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전복, ‘패류 황제’이자 진주의 핵(核)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전복은 궁중요리의 필수 음식 재료이자 노약자, 병후 건강회복에는 으뜸… 속껍데기는 자개·나전·세공·단추로 쓰거나 똥그랗게 갈아 진주 양식에 활용

▎전복은 살, 내장, 껍데기까지 버릴 게 없다.
프랑스 시인 장 콕토(Jean Cocteau)는 “내 귀는 하나의 조개껍데기, 그리운 바다의 물결소리여!”라고 노래하였다. 바닷가를 어슬렁거리다가 조개껍데기를 보면 저절로 주워서 귓전에 갖다 대게 된다. 조가비 말고 커다란 고둥에서도 ‘싸아~~ 싸아~~’ 물결소리가 세차게 들려온다. 음의 공명(共鳴) 탓에 생기는 소린데도 꼭 파도소리로 느낀다.

바다의 조개고둥(패류, 貝類) 중에서 천생 사람의 귀 닮은 것이 있으니 바로 전복(全鰒, abalone)이다. 전복을 포(鮑), 복(鰒)이라 하고, 찐 것을 숙포(塾鰒), 말린 것을 건복(乾鰒)이라 부른다. 서양인들은 전복을 귀 닮았다 하여 ‘ear shell’ ‘sea ear’라 하고, 일본 사람들은 이패(耳貝)라고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의 눈은 너나 할 것 없이 크게 다르지 않나 보다.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전복 100여 종 중에서 여남은 종만 식용하고, 우리나라에서 나는 대표적인 것에는 전복(Haliotis discus), 말전복(H. gigantea), 오분자기(H. diversicolor)가 있고, 이들 학명(속명) Haliotis는 라틴어로 ‘바다의 귀’란 뜻이다.

전복은 우리나라 남부해역에서 많이 서식하기에 진도나 완도 등지에서 많이 기른다. 덕택에 그 귀한 전복을 회(膾) 처먹고 죽(粥) 쑤어 먹는다. 일일이 잠녀(해녀)가 손으로 땄을 적엔 참 귀물(貴物)이었는데 말이지.

전복은 연체동물(軟體動物)의 복족류(腹足類)로 전복과에 속한다. 고둥이나 달팽이를 복족류라 부르는데 전복은 원뿔 모양의 고둥이 납작하게 눌려진 꼴을 한다. 다른 말로 껍데기가 한 장으로 조가비(조개껍데기)가 두 장인 조개와는 딴 패류다. 둥그스름한 겉껍데기에는 울툭불툭한 돌기가 나고, 성장선(成長線)이 나선형으로 비비 두세 바퀴를 튼다. 그리고 위쪽 끝자락에 여러 개의 구멍이 한 줄로 가지런히 뚫려 있고, 머리에는 한 쌍의 촉각(더듬이)과 눈이 있으며, 아가미는 한 쌍이다.

그리고 전복은 복족류라 널따랗게 퍼진 단단한 근육 발(足)로 바위 바닥에 찰싹 달라붙으며 스멀스멀 긴다. 세상에 공짜 없다. 전복 겉껍질엔 따개비나 해초 따위가 더덕더덕 들러붙어서 전복이 몸을 숨기고 감추는데 도움을 받고, 그것들은 전복에 붙박여 삶터로 삼는다.(사육한 것은 부착물이 없어 껍질이 매끈하다) 전복은 미역, 다시마 등의 해조류(해초)를 먹고 사는 초식동물이다.

그리고 전복껍데기에 분화구처럼 도드라지고, 줄지어 난 구멍이 여럿 있다. 발생 초기에는 그 구멍이 22개 정도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막혀버리고(흔적만 남김), 새로 구멍이 생기며, 성패(成貝)가 되면 4~8개만 남는다. 그 구멍은 출수공(出水孔)으로 전복의 배설물(똥, 오줌)과 아가미를 거쳐 나온 물, 알·정자를 함께 몸 밖으로 내보낸다. 전복이나 말전복의 출수공은 3~4개, 오분자기는 7~8개다. 하여 전복 모양이 비금비금할 때는 이 구멍을 헤아려 구분하니 전복 분류에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필자는 한때 커다란 전복껍데기를 비눗갑(비누받침)으로 썼으니 구멍으로 쉽게 물이 빠져나가고, 진주색 바탕에 얹혀 있는 새하얀 비누가 멋진 조화를 이룬다!

여름에서 늦가을까지 산란철… 저녁 무렵에 산란


전복은 암수가 따로 있는 자웅이체(雌雄異體)다. 전복의 몸을 껍데기에 붙이는 폐각근(閉殼筋)을 칼이나 숟가락 끝으로 떼내고, 내장의 생식소(生殖巢) 보면 수컷 정소는 유백색(乳白色)이거나 노랗고, 암컷 난소는 녹색이거나 갈색이다. 전복 내장으로 담근 내장 젓갈은 짭짤하면서도 향과 맛이 일품이다.

한국에서 보통 수온이 20℃에 가까운 7, 8월에서 늦가을까지가 산란철로 저녁 무렵에 산란한다. 수컷이 먼저 회색 연기를 피우듯 희뿌연 정자를 한껏 뿌려 암컷의 산란을 자극하면 암컷은 푸른 연기 같은 알을 내뿜는다. 나이에 따라서 한꺼번에 1만 개에서 1000만 개의 알을 낳고, 물속에서 수정이 일어나니 말해서 체외수정(體外受精)이다. 수정란은 물속의 조류(藻類, algae)들을 먹고 담류자(膽輪子, trochophore), 피면자(被面子, veliger)의 유생 시기를 거치면서 자란다. 이렇게 플랑크톤 생활을 근 1주일 한 뒤에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를 먹기 시작하고, 한 달이면 벌써 2㎜ 정도 크기로 어미 아비 닮은꼴을 하게 된다.

전복 사육을 위해서 씨종자(종패, 種貝)를 얻어야 하니 여기에도 어려운 기술이 따른다. 무엇보다 먹잇감 만들기가 까다롭다. 보통 11~12㎝ 크기의 어미를 새끼치기용으로 쓰는데 암수 생식소를 끄집어내 섞어 수정시켜 미리 배양된 규조류(硅藻類, diatom)를 먹여 6개월 남짓 사육하면 얼추 10~15㎜로 자란다. 이 새끼조개(치패, 稚貝)를 중간 사육장으로 옮겨 6개월을 더 키우면 30~40㎜가 되고, 그것을 바다(가두리)로 옮겨 파래·미역·다시마 등을 따다 먹여 2~3년을 더 키워 내다판다.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는 놓아 키운 자연산을 많이 채취하지만 일본·중국·한국 등지에서는 마구잡이로 멸종 직전에 놓인 터라 바다농장에서 주로 인공으로 사육한다.

예부터 전복은 ‘패류의 황제’로 군림해왔고, 일찍이 궁중요리에서도 전복은 꼭 있어야 하는 필수 음식재료였으며, 맛과 영양 면에서 으뜸으로 쳤다고 한다. 특히 산모가 젖이 말랐을 때, 노약자, 병후 건강회복에는 전복죽을 윗자리로 치는데 전복에는 타우린·아르기닌·메티오닌·시스테인 등의 아미노산이 그득 들어있다. 오돌오돌 씹히는 싱싱한 회나 푹 끓인 죽, 짭조름한 구이, 고수한 찜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좋다.

하나도 버릴 게 없는 내로라하는 전복이다! 전복은 죽어서 살과 내장 말고도 껍데기까지 남기니 말이다. 진주 광택 나는 영롱한 속껍데기는 자개·나전·세공·단추 말고도 똥그랗게 갈아서 양식 진주 만드는 핵(核)으로 쓰고, 옛날엔 전복에서 천연(자연) 진주를 캤다고 한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606호 (2016.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