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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15)] 전격 은퇴 선언한 프로농구 선수 양동근 

“훈련 비법? 숱하게 지면서 단련됐죠” 

모비스에서만 17년간 뛰며 6차례 우승 이끈 헌신의 아이콘
대학 때부터 빛난 만능 가드… ‘좋은 지도자’ 화두 안고 새 출발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자택 근처에서 아들 진서 군과 함께한 양동근 선수. 그는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레전드를 찾아서] 연재 15번째 만에 가장 ‘싱싱한’ 레전드를 만났다. 현역에서 막 은퇴한 프로농구 선수 양동근(39)이다.

울산 모비스 농구단에서만 17년을 뛰면서 6개의 우승 반지를 수집한 양동근은 지난 4월 1일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정든 코트를 떠났다. 모비스는 그의 등번호 6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019~20 시즌 프로농구가 중단됐고, 끝내 재개되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은퇴 경기도 하지 못하고 갑작스레 은퇴 발표를 했지만 양동근은 누구보다 큰 박수와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 그는 ‘성실의 아이콘’이자 ‘원 클럽 맨 레전드’였기 때문이다.

서울 대방초-삼선중-용산고를 거친 양동근은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선수다. 고교 때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소위 대학농구 빅3인 연세대·고려대·중앙대의 러브콜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한양대에서 공·수를 겸비한 포인트가드로 거듭났고, 2004년 KBL(한국농구연맹) 프로농구 드래프트에서 빅3가 아닌 대학 출신 최초로 1순위 지명(모비스)을 받았다.

양동근은 프로 입단부터 은퇴까지 함께한 유재학 감독의 지도 아래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겸하며 숱한 승리를 일궈냈다. KBL 정규리그 MVP(4회), 플레이오프 MVP(3회), 최우수신인(2005년), 베스트5(9회), 최우수수비상(2회), 모범선수상(2회) 등을 휩쓸었다. 역대 KBL 정규리그 출장(665경기·6위), 득점(7875점·8위), 어시스트(3344개·3위), 가로채기(981개·2위) 기록은 그가 얼마나 다재다능하고 헌신적인 선수인지를 보여준다. 국가대표 주전 가드로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은메달), 2014 인천 아시안게임(금메달)에서 활약했다.

인터뷰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자택 근처에서 진행됐다. 트로피와 메달 등 사진 촬영에 필요한 소품이 모두 부모님 댁에 있어서 걱정이라던 그는 ‘확실한 소품’을 데리고 나타났다. ‘양동근 주니어’인 아들 진서 군이었다. 농구 선수가 꿈인 초등학교 5학년 진서는 인터뷰 내내 아빠 곁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은퇴 기자회견에서 ‘꿀잠을 자고 일어난 기분’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정말 기분 좋은 꿈을 꾸고 개운하게 일어난 느낌이죠. 운동하면서 중간중간 힘든 점도 많고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프로 17년이 지금 보면 길지 않은 시간인 것 같아요. 동생(후배)들이랑 통화하면서도 ‘17년을 했지만 이게 진짜 길지 않은 시간 같다. 너희는 좀 더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제가 2~3년 전에 했던 고민을 지금 하고 있는 후배들이 있거든요. 지금쯤 선수 생활 정리해서 제2 인생을 빨리 시작해야 하나, 한두 시즌 더 뛰어야 하나 그런 고민이요. 되게 길긴 했지만 지나고 보니 짧았습니다. 그래도 충분히 좋은 꿈 많이 꾸었습니다. 더 이상 허리가 배겨서 못 잘 정도여서 일어난 게 지금입니다. 하하.”

유재학 감독과 함지훈 때문에 다른 팀 못 가


▎2014년 9월 농구월드컵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레이업 슛을 시도하는 양동근.
요즘은 뭘 하고 지내시는지요?

“자전거에 푹 빠졌어요. 며칠 전에도 남한강 자전거 전용도로를 다녀왔습니다. 자전거가 이렇게 좋은지 미처 몰랐어요.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이 달랐지요. 앞으로 제주도 해안도로 일주도 해 보고 싶고, 여기저기 자전거로 다녀보고 싶어요. 다만 힘든 고갯길보다는 평탄한 곳을 달려보고 싶습니다. 3년 전에 손목뼈가 부러져 쇠심을 박았는데 제거 수술도 해야 하고요. 미국 연수도 계획하고 있다가 코로나19가 터지는 바람에 중단됐는데 그것도 알아보고 있습니다.”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느낌이 어떤가요?

“저희 프로농구 선수들은 시즌이 끝나면 일반인이 상상도 못 하는 한두 달의 휴식기를 갖잖아요. 지금도 그 기간이랑 똑같은데 다만 6월 이후 운동을 더 이상 안 해도 된다는 게 마음이 좀 편하고 부담감이 없다는 정도죠. 그동안엔 두 달 동안 쉬면서도 운동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몸 조절하고 사이클도 맞추고 하는 게 스트레스였거든요.”

울산 모비스 한 팀에서만 17년간 뛰었는데요. 서장훈·이상민 같은 스타 선수들도 팀을 옮겼거든요.

“FA(자유계약선수)가 되면 여기저기서 오라는 데가 있는데 저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오라는 팀이 한 군데도 없었어요. 그 팀 계획에 저는 없었겠죠. 유재학 감독님과 (함)지훈이가 있으니까 다른 데 갈 생각도 없었고, 그래서 부르는 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팀을 옮긴 뒤 잘된 선수도 있고 그 반대도 있는데 저는 어쨌든 한 팀에서 은퇴까지 할 수 있게 됐으니 복 받은 셈이죠.”

함지훈(36·198㎝) 선수가 그렇게 대단한 선수인가요?

“저는 지훈이보다 농구 잘하는 선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제게 말도 많이 하고 장난도 많이 하고 그런데 좀 소극적인 것 빼고는 농구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해요. 패스 빼줄 때 빼주고 공격할 때 공격하고, 벤치에서 지시하는 거 다 실행해 주고…. 모비스에서 제 비중이 크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훈이 비중이 가장 큽니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지훈이가 다 해줍니다.”

형 같은 크리스 윌리엄스 보내고 많이 울어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이란을 꺾고 우승한 뒤 태극기 세리머니를 펼치는 양동근(왼쪽)과 김주성.
유재학 감독은 왜 명장인가요?

“어렸을 때 본 감독님은 굉장히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군대 다녀오고 나서 본 감독님은 많이 부드러워지신 것 같아요. 사실은 원래 정이 많으신데 좀 더 냉정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신 것 같아요. 특히 선수 관리에 있어서는 입신의 경지에 오르신 분입니다. 제가 ‘저 선수는 뭔가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은데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순간에 정확하게 감독님이 지적해 주십니다. 불러서 술 한잔 사 주시면서 ‘이럴 때 이런 기분이 들지 않느냐’라면서 선수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버리니까 아무 말도 못 하는 거죠. 사실상 전술은 프로팀들이 거의 대동소이해요. 그런데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약속된 패턴 플레이를 할 때도 슈터가 슛을 쏘기까지 중간에 다른 선수들이 어떤 움직임을 해야 하는지를 세세하게 그려주시거든요.”

유 감독은 패스 능력이 뛰어난 정통 포인트가드였다면 본인은 수비가 강하고 스스로 공격의 활로를 뚫어내는 스타일이었는데요.

“선수가 생각하는 자신의 강점과 밖에서 보는 게 다를 수가 있어요. 선수는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코칭스태프는 그 선수가 가진 것이 팀에 어떻게 융화가 되고 도움이 되는지를 봅니다. 제 장점만 도드라지게 되면 나머지 네 명이 뛸 수가 없거든요. 감독님은 제 장점을 끌어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신 분이죠. 감독이 ‘이렇게 패스를 주면 슈터가 힘드니까 이 각도로 주라’고 얘기하면 그걸 시도해 보는 선수가 있고 해 보지도 않고 겁을 내는 선수가 있어요. 저는 계속 실패해도 시도를 했기 때문에 감독님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모비스가 우승은 많이 했지만 모비스 농구, 유재학 농구는 재미없다는 말도 있는데요.

“지난 시즌(2018~19)에는 굉장히 재밌지 않았나요? 이대성·함지훈·문태종·라건아에 득점력 좋은 외국인 선수까지, 공격할 수 있는 선수가 너무나 많았죠. 그런 멤버가 있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공격력이 떨어지는 선수를 가지고 공격력으로 이길 순 없잖아요. 프로는 결과와 성적으로 말하는 건데. 그전에는 공격에 장점이 있는 선수보다 수비에 장점이 있는 선수가 많았고, 그런 선수들을 데리고 성적을 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죠. 공격이 강한 팀들도 저희 수비를 만나면 버거워하는 부분이 있었고, 또 그런 모비스를 상대로 100점 넣는 팀도 있었어요. 작년에는 우리 팀 득실 마진(득점 수 - 실점 수)이 가장 컸어요. 남들이 보면 쉽게 우승했다고 하지만 쉽게 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죠. 그리고 수비 농구의 매력도 크고, 그걸 깨기 위해 방법을 찾는 게 농구의 묘미 아니겠어요.”

양동근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33번을 달고 뛰지 못한 게 농구 인생에서 가장 아쉬웠다”고 했다. 33번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2017년 사망한 크리스 윌리엄스가 모비스에서 달았던 번호다. 2005년부터 3년간 모비스에서 함께 뛴 윌리엄스와 양동근은 형제 못지않은 애틋한 정을 주고받았다. “크리스가 안 좋은 일 당하고 나서 항상 마음속에 ‘은퇴하기 전에 한번은 33번을 달고 뛰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작년에 은퇴를 생각하면서 올해가 마지막 기회가 되겠구나 생각하던 차였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리그가 중단돼 버린 거죠. 사고 나고 크리스 친동생과 연락하니 ‘잘 깨어나고 재활 잘하고 있다’며 영상도 보여줬는데, 그러다 며칠 있다가 갔죠. 그때 너무 많이 울었어요. 지금도 되게 많이 그리워요.”

크리스와는 한 팀 동료 이상이었나 봅니다.

“저보다 한 살 많은데 너무나 좋은 친구이자 형이자 가족 같은 존재였어요. 제가 총각 때라 숙소 생활을 했는데 크리스도 외국에서 와서 친구도 별로 없고 해서 몇몇 동료와 함께 정말 잘 어울려 놀았어요. 맛있는 거 먹으러 항상 같이 다니고 제가 한번 사면 더 많이 사주고, 제 결혼할 땐 귀국을 일주일 미루고 기다렸다가 결혼식 참석하고 갔어요. 제가 프로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제 아들 영어 이름이 크리스입니다. 아들 태어나면 크리스로 지으려고 미리 생각했었어요.”

양동근은 어떤 선수였다고 말할 수 있나요?

“남들보다 열심히 했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런데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거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우직하게 한 거죠. 최고를 가기 위해서 남달리 노력한 것도 별로 없는 거 같아요. 남들 하는 만큼 했는데 결과가 좋았고 운도 많이 따랐고, 감독님, 지훈이, 그리고 좋은 외국인 선수들 만난 덕이죠.”

남다른 훈련법이 있었나요?

“그런 것도 없어요. 감독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했고, 남들 하는 것만큼 했죠. 그런데 저는 대학 시절과 국가대표를 하면서 정말 많이 졌어요. 그게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제가 대표팀 있을 때는 역대 최약체 팀이라는 혹평을 받았어요. 중동팀한테 참 많이 졌어요. 그런데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이란 꺾고 금메달 땄으니 정말 고생을 많이 한 거죠. 한양대 시절에도 당대 최강인 연세대뿐만 아니라 약팀한테도 많이 졌어요. 저희 때 멤버가 나쁘지 않았는데 잘하다가도 약체한테 방심해서 지거나 어설프게 게임 하다가 덜미를 잡히곤 했거든요. 그런 경험들을 통해 많이 단련되고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생 형들과 북악스카이웨이 뛰며 체력단련


▎2006~07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한 모비스 양동근과 유재학 감독.
얼마 전 인터뷰에서 ‘다른 건 몰라도 인내심만큼은 백점을 주고 싶다’고 했는데요.

“맞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키도 작고 게임도 못 뛰는 후보 선수였어요. 친구들과 함께하는 게 좋아서 농구를 그만두지 못한 케이스였어요. 제가 다닌 삼선중학교 뒤에 북악스카이웨이가 있어요. 당시에는 고등학교 대학교 형들이 와서 운동 가르쳐주고 했거든요. 그 형들이 ‘야간에 북악스카이웨이 뛸래’ 하면 두말없이 따라 나갔어요. 어차피 게임도 못 뛰니까 열심히 체력이나 키우자 싶었죠. 그때는 친구들이랑 고등학교까지는 같이 올라가는 거였으니까 ‘그래 고등학교까지는 참고 해 보자’는 마음으로 견뎠죠.”

용산고에 진학하면서 농구가 많이 늘었다면서요.

“초등학생이던 저를 보시고 일찌감치 ‘찜’을 하셨던 용산고 양문의 선생님이 ‘너 중학교 때 쟤 때문에 게임 못 뛰었지? 내일 쟤 학교랑 게임 있으니까 넌 무조건 베스트야’ 하시면서 저를 선발로 넣으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일 게임 져도 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실력으로 안 되면 싸우고 나오기라도 해’라고 하시면서 독기와 근성을 불어넣어 주셨어요. 그리고 당시 ‘초고교급 가드’로 이름을 날리던 정선규 형이 3학년이었는데 야간에 저 하나만 데리고 1시간 반씩 일대일 시합을 했어요. 지면 떡밤 맞기부터 간식 사 오기까지 벌칙이 다양했어요. 이처럼 저를 믿어주고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었죠. 다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농구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잘 참는 게 중요합니다. 학생 때는 당장 결과를 갖고 뭐라 하지는 않잖아요. 과정 안에서 어떻게 성장하느냐가 중요하죠. 중고교 때 이미 잘해서 좋은 대학 간 선수들이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고, 특히 농구 명문이라는 연·고대 출신들도 꽤 있어요. 고교 때까지는 내가 최고였는데 대학에 가니 선배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게임을 못 뛰는데 밑에서는 치고 올라오지. 좀 더 인내하고 버텼으면 게임을 뛸 수 있었을 텐데 다치고 운도 안 좋고 해서 나가는 선수들이 많더라고요. 선배 등쌀, 감독과의 갈등 등으로요. 나이 마흔이면 불혹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엄청 많이 흔들리는데, 저보다 반밖에 못 산 스무살 안팎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흔들리겠나 싶어요. 유혹도 많을 거고. 그걸 참아내는 선수들이 여기까지 오는 겁니다.”

양동근은 ‘송곳 패스’를 쏙쏙 넣어주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통산 기록을 보면 어시스트가 매우 많다. 시야가 넓어지고 패스를 잘하게 된 비결이 있는지 묻자 그는 “사실 팀이 패턴 플레이를 하다가 외곽에서 찬스가 나서 3점 슛을 넣어도 패스한 선수에게 어시스트가 잡히거든요. 슈터가 그날 터지면 포인트가드는 어시스트 10개도 쉽게 넘어요. 진짜 이상민·김승현·주희정 형처럼 골 밑에 꽂아주는 패스를 한 게임에 한두 개 정도 했을까요? 그런 칼날 패스를 못 넣어주니 ‘소리(Sorry)’ 그런데도 허접한 패스를 받아 골을 잘 넣어주니 ‘생큐’만 했다고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라며 웃었다.

프로농구의 인기나 시청률이 옛날 같지 않은데요.

“그만큼 볼거리가 많아졌다는 거죠. 제가 어릴 때 PC방이 있었다면 주말에 농구 보러 가기보다 PC방 갔을 겁니다. 요즘엔 TV만 켜면 유럽 축구에 NBA 경기가 나옵니다. 대중들 눈높이는 높아만 가는데 선수들 실력이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개인기가 없다, 한 명 제칠 만한 개인기 가진 선수가 별로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은 그런 농구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학생 때부터 패턴 플레이 가르치고, 분업화시켜서 키 크면 센터 하라 하고, 센터가 드리블 치면 혼내고 합니다. 요즘은 키 2m인 최준용 선수가 가드 하려고 하고, 김선형·이대성 선수처럼 개인기를 적극적으로 보여주려 하는 선수도 나옵니다. 그런데 개인기를 어설프게 보여주다가는 팀 분위기를 떨어뜨립니다. 하려면 목숨 걸고 연습해서 성공률과 완성도를 높여야겠죠.”

아이들이 공 갖고 훈련하는 시간 많아졌으면


▎2020년 4월 1일 양동근 선수의 은퇴 기자회견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는 부인 김정미 씨.
프로농구 하면 늘 심판 판정 문제가 따라다니는데요

“사람이다 보니 그분들도 어쩔 수 없이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악의를 갖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면 정말 나쁜 사람이죠. 잘하려다가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절대 보상 판정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한번 실수한 건 그걸로 끝내야지 피해를 본 상대 팀에 유리하게 판정을 하면 본인의 기준이 흐트러지고 더 나쁜 결과를 만들 수 있거든요.”

이젠 지도자를 향해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됩니다. 어떤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일까요?


▎2017년 1월 골절된 손목뼈를 고정하기 위해 철심을 박은 양동근의 왼쪽 손목 엑스레이 사진.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결과를 내도 나중에 ‘저 사람이 좋은 지도자였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에겐 좋은 지도자였지만 또 누군가에겐 자신의 앞날을 막은 최악의 지도자로 기억될 수도 있겠지요. 저는 학창시절과 프로에서 정말 좋은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어떤 지도자가 돼야 할까’에 대한 답은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천천히 생각을 더 해 보겠습니다.”

아이들은 운동을 좋아하지요?

“아들은 매일 농구 하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간다며 몸이 달아 있어요. 딸 지원이는 저를 닮아서 몸이 빠르고 운동 신경이 좋습니다. 골프를 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한번 해 봐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아이가 친구 엄마들한테 ‘아빠가 저는 골프를 하래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아이의 꿈을 제가 정해버린 거잖아요. 그래서 ‘아빠가 그건 취소한다. 실수했다. 너 하고 싶은 거 해. 아빠가 도와줄 테니까’라고 정식으로 사과했어요. 근데 요즘은 아이가 다시 골프를 하고 싶다고 해요. 아내와 저는 속으로 ‘앗싸’ 하고 쾌재를 불렀죠. 하하.”

아들이 농구 선수로 성장한다면 어떤 환경에서 농구를 했으면 좋겠습니까?

“공을 더 많이 만지는 환경에서 했으면 좋겠어요. 체력도 중요한데 일단은 공이랑 친해져야죠. 제가 너무나 오랜 시간 그 반대 방식으로 운동을 해 왔잖아요. 물론 체력과 정신력을 키우기 위한 고통의 과정이 있어야 하지만 그걸 공을 갖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도자들이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내가 해오던 방식이 옳을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부족했던 것, 내가 못했던 부분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살면서 가장 아프고 힘들 때가 언제였나요.

“학창 시절이죠. 그 긴 시간 다 힘들었어요. 자아가 형성되기 전이잖아요. 봄만 되면 새로 만난 친구들과 정말 놀러 가고 싶은데 난 운동하러 가야 해요. 너무 싫었어요. 그런 상황이 매년 새 학기마다 돌아오니까요. 대학 와서부터는 그런 생각이 없어졌어요. 그때부터는 생존이니까요. 여기까지 왔으니 프로 가서 뭔가를 이뤄야 하지 않느냐는 강한 동기가 제 안에 자리를 잡았죠.”

은퇴 만류 많았지만 후회없는 결정


▎양동근은 “요즘 자전거에 푹 빠졌다. 제주도 해안도로 일주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양동근 선수는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며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힘내’라는 말을 했을 때, 그 사람은 젖먹던 힘까지 내서 살아오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거기에 대고 힘내라고 말하는 건 엄청난 압박 또는 좀 무책임한 말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힘내”라는 말 대신 무슨 말을 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라고. 무슨 결정을 했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해 봐야 한다고. 그리고 책임질 수 있는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번에 은퇴한다 했을 때 ‘한 해 더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은퇴 투어도 안 하고’라며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근데 저의 결정을 존중해 준다는 분들도 많았죠. 저는 후회 없는 결정을 했어요. 그래서 너무나 속이 시원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여운을 남겼다. “아까 물어보신 ‘좋은 지도자가 뭘까’라는 질문이 자꾸만 마음에 남네요. 철학적인 질문 같아요.”

양동근은 정말 좋은 지도자가 될 것 같다. 그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한다.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와 한양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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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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