력한 제재 조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국제사회와의 강력한 공조를 예고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도 2월 10일 개성공단 전면중단 관련 정부 성명을 발표하면서 “이런 상황이 변화 없이 간다는 것은 현상유지가 아니라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됨으로써 파국적인 재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 북핵 불용 의지 처음부터 확고


▎한·미 연합 훈련에 참가하는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존 C. 스테니스’호가 3월 13일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했다.
같은 날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 의원은 “북한의 기술발전 속도로 볼 때, 핵무기 실전전력화를 저지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얼마 남아있지 않다”면서 “김정은이 고조시키는 핵 위기는 벼랑끝으로 가는데, 그의 망동을 저지할 시간은 거의 소진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에 앞서 2월 9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이번 대북제재 결의가 마지막 안보리 결의(terminating resolution)라는 엄중한 각오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들 두 사람은 박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으로 박 대통령의 의중을 읽는 데 탁월하다고 하겠다. 특히 윤 장관은 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자문팀의 중추적 역할을 했었고 지금은 외교 장관으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북핵 국면의 조타수 기능을 한다. 이들의 발언은 결국 박 대통령의 메시지와 다름없다.

우리 정부는 지금부터 2~3년을 북한 비핵화의 마지노선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핵무장에 올인하는 북한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수소폭탄으로 핵탄두를 소형화하고, 잠수함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장착되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진다고 우려한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5차, 6차 핵실험을 막을 재간이 없기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고 그 첫 단추가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라는 말이다. “북한이 완전한 핵무장에 성공해 한국 국민들이 북핵의 인질로 전락하는 사태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박 대통령에게서 묻어 나온다”고 정부에 자문하는 복수의 외교·안보 전문가가 전했다.

박 대통령과 접촉한 인사들은 대통령의 북핵 불용 의지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상반기 박 대통령과 만난 한 인사는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은 처음부터 확고부동했다고 전한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라는 ‘벼랑끝 전술’을 통해 하나둘씩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 온 게 지난 10여 년 동안의 북한 지도부였다. 협상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식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에다 하듯 벼랑끝 전술로 나온다면(벼랑끝에 매달린) 북한의 손을 놓을 것 같았다. 북한의 핵개발을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이 인사는 최근 박 대통령의 개성공단 중단과 대북 강경조치에 대해서도 “상황논리에 따른 대응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신념과 판단의 소산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3+3 법칙’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까?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으로 치닫는다. / 사진·중앙포토
다른 각도에서 개성공단의 비극적 운명은 어렴풋이나마 사전에 감지됐다는 인사도 있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의 한 관계자는 “통준위 회의를 대여섯 차례 주관한 박 대통령이 의식적으로 ‘개성공단’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 듯했다”고 기억한다. 그러다 보니 개성공단은 토론 의제에서 비켜나갔다고 돌이켰다. “토론을 하다 보면 어느 맥락에서는 반드시 개성공단을 짚고 넘어가야 하는 때가 있다. 내 주관적 판단인지 모르겠지만 대통령께서는 이 말을 건너뛰거나 애써 다른 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런 자리에서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는 사업은 탄력을 받기 어렵다. 개성공단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성공단 중단과 함께 ‘북한의 셈법’이라는 표현이 정부 관계자들에 의해 많이 회자된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북한을 다루는 처방을 달리함으로써 북한의 셈법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이후에도 독자적 제재 등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석준 국무조정실장도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같은 도발을 계속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며, 상응하는 엄중한 대가를 치르도록 함으로써 북한의 잘못된 셈법을 완전히 변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 셈법을 바꾸는 문제가 박근혜 정부 남은 2년 동안 해결해야 할 과제에 속한다고 하겠다.

도대체 북한의 셈법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우리 정부는 어떻게 바꿔놓겠다는 걸까? 외교·안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북핵과 관련해 ‘3+3 법칙’이라는 말이 나돈다.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의 하현철 박사는 “북한이 대략 3년에 한 번 핵실험을 하고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핵실험 후 평균 3개월 만에 제제의 고삐를 늦추고 유화 국면으로 돌아선다고 해서 나온 말”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북한은 핵실험 이후 3개월 정도의 불편한 제재만 버티면 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원상으로 돌아가리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실익에 부합하는 합리적 계산법이다. 핵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핵 능력을 고도화하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역대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도 북한 핵실험 이후 제재의 강도나 원칙을 느슨하게 적용하면서 북한의 기대 심리를 끌어올린 측면도 있다.

박 대통령은 이 셈법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앞으로는 북한의 셈법이 그들의 입장에서도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우리가 입증해야 북한이 변한다”고 말했다. “강력한 제제와 압박을 통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 이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다면 북한은 끝내 5차, 6차 핵실험에 나설 것이고 우리는 북한의 핵 위협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아주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가 이전 정부의 패턴으로 돌아가주기를 고대하겠지만 박 대통령은 이미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철저히 고립되면서 경제와 정치 등에 심대한 타격을 입는 경우다. 정권 유지가 불가능해져야만 핵 야망을 접을 것이라는 게 셈법을 바꿔주기로 결심한 여권 핵심부의 결론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우리가 과거 정부의 패턴을 따라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북한 핵무장 막을 마지막 2년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면서 핵탄두로 추정되는 물체를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했다. / 사진제공·노동신문
당연한 귀결이지만 남북한 대화는 상당기간 동결될 전망이다. 과거에 그랬듯 북한이 일정 시점이 지나 대화제의를 해오더라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일련의 북한 행보로 볼 때 대화 제의에 진정성이 담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대화를 한답시고 남북이 머리를 맞대는 그림은 자칫 국제사회에 대북제재 완화라는 잘못된 시그널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측의 설명이다.

이런 구도라면 인도적 교류 협력이나 이산가족상봉 같은 귀가 솔깃한 제안도 한국 정부의 반향을 얻기 어려울 전망이다. 단 한 가지 예외가 비핵화 대화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 어떤 대화를 하는 데 있어서도 비핵화가 최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힌 만큼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 접촉이나 대화는 겉돌 게 마련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2년이 북한의 핵무장을 차단할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에 올인할 것이며 정권의 명운을 건다는 풀이를 낳는 이유다.

이런 마당에 북한은 경량화, 표준화에 성공한 핵탄두라고 주장하는 사진을 공개하는가 하면, 한미연합훈련에 즈음해서는 서울 해방작전을 공언하는 등 공세의 수위를 극대화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원칙주의와 북한의 모험주의가 맞닥뜨리면 자칫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한국 사회 일각에서도 제기된다. 정부는 군사적 긴장감 고조도 궁극적으로 감수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한 참모는 “결과론이지만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부터 군사적 마찰을 무릅쓰고라도 아주 강력하게 대처했어야 게 옳은 게 아니냐”면서 “만약 이번에도 물러선다면 북한은 핵을 미사일에 탑재할 것이고 우리 국민들은 북핵의 인질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여권 내부의 기류를 설명했다.

고대 로마 군사전략가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을 남겼다. 전쟁을 두려워하고 망설일수록 상대는 더 만만하게 보면서 모험을 걸고픈 유혹에 빠진다는 말이다. 이를 한반도에 뒤집어 적용하면 한국 정부가 전쟁 불사 의지를 분명히 할수록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게 된다. 청와대 기류도 이에 맞닿아 있다는 게 친박계 원로급 인사의 진단이다. 이 원로급 인사는 “청와대가 북핵 폐기를 전제로 남북관계를 아주 경색 국면으로 가져갈 것 같아 우려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인사를 비롯해 박 대통령 측근 중에는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박 대통령의 결심을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 사안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지난해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맞설 때부터 그 단초가 자라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목함지뢰 도발에 따른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북핵 미사일 도발에 이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향후 대북정책의 지향점을 보여준다”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말했다. “청와대는 북한의 비핵화에 소명의식을 느낀다”고 그는 덧붙였다. 개성공단이라는 일종의 ‘굴레’를 벗어버린 박 대통령의 의지와 지향점을 북한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604호 (201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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