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최치현의 우리가 몰랐던 일본, 일본인(21)] ‘엔카의 아버지’ 고가 마사오의 비밀 

간절함의 눈물 선율에 담아내다 

선린상고 15회 졸업생… 소년 시절 한반도에서 보내
독자적인 ‘고가 멜로디’는 지금도 일본 엔카의 음계를 지배


▎선린상고 15회 졸업생(1922년 졸업) 고가 마사오가 1971년 이 학교를 방문한 기념으로 기증한 시계탑. / 사진 : 최치현
예술이 없다면 세상은 무서운 곳이다. 음악이라는 장르의 예술은 소리와 음성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달래준다. 술과 음악의 공통점은 인간을 달래준다는 데 있다.

“노래는 세월 따라, 세월은 노래 따라”라는 속담처럼 노래 속에는 세상의 물정과 시대상이 반영된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부조리한 현실의 슬픔을 표현한다.

인간의 슬픔은 뭔가로 표현되는 순간 완화된다. 스토리로 만들거나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면 가능한 이야기다. 자연에 존재하는 소리에 질서를 부여한 뒤 인간의 말 또는 시가 붙게 되면 가슴을 뛰게 한다. 자연의 소리를 찾아내는 사람이 작곡가고 세상에 흘러다니는 이야기를 채집하는 사람이 작사가다. 그리고 이들이 편집한 세계를 외부로 드러내서 표현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가수를 포함한 연주자다.


▎음악은 평화라는 의미의 ‘音樂和也(음악화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 사진 : 최치현
세상에는 다양한 대중음악이 존재한다. 미국의 컨트리뮤직,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초네, 터키의 아라베스크처럼 일본의 대중가요는 엔카(演歌)라 불리는 경우가 많다.

엔카의 사전적인 정의를 살펴보자. 1960년대 중반 일본의 가요에서 파생된 장르로 일본인 특유의 감각이나 정념(情念)에 근거한 오락적인 가곡이다. 당초 같은 음운인 艶歌(염가, 진한 사랑노래)나 怨歌(원가, 세상을 원망하는 노래)라는 이름도 이에 해당된다. 그러다 1970년대 초 빅터 레코드사에 의한 프로모션 등을 계기로 엔카라는 이름으로 정착한다.

음악 이론적으로는 엔카에 대한 정의는 없다. 대부분의 악곡 리듬은 록이다. 엔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일본의 대중음악은 지난(至難)한 길을 걸어왔다. 어느 나라의 전통이건 완전히 고유한 것은 없다. 다른 문명과의 교류와 혼합에 의해 자신만의 이름을 얻었을 때 전통이라 부른다. 그래서 일본의 대중음악을 지칭하는 이름 중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엔카다.

한국을 대표하는 트로트는 창가·민요 등 민속음악에 뿌리를 뒀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미국의 폭스트로트라는 장르가 한국과 일본에 동시에 전해졌고, 일본에 유학한 도시 엘리트들이 대중가요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왜색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트로트에는 비하의 의미도 담겨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저급한 B급의 대중문화라는 편견이다. 엘리트주의의 소산이다. 뽕짝이라 불리기도 하고 엔카의 아류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트로트란 정의도 불분명하다. 전통이라는 확실한 증거도 없으면서 전통가요로 불리고, 성인들이 좋아한다고 해 성인가요라고 불리기도 한다.

1980년대 중반 트로트 이름 찾아주기 운동이 있었다. KBS가 전통가요라고 하자 MBC에서는 ‘애가’(愛歌 또는 哀歌)라고 명명했다가 흐지부지됐다. 트로트는 시련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서민의 사랑을 받는 대중음악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20세기 들어 사회풍자로 소재 바뀌어


▎‘엔카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가 마사오.
인류문화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저서 [총, 균, 쇠]에서 한국과 일본을 역사적으로 쌍둥이 형제에 비유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요즘 같은 때는 불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 분야의 문화예술 전통이나 가요 분야를 보면 이런 비유가 적합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같은 콜롬비아·빅터·폴리돌 등의 레코드사에서 비슷한 음악을 만들어냈고, 한반도의 음악인들은 일본으로 음악 유학을 떠났다.

그렇다면 엔카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대중음악에는 사람들의 감춰진 욕망과 심성이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엔카라는 장르를 주목해 보자. 낡아빠진 옛날 노래로 치부될지도 모르겠지만, 엔카는 시대상과 일본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다.

엔카는 1877년 자유인권운동이 벌어질 때 정치적 선전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 그 시초다. 엔카는 연설(演說)과 노래(歌)가 합쳐진 말이다. 현대 엔카의 3대 요소는 항구(港)·눈물·(淚)·비(雨)라고 한다. 일본인의 특유한 이별·비련·향수를 표현한다. 주제는 덧없는 인생과 사랑이다.

처음에 엔카라는 이름은 당시 자유와 인권이라는 주제를 담아 사람들에게 전해주려 했던 정치 연설을 통해 나타났다. 나중에 인간의 슬픔·기쁨·쇠함·사라짐에 대한 회한을 부르는 일본 노래를 지칭하게 됐다.

19세기 후반 들어 메이지 정부에 반발하는 공개 연설회에 대한 당국의 감시가 엄해지고, 연설을 금지하자 그 압력을 피하기 위해 정치를 풍자하는 노래 ‘연설가’(演説歌)가 태어났다. 대표적인 것으로 가와카미 오토지로(川上音二郎)의 ‘옷페케페부시’가 있다.

20세기 무렵 자유인권운동이 일단락되자 연설가에도 변화가 인다. 소재가 정치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사회 문제에 대한 풍자로 바뀌어 간다. 일본의 전통 현악기인 사미센(三味線) 연주에 바이올린과 아코디언이 가미되기도 한다. 이런 노래를 부르는 엔카시(演歌師)도 등장한다. 그러나 쇼와(昭和, 1926~1989년) 초기에 음반·가요 시장이 형성되면서 엔카시들의 활동에 타격을 받았다. 그들은 번화가에서 ‘떠돌이 악사’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초기에는 엔카 가창에서 서양풍 창법을 강조했다. 후지야마 이치로(藤山一郎), 아와야 노리코(淡谷のり子), 기리시마 노보루(霧島昇) 등은 모두 음악학교 출신의 성악 계열 가수였다. 그들은 훗날 유행하는 엔카의 창법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엔카 음계의 대부분은 일본 고유 민요 등의 음계를 평균율로 바꾼 5음계다. 일본 전통 음계 미야코부시(都節)가 서구화되는 과정에서 요나누키 음계가 만들어졌다. 단음계인 요나누키는 미-파-라-시-도, 장음계인 요나누키는 도-레-미-솔-라로 이뤄져 있다. 서양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음계가 전통적으로 이 음계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리의 애국가 곡조로까지 쓰였던 올드 랭 사인(석별, Auld Lang Syne)이다.

엔카는 대부분 일본 고유 민요의 5음계를 사용하는데, 엔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1904~1978)는 이를 변조시켜 독자적인 ‘고가 멜로디’를 창작해 정착시켰고, 이후 엔카만의 독특한 음계가 됐다.

최고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원동력


▎‘엔카의 여왕’ 미소라 히바리. 부친이 한국인, 모친이 일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고가 멜로디는 기교를 더욱 강조했고, 1960년대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 탄생의 길을 열어 줬다. 미소라 히바리는 6세이던 1943년 태평양전쟁에서 자식을 잃는 어머니의 슬픔을 노래한 ‘구단의 엄마’(九段の母)를 불렀다. 미소라 히바리는 1989년 52세로 타계할 때까지 노래로 일본 열도를 울리고 웃긴 엔카의 여왕이다.

엔카 가수들은 엔카만의 미묘한 장단을 살리면서 각각의 개성을 담아 고가 멜로디로 노래했다. 전쟁에 진 일본인들의 공허한 마음을 달래 주던 노래, 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노래, 그것이 바로 엔카였고, 그 주인공이 미소라 히바리였다.

그는 ‘천재 소녀가수’로 칭송됐으며 이후 가요·영화·무대 등에서 활약한 자타공인 ‘가요계의 여왕’이 됐다. 그는 여성으로는 사상 최초로 국민영예상(国民榮譽賞)을 수상했다.

미소라 히바리 인기의 원동력은 고부시(小節)와 우나리(唸り)로 불리는 독특한 가창법에 있다. 고부시는 작은 마디라는 뜻으로 민요나 가곡 등에서 악보로는 나타낼 수 없는 미묘한 억양이나 장단을 의미하는 단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로트에서 ‘꺾기’다.

우나리의 본뜻은 ‘으르렁거린다’는 의미로 노래를 부를 때 목 안쪽에서 나오는 저음의 긴소리다. 가사 중 일정 부문에서 감정을 돋울 때 혹은 소리를 울려주는 것으로 바이브레이션을 말한다.

또한 엔카 가수(특히 여성)는 일본적인 이미지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가창 시 일본 옷(주로 기모노)을 착용하는 일이 많다. 대표적인 가수와 노래로는 미소라 히바리의 ‘슬픈 술’, 미야코 하루미(都はるみ)의 ‘오사카 늦가을 비’, 오카와 에이사쿠(大川栄策)의 ‘애기동백의 숙소’, 요시 이쿠조(吉幾三)의 ‘설국(雪國)’, ‘술이여’ 등이다. 이들 노래에서는 바다·술·눈물·여자·비·북국·눈·이별이 자주 거론되고 이 같은 문구를 중심으로 남녀 간의 애틋한 애정과 비련 등이 주로 다뤄졌다.

또 호소카와 다카시(細川たかし)의 ‘북녘의 술집’, 후지 케이코(藤圭子)의 ‘신주쿠의 여자’ 등 물장사(水商賣)를 하는 여성이 손님과 사랑하는 대목도 자주 눈에 띈다. 이런 노래들은 그러한 접객 산업의 고객층인 남성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다.

엔카는 1945년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을 계기로 ‘반동적·봉건적’ 문화로 간주돼 진보 성향의 문화인들로부터는 기피 대상이 됐다. 그로 인해 당시 레코드를 통해 전파되는 가요는 미국에서 흘러들어온 재즈풍이 대부분이었다. 요시다 타다시(吉田正)가 재즈풍 곡을 만들고 프랭크 나가이(フランク永井), 미즈하라 히로시(水原弘), 이시하라 유지로(石原裕次郎) 등이 노래했다. 그들의 성역(聲域)은 모두 저음이어서 고음 위주인 게이샤·민요 등의 가수와 대비되면서 ‘서양다움’이 더 강조됐다.

그 외 다른 작가로는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핫토리 료이치(服部良一), 사이조 야소(西條八十), 후지우라 고우(藤浦洸) 등이 있다. 1960년께부터는 하시 유키오(橋幸夫),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 등의 ‘청춘가요’ 장르도 태어났다. 또 이즈미 다쿠(いずみたく)는 근로자음악협의회의 곡 등을 만든 후 CM송 세계에 진출해 이 분야의 아버지가 된다.

1955년께부터 라디오가 지방에 보급되면서 시골조(田舎調)가 유행한다. 초기에는 가쓰가 하치로(春日八郎)의 ‘이별의 한 그루 삼나무’, 시마쿠라 치요코(島倉千代子)의 ‘만나고 싶네 그 사람을’ 등과 미하시 미치야(三橋美智也)의 ‘사과 마을에서’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후나무라 토루(船村徹) 등이 꼽힌다.

시골풍의 악곡은 대화체의 가사에 기복이 심한 선율을 입힌 것으로 가요계에 충격을 줬다. 일부에서는 “다다미의 겉자리를 흙발로 걷는 듯한 작가가 나타났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 무렵 미소라 히바리와 고가 마사오가 명콤비로 손발을 맞추며 ‘유도’(柔)와 ‘슬픈 술’ 등 시골풍에 가까운 악곡을 발표했다. 훗날 히바리가 엔카 가수로 불리는 노래들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일본인의 심성 가장 잘 드러내는 가요


▎일본의 수필가이자 소설가인 이쓰키 히로유키. 중학교 1학년 때 일본 패망을 평양에서 맞았다.
1960년을 전후로 ‘엔카’라 불리는 장르가 비로소 탄생했다. 대표적인 엔카 가수는 고마도리 자매(こまどり姉妹, 1959년 데뷔)로 가난이나 불행 같은 이미지가 대중에 부각됐다. 작곡 분야에서는 엔도 미노루(遠藤実)가 부상했다.

같은 시기에 고바야시 아키라(小林旭)가 영화 [철새 시리즈]에서 떠돌이 역할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고바야시의 ‘떠돌이’는 기개가 워낙 호방해서 고마도리 자매와는 묘한 대조를 보였다. 때마침 재즈 등 팝송도 유행하면서 외래적 요소를 갖춘 ‘인텔리용 떠돌이’ 이미지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고바야시와 대칭적인 인물로는 기타지마 사부로(北島三郎)로 그는 초기에 ‘기타의리(ギター仁義)’, ‘형제의리(兄弟仁義)’ 등 협객(야쿠자류)을 주제로 한 악곡을 선보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보 성향의 문화인들 사이에서는 일본적인 노래와 엔카는 부정되고 있었다. 이즈음 가장 강하게 유행가를 비판한 인물은 소노베 사부로(園部三郎)였다. 소노베는 태평양전쟁 전 가요계의 변화를 예로 들며 “소위 일본적 선율에 의한 비애감은 사회의 퇴폐기에 꼭 출현했다”며 매도했다.

1960년대에 태동한 신좌익은 기존의 진보적 문화인의 계몽사상과 특권적 태도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 진보에 의해 ‘저속’, ‘퇴폐’로 폄훼돼 온 민족적·민중적 문화를 긍정적으로 읽어 내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들은 대중음악을 ‘고립된 무법자가 혼자 부르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들은 또 당시 사상적 조류였던 ‘소외’, ‘성 해방’이라는 주제와 연관시킴으로써 진보와 비교했을 때 ‘소외된 대중과 여자의 영혼을 생생하게 노래하는’ 측면을 강조한다.

1965년 작가 다케나카 로오(竹中労)는 [미소라 히바리-민중의 마음을 부른 20년]을 출간한다. 다케나카는 엘리트 계급에 의한 전통적 일본 노래에 대한 공격을 비판하는 한편, 그 공격을 견딘 히바리를 민족적·민중적인 음악의 전통을 지킨 존재로 찬양하고 있다.

인류학자 크리스틴 야노의 저서 [간절함의 눈물](2003)에 따르면 엔카의 가장 대표적인 음반회사 콜롬비아의 라벨(lable)을 분석한 결과 1973년 이전까지는 류코카(流行歌)로 분류됐으며 엔카라는 용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1973년 이후에 현재 엔카류로 불리는 엔카의 장르화가 이뤄진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엔카는 일본인의 심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가요의 대표가 된다.

이쓰키 히로유키 “후지 게이코는 진정한 원가 가수”


▎일본의 경제 부흥기에 여인의 어둠과 슬픔을 노래한 후지 게이코. 2013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일본에서 2200만 부가 팔린 [청춘의 문]이란 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알려진 작가 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寛之, 1932~ )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사회 비판의 ‘演歌(연가)’가 연예화하고 ‘艶歌(염가)’가 된 것을 긍정적으로 포착했다.

기존 논단에서는 정치적 비판 정신의 결여를 이유로 ‘연가’의 ‘염가’화는 비판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이쓰키는 엔카는 ‘대중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인텔리겐치아의 경세의 노래’로 연가의 약함에서 염가로 돌아섬으로써 서민의 입에 담지 못한 염원과 아픔을 요염한 시곡으로 바꿔 노래하는 ‘怨歌(원가)’가 된 것이라고 했다.

이쓰키가 엔카의 핵심적 요소로 주목했던 ‘어둠’, ‘슬픔’은 기존 음악 장르 구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틀이었다. 이쓰키의 소설로 엔카의 추이를 둘러싼 역사관이 근본적으로 바꾸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1966년 이쓰키는 콜롬비아의 마부치 겐죠(馬淵玄三)를 모델로 한 소설 [엔카(艶歌)]를 발표했다. 소설은 음반사 내에서 엔카와 외래 음악의 프로듀서가 서로의 명운을 걸고 겨루는 내용이다. 프로듀서의 모델은 마부치로 알려졌다.

‘염가’는 군가나 명랑 쾌활한 노래(‘사과의 노래’ 등)와는 다른 독자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염가’는 합리성을 추구하는 서양 음악과는 다른 독특한 장르로 평가된다.

1969년 데뷔한 가수 후지 케이코(藤圭子, 1951~2013)는 그 장절(壯絶)함을 노래한 인물로, 바로 이쓰키가 소설에서 제시한 ‘원가’의 원조에 해당하는 존재였다.

이쓰키는 후지에 대해서 “불행과 운명을 짊어진 진정한 원가 가수”라고 극찬했다. 후지의 음악성에 대한 평가는 신 좌익계 논단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런 의미에서 후지는 전형적인 엔카 가수였지만, 그 곡조는 블루스를 근간으로 했으며 사회적 메시지 또한 매우 강했다.

이젠 흘러간 노래 취급… 그래도 여전한 팬층


▎KBS의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인 [가요무대].
따지고 보면 정식으로 엔카로 명명된 지 반세기도 안 된다. 그동안 숱한 위기가 있었음에도 엔카가 생명을 이어온 까닭은 엔카에 매료되는 대중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대중가요에서나 나름대로의 애조가 드러나겠지만 엔카에서는 전통 미의식이 두드러진다. 인생과 사랑의 순간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애절함·절박함·간절함의 정조를 노래하는 특징이 있다.

이를 문학비평 용어로 표현한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는 모노노아와레(헤이안시대에 만들어진 문학 및 미학의 이념)는 인간과 자연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순화된 숭고한 감정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유한한 인생을 생각하면 ‘덧없는 것’, ‘적적한 것’, ‘쓸쓸한 것’을 생각한다. 일본인들은 이런 부정적인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전통이 있다. 약함이나 가난과 고독과 같은 부정적인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일본인의 지혜가 엿보인다.

구렁텅이 같은 마이너스 속에서 슬픔을 직시하는 용기를 지녀야만 진정한 플러스 사고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암흑 속에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이런 어둠 속에서야말로 밝은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일본의 대중가요에 엔카라는 이름을 명명한 작가 이쓰키 히로유키의 베스트셀러 [타력(他力)]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암흑 속에서 빛을 찾는 인간이야말로 한 줄기 빛을 보고 마음이 떨릴 정도의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의 트로트는 1980년대 들어서면서 비교적 빠른 템포, 가벼운 느낌의 사랑 이야기의 시대가 되면서 슬픈 이야기도 흥겹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애조 어린 서정의 세계에서 뛰쳐나와 새로운 변신을 거듭함으로써 K팝으로 대표되는 한류 시대를 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엔카는 아직도 인간 밑바닥에 존재하는 본능과 좌절의 상처에 대해서 진지하게 부르고 있다. 엔카는 일본의 전통 대중음악 장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렇지만 다른 문화 현상과 마찬가지로 서양 음악과 한반도의 영향을 종합·정리해 자신만의 문화로 재창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엔카가 지금도 ‘고가 멜로디’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그만큼 한번 만들어진 전통을 유지하려는 일본 문화의 보수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대중음악에서도 일본은 보수적인 반면 한국은 변화를 추구한다.

트로트를 왜색이라 비방하는 한국인은 많아도 엔카를 일본의 고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은 드물다고 한다. ‘엔카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가 마사오가 한국에서 어린 시절 오래 체류한 경험이 있고, 엔카 무대를 주름잡는 현존 가수 중에도 한국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엔카를 소화하는 데 한국인 나름대로의 정서가 엔카와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엔카는 한류의 진원지이자 ‘끼와 창의성’의 한반도에서 태어나 일본에 역수출됐다고 말하는 일본인도 많다.

현재의 엔카는 낡고 흘러간 노래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엔카는 감상·원망·눈물·슬픔·분노·탄식·꿈·희망, 일본인의 심정과 시대의 마음의 역사를 표현하고 있다. 비록 다른 대중음악에 비해 일본 내에서 고전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확실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그들의 ‘심장과 정신’ 그리고 ‘간절함의 눈물’을 담아내고 있다.

※ 최치현 -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같은 대학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에서 중국지역학 석사를 받았다. 보양해운㈜ 대표 역임. 숭실대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로 ‘국제운송론’을 강의한다. 저서는 공저 [여행의 이유]가 있다. ‘여행자학교’ 교장으로 ‘일본학교’ ‘쿠바학교’ 인문기행 과정을 운영한다. 독서회 ‘고전만독(古典慢讀)’을 이끌고 있으며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토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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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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