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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5년 전 촛불 들었던 철학자 최진석의 직설 

“국가경영에 무지한 문재인 정권, 권력투쟁밖에 할 줄 몰라” 

文 대통령, 국가 안중에 없고 자기 진영 승리 지키는 데 골몰
대통령의 잦은 거짓말로 국가 운영에 대한 ‘신뢰’ 무너져


철학자 헤겔은 그 사회에 필요한 시대정신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감지하고 실천해나가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진정한 리더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상아탑을 박차고 나와 탁월한 사유의 시선으로 세상과 ‘날것’으로 소통하고 있는 철학자 최진석(62,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은 우리 시대가 경청할 만한 리더다. 월간중앙이 창간 53년을 맞아 최 교수에게서 ‘시대의 급소’를 진단하는 격정의 목소리를 들었다. 인터뷰는 3월 2일 최 교수 집필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짓 남았다. 국가를 제대로 경영하고 있다고 보는가.

되돌아보면, 우리나라 정치에서 국가경영과 관련된 제대로 된 통치 리더십을 보여준 것은 김대중 대통령까지였다고 본다. 그 뒤로 들어선 정부들은 국가를 경영한다는 관념보다는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정치 프로젝트’에 매몰되거나 ‘패거리 정치’에 그쳐버렸다.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고 권력을 장악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마땅히 국가 경영자로 변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했다.

왜 실패했을까?

정치는 당(黨)을 중심으로 한다. 정당은 권력 장악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다. 하지만 당을 중심으로 권력을 잡은 다음에는 자신을 지지했던 집단뿐만 아니라 반대 집단까지도 통치와 사유의 영역 안으로 포함시켜야 국가경영이 이뤄진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김대중 대통령 뒤로는 잘 이뤄지지 않다가 지금 문재인 대통령에 와서 그 폐단이 극에 이른 것 같다.

문재인 정권, 국가에 대한 인식 아주 약해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2020년 3월 27일 5회째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처음 참석한 뒤 천안함 피격용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그와 관련해 상징적으로 나타난 장면이 있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반대의견을 표하려는 사람들에게 살인자라고 지칭한 것이다(노영민 비서실장은 2020년 11월 4일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8·15 광복절 집회를 주도한 보수 단체들과 관련해 답변하면서 “집회 주동자들은 다 살인자”라고 말했다). 이것은 지금 집권세력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한마디로 집권세력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적대세력인 것이다. 그들의 언어로 말한다면, 척결해야 할 타도 대상이다. 결과적으로 집권층이 내건 ‘적폐 청산’도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압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았나! 21대 국회 상임위원회를 더불어민주당이 독식한 것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원칙이지만, 소수를 배려하지 않는 다수결은 독재다.

지금 집권세력에게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우선 ‘국가’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아주 부족하다. 세계적으로 근대국가들은 민족 개념이 국가 개념으로 대체되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저항할 때 가졌던 정치의식이 국가 개념으로 전환되지 못한 채 여전히 민족 개념에 의존하고 있는 측면이 있긴 하다. 그래도 이승만·박정희 정권 때는 근대국가 개념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다시 민족 개념이 강해졌고 지금 문재인 정권에서는 국가경영보다 민족의 일체감을 더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부터 국가경영에 많은 혼선이 일어나고 있다.

근대국가의 가장 큰 특징이 뭐냐면 민족감정이 아니라 헌법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헌법을 운용하는 제일 책임 있는 자리다. 헌법에서 규정하는 대통령은 군(軍) 통수권자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힘(폭력)을 행사하는데, 대내적으로 사용하는 힘을 경찰, 대외적으로 사용하는 힘을 군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가 된다. 국가에 대한 인식이 철저한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영토를 보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문 대통령은 국가에 대한 인식이 아주 약하다. 대표적으로 천안함 사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문 대통령은 지난해에야 처음 참석했다. 지금 집권세력은 민족에 대한 정서적 일체감이 국가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넘어서고 있다. 이것이 경제·외교·안보 등 국가가 가져야 할 근본적인 하드웨어에 영향을 미쳐 큰 혼선을 가져오고 있다.

5대 인사 배제 원칙 하나도 안 지켜


▎2012년 워싱턴 백악관의 루스벨트룸에서 만난 시진핑 중국 주석과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 최 교수는 외교는 철저히 국가이익을 놓고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운영에 혼선을 가져오고 있다는 점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집권세력은 정치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국가를 운영할 때 법을 기반으로 의견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 전반을 우리는 ‘정치’라고 부른다. 국가는 정치로만 운영되게 돼 있다. 정치는 근본적으로 말로 하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말의 수준과 말의 믿음(신뢰)이다. 말의 수준을 만들어내는 일을 레토릭(rhetoric, 수사학)이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 정치인을 레토(rhetor)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정치인들은 자기 말의 수준을 높여야 더 설득력을 얻는다. 한 나라의 말의 수준은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을 말해준다. 선진국 정치는 말의 향연(饗宴)이다. 정치인들의 말이 교과서에도 실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말의 수준이 매우 낮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말은 되도록 어린 학생들은 듣지 않으면 좋을 것이다.

그다음, 국가가 작동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뭔가? 신뢰다. 신뢰가 무너지면 그 나라는 무너지는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가 혼란스럽다는 것은 ‘신뢰지수가 낮다’는 말과 똑같다. 그래서 국가경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신뢰 확보다. 그중에서도 말의 신뢰가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과 권력층의 근본적인 문제는 신뢰의 상실, 즉 거짓말이다. 대표적으로 문 대통령이 자청해서 5대 인사 배제 원칙을 내걸었다(문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 후보 시절에 병역기피, 세금 탈루, 위장전입, 불법적 재산증식, 논문표절 등 연구 부정행위에 해당하는 사람은 공직에 임명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지킨 것이 하나도 없다. 일자리 현황판 세워놓고 정기적으로 브리핑하겠다고 했다. 지켰는가?

문 대통령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 뒤로도 계속 현실과 유리(遊離)된 말들을 하지 않았나. 국민의 살림살이는 힘들어지는데 경제는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 것이라든지, 부동산 문제도 곧 집값이 잡힐 것이라고 말해 분노를 샀다. 지금 문재인 정권에서 가장 큰 문제는 거짓말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6년 20대 총선 때 호남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정계를 떠나겠다고 했다(2016년 4월 8일 광주를 방문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호남에 고립감과 상실감만 안겨 드렸다. 강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했고, 정권교체의 희망도 드리지 못했다”며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치를 은퇴하고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때 국민의당 안철수 바람이 불면서 호남의 선택을 받지 못했는데도 그 뒤에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의 시스템이 작동하기 어려워진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는데,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나? 신뢰가 무너지면 국민도 약속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네 편이냐 내 편이냐만 중요해진다. 내 편은 거짓말을 해도 상관없고 국가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도 개의치 않는다. 이런 상태는 매우 위험하다. 국민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감정에 빠져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근대가 아니라 중세 시대를 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왜 그러한가?

근대로 오면서 인간은 생각을 본격적으로 한다. 생각을 하면서 인간은 객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와 달리 중세 시대는 객관성보다 주관성이 중요했다. 지금도 일부 국민은 사실상 중세에 살고 있다. 그들에게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왕이다. ‘우리 이니(문재인 대통령 애칭)’, ‘이니는 뭐든지 해라’ 이런 사고와 정치의식은 중세적이다. 그들은 아직 조선 시대를 못 벗어난 것이다.

앞서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경영이 어려워진다고 했는데…

한 나라의 경제·산업·국방을 움직이는 토대가 신뢰다. 신뢰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느냐? 이번에 국방 22사단 관할 지역에서 북한 군인이 철조망을 넘어와 귀순했다. 휴전선 철조망 인근에 만들어놓은 첨단 전자장비가 무용지물이 됐다는 얘기다. 왜 그랬을까? 정부기관이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공개 입찰로 하는데 최저입찰로 진행한다. 왜 최저입찰을 할까? 공무원도 업체도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 재산을 보호하는 국방 제품은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제품, 최첨단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국방예산은 빈부격차 해소와는 다른 영역이라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신뢰는 국가를 작동시키는 가장 근본 원리다. 그런데 지금 집권세력이, 대통령이 앞장서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처음에 저는 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는 방향이나 정책이 잘못됐다고 봤다. 하지만 요사이 생각이 바뀌었다. 한마디로 문 대통령은 식견이 부족하다. 국가가 무엇인지, 통치가 무엇인지, 헌법이 무엇인지, 왜 헌법을 지켜야 하는지를 모른다. 방향성이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무지한 것이다. 공부를 안 했다!

586 운동권, 가장 비민주적 북한 추종자 돼

신뢰의 상실 외에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문제점을 진단한다면?

우리 사회에 자유가 줄어들고 민주가 후퇴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 핵심인 586 운동권들은 민주화를 그렇게 강조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이 내건 민주화는 포장된 구호였고 실제로는 권력투쟁이었다.

왜 그러한가? 민주화운동을 하고 반독재투쟁을 했으면 민주에 대한 민감성이 더 강해져야 한다. 우리 정치와 사회 곳곳에서 민주적인 것을 향해 더 나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가장 비민주적인 북한 추종자가 됐다. 반독재를 한다면서 왜 독재체제를 강화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추종하는가? 그들은 지금까지 민주주의에 대한 민감성을 키운 것이 아니라 권력투쟁에 대한 기술만 강화한 것이다. 그들이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릴 수 있는 것도 머릿속에는 권력투쟁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도 권력투쟁을 하고 있지 국가경영을 논하지 않고 있다.

국정을 책임진 세력이 권력투쟁에 빠져 있다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되는데…

당연하다. 냉정히 말해 지난 4년 동안 집권세력은 권력투쟁을 통한 진영(陣營)의 승리만 가져왔지 국가경영에서의 승리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들은 지금도 자기 진영의 승리를 지키는 데만 골몰해 있다. 저는 지금 문재인 정부의 외교도 진영의 외교를 하고 있지, 국가의 외교를 하고 있지 않다고 본다. 진영은 쉽게 말해 자기편이 장악하는 것이다. 집권세력이 국가에 대한 인식이 있으면 그 방면의 전문가를 구하고, 국가에 대한 인식이 없고 진영에 갇혀 있으면 내 편을 구한다. 지금 문재인 정권의 외교 기조는 거칠게 말해 ‘반일·반미·친중·종북’이다. 왜냐? 그것이 지금 권력을 잡은 진영의 오래된 숙원사업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국가경영을 하려면 외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외교란 철저히 국가이익을 놓고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나라를 더 중시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국가 이익을 놓고 몇 가지 원칙을 따져보면 된다. 그 나라가 과거에 우리에게 어떠했는가, 그 나라가 지금 우리에게 어떠한가를 보는 것이다. ‘그 나라가 과거에 우리 영토, 문화, 역사를 존중했는가 존중하지 않았는가, 지금 우리 영토, 문화, 역사를 존중하는가 존중하지 않는가?’ 이것만 살펴보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나라는 어느 나라인가?’가 결정된다. 그런데 진영에 갇혀 있으면 이런 객관적 인식이 무시되고 주관적 취향이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우리가 “이념에 갇히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이념을 갖는 순간 객관적 판단이 어려워진다. 그러면 자신의 이익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같은 강대국이라도 더 힘센 나라가 있다. 그 나라가 식량자급률·에너지자급률·국방지출이 얼마인가,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항공모함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 새로운 산업과 신기술이 얼마나 많이 생기는가, 지금 문명을 작동시키는 인터넷이라든지 인공지능 같은 기술의 주도권이 어디에 있는가, 법치를 하고 있는가 인치를 하고 있는가 하는 시민의식의 정도 등 여러 요소를 따져봐야 한다. 이런 객관적 기준을 들이대면 강대국 중에서도 어느 나라가 더 힘센 나라인지 드러난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정권은 이런 객관적 인식을 못한다. 권력투쟁에 집착하는 진영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의 관심사는 국가경영이 아니라 온통 정권 재창출, 즉 진영의 연속성이다.

진영에 갇히면 나라의 독립이 손상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조종암의 선조가 쓴 만절필동(萬折必東).

▎노영민 주중 대사는 2017년 12월 5일 시진핑 주석의 신임장 제정식에 앞서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 이라고 썼다. / 사진:주중대사관
앞서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어떤 나라를 선택해야 할지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한 나라의 집권세력이라면 국가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독립이라고 할 때는 기본적으로 영토의 독립을 말한다. 중국이 동북공정, 김치공정을 펼치고 있는데, 중국 교과서는 지금도 수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을 나라와 나라의 대결이 아닌 ‘내전’으로 기술한다. 승랑(남조에서 활약한 고구려 요동 출신의 승려)이랄지, 고구려 승려도 전부 중국 불교사 안으로 넣었다. 중국 정부의 이런 흐름을 민감하게 봐야 하는데, 지금 집권세력은 이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 오히려 영토의 독립과 다른 길로 가고 있다.

노영민 전 주중대사가 시진핑 주석의 신임장 제정식에 앞서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고 썼다(노영민 주중 대사는 2017년 12월 5일 신임장을 받으면서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고 적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 만절필동은 ‘황하가 만 번이 구부러져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한다’는 말이다. 제후들이 천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말로 쓰였다.

경기도 가평에 가면 ‘경기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는 조종암(朝宗巖)이 있다. 소중화(小中華) 사상의 성지다. 고대 중국에서 제후가 천자를 알현하는 일을 조종(朝宗)이라고 한다. 이 조종암에도 조선 선조(宣祖)의 만절필동 글씨가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와서 우리를 도와준 것을 기리기 위해서, 제후국인 조선이 천자국인 중국을 끝까지 숭배하고 충성을 다하겠다는 의지로 바위에 새겼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사가 만절필동이라고 썼다. 우리는 남(南)이나 서(西)로 흐르는 강물을 가진 나라다. 그런데 동쪽으로 흐르겠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진영에 갇히면 정권만 보이고 나라는 안 보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진영에 갇혀 나라의 이익을 소홀히 하는 일이 길어질 때 항상 독립이 손상되었다.

국가에 대한 인식이 왜 중요한지 알겠다.

또 하나, 정상적인 국가 간에 대통령이 국빈방문을 했을 때 ‘혼밥’을 한 사례가 있나? 과문하지만 저는 들어보지 못했다. 수행기자들이 경호원들에게 두들겨 맞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제대로 된 항의 표시가 있었나? (2017년 12월 14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숙소인 베이징 인근 한 서민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는데 ‘한국 홀대론’이 제기됐다. 이어 오전 11시께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경제·무역 파트너십 개막식에서 문 대통령을 취재하던 국내 사진기자 2명이 행사를 통제하던 중국 경호원들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일들은 모욕을 당하고도 모욕 당하지 않았다고 자위하는 ‘정신승리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 정권은 자기 확신에 갇힌 몽환적 통치를 하면서 정신승리법만 누리고 있다.

임기 초에 나타난 실수 임기 말까지 반복


▎3월 4일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청사를 떠나며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최진석 교수는 집권세력이 윤석열 총장을 반개혁 세력으로 내몰았던 것은 정권 수사를 막기 위해서라고 봤다.
외교나 내정에서 ‘심리적 기대’를 ‘객관적 사실’로 착각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있는데 이는 외교 실패와 정책 실패로 이어질 뿐이다. “삶은 소대가리”라는 소리를 듣고도 그들의 표현법이라고 자위하면서 남북 간에 건강한 외교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게 정신승리법이 아니고 무엇인가?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019년 8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평화경제’를 강조한 데 대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비웃을)할 노릇”이라며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저는 문 대통령이 국가경영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진영 정치에 갇혀 있기 때문에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는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되는지, 어떤 존엄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못 갖는 것이라고 본다. 대한민국의 굴욕인데, 굴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국가경영을 제대로 못했다는 얘기인데…

지금 집권세력은 국가경영에 무지하다. 이론도 아닌 것을 이론이라 주장하고, 그 이론도 선택적으로 적용한다. 과거 남북한의 문제를 바라볼 때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해 북한은 그 나라의 특수한 상황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학문적으로 이론일 수가 없다. 이론의 핵심 기준은 객관성과 보편성이다. 여기에서는 적용되고 저기에서는 적용이 안 된다면 이론이 아니라 운동 구호다. 북한 한 나라만을 위한 이론이 과연 이론인가? 이처럼 지금 집권세력은 선택적 이론을 오래전부터 사용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치욕의 역사로 놓고, 역사의 정통성을 북한에 두려고 하는 한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조국 사태’에서 보듯 그들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그들에게 저는 뭐가 되느냐? ‘수구꼴통’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네 편 내 편만 있다.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생각하는 국민이 아니다. 생각이 멈춘 국민이다. 지금 국가권력을 가진 진영은 확증편향과 자기 확신에 갇혀서 몽환적으로 통치하고 있다. 객관적 사실을 벗어나 있다.

남은 1년이라도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방법은?

저는 기대를 접었다. 임기 초에 나타난 실수는 임기 말까지 반복된다. 모든 권력이 다 그렇다. 처음 코드인사가 문제라면 정권 내내 코드인사다. 정권 초기에 불통이다 그러면 끝날 때까지 불통이다. 거짓말했다면 끝날 때까지 거짓말이다. 제가 5년 전에 촛불 들고 광화문에 나갔고 문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취임하고 3달째인가 공직자 인사를 하는데, 자기가 말한 5대 인사 배제 원칙을 지키지 않더라. 임기 초에 나타난 그 거짓말을 보고 ‘아, 끝까지 거짓말할 것이다. 말과 실제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왜냐? 대통령 임기 초에 나타난 것들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무지(無知)하다. 무지한 것은 단기간에 고쳐지지 않는다. 이 정권 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검찰개혁을 말한다. 온 나라를 검찰개혁 소용돌이 속으로 빠뜨려 버렸다. 그런데 검찰개혁은 완전히 허구다. 허깨비와 싸우고 있다.

검찰개혁 명분으로 권력의 장기집권 도모

왜 그런가?

그들이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뭔가? 검찰의 권력이 집중돼서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면 검찰개혁은 권력 집중을 해소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권력이 더 집중된 공수처(공직자비리수사처)를 만들었다. 그리고 검찰 권력을 이제 경찰 권력으로 바꾸려고 한다. 이것이 개혁인가? 말과 실제가 맞지 않다. 그러면 검찰개혁을, 이렇게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면서 왜 하느냐? 제가 보기에는 딱 하나다.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윤석열 검찰총장(윤 총장은 인터뷰 이틀 뒤인 3월4일 사퇴했다) 문제도 간단하다. 지금 집권세력은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권력의 장기집권을 도모하고 있다. 윤석열을 반개혁 세력으로 내몰았던 것은 정권 수사를 막기 위해서다. 그래놓고는 윤석열은 반개혁 세력이고, 반윤석열파는 개혁 세력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서 이 전선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그건 거짓말이다. 정의로운 검사와 정의롭지 못한 검사들의 싸움일 뿐이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이 정권이 4년 동안 권력투쟁 이외에는 한 것이 없다. 권력투쟁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민생은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데 권력투쟁만 하고 있다?

지금 집권세력은 싸움에 능하다. 거기에다 아주 맹렬하다. 권력투쟁에 잔뼈가 굵은 이 사람들은 프레임 씌우기에 귀재들이다. 제1야당은 ‘토착왜구’ 한마디에 맥을 추지 못했다. 무기력에 빠져 있다. 국회의원 자리보전에 급급한 이들이, 권력투쟁밖에 할 줄 모르고 권력투쟁에 능한 이 세력을 이길 수 있을까?

※ 최진석
■ 1959년 출생
■ 서강대학교 동양철학 석사
■ 베이징대학교 대학원 도가철학 박사
■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 방문학자
■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1998~2017)
■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건명원 초대원장
■ 현재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 저서로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탁월한 사유의 시선] 등

- 진행 나권일 월간중앙 편집장 na.kwonil@joongang.co.kr / 녹취 정리 박남화 월간중앙 인턴기자

202104호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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